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축함 하이스이 (海绥)
구축함 하이스이의 일생, 48년 퇴역전까지 주인이 6번이나 바뀌는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청은 이미 이전부터 하이륭급 (海龍級)의 구축함 4척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이 의화단 운동에서 서양열강의 연합국에게 패배하면서 이 하이륭급 구축함 4척은 대영제국, 러시아제국, 독일제국, 프랑스에게 나포, 그들의 해군에 편입되어 잃게 되면서 청 정부는 1909년 새로운 구축함을 갖추기 위한 계획에 나서게 되었다. 청 정부는 새로운 구축함의 급명을 창펑급 (長風級) 이라 정하고 독일제국의 시하우-베르케 조선소에 390톤급의 구축함 3척을 주문하게 된다. (본래 1척을 계획했으나 1911년 2척이 추가되었다. ) 그리고 이야기해볼 2번함인 푸보(伏波)를 비롯해 1번함에는 창펑(長風), 3번함에는 페이운(飛雲) 라는 이름을 붙혔다.
하지만 이 창펑급 구축함 3척은 모두 청나라가 신해혁명으로 멸망한 뒤에 중국으로 인도되었다. (1번함이었던 창펑은 청 멸망이전에 완성되었으나, 인도가 늦어져 인도가 이루어진 것은 중화민국 수립이후였다.) 그렇기에 청을 이은 중화민국 북양정부가 이들을 그대로 인수하여 그대로 운용하게 되었다. 푸보를 포함한 창펑급 구축함 3척은 1912년 11월 7일 정식으로 중화민국 해군에 편입되었는데, 편입 당시에는 푸보를 비롯한 3척의 구축함 모두 청대 계획되었던 이름을 유지하려 했으나 당시 같은 이름의 배들이 존재해 중복되어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3척의 구축함 모두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오늘 이야기할 2번함 푸보는 지엔캉 (建康,건강) 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배 이야기를 시작하기전에 배의 사진이야기부터 하고 시작을 하고싶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데, 중문판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여러 인터넷 자료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진을 푸보의 사진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中國新海軍插圖 (중국신해군삽도) 의 자료로서 푸보를 묘사했다는 사진, 인터넷상에서는 이 사진이 유일하게 푸보를 비롯한 창펑급 구축함의 유일한 사진 자료인데, 필자는 이사진에는 의문을 표하고 싶다. 이는 중국신해군삽도가 1948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것, 또한 이시대에 이미 푸보는 지엔캉(建康)이라는 이름을 되찾은 이후라는것, 또한 동시대에 실제 푸보라는 배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푸보의 사진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청나라 말기의 창펑급 구축함 2번함 푸보가 아닌, 2차대전 승전이후 중화민국에 편입된 푸보라는 배의 사진일 가능성이 높다라는 것이다.
1947년 중화미국 해군에게 인도된 영국해군의 H.M.S.Petunia. 그리고 이배는 중화민국 해군에 인도된뒤 푸보(伏波) 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연돌을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위의 사진과 유사점이 발견된다.
이러한 점 때문의 중문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인터넷 상에서 푸보(창펑급 구축함 2번함의) 의 사진으로 알려진 사진은 이 1947년의 푸보의 사진이 잘못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다음 사진을 보자.
1929년 촬영된 창펑급 구축함 3번함 퉁안(同安) 의 모습. 위의 두 사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모습이 실제 푸보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이 사진이 오히려 푸보의 모습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작하기 전에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시작하고 싶었다.
아무튼, 1912년 지엔캉(建康) 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푸보는 계속하여 중화민국 해군에서 활동하게 된다. 쑨원의 호법정부가 탄생하면서 북양정부가 분열된 시점에서 지엔캉은 쑨원의 호법정부가 아닌 북양정부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국민당의 북벌의 과정에서 지엔캉은 북양정부에서 탈출하여 국민정부의 국민혁명군에 합류했다. 이후에는 구축함의 역할보다는 어뢰를 주로 사용하는 어뢰유격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미 이 시점에서 지엔캉을 비롯한 창펑급 구축함들은 이미 노후화 되어 구식으로 취급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지엔캉 역시 일본과의 교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앞에서 다루었듯 이미 이전부터 지엔캉을 비롯한 창펑급 구축함은 크기도 작고 속도도 20노트밖에 나오지 않는 구식함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1937년 9월 25일, 지엔캉은 장인전투에 참가했다. 1번함이었던 창펑은 1932년 이미 사고로 침몰했고, 3번함이었던 퉁안은 중일전쟁 발발당시 칭다오에 있었기에 지엔캉 만이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다. 장인전투에서 지엔캉은 일본 항공기의 폭격으로 침몰하고 있는 순양함 이셴( 逸仙) 에 접근하여 이셴의 승무원들을 구조했다. 하지만 구조를 하고 돌아가는 과정에서 지엔캉 역시 일본 항공기의 폭격을 받게 되었다. 지엔캉은 대공포조차 없는 구식 함선이었기에 가지고 있던 75mm 함포를 고각으로 사격하고 함 내에 구비되어있던 소총들까지 동원하여 일본 항공기에 대공사격을 가했지만, 안타깝게도 일본항공기의 공격으로 4발의 폭탄과 기총사격으로 침수되어 장강에 좌초되었다.
장인에서 일본 항공모함 카가(加賀) 의 공격을 받고 좌초된 중화민국 해군의 순양함 이셴 (逸仙). 지엔캉은 이셴의 승무원을 구조하고 돌아가는 과정에서 일본 항공기의 공격으로 침수되어 좌초되었다.
이후 1938년, 일본은 수리함 아사히(朝日) 를 이용해 좌초된 지엔캉을 다시 인양하여 수리한다음1938년 7월 13일 수리를 끝내고 翆(야마세미) 라는 이름으로 일본해군에 편입시켰다. 하지만 1년이 지난 1939년 12월 21일, 일본은 이 야마세미를 다시 유신정부측에게 제공하였다. 유신정부에서는 이배의 이름을 일본의 협조로 (協助) 바다를 (海) 평정한다 (绥靖) 라는 이유로 하이스이(海绥) 라는 이름을 붙혀 사용했다. 그리고 하이스이는 왕징웨이 정권이 수립되면서 이름을 유지한 채 그대로 다른 군함들과 함께 왕징웨이 정권의 해군에 편입되었다.
1940년 3월 30일, 왕징웨이 정권의 수립일이자, 중화민국정부가 난징으로 환도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수도환도식전에 참가하게 된다.
3월 30일 오전 9시, 식전의 시작과 함께 폭죽 3발이 터지자, 하이스이는 환도식전이 열리는
난징 국민대회당 근처의 장강에서 정박하면서 축포를 21발 발포 했다. ( 일반적으로 국가원수를 대우할 때 21발을 발포한다. 국가원수였던 왕징웨이를 예우하기 위한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 21발의 축포가 발사됨과 동시에, 식전 행사장에서는 군악대의 연주속에 왕징웨이 정권의 새로운 깃발인 '화평건국청천백일만지홍기' 를 게양하는 행사가 시작되었다. 국기게양식 이후에는 왕징웨이의 환도선언이 발표되면서 정식으로 왕징웨이의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는 수립되었다. 즉, 하이스이는 왕징웨이정권의 시작을 끊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이스이는 이후 왕징웨이정권의 해군에서 몇 되지 않는 군함으로 활동하며 난징에 배치되어서 양쯔강 중하류를 경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또한 위의 사진이자 중일전쟁당시 칭다오에 있던 3번함 퉁안도 좌초되었다가 일본에 노획되었다가 퉁춘(同春)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왕징웨이 정권의 해군에게 제공되었다. 결과적으로 창펑급 구축함 모두 왕징웨이 정권에게 제공된 것이다. 하지만 퉁춘은 왕징웨이 정권의 말기였던 1944년 11월 정도길(鄭道吉) 가 이끄는 항일 게릴라에 의해 파괴되면서 태평양전쟁이 끝나는 시점에서 살아남은 창펑급 구축함은 하이스이만이 남게 되었다.
이후 하이스이는 다시 중화민국 국민정부에게 반환되고 이전 국민정부시절의 이름 지엔캉(建康) 이라는 이름도 되찾았지만, 이시점에서 지엔캉은 너무나도 노후화가 된 함선이었다. 무장도, 엔진도 너무나 노후화 되었고 작점범위도 좁은 지엔캉은 결국 1947년 7월 퇴역하였다.
청나라의 구축함으로 설계되었으나 청나라를 겪지못하고, 일본을 막으려 했으나 오히려 일본에 노획되어 본래의 이름도 잃은 채 괴뢰의 해군으로 활동하며 괴뢰정권의 시작을 알리고, 승리 이후 본래 이름을 되찾았으나 이미 너무나도 노후화되어버려 결국은 사라져야 했던 안타까운 함생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출처]
중문판 위키피디아 伏波號驅逐艦, 長風級驅逐艦, 飛雲號驅逐艦 항목 (https://zh.wikipedia.org/zh-tw/%E4%BC%8F%E6%B3%A2%E8%99%9F%E9%A9%85%E9%80%90%E8%89%A6)
2대 푸보호 정보 : http://homepage.ntu.edu.tw/~yingshao/de0fupo.htm
2대 푸보호의 원본함 H.M.S.Petunia의 사진 : https://leithbuiltships.blogspot.com/2010/05/hms-petuni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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