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전면화평으로의 길 - ⑫ 중국 청년의 새로운 책임
이번기회에 왕징웨이가 쓴 전면화평으로의 길(全面和平への路, 1941) 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조금씩 번역한 내용을 정리해 저조구락부에 올리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중국 청년의 새로운 책임 (中國靑年の新しき責任)
*사변 3주년인 쇼와 15 (1940) 년 7월 7일, 왕 주석은 사변 3주년 즈음에 이 담화를 발표하여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청년들에게 강력히 호소하여 그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분발을 촉구하였다. (중문 본문은 '對於事變三週年之感想及期望' 이라는 제목으로, 본책에서의 일어 번역문과 내용차이가 존재하나 본질적인 내용은 거의 같다.)
루거우차오 사건 발생 이전에 방지할 수 있었던 사변의 발생은, 발생의 이후에도 이 사변을 신속하게 종결시키지 못하고 3년이 헛되이 지나가며 전국은 점점 전화에 시달리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고 할 수 있다. 국제관례에 의하면 양국이 불행히도 화평을 상실하고 전쟁에 이르게 되면 화평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는 정전협정과 강화조약 뿐이게 된다. 이 경우 전승국은 항상 가혹하기 짝이 없는 조건을 전쟁패국에 가하게되고, 이렇게되면 패전국은 항상 때를 기다리다음의 보복을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일본은 의연한 결의속 이 관례를 타파하고 스스로를 전승국이라 일컫지 않으며 선진국으로서의 도리로써 동아 각국가민족이 나아가야할 길을 지시하고 각자가 자주독립의 입장에 기초하여 새롭게 친애와 화목의 관계를 건설하게 하고, 아울러 동아부흥의 책임을 지게 하고 있다. 일본은 패전의 책임을 중국에 부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본은 오히려 더 큰 책임을 중국에 부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큰 책임은 무엇인가? 이는 바로 동아를 부흥시키는 것이다. 일본은 중국에 동아부흥의 책임을 부담할 능력을 얻게하기 위해 위에서처럼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키거나 중국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일을 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일본은 바로 중국을 원조하고 독립국가로서 구비해야할 조건들을 완전히 보유하게 하려 하고 있다. 이는 역량을 증가시켜 그 발전을 촉진하여 동아 부흥의 책임을 능히 분담하는 능력을 갖추기 하게 위함이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현재 이루려 하는 화평의 회복은 절대 굴욕으로서 화평의 댓가를 치루는 것이 아니라 일조의 활발한 진취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의의는 청년일수록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청년의 정신과 신체는 모두 활발하여 진취적이기에 이 의의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전국의 청년들은 이제 모두 하나가 되어 일어나 이 동아부흥이라는 새로운 책임을 함께 지고 이를 위한 새로운 노력에 공헌해야할 시기이거늘 무엇 때문에 이러한 시기에도 주저하고 관망하려는 것인가? 가장 큰 원인은 동아부흥의 의의에 대해 아직 충분한 인식과 이해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100년의 경제침략의 해로움에 대해서는 손중산 선생이 이미 ‘민족주의’, ‘대아시아주의’, ‘중국의 존망문제’ 에서 이미 통절하게 이를 설명한 바가 있다. 중국이 만약 경제침략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중국이 영국이 영구히 식민지적 지위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국의 청년 대다수는 영미의 학풍에 미혹되어 손중산선생을 스승으로 섬기려는 것에 대해서는 구시심비(말로는 옳다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그르게 여김.) 하고 있는 것이다. 20여년전 손중산 선생의 시절에는 공산주의의 해로움을 볼 수 없었으나, 이후의 청년들은 제3인터내셔널 (코민테른을 의미하는 것)의 선전에 미혹되고 말았던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중일관계가 암흑에서 광명으로 전환되면, 청년들도 옛 열강의 경제침략과 공산주의의 해로움을 깨닫고 눈뜨게 될 것이다. 더욱이 지금 중국에는 화평에 대한 열렬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으나 그 길에 있어 의심을 갖고 있기에 형세를 관망하고 모처럼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선전에만 의지해서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힘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사실로 만들어 내어 그들에게 하나의 견본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사실과 선전은 상호 인과관계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선전을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형세를 바라보며 주저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만약 그들이 이대로 머뭇거리다가는 국가와 민족 전체가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일의 공존, 동아의 부흥이라는 아득히 먼 이상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의를 가지지 않으나 눈 앞에서 한 두가지 일의 실현이 뜻대로 되지 않기에 그만 낙심하고 심히 잘못된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데, 전면적 화평의 도래가 가능하다 할지라도, 항상 그 뜻과 같은 사실이 존재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여의치 않은 사실을 알고 조금이라도 노력을 가해야 하나, 이를 위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다. 아무리 조급하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위대한 뜻을 이룰 수 없다 생각하고 심지어 자포자기 해버리는 것은 오히려 원대한 이상에 반하는 일이고 본래의 불충분한 것이 되는 것으로, 이는 화평, 반공, 건국을 위해 싸우는 동지들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정신과 기력을 집중하고 시시각각 부족한 것을 바로잡아 용맹매진하여 화평, 반공, 건국 운동의 마지막 성공을 이뤄야 한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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