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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헷쟝

[연재] 전면화평으로의 길 - ⑬ 화평파와 항전파

이번기회에 왕징웨이가 쓴 전면화평으로의 길(全面和平への路, 1941) 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조금씩 번역한 내용을 정리해 저조구락부에 올리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화평파와 항전파 (和平派と抗戰派)

*왕 선생은 사변이 루거우차오에서 상하이로 전선이 확대된 8.13 기념일인 쇼와 15 (1940)년 8월 13일, 전면화평과 화평조건에 관한 흥미로운 담화를 발표했다. 이담화에서 화평파를 이끄는 왕 선생의 강한 신념이 돋보인다.

     

어떤 이가 나에게 “중국의 항전파와 화평파는 언제가 되어야 합칠 수 있는가? 또 전면적인 화평은 언제가 되어야 실현될 수 있는 것 인가?”라고 물은 것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을 했다. “중국에는 당파라는 것이 없고 오직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과 더불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독립과 생존을 요구하는 하나의 공동적 의견이 있을 뿐이다. 단지 공산당이 이 공동의견을 배척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라고. “그렇기에 이들 공산당은 중국인이 아니게 된지 오래이기에 당연히 중국인이라는 개념에서 제외해야한다.”고.

     

그렇다면 공동의견이란 무엇인가? 바로 좋은 화평조건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중일양국 모두에게 유익한것이고, 동아에 있어서도 유익한 화평조건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만약 이 좋은 화평조건을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중국에는 다시 ‘항전파’라는 불리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만약에 좋은 화평조건을 얻지 못한다면 이름바 ‘화평파’는 실패한 것이 되지만, 이러한 실패는 눈앞의 실패에 불과할 뿐, 영구적인 실패는 아니다. 왜냐하면 중일 양국은 서로 중일합작, 동아부흥이라는 하나의 큰 길을 향해 언젠가는 전진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전면적 화평의 실현 여부는 좋은 화평조건의 획득 여부에 달려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화평조건의 획득이 빠르면 빠를수록, 전면적인 평화의 실현도 빨리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좋은 조건을 얻을 수 있는가? 좋은 화평조건은 대체로 많은 중국인들이 함께 원하는 것이지만, 어떻게 좋은 화평조건을 획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중국인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방법은 동일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두가지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을 열거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는 단독으로 일본과 화해하면 쉽게 좋은 화평조건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해 타국을 끌어들여야 비로소 타당한 조건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러한 타산은 가장 나쁜 것이다. 우리들의 이름바 중일합작, 동아부흥은 일종의 말뿐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진실성 있는 주장이며 일종의 권모술수가 아니라, 일종의 절대성이 있는 신앙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중일 양국이 성의껏 상대방을 대하지 못하고 수단만을 동원해 외교상의 효과를 얻으려 한다면 오히려 본래의 목적에 반해 결국에는 역효과를 초래할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둘째는 일본이 전쟁을 종결시키려는 것을 서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중국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용해 전쟁을 계속 연장시켜 더욱 좋은 화평조건을 획득하자는 생각으로, 이러한 가벼운 타산은 좋지 않은 것이다.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소모가 많고 따라서 보상의 필요도 점점 커져갈 뿐으로 이는 평화조건을 나쁘게 만들면 나쁘게 만들었지 좋게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상의 두가지 생각은 천박할 뿐만아니라 가당찮은 생각이다.

     

그러나 충칭방면에서는 계속하여 이런 논조가 주창되고 있다. 이를 태연하게 여기고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하나는 좋은 화평조건이 과연 획득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이고, 하나는 좋은 화평조건이 획득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회의와 두려움의 원인은 곧 동아부흥의 의의에 대해 뚜렷한 인식을 가지지 않고 이를 일종의 말뿐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권모술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리들은 현재의 세계에서 고립주의를 선택할 수 있는 국가가 매우 적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약국뿐만 아니라 강대국도 고립되어서는 살아갈 수 없다. 본디 국가를 위해 생각한다면 무작정 다른나라와 연대관계를 맺어 이 때문에 행동의 자유를 견제받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지리, 인종과 같은 자연관계 혹은 도덕관념이나 경제조건과 같은 인위관계 속에서 2~3개의 국가가 연합하여 자신을 지키고 서로를 지키는 것은 참으로 필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일본은 선린우호와 공동방공, 경제제휴의 원칙아래 중국과 합작하여 동아의 부흥을 꾀하는 것이 전쟁을 고집하여 중국을 굴복시키는 것보다 더욱 중요함을 알게 된 것이다. 중국이 만약 이 점을 이해한다면 회의감을 가질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중국이 전폭적인 정신속에서 내가 4월 26일에 강연한 ‘나를 죄하는 정신’ (왕징웨이가 발표한 논문 제목, 이에 대해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으로 더욱 노력하고 일본에게 중국이 동아부흥의 최선의 반려자임을 깨닫게 한다면 화평조건이 결코 나빠질 리 없다. 왜냐면 소위 좋은 조건이라는 것은 중국에게만 좋을 뿐이 아니라, 일본에 있어서도, 나아가 동아에 있어서도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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