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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㉕ 완 와이타야콘의 귀국 인사 (1943.11.12)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대동아회의 개최결정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4~10.15) 0. 대동아공동선언의 작성과정 (1943.7~ 10) 0.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개최에 대한 선전 실시요강 (1943.10.29) 0. 정보국 발표 (1943.11.1) /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0.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0.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0.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20.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0.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0.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20.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나치 독일) 의 연설 [대동아회의 그 이후] 21. 대동아회의 및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선전 실시 개황 (1943.11.18.) 22. 왕징웨이의 대동아회의 종료후 기자회견 / 기념방송 23. 바모와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8) 24. 호세 라우렐과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10) 25. 완 와이타야콘의 귀국 인사 (1943.11.12) 26. 찬드라 보스와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13) 27. 호세 라우렐의 필리핀 국회 연설 (1943.11.25) [부록] 28.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9. 대동아회의 일정표 완 와이타야콘의 귀국인사 (1943.11.12. / 총리관저 소객간(小客間))       도조 히데키 : 이번 대동아회의의 개최는 각하의 출석과 협력을 통하여 성공리에 종료되게 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실로 경축할만한 일입니다.       완 와이타야콘 : 저도 이번의 성공에 대하여 진심으로 축하를 표하며 또한 존중의 환대를 해주신 점에 대하여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도조 히데키 : 체재중에 불편한점도 많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에 대해 송구하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완 와이탸야콘 : 끝까지 이렇게 환대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귀국 후에 대동아회의의 성과에 대해 피분 총리에게 상세히 보고하겠습니다. 총리께서도 대동아공동선언의 요지를 파악하고 조속히 실시하기 위해 노력하려 할것이라고 믿는 바입니다.       도조 히데키 : 일본도 물론 대동아공동선언의 요지를 철저히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번의 회의는 명확하게 의견의 일치가 되었기 때문에 성공리에 종료될 수 있었다고 강력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일본은 앞으로도 한층 더 협력을 강화하여 대동아전쟁의 완수, 대동아건설의 완성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부디 귀국 후에 피분 총리에게 (이를) 상세히 설명하여 앞으로도 공동의 협력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완 와이타야콘 : 저는 피분총리도 대동아공동선언의 요지에 대하여 충분히 결의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이번의 회의를 통하여 일본과의 관계를 물론, 각 대표와의 관계도 친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대하여 동경(同慶) 하는 바입니다.       도조 히데키 : 귀국은 언제 하실 예정이신지.       완 와이타야콘 : 14일에 타이 왕국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하코네(箱根)에서 2일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㉔ 호세 라우렐과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10)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대동아회의 개최결정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4~10.15) 0. 대동아공동선언의 작성과정 (1943.7~ 10) 0.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개최에 대한 선전 실시요강 (1943.10.29) 0. 정보국 발표 (1943.11.1) /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0.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0.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0.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20.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0.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0.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20.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나치 독일) 의 연설 [대동아회의 그 이후] 21. 대동아회의 및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선전 실시 개황 (1943.11.18.) 22. 왕징웨이의 대동아회의 종료후 기자회견 / 기념방송 23. 바모와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8) 24. 호세 라우렐과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10) 25. 완 와이타야콘의 귀국 인사 (1943.11.12) 26. 찬드라 보스와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13) 27. 호세 라우렐의 필리핀 국회 연설 (1943.11.25) [부록] 28.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9. 대동아회의 일정표 호세 라우렐 – 도조 히데키간 회담 요지 (1943.11.10. 오후 4시 15분~ 오후 5시 10분, 총리관저 소객간(小客間))       ◎ 호세 라우렐의 발언 요지       12일 귀국할 예정임. 필리핀 독립이라는 이번 기회에 일본정부의 필리핀 정부에 대하여 표해주신 수없는 호의와 방문중 일행에 대해 베풀어주신 친절에 대해 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표함. 또한 최근 남태평양에서의 대전과에 대해 축하를 표하는 바임.       귀국 후에는 대동아공동선언의 요지를 의회에서 표명하는 것과 동시에 이를 실행하여 민중의 철저한 개조를 이끌어 낼것임.       도조 총리 각하의 허락을 얻어 필리핀 국내 사정에 대해 보고하면서 쿠로다(黑田) 최고 사령관, 와치(和智) 참모장 (구로다 시게노리(黒田重徳) 당시 14군 사령관을 의미.) 및 무라타(村田) (무라타 쇼우조 (村田省蔵) 당시 필리핀 대사를 의미. 무라타는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 까지 필리핀 대사를 역임했다.)  대사등을 언급하면서 위대한 군인, 정치가를 파견해준 것에 대하여 감사를 표하며 이를 통하여 필리핀 정부와 일본정부간의 관계는 현재 더욱 돈독해지게 되었음.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았으나, 귀국 후에는 대동아회의에서 결정된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임할 것임. 책임을 가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려 함. 이를 위하여 2~3가지 정도 논의하고 싶은 바가 있음.       일본인 고문 및 전문지도관의 파견에 대한건. 대사관을 통하여 이전에 전달받은 내용을 보면, 일본 측의 안은 총수 220명 가량을 파견할 것을 안에 담았으나, 필리핀 정부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이에 대해 이견이 존재함. 농업, 공업, 재정경제의 전문부분에 대해서는 현재 파견의 내용이 다뤄지지 않았는데, 이 방면에서는 일본의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정치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일본의 고문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바임. 이와 같은 중요한 시기에 이러한 행동은 필리핀을 괴뢰정부로 보이게 하는 나쁜 인상을 줄 위험성이 존재함. 필리핀의 치안에 관한건. 치안의 확보를 위하여 출발전에 군사령관 및 대사와 협의하여 근본적 문제에 대한 요해(了解)를 얻게 되었음. 즉, 대통령으로 하여금 대사령(大赦令)을 공표하여 아직 산지에서 일본의 진의를 알지 못하는 필리핀 동포들에게 귀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와 관련하여 2~3개월의 기간동안 군의 군사행동을 정지하여 귀순을 용이하게 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요해를 도출하였음. 이를 통하여 치안의 회복도, 한층 더 진보하게 되어 필리핀도 생산증강에 만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함.       국가 지도자로서의 진두지휘에 관한건. 자신은 신체의 위험등은 염려하고 있지 않음. 민중과 직접 접하여 정부의 뜻을 전달하고 치안의 확보를 위하여 노력할 생각임. 때문에 대단히 송구하나 요구사항이 존재함. 이는 즉, 대통령 및 필리핀 정부용의 비행기 1기와 배 1척을 소망하는 것으로 , 이를 소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음. 필리핀은 제도가 많아 해당 지역들을 시찰하기 위해서는 비행기가 필요함. 또한 비행기로 갈 수 없는 곳을 방문하기 위해서 배가 필요함. 지금의 상황에서는 총리 각하로부터 비행기를 기증받으려고 함. 이는 송구하기 짝이 없는 일로, 필리핀으로서는 일방적으로 호의를 제공받기만 하고 있으며, 자신 스스로도 이러한 상황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음. 이에 대해서는 송구할 뿐임.게다가 이전부터 필리핀에 대해 일본이 보여준 태도를 생각하면 부끄러울 뿐임. 지방시찰을 위하여, 필리핀 권내에 각지 군관들과 회견을 하기 위하여 2개월간 자본금을 준비해줄 것.       귀국에 임하면서, 다시 한번 일본에 대한 충성을 표하는 바임, 또한 각하에게는 이러한 다사다망한 시기에 아무쪼록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람. 이는 대동아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임을 유념해주시길 바람.       ◎ 도조 히데키의 발언요지       라우렐 대통령의 대동아회의에 대한 협력과 참가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건강을 기원함. 일본은 대동아회의에서 결정된 대동아공동선언의 정신을 끝까지 이루기 위하여 방책에 있어 공동선언의 이러한 내용들을 반영하려하고 있음. 이 기회를 맞이하여 특별히 한마디 하자면, 이번 기회에 행정부의 최고장관 자격으로서, 각하의 방문을 맞이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가까운 시기에 다시 한번 대통령의 자격으로서, 국가 원수의 자격으로서 방문해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음. 각하가 최고군사령관 및 대사와 긴밀하게 연락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를 승인하며 오히려 기쁘게 생각하고 있음. 하지만, 지금의 220인의 고문 및 전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임, 언급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일본은 현재 고문 및 전문가를 파견할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필리핀에 대해 간섭하려는 의사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음. 또한 필리핀 공화국의 요구가 있을때만 파견할 것임. 각하는 필리핀 공화국 원수이신 만큼, 본건에 대한 결정을 다시 한번 살펴보시고 충분한 검토 후에 필요한 인원을 요구해주시길 바람. 치안에 확립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신 것처럼, 군과 대책을 세우고 대응하여 하루라도 빨리 이를 완성하고 생산의 증강을 할 수 있기를 바람. 때문에 치안을 제1의 우선순위로 할 필요가 있음.   말씀하신 대사령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방법적으로는 현지군과의 격의없는 의견을 교환 후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함. 저로선 특히 만의 있는 의견의 교환이 이루어져야한다는 점을 강조드리는 바임.   대통령 전용 비행기 1대에 대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대통령 취임의 축하기념으로서 전달하려 할 것. 배에 대해서는 해군 대신과 협의하여 최대한 빠르게 이에 대해 논의해보도록 하겠음. 비행기의 조종사 및 보관에 대해서는, 군이 담당하는 것으로 하고 또한 일본인 비행사를 쓰려 하고 있음. 대통령을 담당하는 조종사는 기술적인 신용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하 자신에 대해 절대 충성하는 이를 필요로 함. 조종사는 적어도 4년간의 훈련 경험을 요하며, 필리핀인들이 적격하다 생각되는 이를 일본에 이야기하면 훈련을 통하여 충분한 훈련을 하게 한 후 일에 임하게 할 필요가 있음. 또한 각하에 대한 충성에 대한 부분도 고려 해야함. 이는 만일 각하가 적지역에서 납치되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 보호하기 위함임. 또한 부품의 교환 및 점검에 대한 문제도 있음. 때문에 각하의 비행기는 군에서 담당하고 일본군의 비행사를 사용하게 하는게 안전하다고 생각됨. 각하께서 시찰을 하시겠다한 부분에 대하여 형제로서 빠르게 이에 조력하겠음. 다만 오지 지역에 대한 시찰은 일절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함. 자본금에 준비에 대한 건은 2주간의 협의를 통하여 결정하도록 하겠음.    마지막으로, 각하의 건강을 기원하며 이는 필리핀의 장래를 위해서도, 대동아민족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라 생각됨. 각하에게 말씀드렸듯이 이번 일 이 끝난 이후 대통령의 자격으로 다시 한번 일본을 방문해주시기를 희망하는 바임.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㉓ 바모와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8)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대동아회의 개최결정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4~10.15) 0. 대동아공동선언의 작성과정 (1943.7~ 10) 0.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개최에 대한 선전 실시요강 (1943.10.29) 0. 정보국 발표 (1943.11.1) /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0.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0.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0.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20.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0.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0.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20.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나치 독일) 의 연설 [대동아회의 그 이후] 21. 대동아회의 및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선전 실시 개황 (1943.11.18.) 22. 왕징웨이의 대동아회의 종료후 기자회견 / 기념방송 23. 바모와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8) 24. 호세 라우렐과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10) 25. 완 와이타야콘의 귀국 인사 (1943.11.12) 26. 찬드라 보스와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13) 27. 호세 라우렐의 필리핀 국회 연설 (1943.11.25) [부록] 28.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9. 대동아회의 일정표 바모 (Ba Maw) 당시 버마국 내각총리대신. 그와 도조 히데키는 대동아회의 이후 별도로 회담을 진행했다. 바모는 이자리에서 일본의 행동들이 부당함을 명확하게 밝히기도 했다. 바모 – 도조 히데키간 회담 (1943.11.08. / 총리관저 소객간(小客間) 귀소) (당시 바모는 감기기운이 있었으며 (발열은 없었음) 이에 대해 도조 히데키는 건강과 쾌차를 기원하였고 이에 바모는 감사의 뜻을 표했음)       도조 히데키 : 각하의 귀국편에 대해서는 현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바모 : 후의(厚意)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도조 히데키 : 국사가 다망한 와중에도 이렇게 회의에 참가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대동아회의를 통해서 각방면에서 의견을 교환하고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된 것은 이후의 공동사명의 수행에도 몹시 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하는 바로 실로 경사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바모 : 저는 처음부터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도조 히데키 : 저도 같은뜻입니다. 이에 더해 한마디 드리자면, 이번에 각하께서 버마국을 대표하시어 이번에 방문하시게 된 이유는, 이번의 회의가 행정의 최고장관 회의이기 때문으로, 각하께서는 이번에는 행정의 최고장관으로서 방문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제 기회가 된다면, 행정최고장관이 아닌 국가대표로서 다시 한번 일본을 방문해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저는 이러한 기회가 가까운 시기에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바모 : 후의(厚意)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이 기회에, 저는 회담 개최중에 제안드렸던것처럼, 어떠한 형식으로든 중앙기관을 설치하여 대동아의 공동사명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등의 조치를 요청하려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도조 히데키 : 방금 주신 의견에 대해 고려해보겠습니다. 또한 만주국 대표의 제안도 고려하여 연구하도록 하려 합니다. 위의 제안에 대해서 한마디 드리자면, 우선 현재 도쿄에 주재하고 있는 버마국 대사를 통하여 알린 바가 있습니다만, 일본에는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일을 하는 기관으로서 대동아성이라는 기관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대동아성은 대동아 여러 국가를 종래의 외국과 같이 인식하지 않고 같은 피가 흐르는 형제로서 교류하고 있습니다. 즉, 손님의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육친(肉親) 의 관계로서 보살펴야한다는 생각속에서 대동아성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를 고려해주시길 바랍니다. 대동아성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친한 동료에게 우리는 동료가 집의 현관에 찾아왔을 때 동료로 하여금 벨을 누르고 정중하게 명함을 꺼내는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이럴 땐 문앞까지 찾아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즉, 격식을 차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떤때가 되었든 편하게 방문하게 하고 우리도 편하게 그들을 맞이합니다. 대동아성이 그렇습니다. 대동아성과 대동아 각국의 관계는 이와 같은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뜻하면서도 타인에게 예의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대동아 밖의 국가와 외교를 진행할 땐 자주독립 존중의 원칙을 비롯한 여러 원칙 아래 외교를 진행해야 합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대동아성과 같이 동료와 같은 친근한 관계는 아닌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친한 동료로 하여금 편하게 우리집으로 오게 할 때는 필요가 없었던 정중한 격식을 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 경우에는 외무성이 이러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따라서 서양인에게는 대동아성의 행보는 이해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모 : 유희있는 말 잘 경청했습니다. 현재 버마국은 전쟁 수행에 협력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전쟁 수행에는 수많은 고난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씀해주신 바를 생각하면서 계속하여 매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조 히데키 : 감사합니다.       바모 : 버마국은 이번에 협력대신을 수행원의 일원으로서 배치하였고 전쟁수행의 협력을 위하여 협력성을 설치하였습니다. 따라서 다사다망한 가운데 죄송하지만, 여기서 저의 희망사항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여기서는 윤곽에 대해서만 말씀드리려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협력대신으로 하여금 대동아성에 연락하여 전달하게 하려합니다.       도조 히데키 : 그러시죠.       바모 : 각하에게 부탁드리고자 하는 내용은 3가지입니다. 첫 번째 는 버마정부와 일본군간의 전쟁수행에 협력에 관한 내용 이고, 두 번째 는 버마국 정부에 파견해주었으면 하는 고문 및 전문 지도자에 관한 내용 이며, 세 번째 는 버마국의 국민의 긴급 수요 물자에 대한 내용 입니다.       첫 번째 내용의 경우 현재 원만하게 실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일부 상층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나 그런 것으로, 바라건대 이 원만한 관계가 국가총력전을 견지하고 모든 계급 및 모든 이들에게 미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를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버마국 정부와 일본군 사이의 협의기관을 설치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군의 기밀에 접촉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최근의 일을 예로 들자면, 최근 일본측은 버마국 정부에 사전연락없이 주요 도로의 교통을 금지시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사전에 버마국 정부에게 연락만 되었어도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협의기관은 이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한 기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협의기관의 부의사항에 대해서는, 기관이 최대한 광범위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군사기밀 관계상, 부의사항의 결정과정에서 군으로 하여금 군의 독자적인 입장 속에서 결정하게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의사항의 결정과정에서 적어도 사전에 가능한 한 저에게 정보를 전달해주길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현재의 고난을 완화하고 원만하게 유효한 전쟁협력을 가능하게 하기를 염원하는 바입니다.       또한 검열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싱가포르 (원문에는 쇼난(昭南) 이라는 당시 일본에서 사용하던 명칭이 사용되었다.)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언론검열정책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은 저의 입장에서는 매우 곤란한 것중 하나입니다. 인도인은 버마의 현재 상황에 대해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버마국내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매우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점은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다는 뜻으로서, 일본의 대 인도정책이 충분히 고려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또한 식량에 대해 살펴보면, 평소 버마국의 쌀 생산량은 약 4백만 톤 가랑이었습니다. 하지만 내년의 생산 예측은 약 250만톤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부족의 원인은 일본군에 의한 사역(事役) 에 농민이 동원되기 때문이며 또한 농사에 사용되는 소를 징발하였기 때문으로, 이 역시 사전에 버마국 정부에게 사전에 연락하였다면 군의 수요를 충족시키면서도 쌀 생산을 떨어트리지 않을 방책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일본군이 현지 정책을 적절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으며 이 역시 버마국 정부와 일본군간의 협의기관이 있다면 이러한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조 히데키 : 이렇게 이야기를 통하여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저도 처음 듣는 정보도, 기탄(忌憚) 스러운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앞으로의 방책 결정에 있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도움을 주셔서 기쁨을 느끼는 바입니다. 이야기 해주신 내용은 버마가 독립한 이후에 점차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일본군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또한 부모의 마음을 자식은 모른다는 말 도 떠오릅니다. 게다가 버마에 대한 적들의 반격은 점점 거세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알고 이러한 문제들이 야기하는 문제점을 인정하고 이를 시급하되 충분히 조절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협의기관의 설치에 대해서는 지극히 강구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하여 다시 원활한 협력관계가 구성되기를 크게 기대하는 바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현지 군 및 대사와 우선 상담한 이후 설치가 가능한지를 살펴보고 중앙에서 현지에 지시하게 하려 합니다. 또한 저는 현지에 계신 각하께, 일본군 사령관 및 대사 간의 정례 비공식 회담을 제안드리려 합니다. 이러한 제안이 각하의 간절함을 만족시킬 수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물론 이러한 협의기관의 건도, 회의의 건도 각하께서 제안하셨다는 것은 변함없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해주신 교통문제, 검열문제, 식량문제에 대해서는, 전쟁 목적의 달성이라는 관점 속에서 이를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버마국 정부가 일본군 및 대사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대사에게도, 군에게도 중앙에서 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이 기회에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는, 관대한 마음으로, 큰 관점에서 현재의 상황을 봐주셨음 합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근처의 이웃들이 서로를 동지로 생각하고 사이좋게 지낸다면, 이웃의 아이들 역시 사이좋게 지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때때로 아이들은 싸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어른들이 관대하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후 아이들 역시 다시 좋은 관계를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모 :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도조 히데키 : 형제도 싸울때가 있습니다. 요컨대 마음을 알고 있는 친한 사이에서도 싸움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바모 :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해 설명해주시니 귀에 속속 들어올뿐더러, 각하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비유는 전쟁협력을 어떻게 다시 원활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려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협의기관의 문제에 대해서는, 귀국 후 현지에서 신속하게 상담하며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버마의 민정에 대한 문제에 대해 국가주석으로서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도조 히데키 : 감사합니다. 버마 현지의 군사령관은 잘 알고 있는이로, 군사령관에게 솔직하게 말해 두겠습니다. 현지의 풍속, 습관에 익숙하지 않은 만큼, 많은 문제가 일어나곤 합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주의를 요하게 하겠습니다. 그 외의 점에 대해서는 각하로부터 현지군에게 연락을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바모 : 최근에 일어난 일로, 군으로 하여금 정치범의 검속(檢束)을 행한적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버마인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국무대신을 비롯한 이들도 비판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본 사건에 대해서, 저에게는 어떠한 사전 연락도 없었습니다. 국무대신에게 전달 받은 바로는, 국가주석인 제가 이러한 문제를 우선적으로 아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였으며 특히 의외인점은 헌병의 하급 장교 가 저를 방문하여 본 사건에 대하여 저의 방침을 질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원수로서 위 장교에게 응수(應酬) 하며 이러한 방문은 적합한 것이 아니며, 회답할 용의도 없다는 요지의 뜻을 전달하여 떠나게 하였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가까운 시기에 군사령관으로 하여금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려 합니다.       도조 히데키 :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들은 범위에서만 판단하자면, 진실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바모 : 위와 같은 일의 발생은 저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는 건 물론, 버마 민중의 관점에서 볼 때도, 저의 지위를 우습게 할 뿐입니다. 이렇게 원수로서의 저에게 신뢰를 주지 않고, 전혀 연락을 하지 않고 일을 벌이는 것은 원수로서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하는 일입니다.       도조 히데키 : 이와 같은 일에 대해서는, 대사 및 사령관에게 솔직하게 말해두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저부터 주의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는 각하를 하나부터 열까지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절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헌병과의 문제에 대해서는, 헌병이 버마에 황군이 진격했을 당시의 인식을 여전히 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 역시 바꾸어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각하가 군사령관의 명령을 듣고, 행정부장관의 생각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것 역시 각하의 지위에 곤란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하가 원수이시자 내각총리대신이신 각하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리들이 보았을 땐 하급자들에게 유감으로 여겨질 것이며 아직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됩니다.       바모 : 다음으로, 두 번째 쟁점인 일본인 고문 및 전문지도자에 대해선, 군사령관과 협의해본 결과, 중앙에서 일단 결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며, 대사와도 상담해본 결과, 대사는 중앙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면서도 극력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최고고문에 대해서는 제가 개인적으로 일반적으로 상담할 수 있는 이여야 하며, 지혜를 빌릴 수 있는 사람이기를 소망하는 바입니다. 그 외의 고문의 경우에는, 최고고문의 의견을 듣고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조 히데키 : 각하는 의중에 두신 인물이 있으십니까?       바모 : 아직 의중에 둔 인물은 없습니다만, 소망하는 사람은 국제관계에 밝고 군과도 관계가 좋은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도조 히데키 : 본건에 관해서는 일단 알겠습니다. 인물의 선발은 가능하다면 각하가 도쿄에 계실 때 결정하도록 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충분히 연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발할 인물은 버마국의 국내 국정경영에서 각하 스스로가 극히 능력을 가지고 감독할 수 있도록, 일본과의 관계를 최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인물의 선발과정에서 중점으로 두려 합니다.       바모 : 좋습니다.       도조 히데키 : 이를 위해서는 유망한 인물이 좋겠습니다. 또한 각하의 의도와 맞는, 버마국과 현지 일본기관과 관계를 조절할 수 있는 인물이면 좋겠습니다. 사쿠라이(櫻井)  (바모가 대동아회의 기간동안 묵었던 숙소의 주인인 사쿠라이 효고로(櫻井兵五郞)를 의미하는 것이다. 당시 15군 사령관이었던 그는 이후 버마군정기관최고정치고문으로 활동한다.) 씨와 같은 인물은 어떻습니까?       바모 : 사쿠라이씨 같은 사람은 최고로 소망하는 바입니다. 그는 버마에 대한 공감도 있으며 유능한 인물이며, 군과의 관계도 좋은 인물이니만큼 소망하는 바입니다. 그 외에도 기획, 교통, 식량에 대해서도 3명의 고문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최고의 고려를 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문지도자를 필요로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현지군과 협의하려 합니다. 고문 및 전문지도자의 임명에 대해서는 버마 정부의 승인 및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도조 히데키 : 그건 당연한 것입니다. 고문 및 전문지도자는 버마국 정부의 직원이기 때문입니다.       바모 : 3번째 쟁점인 물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세한 사항은 대동아성을 통하여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오랜기간에 걸친 회담에 대하여 바모는 감사의 뜻을 표명하였고 당시 다낭에서 일어난 비행기 사고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㉒ 왕징웨이의 대동아회의 종료후 기자회견 / 기념방송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대동아회의 개최결정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4~10.15) 0. 대동아공동선언의 작성과정 (1943.7~ 10) 0.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개최에 대한 선전 실시요강 (1943.10.29) 0. 정보국 발표 (1943.11.1) /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0.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0.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0.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20.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0.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0.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20.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나치 독일) 의 연설 [대동아회의 그 이후] 21. 대동아회의 및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선전 실시 개황 (1943.11.18.) 22. 왕징웨이의 대동아회의 종료후 기자회견 / 기념방송 23. 바모와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8) 24. 호세 라우렐과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10) 25. 완 와이타야콘의 귀국 인사 (1943.11.12) 26. 찬드라 보스와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13) 27. 호세 라우렐의 필리핀 국회 연설 (1943.11.25) [부록] 28.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9. 대동아회의 일정표 왕징웨이의 중앙전신사 인터뷰 (1943년 11월 6일, 대동아회의 종료후)             대동아전쟁은 공영주의대 식민주의의 전쟁으로, 왕도 대 패도의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동아전쟁의 의의는 파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설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며, 작게는 동아의 영미 침략세력을 소탕하는 것에 있고, 크게는 대동아공영주의를 확립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동아 민족이 성의로 인치단결하여 호혜를 도모하고 동거동락하여 생사를 함께하게 된 것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개최된 대동아회의는 동아의 도의정신을 충분히 발휘하여 동아 각국을 하나로 묶어 영미 식민주의의 억압과 수탈 정책을 타파하고 동아 각국의 국민들로 하여금 독립과 자주속 애국심을 충실히 가지게 하고 공존공영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기에, 동아 각국이 근본정신을 도의정신에 두어 단결하게 된다면 대동아전쟁은 반드시 승리하고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단언하는 바입니다.       수년간, 저는 중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동아를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고, 이제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에 대해 무한한 감회를 느끼는 바입니다. 저는 열성을 다하여 대회의 성공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최대의 노력으로 중국의 전국민을 이끌고, 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결의를 실천하여 화평운동을 관철하고, 중국의 독립을 구하고, 동아의 해방을 실현하고, 대동아전쟁의 완성을 위해 힘쓸 것입니다. 왕징웨이의 기념방송 (1943.11.08.)       저는 이번 세계사에서 위대한 의의를 가진 대동아회의에 참석하게 되어 내심 이를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의를 통해 일본 도조 수상의 위대한 이론을 경청하고, 각국 대표들의 위대한 이론을 직접 접하게 되어 진심으로 감복하고 있습니다.       지난 백년을 돌이켜보면, 영미 양국은 제멋대로 침략과 착취정책을 자행해왔고,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세계 지배 야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국 세력은 그 야망을 처음에는 남양, 그 다음에는 중국으로 확장시켜 아편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미국도 태평양을 넘어 동아를 침공하여 영국과 연합하여 협공지세를 형성하였습니다. 당시 동아민족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었으나, 다행히 일본은 홀로 일어서는데 성공하여 영미의 야망을 막아내고 영미에게 타격을 입혔지만, 그 야심은 변하지 않아 계속하여 동아 민족을 이간질 시키고 서로 싸우게 하여 동아는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동아전쟁이 시작되어 영미 양국의 세력이 동아에서 무너지고, 영미 침략이 착취해왔던 소득과 시도는 모두 일본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대동아의 모든 민족은 일본이 동아를 지켜낸 공적에 대하여 감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은 영미 양국이 동아를 해치고 동아의 침략 정책을 가져왔다고 생각하여 영미세력을 격퇴하고, 나아가 이들이 펼쳤던 정책을 제거하려 하고 있습니다. 즉, 공존의 구호를 통해 침략의 구호를 바꾸고, 공존을 통해 착취를 끝내고, 동아민족이 각각 자주독립할 수 있게 하고 상호간의 자주독립을 존중하며, 문화방면에서는 그 창의력과 조화력을 발휘하게 하며, 경제방면에서는 호혜를 실행하고, 장단점을 서로보완하여 유무상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방침은 영미의 기존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동양의 도의정신에 근거한 것으로, 서양의 이기적인 모습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번 대동아회의는 일본이 주최하여 동아의 각국가들과 연합하여 단결의 힘으로 도의정신을 발휘하게 하는 위대한 공헌으로, 대동아 각국가들의 영원한 우호의 토대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영원한 화평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화민국의 국부 손중산 선생이 이야기한 "일본의 유신이 동아의 기회가 될 것" 이라는 것은 이제 증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손중산 선생이 제창한 대아시아주의는 일본이 중국의 불평등 철폐에 협조하는 것도 소망하였는데, 이 또한 이제는 구체화되었습니다.       저는 몇일 전 주중 일본대사와 중일동맹조약을 체결한데에 이어 오늘 중화민국을 대표하여 대동아회의에 참석하여 대동아공동선언에 서명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가한 각국 대표분들도 모두 같은 열정과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대동아전쟁의 목적은 반드시 관철될 것이고 대동아의 건설도 반드시 관철될 것이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위의 목적과 임무를 완수, 달성하는 것은 동아 각 민족의 노력, 그리고 동아 공동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인 일본은 동아를 보위하기 위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고, 우리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부흥하길 희망하고 대동아전쟁을 관철시켜 대동아 건설완성의 책임을 분담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동아의 광명대업은 대동아 각 국가민족이 스스로 노력하고, 함께 노력해야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미가 예전에 행해오던 침략과 약탈의 정책은 이미 무너졌고, 영미가 행해왔던 이간질도 이제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떠한 정책을 펼치든, 어떠한 감언이설을 펼쳐 우리를 유인하거나 이간질을 하더라도, 우리의 신념은 이제 흔들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억압을 받지 않고 속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대동아 각국이 공동으로 노력하여 반드시 대동아를 해방시키고 대동아의 광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㉑ 대동아회의 및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선전 실시 개황(1943.11.18.)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대동아회의 개최결정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4~10.15) 0. 대동아공동선언의 작성과정 (1943.7~ 10) 0.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개최에 대한 선전 실시요강 (1943.10.29) 0. 정보국 발표 (1943.11.1) /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0.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0.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0.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20.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0.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0.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20.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나치 독일) 의 연설 [대동아회의 그 이후] 21. 대동아회의 및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선전 실시 개황 (1943.11.18.) 2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3. 바모와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8) 24. 호세 라우렐과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10) 25. 완 와이타야콘의 귀국 인사 (1943.11.12) 26. 찬드라 보스와 도조 히데키의 회담 (1943.11.13) 27. 호세 라우렐의 필리핀 국회 연설 (1943.11.25) [부록] 28.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9. 대동아회의 일정표 대동아회의 및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선전 실시 개황 (1943.11.18). 여기에는 대동아회의의 종료 후 대동아회의의 결과 및 성과 (대동아회의에서 발표된 대동아공동선언등) 를 홍보하기 위한 방법들이 서술되어 있었다. 대동아회의 및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선전 실시 개황 (1943.11.18.) 대동아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대동아공동선언의 취지를 철저하게 대동아 각국의 대동아전쟁 완수의 결의와 대동아건설에 대한 단결과 협력으로 대내외에 선전하여 적측의 전쟁 목적을 절멸시키고 전의를 상실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이전 국호 선전 실시 요강(菊號宣傳實施要綱)에 따라 활발하게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대내외에 선전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선전 실시의 개황은 다음과 같다.       대내선전 1-1 : 신문, 통신 각 신문사 및 통신사 편집 간부들에 대해 사전에 대동아회의 및 대동아공동선언의 중요성을 설명하여 철저히 사전에 내면지도를 충실히 함. 동시에 각사 언론위원에 대해 대동아공동선언의 취지를 반복하여 해설할 것을 지시함. 대동아공동선언 발표 당일 (6일) 의 석간 혹은 대동아결집국민대회의 개최일 조간 (7일) 에 대해 기자를 증원하여 대대적으로 보도함. 이후의 신문의 각면에 대해 대동아공동선언의 내용 및 정신을 대외적 및 대내적으로 반복하여 해설할 것을 지도함. 전항에서 다뤄지지 않은 다른 언론사, 언론인으로 하여금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기고를 하게 유도함.       1-2 : 방송 대동아회의장, 대동아결집국민대회장에서 녹음한 내용을 반복 재생하는 방송을 11월 6일부터 7일동안 진행함.      대동아회의 및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보도, 해설 및 강연을 11월 5일 이래 현재 여러번의 방송을 진행함. 이후로도 방송 및 각종 수단을 통하여 대동아공동선언을 인용하여 대동아공동선언의 5원칙하고 대동아건설의 높은 도의성과 필승의 신념을 인상시키고 함양하는 방송을 편성하여 실시할 것. 1-3 : 영화 일본뉴스 제179호를 특별호로 하여 3파트에 걸쳐서 각국대표의 하네다 공항 착륙부터 대동아회의 및 대동아결집국민대회의 내용을 수록하여 대동아회의의 내용을 보도하기 위해 현재 전국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음. 일본영화사 (日本映画社) 로 하여금 특별 선전영화를 개발하게 하여 ‘대동아공동선언의 의미’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게 하려 하고 있으나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현재 일본영화사가 현재 제작하고 있는 선전영화인 ‘일억 전투 배치에 나서라 (一億戰鬪配置に就け) 의 적당한 부분에 대동아회의와 관계에 있는 장면들을 삽입할 예정임. 기타 극 영화, 문화 영화에 대해서도 수시로 적당한 기회에 대동아회의와 관된 내용을 다루게 할 것.       1-4 : 연극, 연예(演藝) 수시로 적당한 기회에 대동아회의 및 대동아공동선언의 선전이라는 취지에 대해 철저히 협력하도록 지도함.       1-5 : 음악 일축(日蓄)  (ニッチク, 1942년 일본 콜롬비아 레코드가 사명을 변경한 이름이다.) 으로 하여금 일본방송협회에서 녹음한 대동아공동선언 및 대동아회의, 대동아결집국민대회의 녹음본을 통하여 적절히 편집하여 ’대동아결집선언집(가칭)‘ 이라는 이름으로 해설본과 함께 음반집을 만들어 보급할 예정임.       대동아공동선언 채택에 대한 도조 총리의 연설을 단독으로 음반으로 만들어 보급할 계획이 있음.       1-6 : 주보(週報) 11월 10일 호에 ’대동아회의의 의미‘를 게재하였음 5원칙을 중심으로 하여 해설을 어렵지 않게 작성하여 ’대동아공동선언해설‘을 12월 1일 호에 대동아공동선언의 5항과 함께 게재하기 위해 집필중에 있음. 대동아전쟁 2주년호 (12월 8일호) 에 공영권 각지의 현황을 게재할 예정으로 현재 동맹통신사(同盟通信社) 현지 각지국으로부터 원고가 도착하고 있음. 1-7 : 사진주보 (寫眞週報) (일본 내각정보국에서 발행하던 국책 주간 잡지로, 잡지에는 다양한 국내외 소식을 사진으로 전달했다.) 11월 17일 호 (제298호) 에 대동아회의와 관계 있는 사진, 기록을 수록하였음. 대동아전쟁 2주년 기념호 (12월 8일호, 300호) 공영권 각지의 동향을 게재할 것.       1-8 : 주보총서 (週報叢書) 주보총서의 하나로서 대동아회의의 기록, 선언요해, 각국대표발언 전문, 대동아결집국민대회 연설집등 필요한 자료를 책으로 수록하여 12월 중에 5만 부 (B6 크기, 150장)을 발매할 예정임.  ( 이 과정을 거쳐서 정보국은 12월 15일 《アジアは一つなり (아시아는 하나다) 》을 출판하였다.)       1-9 : 강연회, 전람회등 기타 대동아결집국민대회의 내용 지도를 실시하였음. 찬드라 보스씨의 강연회를 개최 지도하였음. 백화점 점포의 창문에 현수막을 배치하여 홍보하였음. 일본선전협회로 하여금 빠르게 표어를 제작하여 보급하게 하였음. 각종 전람회의 개최를 지도하였음. 벽에 붙이는 형태의 신문을 발행할 예정. 그 외의 전람회 개최를 지도할 예정. 정보위원회를 이용할 예정. 일반 강연을 통한 선전을 개시할 예정. 도쿄도 주최 대동아결집소국민대회(大東亞結集少國民大會)를 개최 지도할 예정.       1-10 : 문화단체 동원 대동아언론보국회(大東亞言論報國會) 회원을 동원하여 신문 및 잡지에 기고할수 있게 하였음, 방송, 강연회 개최 및 단행본을 발행하였음.     일본문학보국회(日本文學報國會) 소속의 작가 및 신진 작가들로 하여금 대동아공동선언의 5원칙의 내용과 관련있는 소설, 시 , 희곡등을 집필하게 하여 발표 하여 신문, 잡지, 방송등에서 대동아회의에 대한 문학자의 입장을 문화적으로 표하는 것을 전개하려 하고 있음.   위 두항의 우수한 작품은 각국 언어로 번역하여 대외선전을 위해 활용할 예정.       대외선전 2-1 : 신문, 통신 정보국 대변인의 발언을 통하여 11월 5일 이후 수차례 회의의 성과에 대해 반복적으로 설명하였음. 이후로도 기회가 되면 매번 회의의 성과에 대해 선전할 예정. 대동아회의에 관하여 도쿄의 여러신문에 주요한 기사를 게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전부 동맹통신사 및 일본방송협회가 대외선전에 활용할 수 있게 하였음. 11월 7일 각국 대표의 신문기자 합동회견에 외국인 기자들을 적극적으로 참석시켜 기자들의 본국에 소식을 전달하게 하였음. 또한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수반은 10월 31일 외국 기자들과 회견하였으며 별도로 독일 기자와 단독으로 특별 인터뷰를 진행하였음. 2-2 : 대외방송 대동아선언을 각국대표명,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는 사실을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힌두어, 스페인어로 매일 반복하여 대외에 방송하고 있음. (위에서 언급하였던 방송용 특별 녹음음반을 작성하여 올해 동안은 지속할 것.)   대동아공동선언 채택에 대하여 도조 수상의 연설을 이에 대한 해설과 함께 매일 반복하여 대외에 방송하고 있음. 중국, 만주국, 타이 왕국, 필리핀 공화국 등 각국대표의 회의에서의 연설을 녹음하여 11월 8일 이후로 각방면으로 반복하여 방송하고 있음. 자유인도임시정부 수반 찬드라 보스씨의 발언은 인도 및 기타 아시아 지역을 향하여 방송 되었고 16일에는 독일과 인도 및 기타 아시아 지역을 향하여 총 2회 가량 3종의 녹음본을 토대로 반복 방송하였음. 회의의 전과정은 일본방송협회로 하여금 일본어, 중국어, 영어로 녹음하였으며 필요시 사용하기 위해 편집하여 최대한 전과정에 가까운 음반을 제작할 계획중에 있음.       2-3 : 영화 ’대동아뉴스‘ 버마어판, 태국어판, 중국어판, 영어판을 특별 제작하여 각대표의 대동아회의, 대동아국민결집회의, 메이지신궁 국민연성대회 (1943년 11월 7일, 대동아결집국민대회 참가후 방문하였다.)  등의 활동 내용에 대하여 2파트로 나누어 편집하여 11월 중순에 각국에 배급하기로 하였음. 위 뿐만 아니라 별도의 임시 특별호를 일본영화사 시사 영화부에 제작을 담당하게 하여 대동아공동선언을 3파트로 나누어 해설하기로 하였음. 위의 영화는 대동아공동선언의 5원칙을 중심으로 영상을 통하여 어렵지 않게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프랑스어판, 영어판, 중국어판, 태국어판, 버마어판, 말레이어판을 편집 제작하여 남방 각지 및 유럽에 배급하기로 하였음 (12월 초순 완성 예정)       2-4 : 사진 대동아회의와 관련 있는 사진들을 보도용으로 편집하여 대독일용, 소련용,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용, 태국용, 버마용, 필리핀용, 말레이용 8가지를 만들 것. (필수 사진 6장은 모두 공통으로 포함할 것)       2-5 : 음악 대동아공동선언 발표 및 각국대표 소견등을 음반으로 제작하여 참가 각국은 물론 독일, 소련등에도 전달하여 공중 집회 등에서 수차례 발표하여 내용의 보급을 철저히 할 예정. 대동아공동선언독가 (大東亞共同宣言讀歌)를 작곡하여 음반으로 만드어 대동아 각지 및 독일, 소련등에 배포하여 동시에 공연회를 수시로 개최할 계획의 실시에 착수하였음.       2-6 : 서적 선언 및 각국 대표 연설 기록, 회담 경과등을 도표등을 넣어 편집하여 영문 팜플렛 10만부 (B4크기 20장)을 발행할 예정임. (11월 중순쯤 완성될 예정.) 대동아건설 5원칙을 해설하여 각지 원주민에게 대동아전쟁의 완수와 대동아공영권 건설에 협력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는 목적으로 사진, 스케치, 만화등 다양한 수단을 통하여 태국어, 타갈로그어, 베트남어, 버마어, 말레이어, 인도네시아어, 영어, 중국어 팜플렛 3만부 (B6크기, 32장)을 발행하여 남방 각지에 배부할 계획중임. 간단한 회의 기록 및 각대표의 발언을 선별하여 수록하여 정부가 공표하는 책자 (B6, 50장가량)을 2만부 제작하여 구미(歐米) 및 남방 지도자들에게 배부할 계획임.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⑳ 대동아결집국민대회 (1943.11.7)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대동아회의 개최결정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4~10.15) 0. 대동아공동선언의 작성과정 (1943.7~ 10) 0.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개최에 대한 선전 실시요강 (1943.10.29) 0. 정보국 발표 (1943.11.1) /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0.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1.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2.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23.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4.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5.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6.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27.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나치 독일) 의 연설 [부록] 28.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9.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30.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31. 대동아회의 일정표 (* 본래 각 대표마다 글을 별도로 작성하려 했으나 묶어서 작성하였습니다.) 대동아회의가 종료된 다음날인 1943년 11월 7일, 도쿄 히비야공원에서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가 개최되었다. 해당 대회에는 대동아회의에 참가했던 각국 대표 및 열석자들이 참가했으며. 각국 대표들은 히비야공원에 집결한 일본 국민 및 각국 유학생들을 향하여 연설을 하였다. (해당 행사에는 특별히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Heinrich Georg Stahmer) 당시 주일독일대사도 참가하여 연설을 하였다.)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년 11월 7일, 도쿄 히비야공원)       오전 8시 : 궁성앞에 참가자들 결집 (약 10만명, 대정익찬회 장년단원 2만 5천명, 산업보국회, 농업보국회, 상업보국회, 해운보국회, 청소년단체, 대일본부인회, 국민 학교 교직원들, 종교교화단체등 참가, 일반 참가자 남성은 방공복장, 여성은 몸빼복장을 착용, 4열행진, 각국 유학생들도 참가) 오전 9시 40분 : 해군군악대의 연주 개시 (무대 중앙의 하단에 위치했다.) 오전 10시 10분 : 행사 개막, 궁성 참배, 국가 (기미가요)제창, 대정익찬회 고토 후미오 국무상의 조서 낭독, 아베 노부유키 익찬정치회 총재의 개회사 및 전선 황군 장병에 대한 감사인사 오전 10시 30분 :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각국 대표 입장, 아오키 대동아 대신이 각국 대표를 소개 및 안내, 이로하순 으로 입장 (맨 마지막이 스타머 독일대사) , 착석       아베 노부유키 (익찬정치회 총재) 개회사             금일 이렇게 대동아결집국민대회를 개최하여 중화민국, 타이 왕국, 만주국, 필리핀 공화국, 버마국 및 자유인도임시정부의 각 대표를 이렇게 단상에 모시고 대동아결집의 맹세를 굳히고 세계에 대한 우리들의 부동의 신념을 표명할 수 있게 되어 주최자측으로서 영광스럽고 감명스러울 따름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감명을 느끼는 동시에 황군의 진충(盡忠)과 지성(至誠), 그리고 선모용전에 대해 갚은 감사의 뜻을 표하며 동시에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 전국민 총전투배치에 대한 성명을 받들어 널리 대동아 국가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열의를 한층 다지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빌어 금일 참석하신 여러 맹방 각국의 물심양면에 걸친 제휴 및 협력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돌이켜 보건대, 동아에 있는 국가 및 민족의 대부분은 영미세력에 의해 그 자유와 행복을 박탈당하고 착취의 대상이 된지 수백년이 되었지만, 이번 대동아전쟁의 발발 후 불과 2년만에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이렇게 이곳에 오시어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각각이 선린우호와 상호돈목의 의(義)를 맺을 것을 맹세하고 나아가 동아의 대사를 논의하게 된 것은 실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으며 세계에 있어 경이로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숭고한 정신 위에 서서 건설된 이번 회의의 광경은 이전에는 실로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우리들은 진정으로 동아민족의 행복을 위해서, 나아가 세계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이를 경축하는 바입니다.       부디 전 아시아 민족 모두가 정의와 공도(公道)를 위해 싸우고 있는 이 대동아전쟁의 진정한 의의에 입각하여 전국가 전민족을 신질서 및에서 행복을 누리게 하는 일대의 사명에 대하여 총력을 다하여 끝까지 매진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인사말을 마치는 바입니다. (이후 황군에 대한 감사결의를 진행)       황군에 대한 감사 결의       대동아의 성전이 발발한지도 2년이 되었다. 천황 페하의 위세 아래 우리 충용한 제국 육해군은 미증유의 대전과를 거두어, 적을 동아의 천지에서 구축하여 황위(皇威)를 대내외에 마땅히 떨치며 대동아 결성의 초석을 이루었다. 이러한 훈공, 전과는 실로 생각건대 고금의 전쟁사에서 찾아볼 수 었던 일이다.       서전에서 승리한 이래, 우리는 불패의 태세는 더욱더 확고해지고 있다. 원수 영미는 각지에서 총반격을 기도하고, 잃은 땅을 탈환하기 위해 광분하고 있어 전황은 그야말로 처절하기 끝이 없다.       하지만 제국 육해군은 육지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선모격투(善謀激闘) 하고 유악(惟幄)한 계책을 통하여 매순간 적의 공격을 격퇴하며 더욱더 성전에서 완승한다는 신념을 굳게 가지게 되었다. 이는 국민에게 감사하고 감격해야 할 일이다.       이에 대동아결집국민대회는 대동아로 하여금 총협력하게 하여 대동아전쟁의 완수를 위해 분연히 일어나 과감히 싸울 것을 다짐하고 삼가 제국육해군의 위대한 행동에 대한 깊은 감사를 표하고 아울러 숭고한 호국 영령에 대한 깊은 경조의 뜻을 표한다. 그리고 위와 같이 결의한다.       쇼와 18 (1943) 년 11월 7일 대 동 아 국 민 결 집 대 회             (이후 도조히데키가 단상에 오른다.)       도조 히데키의 연설       국민 제군 여러분! 대전쟁이 진중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중화민국, 타이 왕국, 만주국, 필리핀 공화국, 버마국 및 자유인도임시정부를 각각 대표하는 각국 대표 각하를 맞이하여 대동아결집국민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실로 쇼와(昭和)시대의 일대 성의(盛儀)라고 할 수 있으며, 제군들과 이를 함께 진실되게 축하하는 바입니다.       대동아 각국 대표는 도쿄에 모여 대동아회의를 개최하였고 그리고 대동아회의에서 대동아전쟁의 완수와 대동아 신질서 건설 방침에 관하여 격의 없는 협의를 완수하여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이루어내어 협심육력(協心戮力) 으로서 중대한 공동의 사명을 달성한다는 결의를 새로이 하여 어제 대동아공동선언을 대내외에 성명한 바 있습니다.       이는 도의에 기초한 공존공영의 질서 건설, 상호의 자유독립을 존중하는 대동아의 친화 확립, 각민족의 창조성을 신창(伸暢) 하는 대동아 문화의 양성, 호혜속 긴밀히 제휴하는 경제발전, 인종적 차별을 철폐하여 세계 진보에 대한 공헌이라는 이상의 5대 강령에 근거하여 대동아 각국은 서로 제휴하여 대동아전쟁을 완수하고, 새로운 대동아를 건설하여 세계 평화의 확립에 기여하겠다는 결의를 굳게 다지고 이를 명확하게 세계에 선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널리 알고 있으시겠지만, 대동아전쟁의 발발 이후 대동아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황군이 한번 진격하자 가는곳마다 선모용전하여 개전 반년이 되지 않아 수년간 동아를 침략해온 영미 세력은 홀연히 구축되어 소탕되었습니다. 게다가 적은 계속하여 반격을 해오고 있으나 이를 모두 격퇴시키며 대동아의 신건설은 착착 그 발걸음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대동아전쟁 발발 이후 일만(日滿) 양국은 일덕일심으로 친목을 더더욱 돈목히 하고 있으며, 일화 (日華) 양국은 기존의 모습에서 일절 탈피하여 동아 본연의 모습으로 복귀하여 동맹국으로서 새로이 밀접한 관계를 결성하였습니다. 또한 일본과 타이왕국의 동맹관계는 더욱 새로운 한걸음을 나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버마국은 영국의 다년간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어 독립하였고, 필리핀 역시 미국의 기만과 착취에서 해방되어 빛나는 신생 국가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우국의 열정을 가진 인도인은 영미의 난폭하고 끝이 없는 억압에서 이탈하여 4억 민중의 숙망인 독립과 자유, 그리고 번영을 획득하기 위해 수바스 찬드라 보스씨가 이끌고 있는 자유인도임시정부 밑에서 힘을 다하여 궐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동아전쟁 발발 후 2년도 되지 않아 새로운 대동아의 기초는 확립되었고, 그 속에서 이렇게 대동아 각국의 대표가 도쿄에서 만나 획기적인 일대의 회의를 개최하여 빛나는 성과를 거둔 오늘의 본회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실로 세계의 성전(盛典) 이며 세기의 장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대동아에서는, 안에서는 각국이 서로를 믿고, 친하게 지내고, 협력하고 있으며, 밖으로는 전력을 다하여 영미의 반격을 격퇴하고 있습니다. 숙적 영미가 그들의 물질력에 의지하여 이름바 총반격을 반복하는 것은 확실히 예상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적은 정의의 편이 아닙니다. 대동아 전쟁은 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들어낸다는 불교 용어.)  의 성전으로, 대의명분은 명확하게 우리 대동아 국가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궁국의 승리가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서전의 대전과에 의해 필승의 전략적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은 웅혼(雄渾) 히 과감한 작전에 호응하며 국내 태세를 결전화하고 급속하게 전력의 획기적 증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대동아 각국은 이제 밀접하게 일본과 책응하고, 협동할 수 있는 전력을 다하여 숙적 영미의 반격을 분쇄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대동아 영원의 안정을 도모하기로 한 결의는 더욱 확고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필승에 대한 믿음을 점점 확신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독일을 비롯한 구주의 맹방 국가들은 더욱더 확고한 국내의 결속 속에서 감연하게 영미를 격멸하기 위한 새로운 작전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필승의 신념 아래, 더욱 강인한 투지를 가지고 끝까지 전쟁에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본 대회를 통하여 우리의 이 열렬한 필승의 확신과 흔들리지 않는 투지를 표명하는 것은 국민제군과 저의 진실된 숙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저는 대동아 각국의 대표를 맞이하여 행해지는, 이 의의 있는 본 대회를 경축하는 동시에 대동아결집의 결의와 필승의 확신을 명확하게 피력하며 저의 인사를 끝내는 바입니다. (박수)             (이후 대동아전쟁완수결의가 진행되었다.)       대동아전쟁완수결의       대동아의 건설은 하루가 다르게 착착 진행되어 우리의 건국 이상은 착실히 구현되고 있다. 성전 발발로부터 2주년, 빠르게도 이 여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황위(皇威)는 전 동아에 이르게 되었고, 이는 실로 감격을 금치 못할 일이다.       이제 대동아의 여러 국가 민족은 영미의 다년간 진행된 무도한 압박으로 해방되어 숭고한 도의에 입각하고 각각의 자리를 얻어 대동아 건설의 유업(遺業) 달성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는 대동아를 영원히 대동아를 위한 대동아로 만들어야 하며 나아가 세계의 항구적 평화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원수 영미는 계속하여 집요한 반격을 거듭하여 대동아를 탈환하기 위해 광분하고 있다. 이에 전동아는 반드시 공동으로 힘써 필승부동의 신념 아래 그 총력을 응집하여, 끝까지 대동아전쟁을 완수하고 다시는 대동아에 있어서 영미가 도량발략(跳梁跋扈) (권력이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뛰는 행동이 만연하다는 뜻)  하지 않게 하고 세계신질서 건설에 협력할 것을 기한다. 위와 같이 결의한다.       쇼와 18 (1943) 년 11월 7일 대 동 아 국 민 결 집 대 회                  왕징웨이의 연설 (왕징웨이가 단상에 오름, 일장기에 경례, 준비해온 원고를 가슴에서 꺼냄) 저는 오늘 맹방인 일본의 성대한 국민대회에 참석하게 된 것에 대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중일양국은 이미 중일동맹조약 체결로 양국의 영속적인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일본은 중국에 대해 최대의 원조를 하기로 결정하였고, 중국의 독립자주를 확실히 보증하여 중국으로 하여금 동아보위 및 동아건설의 책임을 분담하게 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제 대동아회의는 성황리에 폐막하였으며, 대동아공동선언은 이미 세계에 발표되습니다. 중국은 대동아 각국과 서로 협력하여 광명의 대도로 함께 나아가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대동아의 사업은 오직 동아인 자신이 해야만 실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백년간 동아를 침략해온 영미는 그 야망과 폭력으로 동전 세계를 삼키려 했고, 이를 동양의 일본은 앞장서서 이들의 야망과 폭력을 막아냈습니다. 이는 일본 국민의 독립투쟁의 결과로써 참으로 감복할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동아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국력을 강화하여 동아에서의 영미의 폭력을 격파하고, 동아를 다시 동아인에게 돌려주고 동아의 일은 동아 모두가 스스로 함께할 것을 약속하였고, 모두가 함께 투쟁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공존공영하기로 하였습니다.       무릇 동아인, 특히 중국인은 이러한 일본의 정신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대동아전쟁을 완수하고 대동아건설을 실현하여 일본국민 제군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에는 여전히 일부 사람들이 영미의 멸시와 속박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 노력하여 이 동포들이 빨리 깨닫고 영미의 굴레에서 벗어나 우리와 같은 잊방에 설 수 있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국민대회 제군 여러분, 대동아전쟁이 일어났을 때, 국민정부는 일본과 동거동락하기를 바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국민정부는 일본과 그 생사를 같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그 결의와 의지는 더욱 공고해질 것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이어 각국대표들의 연설이 진행되었다.)             완 와이타야콘의 연설       이 국민대회는 일본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최후의 승리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대동아전쟁을 수행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전쟁 사유는 정의에 입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자국의 방위를 보위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대동아공영권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백년 전부터 일본의 우방이었던 우리 타이 왕국 국민은 지금도 일본의 동맹국으로서 공영권의 건설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하고 있으며, 타이 왕국군은 일본군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양국은 경제 및 정치 방면에서도 긴밀하게 제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관계는 최후의 승리를 획득할 때까지 계속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번 대동아회의에서는 대동아 각국이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위해 긴밀히 제휴하여 매진하겠다는 결의를 보였습니다. 대동아 각국은 이 숭고한 대이상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일본 정부 및 국민에 대하여 심심한 감사한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장징후이의 연설       금일 대정익찬회 및 익찬정치회 공동주최의 국민대회가 개최되어 우방 일본 국민 여러분에게 한마디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저는 진실로서 흔쾌하게 감격하는 바입니다.       대동아전쟁이 발발한 이후 육지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실로 광활한 전역에 걸쳐서 극혁한 대전과를 쌓고 있는 우방 일본 장병 여러분들의 충성과 용무(勇武) 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동시에, 용감하게 산화된 용사의 영령에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저는 작년 3월,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사은(謝恩) 특파대사로서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쟁 발발 직후의 일본 관민들의 헌거(軒擧) 한 의기와 굳건한 결의를 친히 견문할 수 있었습니다. 귀국 후 저는 우리 국민에게 이러한 실정을 전하여 국민들에게 많은 감명을 전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대동아회의에 참석할 기회를 얻게 되며 저는 일본 국민 여러분이 더욱 필승의 신념에 불타오르고 태연하게 스스로가 전장을 위해 과감하게 싸우겠다는 진지한 모습을 보며 더욱 마음이 든든해지며 우방 일본에 대한 믿음을 흔들림 없이 한층 더 깊게 느끼는 바로, 이러한 저력을 가진 일본 국민에 대해 완전히 감복하는 바입니다.       우리 만주국 역시 대동아전쟁의 완수를 위하여 일만공동방위, 일본과 만주국은 일덕일심이라는 대의에 입각하여 황제폐하께서 친히 먼저 모범을 보이고 있으며, 4천만 국민이 하나가 되어 북방의 장벽으로서 나아가 장래 대동아공영권의 거점으로서 부과된 중대사명을 위하여 밤낮할 것없이 부지런히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만주국 관민은 지금이야말로 건국 이래 우방 일본으로부터 받은 의로운 은혜에 보답해야할 때이라고 생각하여 보국과 감사의 정성으로 증산과 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은혜를 갚는데 있어 조금이라도 부족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어떠한 곤란을 이겨내고 어떠한 장애물도 돌파하여 전시 하에 우리 국가에게 주어진 중대 책무를 완수하여 신동아건설에 적합한 ‘제2기 건설’ (1942년 실시된 제2차 5개년 계획을 의미하는 것) 을 성취하려 굳게 결의하고 있습니다.       동아가 폭려(暴戾) 스러운 영미의 침략과 속박에 완전히 지배당하게 된지 수 백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일본 장병의 용전으로 동아의 천지에서 영미의 세력은 완전히 쫓겨났고, 동아는 그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버마국 및 필리핀 공화국을 비롯한 새로운 맹방 국가의 탄생을 맞이할 수 있었고, 최근에는 자유인도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보며 대동아에는 부흥과 건설의 기운이 고동치고, 끊임없이 흐르는 공존공영의 근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어제 우리들이 대내외에 천명한 대동아공동선언은 바로 이 새로운 동아가 걸어가야 할 길을 당당히 세계에 나타내 보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부앙천지(俯仰天地) 에 부끄럽지 않게 대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확고한 결속을 가지고 매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대동아회의에서는 여러 국가의 대표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열렬한 열정을 가지고 대동아전쟁 수행의 방책과 대동아건설의 근본이념에 대해 마음을 열고 의논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영권 내 맹방 국가들은 이번 회의에서 더욱 굳건한 대동단결의 유대를 맺어 빛나는 광명과 새로운 희망에 불타며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혈맹관계를 새로이 맺게 되었습니다. 이는 동아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신질서 건설을 위해서도 실로 경축할만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치열한 결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일본 국민 여러분의 넘치는 의지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감사감격 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저는 나아가 이러한 뜻을, 이러한 감격을 만주국의 4천만 국민에게도 나누어 주어 확고부동한 필승신념을 다시 한번 다지고 더욱 분발하여 일본의 전력을 북돋아줄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본 국민 여러분과 함께 승리의 영광이 우리의 머리위에 빛나는 날까지 분투를 이어갈 것을 맹세하며 인사의 말을 마치는 바입니다.       호세 라우렐의 연설 (필리핀 유학생의 마부하이 (Mabuhay!, 만세) 가 이어지는 가운데 연단에 오름) (원고 없이)       친애하는 일본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일본 국민 여러분에게 필리핀 국민의 진실된 친호(親好)의 뜻을 이렇게 인사를 통하여 표명할 수 있게 된것에 대해 아주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필리핀사람으로서, 자유독립의 국가 대표로서, 자유와 독립을 얻은 국가의 대표로서, 이렇게 우리가 전세계에 호소해왔던 독립과 자유라는 특별한 권리를 부여받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상 처음있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위대한 일본 정부와 국민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필리핀 국민은 대동아공영권을 형성하는 데 있어 여러 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공통의 문제를 심의하기 위해 개최된 이번 회의에 이렇게 대표로서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게 된 것을 매우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국민은 대동아를 서양의 속박에서 해방되게 하는 이 거대한 계획을 위해 자신들은 어떠한 일을 해야하는가를 생각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대해 알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이번 회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곤란하고 복잡한 것입니다. 각국의 경제적, 정치적 및 사회적 상태에 검토하고, 일본을 승리시켜 이 성전을 완수하기 위해 공영권 내의 정신적, 물질적 자원을 결집시키는 동시에 각국에 대해 전시하에서 수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번영을 확보시키는 이러한 대사업은 각국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명확하고 정당하게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필리핀과 일본은 정치, 경제 및 군사를 비롯한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동맹조약을 체결했습니다.  (1943년 10월 14일 일본제국과 필리핀 제2공화국이 체결한 ‘일본국-필리핀국간 동맹조약 (日本國「フィリピン」國間同盟條約)을 의미한다.) 필리핀인은 이제 외적의 침략이라는 공포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층 명확한 이념과 지조 아래 단결하여 대 필리핀 건설을 위한 사업에 감연하게 정진하여 대동아공영권의 영광스러운 일원이 되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은 절대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공영권 내 각국은 이제 일본 총리대신 도조 히데키 각하께서 말하신 대로, 공동 유일의 이상 및 목적에 정진하기 위해 강고하게 하나로 뭉치고 대동아 여러국가의 국민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기초 사업의 완수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동아공영권은 이제 마침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모의 연설 저는 대동아전쟁의 서쪽 최전선에서 온 한명의 병사로서 이렇게 말하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서부 최전선에서 포탄 소리의 빗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버마인의 이름으로, 저는 버마국 전국민을 대표하여 감사의 뜻을 여러분에게 기쁘게 말씀드리는 동시에, 최전선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 버마 국민의 이름으로 일본에 영구히 충성을 맹세하는 바입니다.       버마전선은 우리 측의 승리로 돌아가고 있고, 사기는 매우 왕성합니다. 적은 밤낮으로 폭격과 공격을 하며 버마인의 마을, 집, 생명을 비롯한 모든 것을 그 포화에 노출시키고 있지만, 이와 같은 전화속에서도 버마인들은 일치단결하여 흔들림 없는 전시 태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포화따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장소에서도, 어떠한 때에도, 어떠한 상태에도 완전히 이겨낼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적이 쓰러지거나 우리가 쓰러지거나 둘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점을 여러분의 귀에 전해드리기 위해 버마에서 일부러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저는 이번 대동아결집국민대회가 매우 성대한 의식으로 치러지는 것을 보며, 저는 이 대회야말로 대동아민족의 각오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더욱 확신하는 바이며 이 대회야말로 대동아의 대행진이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우리 동양인은 오랜 옛날부터 혈연을 맺고 피로 맺어진 맹약속에서 위대한 지도자의 영도아래 서양과 전쟁을 하여 이겨냈습니다. 어제 선포된 대동아공동선언은 동양 민족이 다시한번 피의 맹약을 맺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공동선언을 우리는 꼭 승리해야하며 그러지 못한다면 죽겠다는 결의의 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대동아공동선언은 대동아의 여러민족을 하나로 결집시킨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동양은 동양인의 것임을, 대동아의 안정은 대동아 각 민족의 손으로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을 세계에 천명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동아의 운동은 반드시 대동아의 여러민족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의 결의로부터 일어나야 하는 것으로, 이는 버마도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정신이 각자의 가슴에 있을때야 비로소 민중이 집결한 대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이를 끝으로 인사의 말을 마치는 바입니다.       찬드라 보스의 연설 (인도독립연맹 및 자유인도임시정부 측 인원들의 박수)       대동아공동선언은 어제 만장일치로 열성적으로 표결되었습니다. 저는 나아가 이 대동아헌장이 대동아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대헌장임을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또한 이 대동아공동선언은 자유와 해방을 위한 대헌장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이를 위한 대헌장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대동아회의의 가장 큰 보람은 영미제국주의 타도를 위하여 대동아 여러민족을 완전히 결집시킨 것으로 이는 적의 마음과 담력에 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저는 가까운 장래에 이 대동아회의에서 보여준 결집이 전장에서, 경제와 정치를 비롯한 각 방면에서 착착 구현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자유인도임시정부의 이름을 걸고, 이제부터 공동의 적을 향해 진군할 것입니다. 어제 발표된 일본의 선심에 의해 가까운 장래에 안다만제도, 니코바르 제도가 우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귀속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중대 성명은 인도인 전체에 매우 희망을 주어 더욱 명랑한 장래를 꿈꿀 수 있게 했습니다. 이에 이번 기회를 빌어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도인은 적과의 타협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영국과 타협하는 것은 다시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타협을 한다는 것은 자유를 사랑하는 인도인에게는 죽음보다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노예적 상황을 영원히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국이 쓰러질 때까지 자유 인도를 쟁취할 때까지 끝까지 나아갈 것입니다. 때문에 동양의 마지막 전장은 아마도 인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국은 인도에서 쉽게 철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인도인들은 자유를 위한 희생을 끝까지 받아드릴 것입니다. 지금 이 전쟁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람 중 살아서 인도의 자유를 보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이를 생각하면 감개무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더라도 인도의 자유는 완전히 획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전쟁이 몇 년 동안 계속된다 할지라도 최후의 승리는 결국 우리에게 있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저는 영국의 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인도 국민을 지원하고 있는 일본의 힘 역시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생각했을 때, 저는 우리가 이 전쟁에서 이겨낼 자신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고 단언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기필코 영국을 쓰러트릴 것입니다.       이 전쟁의 결과는 우리 인도의 운명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대동아의 운명을 결정하고, 아시아 전체의, 또한 아시아 밖의 여러 국가에 있는 여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는 절대 실패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이제 인도 독립의 준비는 완전히 갖추어 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이를 단지 행동으로 옮기는 것 뿐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인도 해방을 위한 최후의 전쟁을 위해 힘차게 첫걸음을 내딛을 것을 여러분 앞에서 천명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Heinrich Georg Stahmer) 당시 주일독일대사. 그는 추축국 대표단으로서 대동아회의를 참관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1943년 주일독일대사에 취임하기 전 왕징웨이 난징국민정부의 독일대사이기도 했다.)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의 연설 (나치식 경례를 하며 등장)       오늘 이렇게 대동아결집국민대회가 업숙하게 개최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본 국민대회 참가자분들께서는 일본 정부의 이러한 현명한 지도에 의해 전쟁 수행 중임에도 이렇게 빠르게 대동아의 평화적 신질서 건설이라는 대업을 진행하였고 이미 그 대부분을 실현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러한 사업을 대동아 각국 자신에게 편리한 목적을 위해서 하기보다는, 영미의 이기적인 욕먕을 대동아의 영역에서 영원히 구축하고 도의에 기초한 맹방간의 여러 민족간의 공동간의 신뢰라는 뿌리 아래 신질서의 평화적 전당을 건설하기 위해 펼쳐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러한 대동아와 유럽의 신질서 이념을 맹약으로서 정부간의 목적으로 처음으로 확립한 삼국동맹의 위대한 구상이 맞았음을 증명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독일의 대표자인 저는 독일과 삼국동맹에 가맹하고 있는 유럽 각국의 대표분들을 대신하여 오늘의 이 대동아결집국민대회에 참가하신 대동아 각국 대표 각하 분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독일 및 유럽의 추축국은 지금 대동아와 동일하게, 이상을 실현하고 유럽에 올바른 신질서를 건설하기 위해 용약하게 대규모의 결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 및 유럽 추축국은 앞으로도, 일본 및 해방된 대동아 각국과 굳게 결합하여 공동의 승리와 올바르고 행복한 평화를 수립할 때까지 지금의 이 결전을 단호하게 이어간다 확고히 결의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바다에 가면 (海行かば) 을 제창, 천황폐하 만세 삼창, 참가 각국 만세 삼창, 애국행진곡 (愛國行進曲) 이 울려퍼지며 각국 대표 퇴장, 이때가 오후 1시)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⓪ 정보국 발표 (1943.11.1) /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대동아회의 개최결정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4~10.15) 0. 대동아공동선언의 작성과정 (1943.7~ 10) 0.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개최에 대한 선전 실시요강 (1943.10.29) 0. 정보국 발표 (1943.11.1) /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0.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1.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2.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23.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4.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5.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6.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27.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나치 독일) 의 연설 [부록] 28.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9.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30.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31. 대동아회의 일정표 정보국 발표 (1943.11.1.) 대동아각국은 선린우호, 상호협력의 강고한 기초에 서서 공동의 목적 달성에 매진하고 각국 대표자간에 있어서 대동아전쟁 완수와 대동아건설의 방침에 관한 격의없는 협의를 완수하기 위해 이번에 일본, 중화민국, 타이 왕국, 만주국, 필리핀 공화국 및 버마국을 비롯한 대동아각국의 대표자를 상회(相會) 하고 도쿄에서 대동아회의를 개최 하기로 하였다. 또한 이회의에는 우연히 도쿄를 방문중인 자유인도정부의 대표자도 배석할 예정이다. 각국대표 및 열석자, 배석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도조 히데키 (東條英機) 해군 대신 시마 다 시게타로 ( 嶋田繁太郎) 대동아대신 아오키 카즈오 (青木一男)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 (重光葵) 내각서기관장 호시노 나오키 (星野直樹) 정보국 총재 아모우 에이지 (天羽英二) 외무차관 마츠모토 슌이치 (松本俊一) 대동아차관 야마모토 쿠마이치 (山本熊一) 외무성 정무국장 카미무라 신이치 (上村伸一) 육군성 군무국장 사토 겐료 (佐藤賢了) 해군성 군무국장 오카 타카즈미 (岡敬純) 대동아성 총무국장 타케우치 신페이 (竹內新平)       중화민국 국민정부행정원원장 왕징웨이 (汪精衛) 국민정부행정원부원장 저우포하이 (周佛海) 국민정부외교부부장 추민이 (楮民誼) 국민정부군사위원회위원 천창주 (陳昌祖) 국민정부행정원비서장 저우룽샹 (周隆庠) 국민정부행정원부비서장 쉬펑위안 (薛逢元) 타이 왕국 내각총리대신대리 완 와이타야콘 (Wan Waithayakon) 무임소대신,외무대리대신겸 내각서기관장겸 육군소위 차이 바라트 바트센 (Chai Bratay Pasen) 외무차관 시트트 시트트 사야무칸 (sitt sitt sayamkhan) 외무성동방정무국장 위수크 안타유크 (Wisut Antayuk) 외무성 1등서기관 윙사누와싯 테와쿵 (Wongsanuwasit Tewakung) 육군소좌 아아시 치란싱 (Aasi Charansingh) 만주국 국무총리대신 장징후이 (張景惠) 외무부대신 리샤오겅 (李紹庚) 특명전권대신 왕운칭 (王允卿) 외교부 정무국장 오오키라 아키라 (大江晃) 총무청 비서관 마츠모토 마사오 (松本益雄) 총무청 비서관 가오피쿤 (高丕琨) 외교부 이사관 정투카이 (鄭隤凱)       필리핀 공화국 대통령 호세 라우렐 (José P. Laurel) 대통령 외무대신 클라로 레토 (Claro M. Recto) 외무대신 국회의장 퀸틴 파레데스 (Quintín Paredes) 토목교통대신 대통령비서 겸 국회의원 호세 라우렐 주니어 (José P. Laurel .Jr)       버마국 내각총리대신 바모 (Ba Maw) 협력대신 툰앙 (Tun Aung) 특명전권대사 테몬 (Te Moun) 외무차관 조에 보 (Joe Bow) 내각총리대신비서 니온한 (Nion han) 내각총리대신비서 겸 육군대좌 보욘나이 (Bo yun Nai)       자유인도임시정부 내각총리대신 찬드라 보스 (Subhas Chandra Bose) 최고사령부참모장 자가나흐 본스레 (J. K. Bhonsle) 무임소각료 겸 서기관장 사하이 (Sahai) 최고사령부 중좌 라줄 (Razule) 비서관 핫산 (Hassan)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⓪ 대동아회의 개최에 대한 선전 실시요강 (1943.10.29)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대동아회의 개최결정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4~10.15) 0. 대동아공동선언의 작성과정 (1943.7~ 10) 0.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개최에 대한 선전 실시요강 (1943.10.29) 0. 정보국 발표 (1943.11.1) /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0.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1.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2.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23.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4.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5.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6.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27.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나치 독일) 의 연설 [부록] 28.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9.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30.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31. 대동아회의 일정표 지침 대동아회의 개최에 있어서 대동아 각국의 대동아전쟁 완수의 결의 및 대동아건설에 대한 단결과 협력을 한층 더 강화, 촉진시킴과 동시에 이를 대내외에 천명하여 적측의 전쟁목적을 복멸(覆滅) 시키고 그 전의를 파쇄하기 위해 노력한다.       선전 내용 2-1) 이번 회의의 개회 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선전한다.       대동아건설의 진척이 결집하여 이번 회의의 개최에 이르게 되었음을 밝힐 것. 회의에 참석하는 각국대표 모두가 대동아의 거물임을 이야기 하며 각국 민중의 대동아건설에 대한 열의를 대표함을 지적할 것. 영미 및 충칭의 전쟁 목적의 복멸(覆滅)을 꾀할 것. 대동아에 건설되고 있는 신질서가 정의와 인도에 준거하는 것으로 대동아 각국이 공통의 요망으로 신질서 건설을 위해 협력하고 있는 것 및 신질서가 현실의 시책에 따라 착실히 실현되고 있는다는 것을 강조 하여 영미의 전쟁목적이 멸실(滅失) 되고 있음을 지적할 것, 충칭에 대해서는 일화동맹조약 (1943년 10월 30일 체결된 일화동맹조약 (日華同盟條約, 중일동맹조약이라고도 한다)를 의미.) 에 관한 선전요강의 요령을 따를 것.       2-2) 이번 회의의 성과 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선전한다.       이번 회의를 통하여 대동아의 결집은 더욱 강화되어 우리의 필승의 태세는 완벽에 도달하고 있음과 대동아건설의 항구적 기초가 완성되었음을 강조할 것. 대동아건설과 관련된 강령이 확정되어 대동아 각국의 공동이상은 명확해지고 각국의 건설 열의는 더욱 고양되어 모두가 공동이상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성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강조할 것. 유의사항 대동아에 있어서 제국이 지도성을 가진다는 인상을 주는 듯한 글의 형태는 주의할 것. 제국의 지도성에 대해서는 우리측에서 이를 타국에 강요하는 듯한 논조는 사전에 억지할 것. 다만 타국에서 언급하고 이를 우리쪽에서 인용하는 것은 방해하지 않는다. 대동아가 세계에 대해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인상을 주지 말 것. 대동아공영권의 범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피할 것. 특히 (공영권의 범위에) 소련영토를 아우르는 듯한 인상을 주지 말 것.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에 대해서는 특히 언급하는 것을 피할 것. 대동아전쟁을 인종전으로 생각하게 하는 인상을 주지 말 것.       조치(措置)       대동아회의 개최의 사실 및 각국 대표의 행동은 당국의 발표 전까지는 취급하지 말 것. 당국 발표 이전에는 회의에 대한 (기존의) 수상의 연설 및 일화조약 체결등을 관련지어 대동아건설의 진보를 선전할 것.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해서는 장기에 걸쳐 그 취지를 반복 선전할 것.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⓪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대동아회의 개최결정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4~10.15) 0. 대동아공동선언의 작성과정 (1943.7~ 10) 0.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개최에 대한 선전 실시요강 (1943.10.29) 0. 정보국 발표 (1943.11.1) /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0.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1.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2.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23.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4.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5.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6.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27.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나치 독일) 의 연설 [부록] 28.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9.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30.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31. 대동아회의 일정표 준비위원회의 구성 쇼와 18 (1943)년 10월 21일 (정식명칭은 국호(菊號) 위원회로, 일본은 이 대동아회의에 대해 '국호(菊號) 라는 암호를 붙혀서 보안을 유지 했다.) 1) 총괄 위원장 : 대동아성 대신 부위원장 : 내각 서기관장, 외무성 차관, 대동아성 차관 위원 (10인) : 식부성(省式省) 차장, 내각 정보국 차장, 내각 총무과장, 외무성 정무차장, 내무성 경보국(警保局) 장, 대장성 주계국장, 육군성 군무국장, 해군성 해무국장, 대동아성 총무국장, 도쿄도 차장       2) 사무국 사무국장 : 대동아성 차관 회계 : 대동아성 대신 관방회계과장       총무부(總務部) (회의 진행과 관련된 업무 총괄) 1) 총무반 (總務班) / 6인 2) 사찰반 (查察班) / 2인 3) 사무연락관 (事務聯絡官) / 7인 4) 각성연락관 (各省聯絡官) / 6인       영선부(營繕部) (숙소, 인원운송, 경비 담당) 1) 총무반 (總務班) / 13인 (운영을 위한 물자 구입) 2) 숙사반 (宿舍班) / 6인(숙소의 준비, 운영) 3) 수송반 (輸送班) / 5인(차량 및 연료의 분배등) 4) 경비반 (警備班) / 7인 (내무성, 경시청과 연계하여 회장 및 숙소 경비) 4) 각성연락관 (各省聯絡官) / 6인       의장부(議場部) (회의장 준비, 회의 기록 담당) 1) 총무반 (總務班) / 6인 (업무 총괄) 2) 설비반 (設備班) / 9인 (회장 내 설비, 다과 준비등) 3) 의사반 (議事班) / 9인 (회의 기록, 속기, 번역등) 4) 남리반 (藍理班) / 5인 (내부 경비, 자동차 관리 등)       접반부(接伴部) (送迎), 접대 담당) 1) 총무반 (總務班) / 6인 (회의 외 일정 관리 및 진행, 업무총괄) 2) 의식반 (儀式班) / 7인 (행사중 예식 진행) 3) 연회반 (宴會班) / 15인 (연회 관련 업무) 4) 교통반 (交通班) / 3인 (항공기 관련 업무) 5) 중국반 (中國班) / 4인 (중화민국 대표단 접대 업무) 6) 태국반 (タイ班) / 3인 (타이 왕국 대표단 접대 업무) 7) 만주반 (滿洲班) / 2인 (만주국 대표단 접대 업무) 8) 필리핀반 (フィリピン班) / 3인 (필리핀 공화국 대표단 접대 업무) 9) 버마반 (ビルマ班) / 2인 (버마국 대표단 접대 업무) 10) 인도반 (印度班) / 2인 (자유인도임시정부 대표단 접대 업무)       각부의 사무는 대동아성 관계자 및 연계기관 연락관이 담당한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⓪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대동아회의 개최결정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4~10.15) 0. 대동아공동선언의 작성과정 (1943.7~ 10) 0.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1.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2.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23.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4.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5.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6.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27.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나치 독일) 의 연설 [부록] 28.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9.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30.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31. 대동아회의 일정표 대동아회의 초청 및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한 참가국의 의향       1) 중화민국 : 중화민국 주재 제국 대사가 10월 18일 왕주석에게 정식적으로 초청장을 수교하고 25일에는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하여 내시(內示) 하였으며 왕주석은 이에 대해 지극히 훌륭하다 고 바로 동의를 표하였음.       2) 타이 왕국 : 대사의 병가로 이시이 참사관으로 하여금 10월 17일 초청장을 위칫와타칸 외무부 장관에게 전달하였음. 21일에는 담롱 ( 담롱 라자누브합 (Damrong Rajanubhab)을 의미.)  외무부 사무관장의 공문으로 타이 왕국 정부는 제국정부의 초청을 수락한다는 취지를 전달했으나 수상은 건강상 현재 장거리 여행을 견디기 어려운 만큼 완 와이타야콘 친왕을 타이 왕국의 대표로 임명하고 완 와이타야콘은 수상을 대표하고 수상의 대리로서 행하는 일체의 행위에 대하여 수상의 지위로서 책임을 진다는 뜻을 밝혔음. 또한 차이 (내각서기관장 및 육군소위 차이 바라트 바트센 (Chai Bratay Pasen)을 의미)  소위 및 시트트 ( 외무차관 시트트 시트트 사야무칸 (sitt sitt sayamkhan)을 의미.)  외무차관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 파견한다는 뜻을 회답하며 동시에 회의에 관한 상세한 내용 등은 타이 왕국 주재 제국 대사로부터 통지해줄 것을 요청하며 동시에 제국측이 요구한 각서에 대한 회답, 즉 완 와이타야콘이 피분 총리를 대신할 수 있는 지위를 가질수 있다는 점, 완 와이타야콘이 피분 총리를 대신하여 행동할수 있다는 점, 회의 결과 각 대표가 연명하여 발표하는 선언에는 ‘피분 총리를 대신하여’ 대리자의 이름을 발표하는 것을 하게 한다는 점 두 항목을 승낙할 수 있다는 내용 을 초청장에 대한 회답문에 명확히 표하였음.       이후 타이 왕국 주재 제국 대사는 25일 담롱 및 완 와이타야콘에게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하여 설명하고 타이 왕국 정부가 시급히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줄 것을 건의하였고 이에 완 와이타야콘은 조속히 피분 총리에게 이를 보고한 후 의향을 알리고 자신이 총리 대리로서 이를 개진하기로 하였음. 그리고 완 와이탸야콘은 타이 왕국의 견해로서 현재 기초가 완성된 공동선언안에 대하여 공영권과 타지역간의 관계를 다루는 제5항에 공영권 내 각국간의 관계를 다루는 제 4항에서 각국간의 관계를 정의하는 ‘호혜(reciprocity)’ 라는 단어가 제5항에서도 사용되는 것이 선언 전문에서 추구하는 정의의 취지를 철저하게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서술하였음.       완 와이타야콘은 26일 다시 피분 총리와의 협의를 거쳐 공동선언안에 대하여 타이 정부로서는 ‘수용할 수 있다(Acceptable)’라는 요지의 각서로 회답하였으며 동시에 공동선언의 제5항을 “호혜적으로 문화와 산업을 교류하고”라는 문구로 변경하는 것을 고려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으나 완 와이타야콘은 동시에 타이 정부로서는 이와 같은 변경을 고집하지만은 않는다는 취지의 부가적인 설명을 하였다. 또한 피분 출석에 대한 타이 왕국측의 절충 경위에 비추어 우리측의 의향을 더 우선시 하는게 합당하다고 인정하였음. 이에 타이 왕국 주재 제국 대사는 다음과 같이 타이측의 의향을 설명하는 전보를 보냈음.       본 선언안 제5항은 대동아와 대동아 이외의 국가와의 관계를 서술하는 것으로 타이 왕국측의 의견은 이에 있어서 ‘호혜’ 라는 용어를 추가하여 대동아 각국이 함께 세계의 진보에 공헌하게 하는 것을 강하게 기대할 뿐만 아니라 본 선언은 대동아가 세계를 향하여 폐쇄주의를 주창하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음. 본 선언은 영미에 대하여 반성을 촉구하게 하기 위한 것도 있으며 안(案) 속에 제한적 조건을 삽입하기 보다는 원안대로 하는 것이 오히려 그 효과를 더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현재의 상황에서도 선언의 장래적 실행에 있어 지장을 초래할 우려는 없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타이 왕국측에 대하여 이를 엄중히 설명하고 이에 대한 양해를 구하도록 조치하였음.       3) 만주국 : 만주국 정부에 대해서는 10월 21일 리샤오겅(李紹庚) 외교대신으로부터 같은 날 공문을 통하여 대동아회의 개최 및 의제에 대해 수용하며 “대동아건설의 현단계에 있어서 이와 같은 회의의 개최는 실로 의의가 깊은 것이며 흔연하게 정부의 대표자를 출석시킬 것이며 동시에 귀국 정부가 제안한 의제에 대해서도 찬의를 표한다”라는 취지의 회답을 받았음.       또한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해서도 10월 27일 만주국 정부는 원안대로 하는 것에 대하여 이의가 없음을 통보하였음. 그리고 만주국 정부 수뇌부 내에서는 일본측으로 하여금 지장이 없는 한 적당한 단계에서 대표로서 대동아회의를 매년 1회 도쿄에서 개최하는 것에 대한 희망 을 표시하거나 이에 관한 결의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된 바 제국으로 하여금 이에 대한 의견을 요청 하였고 이러한 제안에 대하여 일본측은 찬성한다는 뜻을 밝힘 또한 만주국은 자국과 제국과의 특수관계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러한 의견을 자신이 제안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여겨질 경우 중화민국 그 외의 국가로 하여금 이러한 의견을 내게 하고 만주국이 이에 대하여 찬의를 표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취지로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이에 제국 정부는 만주국측과 협의하여 결국 만주국측의 희망을 인정하여 회의 제2일째의 오후 의안 채택후에 만주국 대표로 하여금 간단하게 “대동아회의와 같은 회의를 장래에 있어서도 수시로 개최하는 것은 지극히 유의미하다 생각하여 이러한 종류의 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것을 희망한다” 라는 취지의 연설을 하게하고 동시에 이러한 제안이 결의 등의 형식을 통하여 구속력을 가지게 하는 것은 본 회의의 개최의 취지 및 본회의의 성질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만큼 본 제안에 대해서 각 대표의 박수를 통하여 찬의를 표하게 하였음.       4) 필리핀 공화국 : 필리핀 공화국 주재 제국 대사는 10월 19일 라우렐 대통령과 회담하고 초청장을 전달하였음. 라우렐은 이를 전면적으로 양해하고 20일 공문으로서 이를 수락하는 취지의 회답을 보냈으며 28일 필리핀 공화국 정부는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해 원안의 형태에 동의를 표하였음.       5) 버마국 : 10월 19일 랑곤에 주재하고 있는 키타자와(北澤)  (키타자와 나오키치(北沢直吉)를 의미.) 참사관이 버마국 외무대신을 방문하여 정식으로 초청장을 전달하였음. 21일 공문을 통하여 버마국 정부는 일본정부의 제안에 동의하며 일본정부의 초청을 기쁘게 수락한다는 취지와 바모 총리가 버마국의 대표로서 회의에 출석하고 협력대신 및 도쿄에 주재하고 있는 버마국 대사 (특명전권대사 테몬 (Te Moun)을 의미.) 가 본 회의에 참석 할것임과 동시에 함께할 일행의 명단을 회답하였음.       이후 10월 27일 버마국 주재 제국 대사 (당시 버마국 주재 주일대사였던 사와다 렌조우(沢田廉三)를 의미.) 가 바모 총리의 사저를 방문하여 (툰앙 (Tun Aung) 협력대신이 동석하였음.) 공동선언문의 영문 번역문을 전달하였고 이에 대하여 상세 설명하여 선언안 원안에 대하여 그대로 동의할 수 있도록 극력 설득에 노력하였음. 바모는 본 선언안에 관하여 찬성하나 본 선언은 영미의 공동선언 (1941년 8월 14일 영국과 미국이 발표한 대서양 헌장을 의미.)  에 대항하는 의미를 가지는 만큼 대동아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영미에 반대하는 민족 (아라비아, 이집트, 팔레스타인 등) 에게도 호소하는 뜻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 하며 이러한 취지의 제안을 회의 제2일의 의안 심사 과정에서 서술할 필요가 있음을 강하게 주장하였음.       이에 대하여 대사는 이러한 바모의 주장이 일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바모로 하여금 이러한 주장은 사양해주길 고려해 달라는 취지를 전하였음. 제국정부는 이러한 대사의 보고에 기초하여 버마국 대표 일행 명단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였음.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⓪ 대동아공동선언의 작성과정 (1943.7~ 10)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대동아회의 개최결정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4~10.15) 0. 대동아공동선언의 작성과정 (1943.7~ 10) 0. 대동아공동선언안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1.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2.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23.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4.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5.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6.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27.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나치 독일) 의 연설 [부록] 28.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9.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30.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31. 대동아회의 일정표 대동아공동선언(大東亞共同宣言) 은 명목상으로는 대동아회의의 결과물로서 도출된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대동아회의의 개최 이전부터 이미 일본이 계획하고 있던 것이었다. 일본은 대동아성과 외무성을 중심으로 대동아공동선언의 안을 제작하고 있었고 회의의 개최 이전에 이미 최종안이 완성된 상태였다. (현재로서는 외무성측에서 제출한 안에 대해서는 대부분 자료가 공개되었으나 대동아성의 안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대동아성의 안의 작성과정에는 국책연구회, 니시다 키타로, 오카와 슈메이등 여러 인물과 단체가 참가했다는 것이다.) 대동아 또는 태평양헌장안 (안도 요시로(安東義良) 사안(私案)) ( * 1943년 초에 작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       대동아 각국 주민들의 안정과 번영을 확보하고 진정한 세계평화와 복지 증진에 기여하기 위하여 대동아 각국 정부는 대동아질서의 강령에 대한 격의 없는 의견을 교환한 후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대동아 각국은 ‘아시아’외의 타국의 간섭, 지배, 독점 및 착취로부터 대동아를 영구히 해방 시키고 그 향상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를 극복한다. 대동아 각국은 대동아 전민중의 생존과 향상, 발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상호간에 자주독립 및 영토를 존중하고 평등호혜의 원칙하에 선린협력의 관계를 확립 한다. 대동아 각국은 대동아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정치적 개입을 척결 하고, 각국을 향한 압박과 위협은 공통의 압박과 위협이 됨을 인정하고 서로 협력하여 공동방위 의 책무를 다한다. 대동아 각국은 대동아 전민중의 생활의 안정 및 복지를 확보하고 증진시켜 공존공영의 경제관계를 확립하여 통상간의 호혜협력관계를 설정 하고 동시에 호혜협력의 원칙 아래에서 자원의 발전 및 이용을 세계에 개방하여 세계 경제의 발달과 세계 평화의 유지에 기여한다. 대동아 각국은 대동아가 본래 심원(深遠)한 문화를 가지고 인류 문화의 받달에 기여한 바가 큼을 생각하여 대동아 여러민족의 전통적 문화를 배양하고 문화의 교류 및 융합, 발전을 도모 하여 대동아 문화를 융성하게 하여 인류의 향상 및 복지에 기여한다. 대동아 각국은 세계 각국이 각자 소속된 지역에 정의와 공정에 기초한 공통의 질서를 수립하여 폭력에 의한 제패를 배제하고 각국간 및 타지역에 대한 불위협, 불침략을 위한 군비 수준을 유지하고 세계 평화의 유지에 협력하고 일절의 국제분쟁을 평화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한다. 대동아선안안 (7.23 국제법학회특별문제위원회 연구안)       대동아제국(諸國)은 만방이 각자의 자리를 얻어 그 국민이 그 속에서 안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항구적인 평화의 근본적 도리라는 것을 인정하며 미영 양국이 다년간 만든 질곡으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켜 대동아 민족의 자주적 발전과 공존공영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도의에 기초한 신질서를 건설하고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뜻을 같이하는 여러 국가와 협력하여 세계의 평화 유지 및 인류의 복지 증진에 공헌하기 위한 대동아신질서의 강령에 대한 격의없는 의견의 교환 결과 완전한 합의에 이르게 되어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대동아 제국(諸國)은 대동아 민족을 영구히 해방하고 자주적 향상 및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 도의에 기초한 신질서를 건설, 유지 하는데 협력한다. 대동아 제국(諸國)은 영구적인 선린우호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호간의 자주독립 및 영토를 존중 한다. 대동아 제국(諸國)은 대동아 전체의 안전과 공통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공동연대하여 상호 협력한다. 대동아 제국(諸國)은 대동아 한 국가에 대한 대동아 밖의 일체의 압박 및 위협은 대동아 전체에 대한 압박 및 위협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의 분을 다하여 대응하고 서로 협력하여 공동방위 의 책무 를 다한다. 대동아 제국(諸國)은 대동아 각지방의 특장점을 증진시키고 장단상보(長短相補), 유무상통(有無相通) 하여 일체로서의 긴밀한 경제제휴 를 통하여 대동아 전민중의 생활 안정 및 복지를 확보, 증진시킨다. 대동아 제국(諸國)은 대동아지역에서의 자원개발 및 이용에 대하여 형평의 원칙 하에 세계에 이를 개방 하고 또한 세계 각국 사이에 통상상의 호혜협력관계를 구축 하여 세계 경제의 발달 및 번영에 공헌한다. 대동아 제국(諸國)은 대동아문화의 본연의 특질을 존중하고 긴밀한 협력하에 문화 융합 및 발전에 힘써 대동아문화의 고양을 도모하고 나아가 세계문□ (글자가 훼손되어 확인할 수 없다. 문맥상 ‘문화(文化)’ 혹은 ‘문명(文明)’ 으로 추정된다.) 의 진전에 기여한다. 대동아 제국(諸國)은 뜻을 같이하는 세계 각국과 상호 협력하여 각자가 소속된 지역에서 정의와 공정에 기초한 신질서를 수립 하여 상호불위협, 불침략의 원칙을 존중하고 평화와 협력에 의한 국제관계 처리를 통하여 세계의 평화유지 및 복지증진에 헌신한다.       *주) 6항의 경우 자원의 개방, 통상간의 호혜관계 설정과 같은 원칙에 대해서는 각 위원간의 의견일치가 되지 않았으나 참고용으로 그대로 수록하였음.             대동아공영권의 정치체제 (8.23 전쟁목적연구소 정무과 2과 연구안) 대동아공영권의 이념       대동아공영권의 이념은 (1) 대동아 각국이 (가) 상호의 주권독립 및 자주적 발전을 존중하는 것, (나) 영미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에서 탈피하여 각자의 정치적, 경제적 자율 및 안정을 확보하여 공동의 이익 및 책임을 바탕으로 상호 협력하여 공동사업인 대동아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 및 방위, 그리고 대동아의 흥륭을 위해 노력하는 것과 (2) 세계 전반에서 위와 같은 정치적, 경제적 평화 및 안정을 우선 대동아지역에 확립하고자 하는 현실적인 방법에 의한 지향을 함께 하는 공영권 밖의 여러 국가와 협력하면서 전세계에 유사한 공정한 평화를 초래하게 하는 것에 있다.       공영권의 정치구성 - 1. 구성분자 대동아의 각 독립국으로 한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비롯한 제3국의 속령에 대해서는 마땅히 준구성분자로서 취급한다. - 2. 각국의 지위 및 상호간의 관계 (가) 각국은 자주독립의 국가로서 국제법상 평등하다. (나) 각국의 자주독립은 상호존중하며 공영권을 구성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공동의 이익과 책임감에 기초하여 협동행동의 관념을 가진다. 이와 같은 원칙에 따른 각국의 정치 관계 예시는 다음과 같다 : A : 법률적으로는 평등하나 사실상의 지위 및 실질적인 능력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이를 법률적 내지는 규약적으로 명확히 규정한다. B: 다만 지도국의 관념과 같은 개념을 법적 내지는 규약적으로 확정하는 것은 피한다.    C: 공영권의 구조는 일본을 축심으로 하여 각국을 연결하여 결집시키는 것 이나 추축국 이외의 각국간의 직접간의 연계는 희박하다는 주장도 있는 민큼 이를 법적 내지는 규약적으로 명확히 정하는 것은 피할 필요가 있다. D : 각국은 독립국가로서 상호 외교사절을 교환하고 외교를 행하기로 한다. E : 각국은 공영권 내의 안녕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에 대한 방위에 관한 협정에 따라 특정한 의무를 부담하고 내지는 공동행동에 나서기로 한다.       공영권과 외부의 정치관계 공영권과 외부의 정치관계에서 특기(特記) 할 점은 다음과 같다. (가) 공영권은 정치적으로, 지리적으로 근접한 대동아 각국간의 평화안정을 위한 기구로서, 이는 지역적,부분적 평화를 확보하여 세계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착실하고 현실적인 평화를 위한 기구를 건설한다는 표현으로 (이는 먼로주의 혹은 미국의 사상와 가까운 국제연맹사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쇄국적, 배외적 도전적 사상에 반대한다. (나) 공영권과 외부와의 정치관계는 특히 공영권 각국간의 규약등에 있어서 명시된 사항 (평화와 안정의 유지, 공동방위 및 공동의 경제건설에 관한 특정 사항에 관하여 협의를 필요로 하는 것) 을 제외하면 공영권과 외부의 관계는 통상의 국가간의 외교관계를 유지한다. 단 이는 공영권내 규약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진행한다. 또한 공영권으로서 외부에 대한 행동을 위한 방법으로서는 공영권의 대표가 대리기관을 설치하지 않고 지도국이 권내 국가를 대신하여 외부와 교섭하거나 협정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공영권 각국은 어디까지나 자주적으로 외부 각국과 외교 사절을 교환하되, 규약에 의해 제한되는 범주에 있어서는 그 외교를 내용적으로 제한한다. 공영권의 구성과 대동아회의의 관계에 대하여 (가) 앞에서 서술한대로 공영권의 구상은 이를 어느 정도 성문화하기로 한바, 이를 이루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A : 일본과 각국간의 조약을 통하여 개별적으로 축심을 구성하는 방법 B : 다자 조약에 의해 일거에 이를 구성하는 방법 C : 정책의 선언을 통하여 하는 방법 (공동선언을 통한 방법, 혹은 한 국가의 선언에 대하여 타국이 찬의를 표명하는 경우도 포함) 방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국내의 이론이 존재하는 바 반드시 적절한 방법을 강구할 것, 또한 대동아회의의 개최를 전제로 하는 경우 가장 실질적인 방법은 대동아회의의 결과로서 공동선언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음.    (나): 따라서 대동아회의에서 이러한 공동선언을 제안하고 탐색하여 공영권의 구상에 맞게 공영권 각국의 관계 및 공영권 일부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천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됨. (다): 대동아회의를 개최하는데 있어 다음과 같은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음. A : 선언의 내용은 영미 격파에 관한 결의 표명과 대동아 건설에 관한 정책의 천명이라는 2가지의 요소를 다루되 이를 별개의 선언으로 분리할지 하나의 선언으로 통합할지 연구를 할 필요가 있음. B : 의제에 관해서는 사전 협의를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한편 , 일본측의 제안으로서 무엇을 제안할 것인지, 또한 회의의 성격을 각국의 발언 및 제안을 상당히 자유롭게 하는 회의로 할 것인지, 혹은 선언안을 중심으로 해당 내용에 대한 토의를 중점으로 하여 구체적 성과를 기대하는 회의로 할 것인지의 연구가 필요함. C : 의사진행에 대해서는 이와 관련된 표결제도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음. D : 향후의 회의에 관한 사항으로, 선언과도 관련되는 부분으로 대동아회의를 정기적으로 수시로 개최하는 것 과 이를 규약에 병기하는 것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                 대동아선언경제원칙 (8.25 전쟁목적연구소 연구안) ( *전쟁목적연구소 통상국안인 대동아선언(경제부문) , 전쟁목적연구소 정무국안인 대동아공영권의 정치체제, 외무성이 외주를 준 국제법학회특별문제연구회의 안인 대동아선언안 및 안도 요시로의 사안까지 초기 작성되었던 안들을 정리한 것이다. )       경제적 안정이 있는 국가 또는 국가군을 형성한다. 현재 전쟁은 영국, 미국, 네덜란드의 경제 압박에 대항하고 자존자위를 위한 것으로 세계평화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국가 및 국가군을 형성하지 않으면 이를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 근대 경제생활의 발달과 복잡화, 근대 전쟁의 거대성과 다양성은 합중국(合衆國), 소련과 같은 대국가 사이에서만 비롯될 수 있는 것으로 이는 동아 여러 국가로 하여금 하나의 경제단위를 결성할 필요성을 가지게 한다. 권내 각국은 독립, 평등, 상조(相助)의 대원칙에 근거하여 안정된 국가군을 결성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동아 여러 국가는 경제적 안정감이 허락한 한 권내 자원을 독점할 의사를 가질수 있다.     착취 없는 세계의 현실화 지금의 전쟁은 동아민족을 착취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며 영미란(英米蘭) 이 동아민족의 착취를 통한 자신의 번영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지금의 전쟁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아의 여러 국가는 타 국가 또는 타 민족을 착취하려 해서는 안된다.     생활수준의 향상 동아민족의 생활 수준은 매우 낮은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아민족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켜 각국 각민족으로 하여금 각각의 생활을 안정시키게 하는 것이 이번 전쟁의 전잰목적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의 영원한 평화 초래 앞의 3가지 조건을 달성함으로서 영원한 평화가 보장되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동아 국가의 전쟁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의 3가지 조건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형태로서 만족하는 바로, 이를 위한 본질적 조건으로 국제법 또는 조약의 보장은 의미가 없다. 이러한 세계에 있어서 경제의 각 분야에서 자유,평등,호혜의 원칙이 진실로 적용되지 않는다면 자원의 개방, 무역의 자유, 조약의 신성함과 같은 표어는 공염불 이라 할 수 있다.             대동아공영권의 경제체제 (8.31 전쟁목적연구소 통상국 연구안) (* 8월 25일의 대동아공동선언경제원칙을 보완한 것으로, 이를 토대로 9월 11일 전쟁목적연구소의 최종안이 대동아선언안이 작성되게 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본 안과 9월 11일의 대동아선언안은 내용에 있어 거의 차이가 없다고 알려졌다.) 대동아공영권의 경제적 본질 (가) : 대동아공영권을 세계경제진보의 과정 에서 보았을 때는 근대 경제 생활의 발달과 복잡화, 특히 근대전쟁의 거대성과 다양성등의 요구에 응하기 위한 필연적인 결집체제라고 할 수 있다. (나) : 대동아공영권을 발생의 과정 에서 보았을 때는 영, 미, 네덜란드의 경제적 압박에 대항하여 이들의 착취로부터 이탈하려는 대동아 각국의 자위(自衛)를 위한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다) : 대동아공영권을 그 목적 에서 보았을 때는 국가생활의 안전 확보를 직접적인 공동목적으로 하는 것이며, 나아가 전세계에 유사한 형태의 국가 및 국가군을 구성하여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초래하는 것을 최종적 목표로 하는 대동아 각국의 협력체제라고 할 수 있다. (라) : 대동아공영권을 그 구성 에서 보았을 때는 공동의 목적하에 결집할 수 있는 독립 경제 단위의 집합체제이며, 따라서 공동목적에 관해서는 공영권 밖의 국가들과는 다른 특수한 경제적 의존 관계를 가지며 그 범위에 있어서 경제적 활동에 있어 부가적으로 필요한 통제와 제약을 받더라도 그 외의 분야에서는 경제적으로 자주독립의 표면을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 : 대동아공영권을 세계적 성격 에서 보았을 때는 폐쇄적 내지는 비협조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협력적이고 발전적이라 할 수 있다. 대동아공영권의 경제적 특징 (가) : 대동아공영권은 아시아 대륙부터 태평양 도서지역까지를 포함하는 일본해, 황해, 동남지나해 (東南支那海) 등을 내해로 하는 국가군 으로서, 그 경제적 성격은 대륙적 성격을 가지는 해양국가군이라 할 수 있다. (나) : 대동아공영권은 한 대부터 열대까지 아우르는 국가군이나 그 경제적 특징은 오히려 열대 내지는 아열대적 성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 : 대동아공영권은 자원적으로는 국방기초자원 및 민생근간 물자에 있어서 대부분 자급이 가능할뿐더러 수십종의 특징있는 세계적 자원을 가진 자급적 발전적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라) : 대동아공영권의 인적자원은 세계 인구의 약 4할을 차지하며 풍부한 인구는 저렴한 노동단가를 제공 한다는 특징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마) : 대동아공영권은 자본, 교통수단, 기술등의 분야에 있어서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조금 열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동아공영권 경제정책기조 대동아공영권의 경제정책은 당연히 그 이념, 목적, 경제적 특징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 권내경제정책 A : 권내경제에서는 공동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에서는 일정한 종합적 기획에 근거한 계획 경제 또는 협력체제를 구성한다. 이외의 분야에 있어서는 공동목적의 달성에 지장이 없는 한 자주경제를 그 기조로 한다. B : 계획경제 및 협력체제는 실질적으로는 지도국의 지도하에 일정한 종합적 계획에 의거하는 것이나, 형식적으로는 각 구성분자간의 합의방식에 의하는 것으로 한다. C : 종합적 경제계획은 목표는 골자만 작성하는 것으로 하되, 수단적 방면은 각 구성분자의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한다. D : 계획경제를 행하거나 종합적 협력을 요하는 경제분야의 주요 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D-1 : 중요국방자원 및 민생근간물자의 생산 및 배분 D-2 : 중요교통로의 유지 및 수송계획 및 중요국방자원 및 민생근간 물자 수송 D-3 : 노무(勞務)의 유효한 사용 D-4 : 엔(圓)을 중심으로 하는 화폐 교환제도의 원활한 운용 및 권내 자금의 유효한 이용 D-5 : 국방 및 민생에 중요한 관계에 있는 기술의 사용       (나) 공영권 외 경제 정책 공영권 밖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전술한 것처럼 경제계획 및 협력체제의 수행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제약을 하고 그 이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각국에 자주에 맡긴다. 단, (1) 실질상의 관계에 교환 운용에 대해서는 제한한다. (2) 필요시 공영권 외의 경제적 공격조치에 대해 여러 국가가 공동으로 협력조치를 취한다. 공영권 외 경제활동에 있어 지도국이 대표하여 행동하는 등의 방식은 피하고 각 구성분자로 하여금 일정한 종합 계획에 의거하여 행하게 한다. 교역 (A): 국방 및 민생에 중요한 관계가 있는 물자의 수출입 및 특수한 목적을 가진 수출입등은 일정한 종합계획에 의거하여 실시한다. 교통 (B) : 공영권 외의 중요 교통로에 대한 참가, 권내 교통로에 대한 개방등은 종합적 게획에 의거하여 실시한다. 금융 (C) : 공영권 외의 환율 정책, 공영권 외 투자 및 외자 유도 정책등은 이전의 것을 유지한다. 기술 교류 (D) : 국방 및 민생에 중요한 관계를 가지는 기술의 교류는 계획적으로 이를 조장한다.                 대동아공동선언안 (10.4 외무성 연구안) (* 전쟁목적연구소의 안을 토대로 외무성에서 작성한 안이다. 당시 외무대신이었던 시게미츠 마모루의 사상이 크게 반영되었다.)       대동아를 대동아외 국가의 침략 및 식민지적 착취로부터 영원히 해방시키고 도의에 바탕을 둔 대동아를 건설하여 만방공영의 세계를 건설하고 인류의 평화적 발전에 기여하고자 대동아회의에 참석한 대동아 각국 정부대표는 공동으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대동아 각국은 대동아를 영원히 해방시키고 대동아 각 민족의 자주적 향상 및 발전을 기초로 하여 대동아 전체의 공존공영과 안정을 확보하는 질서를 건설하기 위해 협동한다. 대동아 각국은 상호간의 자주독립 및 영토를 존중함과 동시에 선린우호, 상호협력의 관계를 확립한다. 대동아 각국은 외부로부터의 외협과 침략에 대해 협동하여 대동아를 보위한다. 대동아 각국은 민생향상과 상호경제적인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경제상으로 서로 긴밀히 제휴,협력하고 동시에 형평호혜(衡平互惠)의 원칙 아래 널리 세계에 자원을 개방하고 교역을 증진시키며 세계 경제의 발달 및 번영에 협력한다. 대동아 각국은 서로 각 민족의 문화의 본연의 특질을 존중하고‘아시아’문화의 고양을 도모하여 세계인문의 발달에 기여한다. 종교의 자유 원칙은 대동아 각국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대동아공동선언안 (10.18 외무성 연구안 수정안) (* 시게미츠 마모루가 다시 한번 수정한 안이다.)       대동아를 타국의 침략 및 착취로부터 영원히 해방시키고 도의에 기초하여 대동아로 하여금 화친의 관계를 건설하고 나아가 만방공영의 세계를 건설하고 인류의 평화적 발전에 기여하고자 대동아회의에 참석한 대동아 각국 정부대표는 공동으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대동아 각국은 대동아를 영원히 해방시키고 대동아 각 민족의 자주적 향상 및 발전을 기초로 하여 대동아 전체의 공존공영과 안정을 확보하는 질서를 건설하기 위해 협동한다. 대동아 각국은 대동아를 영원히 해방시키고 대동아 각민족의 자주적 발전을 기초로 하여 대동아 전체의 안정보장과 공존공영을 확보하기 위하여 굳은 결의를 한다. 대동아 각국은 상호간의 자주독립 및 영토보전을 존중함과 동시에 선린속에서 평등과 상호 우호관계를 확립한다. 대동아 각국은 민생의 향상을 촉진하고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형평호혜(衡平互惠) 의 원칙하에 긴밀한 경제제휴를 실행함으로서 대동아 전체의 경제발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형평호혜의 원칙하에 널리 세계에 자원을 개방하여 교역을 증진시키고 나아가 국제교통에 대한 장애를 제거하여 세계 경제의 발전 및 번영에 협력한다. 대동아 각국은 상호 고유의 전통, 종교, 문화를 존중하고 나아가 ‘아시아’본래의 정신적 문명의 고양을 도모함과 동시에 문화의 교류를 통하여 세계 인문의 발달에 기여한다. 이를 위하여 위와 같이 선언한다.       *주) 대신이 작성한 초고를 다시 대신이 수정한 것.       대동아공동선언안 (10.20 외무성안-대동아성안 조정안) (* 외무성안과 대동아성안을 합쳐서 정부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성된 안으로, 전체적인 형태는 외무성안의 형태를 사용하되, 대동아성의 요구가 크게 반영되는 모습을 보였다.)       본래 세계 각국에게는 저마다의 자리가 있고 서로 의지하고 돕고 모든 국가가 함께 번성하는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은 세계평화 확립의 근본이다. 그리고 인근 국가들이 모여 공존공영의 질서를 건설하고 다른 지역 국가들과 협화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세계 평화 획립의 가장 유효하고 실질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영미는 자국의 번영을 위하여 타 국가, 타 민족의 생존을 고려하지 않고 그 향상과 발전을 억압하고 있다. 특히 대동아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침략과 착취를 행하여 정당한 국민적 요망을 유린하고 상투수단으로서 분할지배를 모의하여 대동아 국가와 민족의 친화를 저지하며 대동아 예속화라는 야망을 꿋꿋히 세우고 마침내 대동아의 존립을 뿌리부터 뒤집어 놓으려 하고 있다. 대동아전쟁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대동아 각국은 이와 같은 원인에 의해 발생한 대동아전쟁의 본질을 인식하고 대동아를 영미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존자위를 완수하여 부흥과 흥륭을 도모하고 널리 여러 국가와 함께 세계의 진보에 기여하는 것이 각국의 공동 사명이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대동아가 협동하여 대동아전쟁을 완수하고 도의에 기초한 신질서를 대동아에 건설하여 세계평화의 확립에 공헌하기 위해 대동아 각국은 대동아건설의 원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대동아 각국은 협력하여 대동아의 보전(保全)을 확보하고 각국이 자주적 향상 발전을 이루게 하여 공존공영을 확호하기 위한 신질서를 건설하여 세계평화에 기여한다.   대동아 각국은 상호간의 주권, 독립 및 영토보전을 존중 하면서 선린으로서 상조돈목의 열매를 맺어 동아 전체의 친화를 확립한다. 대동아 각국은 상호간의 전통, 종교, 문화를 존중 하여 대동아 본연의 정신문명을 발양하고 각민족의 창조성을 신장하여 널리 문화교류를 도모하여 세계인문의 발달에 기여한다.    대동아 각국은 민생의 향상과 그 경제적 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호혜의 원칙 아래 긴밀한 경제제휴를 실시하여 공동으로 대동아 전체의 경제적 발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널리 세계에 자원을 개방하여 교역을 증진하고 세계경제의 발달 및 번영에 협력한다.             대동아공동선언안 (10.21 대본영정부연락회의안) (*20일의 안이 대동아성, 외무성 모두에게 비판을 받게 되면서 새로운 수정안이 등장하게 되었다.)       본래 세계 각국에게는 저마다의 자리가 있고 서로 의지하고 돕고 모든 국가가 함께 번성하는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은 세계평화 확립의 근본이다. 그러나 영미는 자국의 번영을 위해 다른 나라나 민족을 억압하고, 특히 대동아에 대해서는 질리지 않는 침략과 착취를 하고, 대동아를 예속화하려는 생각을 버리지않고, 마침내 대동아의 안정을 밑바닥부터 뒤집어 버리려고 했다. 대동아전쟁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대동아 각국은 상호제휴하여 대동아전쟁을 완수하고 대동아를 영미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존자위를 완수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강령에 근거하여 신질서를 대동아에 건설하여 세계 평화에 확립에 기여하기로 한다. 따라서 대동아각국은 대동아건설의 원칙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대동아 각국은 협동하여 대동아의 안정을 확보하고 도의에 근거한 공존공영의 신질서 를 건설한다. 대동아 각국은 상호간의 자주독립을 존중하여 상조돈목의 열매를 맺어 대동아의 친화를 확립한다. 대동아 각국은 상호 민족간의 편견을 불식시키고 그 전통을 존중 하며 대동아 본연의 문화를 고양시킨다. 대동아 각국은 호혜속에서 긴밀히 제휴하여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대동아의 번영을 증진시킨다. 대동아 각국은 만방과의 교의를 돈독히 하고 널리 문화를 교류하고 나아가 자원을 개방하여 세계의 진보에 공헌한다.        대동아공동선언안 (10.30 최종안) (*21일의 수정안에서 일부 수정을 거쳤다. 1항의 '신질서'는 '질서'로, 5항에는 해군측의 의견을 반영하여 '인종적 차별을 철폐하며' 라는 문구가 추가되었다. 본 안에서는 위의 수정안에 대한 각국 대표들의 의견 역시 일부 반영되었으며 이렇게 작성된 최종안이 대동아회의에서 논의되었고 이가 사실상 그대로 반영되었다.)       본래 세계 각국에게는 저마다의 자리가 있고 서로 의지하고 돕고 모든 국가가 함께 번성하는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은 세계평화 확립의 근본이다. 그러나 영미는 자국의 번영을 위해 다른 나라나 민족을 억압하고, 특히 대동아에 대해서는 질리지 않는 침략과 착취를 하고, 대동아를 예속화하려는 생각을 버리지않고, 마침내 대동아의 안정을 밑바닥부터 뒤집어 버리려고 했다. 대동아전쟁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대동아 각국은 상호제휴하여 대동아전쟁을 완수하고 대동아를 영미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존자위를 완수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강령에 근거하여 대동아를 건설하고 세계평화의 확립에 기여하기로 한다.             대동아 각국은 협동하여 대동아의 안정을 확보하고 도의에 근거한 공존공영의 질서 를 건설한다. 대동아 각국은 상호간의 자주독립을 존중하여 상조돈목의 열매를 맺어 대동아의 친화를 확립한다. 대동아 각국은 상호간의 전통을 존중하며 각민족의 창조성을 함양하여 대동아의 문화를 고양시킨다.     대동아 각국은 호혜속에서 긴밀히 제휴하여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대동아의 번영을 증진시킨다. 대동아 각국은 만방과의 교의를 돈독히 하고 인종적 차별을 철폐하며 널리 문화를 교류하고 나아가 자원을 개방하여 세계의 진보에 공헌한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⓪ 대동아회의 개최결정에 따른 각국의 반응 (1943.10)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대동아회의 개최결정에 대한 각국의 반응 (1943.10.4~10.15)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1.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2.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23.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4.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5.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6.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27.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나치 독일) 의 연설 [부록] 28.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9.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30.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31. 대동아회의 일정표 대동아회의의 개최에 대한 각국 정부의 승인 취득 방법 훈령 쇼와 18 (1943)년 10월 4일 아오키 카즈오(青木一男) 대동아대신이 만주국 우메즈 요시지로(梅津美治郎) 대사, 중화민국 타니 마사유키 (谷正之) 대사 외 각국 대사에게 전보 발송. 10월 4일 발송 / 합제 201호 (관장부호급(館長符號扱), 긴급)       이번에 제국은 요령 (1943년 5월 31일 결정된 대동아정략지도요강을 의미.) 에 따라 대동아회의 개최의 방침을 결정한 바 , 별도로 전달한 요령과 여러 사항을 인지하여 시급하게 현재 역임하고 있는 정부에 대하여 본건, 회의 개최에 관한 우리측의 내의(內意)를 통보하고 회의 참가에 대한 상대방의 내락(內諾) (비공식적으로 우선 승낙함.)  취득을 기대하고 있음. 하루 빨리 정식으로 초청장을 발부하고 조금이라도 개최 기일 및 준비 관계를 용이하게 위하여 이번달 중순까지는 (늦어도 이번달 10일까지) 상대방의 내락을 획득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바임. 1) 본회의의 목적에 관하여 본 회의의 개최 목적은 우리쪽의 정략목적을 획득하기 위한 것 으로, 우리쪽은 물론 상대편 역시 이러한 목적을 획득할 수 있음을 이야기할 것. 본 회의의 개최 취지에 관한 설명은 본회의 의제와 관련된 것으로, 대동아 각국의 정부 수뇌가 회합하여 전쟁 완수와 대동아 각국의 공영을 취지로 하는 자주적 발전 및 대동아 흥륭을 위한 공동건설의 방침에 대하여 격의없는 의견교환을 완수하고 그 협의 결과를 합당한 형식에 의해 대내외에 천명하는 것. 이는 각국 스스로를 위해서도 대동아 전체를 위해서도 지극히 시의적절하다고 생각된다는 취지로 설명할 수 있음.       2) 참가국 대표의 구성에 대하여 참가국 및 대표의 구성에 관해서는 별도로 전달한 요령1 및 요령2에 따라, 참가 대표에 있어서는 본건 회의의 개최 의의 및 중요성에 비추어 정부수뇌 본인이 스스로 참석하는 것을 특별히 중시 하고 있음. 이점을 유의하여 상대방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최대한 힘을 쏟을 것. 제국측은 주최적인 관계로 대표인 총리대신 외에도 대동아대신 및 외무대신을 참석시킬 것. 수행원에 대해서는 제반 편의상 최소한으로 하는 취지이나 구체적인 인원수에 대해서는 각국 각각의 사정을 배려하여 각국이 적절히 인원수를 조절할 수 있게 할 것. 하지만 준비의 사정을 위하여 인원 수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통보하기를 희망함.       인도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경우, 그 수반을 참가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참가 각국 대표와 동일한 자격으로 참가시키는 것은 현재 고려중임.       회의의 의안채택 과정을 비롯한 회의의 종반부 단계에서 현재 도쿄에 있는 추축국 외교 대표자의 배석을 고려하고 있음. 3) 회의의 개최일에 대하여 회의 개최일은 회의의 취지에 비추어 신중한 고려 결과 11월 5일부터 이틀간 하기로 결정되었음. 물론 참가 각국의 각각 사정을 비롯한 여러 사정이 존재할 수 있는 만큼, 우리로서는 위의 개최일은 변경될 수 있음. 이를 포함하여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낼 것.       4) 의제에 대하여 의제에 관해서는 별도로 전달한 요령 5의 내용대로 의안에 대한 탐색, 내용 및 형식 (공동성명 등) 에 대해서는 추후 우리측의 초안을 사전에 각국측에 전달 하여 각국 측의 의견을 구하고 회의전에 구체적인 안을 준비할 의향임. 다만 조약의 체결은 예상되지 않음. (따라서 각국 대표의 전권 위임장의 소지를 필요로 함) 의제에 관한 각국 대표의 소견에 관해서는 그 내용의 번역, 개진 시간등 회의 개최전에 서로 논의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사전에 연락을 하여 협의할 것.       5) 회의의 비공개 원칙에 대하여 회의는 원칙적으로 공개하기로 하나 심의 종료 후 최후 의안 채택의 경우에는 일정한 제한 아래 공개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음.       6) 석차(席次) 에 대하여 석차에 대해서는 별도로 전달한 요령 6의 4항에 따라 국가명을 ‘이로하’ 순으로 표기하기로 하였음. 본래 구미등에서 국제회의에 사용되었던 ‘알파벳’를 대신하여 ‘이로하’순으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인정되는 바, 이에 대한 상대방의 양해를 얻을 수 있도록 적당히 설명할 것.       7) 기밀 유지에 관하여 본 회의에 대한 적측의 방해적 개입을 고려하여 엄격하게 비밀리에 진행할 필요가 있음에 따라 기밀유지에 대해서는 특히 주의해줄 것, 그 외에 사항에 대해서는 필요에 따라 추가적으로 별도로 전보를 전송할 것. 예비교섭경과 (대동아회의 개최결정에 따른 각국의 반응)       1) 중화민국 중화민국 정부에 대해서는 난징의 제국대사가 10월 7일 오후 왕 주석과 회견하여 제국정부의 훈령 요지에 대해 설명하여 본 회의에 대한 참가 여부를 물었고 왕 주석은 전부 이를 요해(了解)하고 참석할 것 이라 밝혔음. 2) 타이 왕국 (가) 주 타이왕국 대사는 10월 6일 오후 피분 총리 (외무부 장관 루앙 위칫와타칸 (Luang Wichitwathakan 도 함께 배석.) 와 2시간에 걸쳐 회담하여 제국정부의 훈령 취지를 설명하고 회의에 출석할 것을 설득하는데 노력하였음. 하지만 피분 총리는 회의의 중요성이 충분함을 알고 있으나 자신의 건강상황으로는 일본의 장거리 여행은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몸은 겉모습은 굳건해보여도 현재의 총리의 업무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아내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함을 이야기 하며 자신은 총리이자 동시에 최고 군수통자임으로 책임도 충분히 다한 만큼 이전부터 사직을 생각해오고 있었던 참으로, 이번에 이렇게 일본이 끝까지 총리의 출석을 요구한다면 자신의 사직 후 후계자와 결정 을 합의하여 그 총리를 회의에 참석시키는 것이 어떻겠냐 이야기하였음. 이에 위칫와타칸 장관도 거들어 치분 총리는 일본에 대해 협력하며 노력해왔으나 총리 자신이 말한대로 건강 상태가 이렇게 좋지 않으니 향후의 타이 왕국-일본 협력을 고려하여 총리가 신임하는 경력이 충분한 인물을 대리로 하여 일본을 방문하게 하는게 어떠한가 라고 요청함.       또한 동시에 장관은 참석한 다른 나라들은 일본의 원조에 의해 건설 혹은 독립을 얻게된데에 반해, 타이 왕국은 예전부터 독립을 가지고 있었고 전쟁과 동시에 일본과 동맹하여 공동의 작전에도 함께 노력하고 있는 국가로서 다른 국가와는 스스로 다른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은 이에 대해 타이 왕국에 대한 다른 어떠한 대우를 할 용의가 있는가 질문하였고 제국대사는 이에 대해 일본은 타이 왕국의 역사적 입장, 일본과의 특수한 관계등을 충분히 고려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으며 도조 총리가 7월에 타이 왕국을 방문한 만큼 (도조 히데키는 1943년 7월 3일, 5월 필리핀 방문을 잇는 두 번째 남방 시찰에서 타이 왕국의 수도 방콕을 방문하여 피분 총리와 회담을 하였다. 그리고 이 타이 왕국 방문에서 도조는 타이 왕국에게 북부 말레이 4주 및 샨 2주의 태국 영토 편입을 제안하였다.)  피분 총리도 이에 대한 답례로서 방문을 다시 한번 고려해줄 것을 요청하며 타이 왕국의 지위에 대해서는 모든 방법을 가지고 경의를 표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출석국의 석차는 일본어 이로하에 따른 국명순인 만큼 양해를 부탁한다고 하였으나 타이 왕국은 타이 왕국이 제2순위가 되어야한다고 응수 하는 모습을 보였음.       (나) 따라서 피분 총리는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하여 일본을 방문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함. 도조 수상의 방문에 대한 답례의 의미를 강조하여도 방문의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음. 총리는 본 회의 출석을 우려스러운 처안이라 생각하며 건강상의 이유를 들며 상당히 굳건한 의사를 가지고 본 회의의 출석을 회피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음. 이러한 피분의 심경의 이유에 대해서 타이 왕국 주제 제국대사는 피분 총리가 건강을 이유로 일본 방문이 불가능함을 고집하고 있지만 대사 파견 직전 이별 인사차 총리를 방문한 이시이(石井) 참사관에 따르면 피분 총리는 지극히 명랑한 태도로 최근 방콕이 좋은 계절을 맞이한 만큼 매일 테니스 를 즐기고 있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 만큼 건강을 사유로 일본에 방문할 수 없다는 것은 진정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 고 생각됨. 쁠랙 피분송크람 (Plaek Phibunsongkhram) 당시 타이 왕국 총리. 그는 자신의 대동아회의 참가를 강하게 거부했다.       (다) 피분 총리가 이러한 행보를 보이는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존재한다고 생각됨. (1) 최근의 전황이 추축국에 불리해지고 있는점, 그리고 이에 편승하여 적의 대 타이왕국 선전 모략이 일반 타이인으로 확대된 점. (2) 버마에 대하여 적측의 반격이 다가오고 있는점, 이에 따라 방콕이 대규모 공습의 위협을 받게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는 점. (3) 위의 두가지 요소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해외를 방문하게 되면 정적의 쿠테타 음모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점. (4) 방일하게 될 경우 일본에 의한 강요로 방일하게 되었다고 적측은 비난할 것이기에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점. (5) 피분 자신은 물론 그 부인도 이에 대해 심변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점. 또한 피분과 부인 모두 비행기를 타는 것을 싫어한다는 점. (6) 타이 왕국이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특별한 관계에 있는 입장상 다른 출석국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타이 왕국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점. 이러한 이유를 제쳐두고라도 피분 총리는 본 회의에 확고하게 출석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고 있음. 위칫와타칸 외무부 장관이 제국 대사에게 극비사항을 귀띔해준 바에 따르면 7일 오후 피분은 임시 비밀회의를 열어 그 석상에서 위칫와타칸 장관과 30분에 걸쳐 대화하면서 피분은 일본을 방문하지 않을것이며 피분은 절대로 일본측의 방문요청을 수락하지 않을것임을 밝히며 자신이 일본을 방문하게 되면 지극히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될것이라는 뜻을 밝힘. 또한 피분은 매우 기분 나쁜 투로 자신이 일본 방문을 거부하면 일본이 무력으로 압박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였음. 이에 위칫와타칸은 일본은 반드시 무력을 사용하든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일본 방문을 하게 하려 할 것 이라고 하였고 피분은 자신은 그럼에도 가지않겠다 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이후 회의는 종료되었음.       (라) 타이 제국의 대사는 나카무라 사령관 ( 나카무라 아케토(中村明人)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 타이 왕국 주둔군 사령관.) 과 함께 8일 오후에 피분 총리를 만나 약 2시간에 걸쳐 설득하려 노력하였지만 피분 총리의 의사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였음. 결국 제국정부는 이를 수습할 조치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에 대한 방침을 결정하여 타이 왕국측으로 하여금 절충할 수 있도록 제국 대사에게 훈령을 내렸음. (1) 피분 총리가 본 회의에 출석하는 것이 우리측으로는 가장 희망하는 것이나 건강을 이유로 계속하여 출석할 수 없음을 주장하고 있는 이상 어쩔수 없음, 따라서 대리자의 파견을 인정할 것. (2) 본회의의 중요성에 비추어 대리자는 명실공연하게 타이 왕국을 대표하기에 충분한 관록을 가진 거물 인사여야 할 것. (3) 대리자는 본 회의에 출석하는 이유로서 도조 총리의 방문에 대한 타이 왕국의 답례의 의미를 포함시키게 할 것.       (마) 피분 총리의 대리인에 대해서는 그후 주 타이왕국 주재 제국대사와 타이측과 절충을 거듭한 결과 타이 왕국 측은 완 와이타야콘 친왕을 파견하는 취지의 제안을 전달 하였고 이를 우리측이 받아들여 완 와이타야콘을 피분 총리의 대리로서 출석시키기로 의견의 일치 를 보았음. 완 와이타야콘은 황족인 관계상 타이 왕국의 헌법에 근거하여 각료가 될 수 없다는 결점이 있다는 점이 있어 이를 타이 왕국측에 확인해본 바 위칫와타칸 장관은 타이 왕국 헌법상 황족의 정치적 지위 취임 불가능이라는 원칙은 단적으로 내정상의 관계에 그치는 것으로, 대외적으로 국가 내지 정부를 대표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며 이에 따라 이번에는 완 와야타야콘을 총리 대리로서 파견할 의향이라고 서술하였음. 이에 제국정부는 타이 왕국이 완 와이타야콘이 피분 총리를 대리하게 되어도 그 지위나 책임에 있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준 이상 완 와이타야콘을 타이 왕국 대표로 출석시키기로 결정하였음.       3) 만주국 만주국 정부에 대해서는 만주국 제국대사가 10월 8일 장징후이 국무총리와의 회견을 진행하였고 여기서 장징후이 국무총리는 회의에 참석할 것 이라 밝혔음.       4) 필리핀 공화국       필리핀은 올해 10월 14일 독립을 선언하였고 제국은 당일 이를 승인하였음. 또한 사전의 연락을 통한 필리핀 제국대사와 필리핀측의 회견결과 10월 15일 본 훈령에 찬의를 표하고 회의에 참석할 것 이라 밝혔음.       5) 버마국 10월 8일 동인도 제국 대사가 바모 총리를 방문하여 제국정부의 훈령 취지를 바탕으로 대동아회의의 개최에 관한 우리들의 내의를 전달하고 회의 참가에 관한 뜻을 구하니 바모 총리는 즉시 흔연히 본회의에 참가한다 는 뜻을 회답하였음. 또한 석차에 따라서 바모 총리는 버마국이 필리핀보다 뒤에 있는 것을 보고 이러한 일본의 결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누차 석차 변경을 요구하는 등의 고충을 서술 하였음. 이에 제국 대사는 이는 본건은 여러 관계 각국이 관여된 문제로 변경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하면서 동시에 이러한 의견을 제국정부에 전달은 하겠다고 응수하였음.       (공식적으로 초대장은 10월 15일 발송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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