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징웨이의 대 독일 성명 (1942. 1.21)
왕징웨이는 태평양전쟁 개전이후, 일본의 동맹국인 나치독일과 이탈리아에 성명을 보냈다.
독일 국민들 여러분 , 귀국 국민들은 이번에 영미와 유대 재벌이 차지했던 세계구질서를 타도하려 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나는 이에 대해 더할 나위 없는 존경과 동정을 보내왔다. 오늘 독일 신문사의 소개로, 밝고 위대한 독일 국민들 앞에서 그 의견을 피력하게 되어 기쁘다. 내가 귀국에 대해 존경과 동정을 보내는 이유는 나와 귀국이 정치관념이 같기 때문만은 아니다.
민국 24년 (1935) 년 11월, 나는 총상을 입었지만, 독일의 의사와 의술을 통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는 내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절때로 잊을 수 없는 일이다. 민국 25 (1936) 년, 나를 돌보던 의사들은 정치 중심지 베를린을 떠나 귀국 남부의 다른 곳으로 가 요양할 것을 당부했다. 그랬기에 귀국 원수에게 경의를 표하고, 현재 외무장관인 리벤트로프를 비롯한 귀국 지도자들과 회담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따라서 대표를 보내어 대신 인사를 하고 뜻을 전하고자 한다.
귀국의 최고 명문 하이델부르크 대학에서 내게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해준 것에 대해 큰 감명을 받았다. 또한 귀국이 이번에 주중 특명전권대사로 하인리히 슈타머 선생을 파견한 것은 신중국에 대한 귀국의 관심과 양국 정부와 국민 사이의 미래관계, 그리고 국교가 돈독해질 것을 알게 하는데에 충분하게 한다. 민국 26 (1937) 년 12월, 귀국은 조정자를 자처하여 중일 양국간의 무의미한 전쟁을 종식시키려 했다. 이미 귀국은 중국의 번영과 동아의 운명에 대해 큰 관심을 가져왔다. 안타깝게 장제스가 공산당원에게 포위되어버려 귀국의 노력과 공로는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중국 국민들은 귀국 원수와 주중 대사의 후한 노력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것이다.
민국 29 (1940) 년 9월 삼국동맹조약이 체결되었고, 일본-독일-이탈리아 3국은 서로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서로가 가지는 지도적 지위를 인정했고, 유라시아 대륙의 인종 평등원칙을 수립하였다. 영미 제국주의는 이에 반대했다. 호주의 백인정책과 미국의 아시아인 배제정책이 이를 뒷받침한다. 베르사유 조약 체결 이후, 우리의 우방이자 선진국인 일본은 영미의 민족 배제,차별정책에 대해 투쟁하고 있다. 일독이 3국의 선견지명을 가진 정치가들은 세계신질서 수립을 깊게 도모하고 있다. 또한 이 신질서는 상호민족평등의 원칙에 의거하여 서방에서는 신유럽을 건설하여 앵글로색슨과 유대재벌의 쇠사슬에서 벗어나게하고, 동방에서는 신동아를 건설하여 영미의 식민주의가 아닌 정치독립, 경제제휴, 군사동맹, 문화구통에 기반을 두두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동서양 정치가들의 깊은 계략에 경의를 표하는 바다.
민국 17 (1928) 년, 중국의 수도 난징은 다시 수복되었으나, 중국은 동방에서 처음으로 공산주의에 유린당하게 되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전력을 다해 단독으로 스스로 공산당과 코민테른의 음모를 몰아내왔다. 그리고 작년에는 중일기본조약, 중일만공동선언을 체결하고, 방공협정에도 참가하게 되며 이제 공산주의와 제국주의의 가중되는 위협을 막기위해 분투하는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게 되었다. 중국과 독일, 그리고 우리의 우방들은 이제 파죽지세로 민주정치라는 가면을 쓴 이들의 군대를 타파할것이다. 우리의 세계신질서는 인종평등, 정치독립, 상호협력 등의 원칙에 기초하여 건설될 것이며, 우리들의 이익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