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서후 (艷電書後 / 1939.12.29)
본 자료는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자료를 번역한 자료입니다.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표지. 이 책은 왕징웨이의 여러 발언 및 글을 정리한 책이다. 왕징웨이 정권의 중앙보도국 중앙전신사 (中央電訊社) 에서 출판되었다.
염전서후
(艷電書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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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오늘, 나는 염전을 발표했고 오늘로 꼭 1년이 되었다. 나는 작년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염전을 다시 읽어보았다. 염전의 중점은 마지막 몇마디에 있다.
”중일 양국의 근린관계에 비추어 볼 때, 중국과 일본의 선린과 우호관계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필수적인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난 지금의 상태는 철저히 재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일본과 중국 이 함께 이에 대한 상호 책임을 규명해야한다. “
중일양국은 수십년간 분쟁을 겪어왔고, 오늘날의 전쟁에 이르게 되었다. 만약 전쟁의 원인이 한편에서는 일본 침략주의에 의한것이고, 한편에서는 중국의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에 의한것이라 한다면, 이는 전쟁의 원인이 불분명 해지는 것이고, 이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하는 것이고, 차후의 방안에 대해서는 더더욱 이야기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중일 양국이 그 이유를 깊히 생각하여, 각자의 책임을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러한 분쟁과 전쟁상태가 ‘동아의 행복’ 과 ‘태평양의 안전과 질서’ 그리고 ‘세계의 평화보장’에 모두 해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과거의 악감정을 해소하고 ‘동아의 행복’ 과 ‘태평양의 안전과 질서’그리고 ‘세계의 평화보장’를 향해 함께 노력하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 말로 중일 양국이 선택해야할 백년의 대계다. 화평운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점에 대해 깊이 인식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평운동을 할 수 없다.
화평운동의 의의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바를 참고하고, 지난 1년간 중일 양측의 여론에 대해 살펴보자.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중일관계를 재검토하여 확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고노에 성명 이후 전국의 여론은 더욱 일치되고 있다. 동아협동체란, 그 정의와 방법이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고노에 성명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일본은 중국이 동아신질서 건설의 임무를 분담하기를 바란다 “ 라고 밝힌 것처럼, 중국은 능력이 있어야만 그 임무를 분담할 수 있기에, 일본은 중국의 주권을 존중하고 독립을 지원하여 그 임무를 분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한다라는 기본적 의미는 일본정부의 성명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잡지나 신문에서 이에 대해 여러 표현을 사용하지만 대체로 일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 여론이 이렇게 된 것은 화평운동의 큰 진전이다. 중국측에서는 일부에서 끝까지 항전하여 최후의 승리를 얻어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거짓으로, 이는 압력에 의해 어쩔수 없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압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진실된 여론이 나왔다. 이들은 손중산 선생의 대아시아주의 정신의 진면목을 근본적으로 보아 중국은 반드시 일본과 손을 잡아야만 내적으론 중화민국의 건설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고, 외적으론 동아의 보장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화평운동의 큰진전이 아닐 수 없다. 이상의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화평운동의 이론이 이미 성숙되었다고 열렬하게 믿는다. 화평운동의 성공은 필연적으로 오게 될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화평원칙을 어떻게 구체화 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화평안은 어떻게 완성될 것인가? 이러한 문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신감과 상호신뢰의 각오로 충분히 용기를 내어 진행한다면 모든 어려움을 뚫고 모든 가시밭길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끝까지 항전하여 승리를 쟁취하자는 제군들에게 할 말이 몇마디 있다. 제군들의 이런 말은 솔찍하지 않고, 최후의 승리는 막막하다는 것은 제군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먼저 국제정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제군들은 예전에 전선론의 말을 믿고, 반침략연합전선은 필연적으로 결전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결전하면 반침략연합전선은 필연적으로 승리하고, 승리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중국을 돕고 일본을 막게되는 것이라 생각하여 중국이 끝까지 항전하기만 하면 최후에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믿고 있다.
이런 막연한 논거는 우리는 일년 전에 이를 몇 번이나 반박했는지 모른다. 유럽전쟁이 발생할 것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사실로 증명되었으니, 더 이상 우리는 이에 반박팔 필요가 없다. 제군들에게 반침략연합전선의 지도자로 여겨졌던 소련은 이미 제군들에게 침략 전선의 지도자로 여겨졌던 독일과 연합하여 폴란드를 협공하였고, 소련은 핀란드를 향해 진격하였다. 제군들이 가정한 침략전선 대 반침략전선이라는 개념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서 공허해진 것이다. 이때 유럽의 교전국들은 모두 자신을 위하고 다른 국가를 돕지 않았다. 유럽의 교전국들과 관련해 중일전쟁은, 일본이 유럽전쟁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달려있다. 만약 일본이 자신들 (유럽의 교전국들) 에게로 기운다면, 이들은 당연히 일찌감치 화해를 하여 일본이 자신들의의 적을 물리칠 수 있게 전력을 다해 도울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아직 결정짓지 못하거나 한다면? 중일의 병사들이 연달아 싸우게 하고 일본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 자신들의 적 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속셈은 분명하다. 본래 각자 나라를 위한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제군들이 이야기하는 ‘원조’라는 것은 또 허무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지금 유럽전쟁에서는 누가 이기게 될 것인가? 장래의 패자는 누구인가? 지금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확실하다 할 수 있는가? 양측의 군사력, 해군력, 잠수함 능력, 공군력, 경제력에 대해 논하는 것, 어떤 방면이 오래갈 수 있을 것이고 어떤 방면이 오래갈 수 없을 것인가에 논하는 건 가능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순 없다.
예를 들어 1차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독일 혁명은 역사적 추세로 미루어 그 가능성을 단정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언제 발생하는지, 그것이 반드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군들이 가정한 승자는 막막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제군들의 가정대로 장래의 승자가 제군들이 바람대로 된다 한들, 과연 그들이 중국을 원조할 것이라 단언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원조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는가? 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이뤄진 파리강화회의에서 우리 중국은 얼마나 실망했던가? 워싱턴회의와 그 속에서 만들어진 체제는 만주사변 문제 해결에 어떠한 해결을 했는가? 중국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제군들이 가정한 원조라는 것 또한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제군들은 항전을 통해 최후승리를 하고, 이후 국제원조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막연한 생각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제군들은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러한 모습이 과연 나라를 충실하게 도모하는 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는가?
국내 정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일년동안 또 얼마나 많은 사단을 잃었고 얼마나 많은 땅을 잃었던가? 물론 이는 슬퍼해야할 일이지만, 가장 슬픈 일은 작은 승리를 과장하여 대패를 감추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작은 승리는 결정적인 승리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를 장황하게 과장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물며 이러한 행동이 인민을 속이기 위한 것에 있다면, 이러한 마음은 더더욱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대규모 반격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고, 초토전, 게릴라전은 효과적이긴 커녕 소란을 피울 뿐이다. 그대들은 이러한 전략이 효과는 적고 소모하는 것이 많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국력은 백성의 힘에서 비롯되고 백성의 힘은 소진되면 국력도 함께 소진된다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백성과 국력을 소진하는 이러한 방법이 어떻게 끝까지 항전하는 전법인가? 이런 전략속에선 최후의 승리는 불가능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제군들 중 일부는 심지어 민족자살정책을 가지고 있으며, 나라가 망할 것이라 확신하면 차라리 동귀어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라의 상태가 만약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도 제군도 죽기보다는 나라를 구하는 것을 우선시 해야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오늘 구국을 위해 죽어야하지, 순국만을 위해 죽어선 안된다!
위의 국내외 정세는 내가 염전에서도 지적한 바로, 이는 오늘에 이르러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중국은 이제 화평 이외의 길은 존재하지 않고, 화평원칙이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화평안이 어떻게 완성될 것인지의 문제만을 가지는 것이다. 나는 많은 이들이 화평은 원하지만 화평원칙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화평안은 완성될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의 사람 중에는, 화평의 원칙이 실현되고 화평안이 완성된다면 그때 와서 화평에 찬성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전국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신해혁명 이전에는, 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때서야 혁명에 찬성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제서야 혁명에 한성한 이들 중 10명 중 9명은 혁명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기에 지금의, 화평이 성공할 때까지 기다린 후에 화평에 찬성해도 늦지않다고 주장하는 이는 화평을 방해하려는 파양자로 예단할 수 있다. 어째서인가? 이는 혁명에 비해 화평이 가지는 중대성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신해혁명은 국내 개혁일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화평운동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국과 일본이 반드시 손을 잡은 상태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일본과 손을 잡아야만 내부적으로는 중화민국의 건설 완성을, 외부적으로는 동아보장의 책임을 질 수 있다. 이는 신해혁명보다 더 큰 대업인 것이다.
우리는 화평만이 필요하고 가능하다 인정한 이상,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앞으로 분투해 나가야한다. 비록 잠시 넘어지거나 실패하더라도, 오늘의 실패와 실수는 미래의 성공을 위한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이는 나에게 ”당신은 구체적인 화평조건을 얻어야만 화평운동을 할 수 있다“ 라고 이야기한다. 이 말은 반만 맞는 말이다. 왜냐면 구체적인 화평조건은 정말로 필요한 것이나, 구체적인 화평조건을 얻는 것은 그 전제로 화평운동을 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평조건을 얻은 후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화평운동은 필요한 것이다. 특정한 화평조건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나는 화평운동이 용감하게 전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만약 이것이 성공한다면 이는 국가의 축복이 될 것이다. 이는 순간순간 실패를 겪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미래의 화평을 위한 씨앗을 남기는 일이 된다. 왜냐면 중일양국은 공존공영하기 위해서는 결국엔 이길을 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야기한다. ”항전을 위해 죽으면 민족적 영웅으로 여겨질 것이고, 화평을 위해 죽으면 악명만 남게 될 것“ 이라고. 이는 참으로 한가로운 소리라 할 것이다. 루거우차오 사건 이후 몇천몇백만 동포들의 시체가 이곳에 쌓여있는 이 현실을 보라,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도 한가하게 자신을 위한 생각만 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나는 옛 일을 기억한다. 내가 경수년 3월 (왕징웨이가 순친왕 재풍(載灃)을 암살하려 했던 1910년 3월을 의미한다.), 베이징에서 체포되었을 때, 경찰은 내몸에서 ‘혁명의 결심’ 이라는 글을 찾았고, 이에 대해 내게 ”이런 글을 가지고 뭘 하려 하느냐? “ 라고 물었다. 이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글은 이전에는 잉크로 썼는데 이제는 피로 쓰고 싶을 뿐입니다. “ 라고 .
나는 오늘 나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충칭을 떠난 쩡중밍 동지와 나에게 먼저 충칭을 떠나라고 이야기한 선쑹(沈崧) 동지가 생각난다. 앞서 떠나간 동지들을 생각하니 아직도 인간세상에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앞으로 나의 남은 열정을 모두 화평운동에 공헌할 것을 맹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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