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전면화평으로의 길 - ③ 충칭 최고국방회의에 제안
이번기회에 왕징웨이가 쓴 전면화평으로의 길(全面和平への路, 1941) 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조금씩 번역한 내용을 정리해 데헷넷에 올리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충칭 최고국방회의에 제안 (重慶最高國防會議に提議す)
*항전 충칭에 대해 통전을 보내며 평화를 제안한 왕선생은, 쇼와14년 (1939년) 1월 8일, 홍콩에서 충칭의 최고국방회의에 다시 한번 평화해결을 제의했다. 이 서한에서는 난징 함락 이전부터 이미 기존에 있었던 화평문제에 대해 언급했고, 앞의 화평문제에 대한 당시 중국 측의 낌새도 처음으로 공표되었다.
1938년 12월 9일, 나는 장제스에게, 지금의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고난은 “어떻게 전쟁을 지속 시킬 것인가?”이고, 지금의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고난은 “어떻게 종결을 종식 시킬 것 인가?” 라고 한 바 있다.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 자신의 어려움을 알고 있고 동시에 상대방의 어려움도 알고 있다. 따라서 화평이라는 것은 결코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화평문제는 대외관계에서 볼때도, 우리는 영국, 미국 각국의 원조를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련의 암묵적 승인, 독일과 이탈리아의 불간섭, 특히 일본의 각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일본이 중국을 무력으로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동아에서 절대적 패권을 확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면 평화는 중국에 결국에는 찾아오게 될 것이다. 나의 이러한 견해는 당시 나와 같은 자리에 있었던 동지 제군들은 모두 함께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1938년 12월 22일, 일본정부에서 발표된 성명(제 3차 고노에성명)을 본다면, 일본이 지금까지 중국에 보여왔던 태도랑 비교해보았을 때, 반성한 바가 없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상기하건대 작년 12월 초 난징이 함락되기 직전 독일대사가 장제스를 만나 이야기한 일본 측의 조건(트라우트만 공작을 의미)은 이번의 고노에 성명처럼 명쾌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지금에 비해 훨씬 가혹했지만, 장제스는 시국을 고려하여 이 조건으로 화평을 맺는데에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이후 일본은 시일을 미루어 난징 함락후 다시 조건을 제출하였지만, 그 범위가 너무나 광대해 논의는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금의 일본은 이번의 고노에 성명에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반성하고 각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이에 마땅히 답을 하는 성명을 내고, 이를 통해 평화교섭의 기초로서 교섭에 노력하고, 이렇게 하여 구체적인 안을 취하여 상당한 문제의 해결에 도달하게 된다면,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고 동아는 안정의 국면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회는 실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 것이다.
영국과 미국으로부터의 원조는 점점 구체화되고 있지만, 이러한 원조는 우리로 하여금 평화를 강구하는데에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할 뿐 결코 전쟁의 결과에 영향을 끼쳐 군사방면으로 하여금 우리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이는 모두가 아는 바이며,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국제정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영국과 미국, 프랑스의 협력을 얻지 않고는, 소련도 중국을 돕기 위해 독립적인 행동을 취할 수 없음은 분명하고, 독일과 이탈리아도 우리가 평화의 확립에 나서게 된다면 우리와 흔쾌히 협력할 것이다. 국내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공산당과 중국의 멸망, 국민당의 붕괴를 원하는 소수를 제외하면 평화 해결에 동의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점을 심사숙고하여 중앙에 평화해결을 제의하는 것이니 동지들(충칭 최고국방회의의 인원들을 지칭)은 정성으로 이를 판단해 따로 글을 적어 장 총재에게 의견을 피력하거나 따로 의견을 피력해 이에 찬동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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