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모군의 편지에 답하다 (覆華僑某君書 / 1939.3.30)
최종 수정일: 2024년 8월 13일
본 자료는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자료를 번역한 자료입니다.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표지. 이 책은 왕징웨이의 여러 발언 및 글을 정리한 책이다. 왕징웨이 정권의 중앙보도국 중앙전신사 (中央電訊社) 에서 출판되었다.
화교 모군의 편지에 답하다
(覆華僑某君書)
모 군(某 君)! 그대가 3월 14일 보낸 편지를 받아보고 나는 매우 감동했다! 그대는 내가 가진 대의를 매우 믿고 있으나, 이를 위한 나의 결정에 대해서는 아직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그대의 믿음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만큼, 그대가 가지고 있는 의구심을 해소 할 수 있도록 이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 하고자 한다.
만약 일본이 중국을 멸망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싸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화평의 조건을 이미 내걸었고, 그 조건이 망국의 조건이라고 할 수 없다면 어째서 화평을 이야기할 수 없는가? 우리의 오랜 친구 천자겅 선생은 “화평을 이야기 하는 것은 한간” 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왜 화평을 말하는 것이 한간인가? 헌법에서는 국가의 강화의 대권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럼 국가는 한간 행위를 할 대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충효인애신의화평(忠孝仁愛信義和平)’ (쑨원이 삼민주의의 민족주의에서 제창한 8가지의 덕, 이름바 팔덕(八德) 으로, 중화민국에서 미덕으로 여겨지며 여러 관공서의 현판에 사용되었다.) 의 현판 글자를 ‘충효인애신의한간(忠孝仁愛信義漢奸)’으로 바꿔야 하는가? 이러한 말들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제부터 그대가 의심하는 것들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대는 내게 “유럽이 곧 싸우게 될 것인데, 우리가 이렇게까지 고생을 할 필요가 있는가?” 라고 하였다. 하지만 유럽의 국면은 전쟁준비와 전쟁회피라는 두 개의 저울이 여전히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고 유럽 정부 당국도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데, 그대는 이를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또 하나, 영국과 프랑스는 모두 유럽전쟁에 급급하고, 미국도 마찬가지로 중일전쟁보다 유럽전쟁을 더욱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그렇기에 유럽전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중일전쟁에 대한 각국의 관심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대는 유럽전쟁이 터져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건가?
그리고 최근의 전쟁은 당사자들끼리 속전속결을 꾀하지만, 여러 사정이 겹치게 되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유럽의 전쟁이 속전속결로 끝난다 치자, 어느쪽이 승리할지 그대는 어떻게 단정지을 수 있는가? 게다가 그대가 생각한 쪽이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지금의 국제관계는 복잡하여 국가간의 이해충돌이 이렇게 변덕스럽고 불안정한데, 어떻게 유럽전쟁에서의 승리가 우리 중국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
어떤 이들은 유럽전쟁이 일어나면 반드시 영불러와 독일이 대결하게 될것이며, 미국이 영불러 쪽에 가담하게 될 것이 분명하고, 독일은 전쟁에서 반드시 패배할 것이며, 영미불러가 전쟁에서 이기면 군대를 일본에 보낼 것이기에 일본은 반드시 굴복하고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막연한 낙관론을 꺼내고 있다. 이러한 막연한 낙관론을 꺼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항전을 계속하기 위한 책략인가?
그대는 또한 내게 “지금 항전의 상황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라고 하였다. 그대는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항일전쟁이 시작된 이래 인민은 힘을 다해 한마디 불평없이 견뎌왔고, 장병들은 용감하게 희생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중화민국의 원기이자 중화민국의 생존과 독립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 일본이 화평조건을 내민 것도 이를 통해 중국을 멸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화평운동이 성공한다면 그 공은 모두 항전 민중과 장병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전의 힘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를 과대평가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과대평가하게 되면 이미 발휘되고 있는 힘을 헛되이 낭비하게 되어 얻을 수 있는 효과를 헛되이 잃게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지금 항전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 어떻게 나날이 좋아진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항전 이후 잃어버린 곳이 얼마나 많고 그 시간이 짧아서 송나라의 멸망에서도, 명나라의 멸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 송나라와 명나라는 망하려 할 때 조정은 자신의 죄를 뉘우쳤고, 잘못된 장수들은 파면하고 벌해왔다. 지금은 어떠한가?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한 감찰위원이 “땅을 잃고도 백성들의 슬픔을 듣지 않으니, 군사를 모두 잃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자 그는 바로 파면되었다. 그리고 그뒤로 조정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정부는 많은 중요한 도시들을 잃으면서 “거점을 옮긴다”,“전략을 변경하는 것이다”,“이미 전략상으로 가치가 없는 곳이다”, “이미 적에게 타격을 주었고 전략적 목적이 이미 달성되어 이곳을 지킬 필요가 없다” 와 같은 말을 하면서, 하나도 괴로워보이는 얼굴을 하지 않았다. 나의 이런 말을 듣고 나면 자연스럽게 항전이 나날이 개선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송나라와 명나라가 망하려 할 때 조정은 싸우고 (戰) 지킨다 (守) 라는 두 글자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는 불행히도 전쟁에서 져 어쩔 수 없이 이를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조정은 두 글자를 바꾼 듯하다. 하나는 잃어버리다 (丟), 하나는 태우다 (燒) 로 말이다. ‘진지를 옮긴다’ 와 같은 말은 ‘잃어버리다’ 를 상징하는 문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태우다’ 를 상징하는 문장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광저우는 가장 이를 잘 설명하는 사례일 것이며, 창사는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잃어버리는 것’과 ‘태우는 것’이 점점 커지고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땅을 잃어버린 것은 모두 이 두 글자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의 이 두 글자와 공산당의 소위 유격전이 합쳐지며 잃어버리고 불타지 않은 지역도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대도 역사를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공산당이 말하는 유격전은 도적떼의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인민은 벼, 유격대는 메뚜기와 같다. 가는 곳마다 태워버리지 않는 곳이 없다. 예전 사람들은 도적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놀라곤 했는데, 지금 공산당은 똑같은 단어에 문맥을 붙여 항전의 비결로 여기게끔 하고 있다. 그들의 문장은 미사여구일 뿐으로, 사실과는 다르다. 그대가 해외에서 본 것은 이러한 ‘문장’이다. 문장에서는 이렇게 끝까지 항전할 수 있는 비결이 있으니 자연스레 항전의 상황이 나날이 좋아진다고 이야기 하지만, 실제 내륙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이전부터 민중은 군사력의 일부라고 하였고 지금도 정규군을 도울 수 있는 수많은 민중이 있는데 이들이 공산당의 유격전에 휘둘리고 있으니 그 고통이 어떠하겠는가? 이것이 그대가 아는 바인가?
작년 11월, 나는 충칭에서 ‘전면전쟁’ 과 같은 글을 몇편 발표 한적 있는데, 공산당은 한 글자 한 글자 욕을 퍼부었다. 그대는 이러한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한마디로, 항전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고 이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항전이 나날이 어려워지는 것을 알고 항전을 지속할 수 밖에 없다면, 항전 기간동안 드러난 결점을 뼈아프게 고쳐나가야 한다. 당국이 국민을 속이는 것을 막아내야 하고, 공산당이 이틈을 타 국민들을 겁탈하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 이를 고치지 않는 것은 질병이 있는데도 숨기지 않고 치료를 기피하는 것과 같으며, 병을 더욱 악화시켜 화근을 남기는 것에 불과하다. 만약 항전이 이대로 가게 된다면, 항전의 승리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고 항전 외의 화평의 길이 있다면, 그 화평의 조건이 망국의 조건이 아니라면 우리는 항전의 결의와 용기를 가지고 화평을 해야 한다. 항전 이래 이미 발휘된 힘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고, 얻을 수 있는 결과를 헛되이 보내선 안된다. 전쟁에서 화평이라는 글자는 보통 사람들이 듣기 싫어 한다. 화평의 결과는 정복의 결과가 아니기에 빠르고 쉽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반 민중들은 일본의 침략을 싫어하고 일본을 완전히 멸망시켜야만 통쾌함을 느낀다. 그리고 화평이라는 이야기에는 자연스레 불편함을 느낀다. 일반인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나, 정부가 나서서 일반인들이 이런 생각과 말을 하게 해선 안된다. 정부는 일반 민중들에게 적들에 대한 인식을 고무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부는 스스로 자신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반인들이 아무리 주장하더라도 정부는 현실을 파악하여야한다.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한다면 싸우고, 화평할 수 있다면 화평해야 하며 시시각각 나라가 살 길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정부는 일반인들보다 더 강렬히 주장을 하고 있고 이를 위해 날마다 양심을 속이고 허풍을 떨고 있는데 일반 민중들이 무슨 고생을 하려 이를 지지하고 협력하려 하겠는가?
하물며 정부 내에서 바른 소리를 하려 해도 입만 열면 한간이라 손가락질 받는 지금, 누가 바른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일반적인 사람의 시선에서 생각해보아도 그렇다. 다같이 망할 판국이라는 걸 알지만 이 사실을 말하는 순간 한간의 악명을 혼자 떠맡아야 한다니, 이게 무슨 고생인가? 이 때문에 말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감히 말하지 못한다. 이것이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이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이유이자 망국의 원인이다.
그대는 내가 충칭에 있을때의 처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집 한 채를 통째로 세를 놓았고, 똑똑한 수십 명의 경비원이 있기에 나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다. 적기가 다가오면 나는 지하실로 들어가면 되었다. 충칭이 난징과 우한처럼 된다 할지라도 나는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나는 중국국민당의 부총재이자 국방최고회의의 부주석으로, 최고 권력자는 아니었다. 따라서 내 말을 들어준다면 다행인 것이고, 내 말을 듣지 않아도 죄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나라가 불행이 닥치고 대붕괴가 찾아왔을 때 “명분이 정당하면 말도 이치에 맞는다” 라 생각하며 이를 수습하려 했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나는 나라를 위해 죽은 것이 될 것이었며 평생을 편안히 살다 죽은 뒤에도 영명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대가 나 대신 생각해보라, 이러한 상황에 있는데 어떻게 충칭을 떠날 수 있었겠는가? 그대도 알다 싶이, 나는 20대에 혁명에 뛰어든 이래로 나 자신을 위한 계획을 한 적이 없다. 하물며 지금은 이미 50대가 넘었다. 하지만 나라가 망하는 것을 눈앞에 두고도 나 자신을 위해 생각할 한가한 마음이 있었겠는가? 나는 항전이 시작된 이래 중국이 어쩔수 없이 항전하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항전을 어떻게 해야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에 생각하며 동시에 어떻게 해야 화평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항상 생각해왔다. 나는 회의에서 화평을 구해야 함을 몇 번을 이야기 했는지 모른다. 광저우를 잃고, 창사가 불탄 이후에 내 의견은 더욱 단호해지고 실현되기를 기대해왔다.
나는 작년 12월 9일 격렬한 토론 끝에 나의 의견이 회의에서 채택될 가망이 없음을 알고 18일에 충칭을 떠났으며, 이 의견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충칭의 모든 사람들이 반성할 것을 것을 촉구해왔다. 내가 이때 설마 이후에 처하게 될 어려움과 위험을 몰랐겠는가? 만약 항전을 계속한다면, 우리 화평의 주장은 물과 불처럼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비록 결말이 화평으로 끝나게 된다고 할지라도 우리 화평의 동기에 대해 분명 적지 않은 악의나 사적인 추측을 가할 것이며, 그 중심에 있는 내가 어찌 화를 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대도 알겠지만, 나는 이러한 어려움과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염전을 발표한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직 단 한번의 문답을 했을 뿐이다. 이 문답을 남화일보 (南華日報) 에 실은 후 그 외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충칭의 반성을 기다리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충칭에서 온 이들에게 나는 충칭이 나의 주장을 받아드리면 나는 개인적으로 언제든 재야의 자격으로 옆에서 협조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정중하게 이야기했다. 그대는 생각해보라, 내가 이것 외에 내 뜻을 표명할 방법이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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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이야기는 나 개인의 이야기로, 본래는 말할 필요는 없었으나, 그대의 편지에 은근 생각이 들어 몇 마디 덧붙혔다. 이제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다시 이야기 하자면, 나의 견해는 객관적인 조건으로 보아도, 양국은 서로 화평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며, 주관적인 조건으로 보아도 양국 당국은 모두 화평의 요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주장이 아예 채택되지 않는 것을 걱정하기 보다, 그 주장이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닌 중일 양국 간의 원한 때문에 제대로 채택되지 못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항전이 시작된 이래 이러저러한 원한은 날로 깊어져 원한을 풀고 마음을 열고 협력하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불과 20개월간의 교전을 통해 중국인은 물론 일본인도 중국을 함부로 침탈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고, 이에 양국 정부와 인민은 장병들의 피를 헛되이 흘리지 않고 인민들의 고통과 그 대가가 헛되이 희생되지 않게 할 비교적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나는 작년 12월 22일의 고노에 성명과 29일 발표된 나의 염전은 모두 이 점에 착안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가엾은 충칭은 고노에 성명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나의 건의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욕설만 낭자할 뿐, 하나도 이성적인 말투를 볼 수 없었다. 이들은 최근까지도 화평을 희망하는 표현을 보였지만, 그 진행방식은 여전히 만주사변 이후 반복되었던, 직접적인 협상을 기피하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그들이 양국의 미래에 대해 비교적인 장기적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이것이다. 그들이 깨닫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야 말로 실로 국가의 복이다.
이상 말한 것은 모두 그대의 편지에 대한 답으로 발송한 것으로, 3월 21일 이후 나는 “예를 하나 들다 (舉一個例)” 라는 글을 쓴 바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자세히 다루지 않고 여기에 함께 첨부한다.
( '예를 하나들다' 는 여기를 클릭 : )
이에 나날이 생활이 평안하길 바란다. 왕자오밍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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