[연재] 전면화평으로의 길 - ⑪ 전면 화평에 회의를 가지지 말라
이번기회에 왕징웨이가 쓴 전면화평으로의 길(全面和平への路, 1941) 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조금씩 번역한 내용을 정리해 저조구락부에 올리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전면 화평에 회의를 가지지 말라 (全面和平を懷疑する勿れ)
*일화조약(1940년 11월 30일에 체결된 일화기본조약(日華基本条約)을 의미하는 것) 체결회의는 쇼와15 (1940)년 7월 5일부터 국민정부의 난징에서 아베(아베 노부유키 (阿部信行)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베는 당시 왕징웨이의 난징정부에 파견된 일본 특파 대사였다.)와 왕 주석(원문에는 ‘임시 전권위임대표’ 라는 말이 추가로 서술되어있다. 왕징웨이가 주석직에 올랐지만 초기 충칭정부의 린썬을 포섭하기 위해 임시직을 표방했음을 반영한 것이다.) 사이에 개시되었다. 이날 왕 선생은 일화의 교섭은 전면 화평의 표본이라고 그 특질을 강조하여 말했다.
이번 중일조약 (일화기본조약을 왕징웨이측에서는 ‘중일기본조약’ 이라 표기했었다.) 체결회의에서 중일 양국은 과거의 시기를 일소하고 현재 및 장래에 있어서의 친선관계를 확립하고, 정치상으로는 상호독립과 자유를 존중하며, 경제상으로는 호혜를 기조로 제휴를 실천하고, 같은 마음으로 함께 노력하여 동아신질서를 건설하고,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의 침투군을 격탕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백년넘게 지속된 옛 경제적 제국주의의 악을 숙청해야함을 서로 인식했다.
쌍방 모두가 이러한 공동의 목적이 있기에 교섭은 항상 성심성의껏 이루어졌고, 대세를 생각하여 교섭을 진행한 결과 본 조약을 통해 중일 신관계에 있어서 영구적인 초석을 마련하고 동시에 중일 신관계의 표본을 마련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번 중일조약 체결회의는 전면적인 정전 후에 교섭이 개시된 것이 아니라, 한쪽에서 아직 철저한 항전 을 주장하고 있기에 전국 내에서 아직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상태에서 교섭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번 중일교섭의 하나의 특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평의 길이 열린 지금, 항전은 즉시 정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나는 목숨을 걸고 노력해 화평의 초석이 될 조약을 체결하고, 이를 통해 전면 화평에 대해 회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여 그들의 의심을 해소시킴으로서 전면적 화평을 촉구하려 하는 것으로, 쉽게 말하자면 이것은 전면 화평을 위한 본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서 초석도 마련되고 본보기도 마련되었으니 우리는 이로써 일치 협력에 더욱 노력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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