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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헷쟝

대한민국 임시정부시기 잡지 한민 (韓民) 의 왕징웨이 관련 기록 (1940)

최종 수정일: 2024년 9월 28일



잡지 한민(韓民) 의 표지.
잡지 한민(韓民) 의 표지. 는 1940년 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당이었던 한국국민당 선전부의 엄항섭(嚴恒燮)이 편집 겸 발행인이 되어 중국서 발간한 월간종합지로,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민중이 본 잡지에 참가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곤 하였다.


역적 왕징웨이 괴뢰조직의 죄상
석촌 (石村)

- 한민 (韓民) 제1기 제2호 


역적 왕징웨이 의 괴뢰조직은 지난달 30일 난징에서 왜적의 연출로 그 막을 올렸다. 이 천고의 추한 연극은 가물거리는 적의 ‘마지막 방패’임을 폭로하고 온 천하에 알려진 역적 왕징웨이의 죄상이 산송장의 짓에 지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니, 우리들이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역적 왕징웨이가 일본과 내통하여 염전(艶電, 여기를 참조)을 발표한 때는 이미 민족과 국가와는 절교한 것이다. 그는 황제(黃帝)의 자손이라 할 수가 없다! 세상의 온갖 멸시를 당함이 마땅하다.


이 반역행위의 출현을 장(蔣)위원장은 “일왕밀약(日汪密約, 1939년 12월 30일 체결된 일지신관계조정요강을 의미한다. 여기를 참조) 을 전국 군민(軍民)에게 알리는 글”에 명료하게 지적했다. “나는 몇개월 전 앞잡이 조직이 조만간 출현하리라 생각했다”고 한 것이다. 이에 나는 통분한 나머지 비분에 떠는 열정으로 전심전력 적의 악랄한 정치음모를 분쇄하고 반역자의 소굴을 소탕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할 일이 있다. 냉정한 이성으로, 적이 왜 왕정위를 끌어들였겠는가? 왕징웨이의 괴뢰조직이 항전에 영향이 있는지 없는지를 연구한 이후에 비로소 정확하게 노력방향을 잡아야 하겠다.


왕징웨이의 무능함을 우리뿐만 아니라 적도 명백히 알고 있다. 적의 대변인실이 최근 발표한 바에 의하면 그들 역시 ‘왕정권(汪政權)’이 질서정연한 중앙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지 또한 4년에 걸치는 전쟁을 종결지을 수 있을지 실제로 이 시국을 수습할 능력이 있는가에는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적은 이미 왕징웨이의 괴뢰조직이 전쟁을 종결짓지 못하리라고 알고 있다. 그러면 일본은 공연히 골치거리를 하나 더 끌어들인 것인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인가? 왕징웨이가 말하는 평등호혜(平等互惠)·화평반공(和平反共)은 정말 필요한 것인가? 절대로 아니다. 적은 원래 기질이 교활하고 악랄하다. “강산은 변해도 본성은 변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들이 망하기 전에는 결코 자기들의 죄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제 적이 연출하는 꼭둑각시 연극을 볼 것 같으면 3가지 음모가 숨어 있다.


1. 자국민을 기만함


적이 그들 국민에게 한 거짓선전을 보자. “중국은 비옥한 땅과 광물이 무한정하다. 하지만 국방력이 미약하고 민족의식이 저하되어 중국을 정복하기만 하면 일본의 난국은 자연히 해결되는 것이다. 아무리 사용하고 아무리 취해도 바닥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3개사단의 병력 정도로 3개월이면 중국을 정복할 수 있다”라고 하여 민중의 침략심리를 조성했다. 루거우차오 이래 적은 많은 병력과 경비를 투입해서 연안 부근을 점령했다. 그러나 우리의 장기항전은 적을 한층 진흙 속으로 몰아넣어 전쟁의 종결이 요원한 것이다. 적의 국내 사정은 날로 더욱 심각해졌다. 물자는 결핍하고 생산은 저조하여 경제가 날로 무력해지니, 공채를 증발하고 세금이 과중해져 국민의 부담은 더욱 무거워 졌다. 부상자와 사망자는 날로 많아지고 장정은 줄어들어 병력을 보충하기도 곤란해졌다. 이렇게 되자 그 국민들은 전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몽상임을 알게 되고 전쟁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니 반전운동은 점점 만연되었다.


이 때에 적은 ‘인심안정정책’으로 왕징웨이를 무대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자기국민을 기만함으로써 꿈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했다. 역적 왕정위의 괴뢰조직의 성립이 중국사건을 매듭지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했다. 그러나 이 계산은 불가능한 것이다. 적의 전 수상 아베(阿部)는 일찌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신중앙정권의 성립이 사변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고는 인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국은 240개 사단의 정규군과 수백만의 유격대가 있기 때문이다.” 적의 수뇌층도 불가능하다고 보면서 그것이 자기네 일본 국민을 충분히 속일 수 있다고 보는가? 기실 적의 운명은 우리 손아귀에 쥐여 있는 것이다. 아무리 교묘한 재주를 피워도 일은 악화만 되어 가는 것이다.


2. 세계 각국을 위협


적의 대륙정책은 중국에, 정식이권을 획득한 제3국으로서의 위치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중국을 완전 독점하고 나아가서 전세계를 정복하려는 것이다. 적이 발표한 성명을 볼 것 같으면 ‘동아신질서(東亞新秩序)건설’, 중국에서의 제3국의 권리 존중은 사탕발림의 말일 뿐으로, 이는 ‘일왕밀약(日汪密約)’을 통해 적의 악랄한 음모라는 것이 세계에 적나라하게 폭로되었다. 그러므로 허무맹랑한 선전을 아무리 해보아도 한층 어긋날 뿐이다. 때문에 적은 역적 왕징웨이를 끌어들여 제3국의 권익을 존중하는 체함으로써 장강을 개방하고 왕징웨이의 괴뢰조직을 각국과 접촉하게 하려고 했다. 우리는 지금 점령지역내에서 일어난 반영운동이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무모한 짓은 모두 적의 간교한 계책임을 잘 알고 있다. 결코 이것이 세계 여러 나라를 위협할 수는 없다. 어느 나라도 당하고 있을 나라는 없는 것이다. 미 국무성은 왕정위의 괴뢰조직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영국의회는 충칭의 국민정부를 합법정부로 승인했다.


세계여론을 보아도 적과 왕(汪)의 괴뢰조직의 음모는 명백한 것이다. 3월 3일자 워싱턴 ≪명성(明星-The Morning Star)≫지의 언급은 “도쿄측에서 왕징웨이의 괴뢰조직성립을 널리 선전하는 것은 중국을 중국에 되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으로는 이미 ‘자유중국’을 속일 수 없고, 또한 세계 각국도 속일 수 없다.”고 했다. 1일자 상해대미(大美)석간도 역적 왕징웨이의 괴뢰조직에 대해서, “반드시 새로운 계략이 있을 것인데, 문제는 외국을 배척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25일자 ≪진리 (眞理)≫지 논설은 “난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추한 연극이다. 일본 내부의 형세가 날로 약해져 가는 것을 감추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라고 왕의 괴뢰조직을 일축했다. 이상의 언급은 국제적으로 일본을 대신해서 조종(吊鍾)을 울려 준 것과 다를게 없는 것이다. 또한 세계는 정의와 화평의 우방이며, 일본의 어리석은 위협은 절대 받지 않는 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3. 이화제화(以華制華) 정책


적은 중국을 침략하여 많은 괴뢰조직을 만들었다.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 ‘임시정부’, ‘유신정부’로써 광주(廣州)·무한(武漢)·하문(厦門) 등지의 괴뢰조직이다. 그런데 설마하니 아직도 충분치 못했단 말인가? 적의 침략수법(手法)은 조금씩 먹어 들어가는 식이다. 피차 마찰을 피하면서 좋게 조금씩 점령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위 ‘중앙정권’ 이라고 하는 “역적 왕징웨이의 괴뢰조직”을 왜 내세워야만 했나? 역적 왕정위는 중국국민당과 국민 정부의 이름을 도용해서 새로운 그의 당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소위 ‘화평운동’ 이니뭐니 하지만 이는 ‘중국영토의 주권존중’, “중국에 대해 영토적 야심은 없음” 등의 구호가 사실인듯이 보이기 위한 적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도구인 것이다. 바로 이화제화(以華制華), 이당제당(以黨制黨)의 악랄한 술책이 그 목적하는 바이다. 장위원장은 ‘일왕밀약고전국군민서(日汪密約告全國軍民書)’에서 역적의 간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는 오늘 이후 반드시 국부적 화해로써 전체적 화해를 이루자”는 소위 그들이 말하는 ‘화평운동’에 주력할 것이다. 그는 매수한 무리로 괴뢰정부를 조직해서 ‘일지관계조정강요’의 골자를 수행하려 할 것이다. 제3국이 괴뢰정부를 승인하지 않았더라도 복잡한 사건이 생기면 많은 국가가 그의 괴뢰정부와 실제로 거래가 있을 것이라 하고. 아마도 망상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국부적 화해란 무엇인가? 이것은 일본군의 난징점령을 의미한다. 일본에 부분을 팔아버리고 다시 그 부분을 기초로해서, 적의 힘을 이용하여 항전하는 전군민, 망국의 노예됨을 원치 않는 이들을 없애면 전면적인 화평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망상할 것이다. 적의 야심을 따라 완전히 나라를 팔아 버리는 것이 그의 간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굳세게 항거하여 적의 음모를 분쇄하고 화평과의 타협반대만이 승리를 얻을수 있고 항전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역적의 말로를 볼 때 비로소 우리는 황제(黃帝)의 자손됨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 라고 말이다.



가. 중국 국민의 반역자를 보는 눈


왕징웨이는 역적으로, 도둑의 하수로 사회에 알려지기에 앞서, 국내외에 잠복하여 터무니 없는 ‘화평’를 선전했다. 일시적으로 생활이 곤란하고 환경이 나쁜 이들 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활한 유혹에 넘어가 항전에 회의를 갖는 자가 있으니, 이처럼 제 집을 도적질하는 무리는 막기 어려운 법이다. 우리의 숨은 걱정은 바로 이런 무리이다.


그러나 현재 그들이 정치 무대에 나타났지만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망국의 노예됨을 원하지 않고 있고 그들을 역적이라고 보며, 같은 동포의 손을 끊는 자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감언이설로 유혹을 해도 국민은 결코 넘어가지 않는다. 적의 앞잡이를 제외한 4억 5천만 중국 동포 대부분이 순(順)과 반(反)의 행위를 엄격히 구별하며, 충(忠)과 간(奸)은 결코 병립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결코 적에 대한, 격렬한 원한과 분노로 가득찬 중국 동포들의 민족의식을 저하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나. 역적 내부의 충돌


왕징웨이의 괴뢰조직이 비록 일은 시작했지만 그 내부의 모순은 날로 커진다. 괴뢰 ‘임시정부’와 이름은 다르지만 내용은 마찬가지인 괴뢰 화북정무위원회(華北政務委員會)의 왕극민(王克敏), 왕읍, 무빈(繆斌) 등이 왕징웨이와 반목하고 있고, 표면상 취소된 ‘유신정부(維新政府)’의 양홍지(梁鴻志), 온종요(溫宗堯), 임원도 (任援道) 등도 마찬가지로 각처에서 왕징웨이를 견제하고 있다.


괴뢰 ‘몽강자치정부’의 이수신(李守信)과 괴뢰 ‘우한 정권’의 하패용(何佩瑢), 장인려, 석성천(石星川), 뇌수영(雷壽英) 등도 왕징웨이의 지배에 대한 항거가 공공연하게 또는 비밀리에 일고 있다. 이미 왕징웨이 자신의 조직에서도 진공박(陳公博), 저민의, 주불해(周不海) 등이 권리 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온갖 추태를 다 노출하고 있다. 적의 손아귀에서 우두머리가 되고자, 명리(名利)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적의 환심을 사야한다. 따라서 당연히 서로 배척하고 견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앞잡이 조직 내부의 모순과 충돌은 점점 심해져서 결국엔 그들이 저지를 죄악을 감소시킨 결과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적이 역적 왕징웨이의 괴뢰조직을 내세운 이유와 작용을 분명히 알았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장(蔣)위원장의 항전 2주년 기념사에서 지시한 바를 보자. “대체로 적에 유리하다고 인정되면 모두가 우리에겐 해로운 것이다. 때문에 적이 원하면 우리는 해주지 말아야 하고, 하지 못하게 하면 우리는 반드시 해야 된다. 적이 좋다고 말하면 반드시 나쁜 것이고, 나쁘다고 하면 반드시 좋은 것이다. 적이 하는 일체의 언행은 모두 그 반대적 입장에서 관찰하여 받아들이고 뿌리쳐야 한다”고 했다. 적의 교묘한 계책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으며 충실히 수행하고 용감하게 매진함으로써 적의 음모를 분쇄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한국인의 눈에 비친 역적 왕징웨이
일파(一波)
- 한민 (韓民) 제1기 제2호 

나는 한 한국인으로서 왕징웨이의 말이 들리는 바에 대해 그렇게 나쁜 감정은 없었다. 다만 그가 소위 염전(艶電)을 발표하고 괴뢰정권을 만든 후로 사정은 달라졌다. 이미 우리의 혁명동지가 아니며 일본의 앞잡이인 적이 된 것이다. 그는 적을 끌어 들여 수십만의 자기 동포를 죽였다. 그는 앞잡이가 되자 곧 우리 한국인과 가장 친한 전우인 중국인, 어떤 의미에서는 간접적으로 몇십만 명의 한국 동포를 죽인 것이다. 이 괴뢰조직이 목적하는 바가 나라를 팔아 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가 다 아는 바다.


그의 간계가 성공한다고 할 때 한중 양국의 전도는 실로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실패는 중국 항전의 최후 승리를 한층 촉진하며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케 한다. 이와 더불어 한국은 독립과 해방을 맞게 되니, 한국인으로서 왕징웨이의 괴뢰조직에 관심이 없을 수 없다. 비단 관심을 가질 뿐이 아니라 또 고기를 먹고 그 가죽을 씹지 않고서는 시원치않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는 짧은 시간에 “역적 왕징웨이의 계책에 대한 감상”을 쓸 수 있길 바라고 또한 괴뢰조직의 원흉인 왕징웨이를 한국인이 능히 박살내 줄 것이며, 이는 결코 기회주의적인 편견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믿어주기 바란다. 왜적의 조종을 받는 매국노의 죄악과 그 죄악이 초래하는 영향과 결과에 대해서 중국 동지들보다는 아마도 한국인이 조금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반역행위에 관한 한 매국노는 민족의 패륜아요, 인류의 저주받는 독충인 바 누구보다도 엄히 다스려져야 한다.


옛부터 우리 한국인들 중에는 의사(義士)들이 많았다. 박랑사중(博浪沙中)에서 진시황(秦始皇)을 격파한 창해 역사(滄海力士),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을 죽인 안중근(安重根), 황포강(黃浦江)에서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을 저격한 김익상(金益相), 앵전문(櫻田門)에서 일본 천황 유인(裕仁)을 저격한 이봉창(李奉昌), 홍커우공원(虹口公園) 에서 시라카와 요시노리 (白川義則)에게 폭탄을 던진 윤봉길(尹奉吉)의사 등은 모두 용맹으로 이름을 떨친 한국인들인 것이다. 따라서 내 희망은 결코 몽상이 아니며 오래지 않아 반드시 실현될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이완용(李完用)은 본래 그 조상들이 고위고관을 지낸 귀족의 후손으로 부유한 집안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고 의지가 굳고 냉혹한 성질에 시기심이 많았다. 한국혁명의 여명기에 있어서 매우 열렬하게 수차의 정치개혁운동에 참여했고, 제법 민중의 호응도 얻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관직에 들어서자 곧 정권쟁탈에 급급하여 친러시아파의 영수가 되었다.


일본은 재빨리 이완용의 사람됨을 간파하고 그를 매수한 것이다. 이완용은 처음에는 매우 소심한 방법을 썼다. 일본의 힘을 이용할 뿐, 그들에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양심을 버리고 정치 야욕에 어두운 이완용은 모르는 사이에 일본의 이용물이 되었다. 이미 발은 진흙땅에 빠져 들어가 끝내 헤어나질 못했다. 게다가 일본은 계획적으로 이완용은 한국의 역적이라는 사실무근의 소문을 퍼뜨렸다. 그들이 이러한 간계를 쓰는 목적은 2가지였다.


첫째는 이완용을 신뢰하는 민중들로 하여금 그의 언행을 의심하게 하므로써 장차 그의 사회적 신용을 완전히 떨어뜨리게 하는 것이고, 다음은 역적으로 몰린 이완용이 제2의 길을 찾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영원히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여 완전한 한국의 역적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완용도 이런 일본의 간계를 몰랐으므로 자신은 종래의 애국자적인 입장에서 허무맹랑한 말로 민중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국세가 나날히 약해짐을 통탄하며 친일로써 나라를 구하는게 옳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결국 자신의 입으로 세상 소문이 사실임을 밝힌 셈이다. 민중은 이제 “이완용은 철저한 역적이다”라고 단정을 내리니 이완용 또한 민중과의 접촉을 피하게 되고 일본경찰의 보호를 받고 살아가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그는 끝내 후회하지 않고, 반대로 오기가 나서 더욱 철저하게 나라와 국민을 해치고자 하였다. “일을 하지도 않고 억울하게 쉬지는 않겠다”하여 하등의 거리낄 바가 없었다. 이는 실로 뜻밖의 결과가 아닌가? 이것이 이완용이 매국노가 되게 된 제일 관문이다. 그는 사리사욕을 위해 우두머리가 되고자 대담하게 적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그러나 적의 앞잡이가 그 한사람은 아니었다. 송병준(宋秉畯), 이용구(李容九), 조중응(趙重應) 등 아첨하는 무리는 각양각색으로 공을 다투었다.


그러므로 그는 “안했으면 몰라도 뛰어든 이상 남에게 뒤질 필요가 없다”고 결심했다. 이같이 하여 그는 가장 악질적인 앞잡이가 되었으니 이것이 이완용이 매국노가 되게 된 둘째 관문이었다. 그는 이런 잘못된 생각에서 한정없는 큰 죄를 범했다. 후에 이재명(李在明)의 저격을 받았지만 그는 끝내 일본 제국주의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 그 채찍을 벗어나지 못하고, 오로지 그 운명은 울고 웃을 수 있는 자유도 구속 받은 채 결국 조국을 팔아 넘겼으니 천추만대에 죄인이 된 것이다.


이제 역적 왕징웨이의 과거를 살펴보자! 그의 지나온 길이 이완용과 교묘하게 들어맞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흥미있는 문제이다. 역적 왕징웨이의 가계(家系)·가산(家產), 총명함·성질, 명예욕, 초기의 구국사업, 몽상적인 정권욕, 기회주의적인 친 러시아정책, 친일구국, 애국지사에게 저격당한 일 등 여러 반역의 무리[양홍지(梁鴻志)·왕극민(王克敏) 등]와 공을 다툰 일, 비밀리에 매국협정을 한 일, 이에 대한 왜적의 대우, 어느 한곳 이완용의 행로와 다른 것이 있는가?


역적 왕징웨이는 일찌기 이완용의 매국적인 궤도를 그대로 달렸는데 더구나 이완용이 철저한 매국노가 되게 한 마음의 제1, 제2 관문까지 그대로 겪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각처의 상황과 내포하고 있는 조건들이 30년 전의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러므로 중국의 전도에는 광명이 있을 뿐, 결코 왕징웨이 때문에 큰 피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왕징웨이와 이완용은 그 말로가 완전히 같다고 단정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이완용이 한국의 역적이 된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백히 알고 있다. 따라서 왕징웨이의 반역 목적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광적인 역적 왕징웨이가 민중을 속이려 한다면 제아무리 제거하려 해도 누가 그를 당해 내겠는가? 만약 역적 왕징웨이가 중국을 구할 수 있다면 이완용은 왜 한국을 구하지 못했는가? 중국의 이완용은 한국의 스승을 따라 빨리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란다.



중일전쟁은 3년간에 걸쳐 그 전선이 4천킬로에 달하였다. 왜적은 현재 인적·물적·재정적인 힘이 완전히 고갈되었다. 경제공황 속에 붕괴하려는 위기에 처해 있으므로 빨리 전쟁을 끝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실제 전황은 더욱 확대되어 뜻하던 바와 같이 되지 않자 산궁수진(山窮水盡)한 왜적은 이때 기상천외한 생각을 했다. 왕징웨이를 요직에 올려 난국을 적당히 대처하여 그 붕괴를 구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소위 중국으로 중국을 제어하는 것인 바, 전쟁으로 전쟁을 유리하게 하는 정책이다. 또한 적의 정부요인 요나이(米內)가 정책을 밝히기를, 군사적인 면에 덜 치중하고 힘을 분산시켜 정치 및 경제면으로 방향을 돌린다고 했다. 그러므로 역적 왕징웨이는 거의 죽어가는 왜적의 생명을 잠시 연장시키는 강심제에 불과한 것이다. [그가 장뇌작용을 할 수 있는지는 상관할 바 아니라도 사실은 이와 같은 것이다.]


그의 말은 모두 왜적이 지시하는 것들로서 왕징웨이는 무대위에서 꼭두각시역을 한 것에 불과하다. 그의 거처는 왜적의 물샐틈 없는 감시하에 말과 행동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이 왜적이 그에게 준 수백만 원의 대가이다. 중국을 구하자는 그의 말은 바로 왜국을 구하자는 것이고, 그가 지껄이는 삼민주의(三民主義)는 바로 노예주의인 것이다.


왜적이 중국을 침략한 목적은 바로 중국 4억 5천만 인구의 고혈을 갈취하기 위함이었다.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화북(華北)·화중(華中)·화남(華南) 각 지역에 연락부를 설치하고 화북 연락부 아래에 또 제1, 제2 경제국을 설치하고, 그 직할하에 무슨 ‘화북개발회사(華北開發會社)’·‘화중진흥회사(華中振興會社)’·‘중국연합준비은행(中國聯合準備銀行,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은행, 여기를 참조 )’·‘화흥실업은행 (華興實業銀行, 중화민국 유신정부의 은행, 여기를 참조)’이니 하는 등의 허수아비 경제금융기관을 조직했다. 또한 점령지역내의 곳곳에 크고 작은 수십개의 일본과의 공동경영이라는 허수아비 은행·스파이 은행 따위를 설치했다.


또한 무슨 전기회사·전신전화회사·운수회사·성냥회사·광업회사·제철회사·수산회사·기선회사·수도회사·잡사회사·제염(製鹽)회사·방직회사·제분소·정미소니 하는 등의 무려 수 백 가지에 손을 대었다. 그밖에 점령지역내의 철로와 도로를 완전히 정리하여 교통망을 확보했다. 그들은 이같이 많은 일을 벌려 놓았지만 그 중에서도 착취기관만은 아주 완벽하게 설치했다. 그러나 그 대상을 붙들지 못했다. 이유는 재벌들이 모조리 모두 대륙으로 도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국 민족의 자본을 끌어 들이려고 점령지역내에 들어갔지만, 일반 지주와 소상인은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므로 일면 왕징웨이로 하여금 이치에 닿지도 않는 말을 퍼뜨리게 하고, 또 일면으로는 서민들에게 작은 혜택을 베풀었다. 나는 이런 현상을 보았을 때 30년 전 일본이 한국을 합병한 전후의 사정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왜적이 처음 한국에 공격해 을 때 백성들은 모두 비분해 하고 두려워하여 일제히 심산궁곡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을 병합한 후, 곧 숨어버린 사람들을 끌어내는 방법을 쓴 것이다. 도시에 모여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고 세금을 감해 주는 등, 작은 혜택을 베푸는 듯했다. 또한 미신을 장려하고 중대한 반일분자라도 관계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기 공작은 시골의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만큼 효과가 있었다. 나는 직접 내 눈으로 몇몇 시골 노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온 후로 우리 사는게 전보다 좀 나아졌어”라고. 그러나 이런 현상은 잠깐에 지나지 않았다. 1년도 되지 않아 시달림으로 날을 보내게 되었다. 2, 3년쯤 지나서는 재산·가옥·농지들이 모두 동양척식회사·금융조합 등 착취기관에 넘어갔다. 그리하여 가련한 이들은 대소 가족을 거느리고 고향을 떠났다. 남부여대하여 동북쪽의 황야를 향해 유랑의 길을 떠났던 것이다. 매우 불행스러운 일이다.


30년 후인 현재 나는 충칭 거리에서 멀리 고향을 떠나온 이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옛날 한국에서 들었던 것과 아마도 다른 게 없는 것 같다. 이렇게들 말한다. “이곳은 물건이 너무 비쌉니다. 며칠 전 고향에서 편지를 받았는데 그곳은 살기가 아주 좋아졌다나 봅니다. 전처럼 영망은 아니라니 나도 이젠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읍니다. 여기서는 하루를 보내기도 힘이드니 말입니다.” 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옛날 우리의 처지가 되살아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들의 앞길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나는 꼭 구해주려고 하겠지만 이 경우 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안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다.


그들은 나에게 매우 화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슬픔을 어찌 할 것인가! 후방의 인심이 불안정하면 전방의 승리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후방 인심을 안정시키는 중요조건은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비록 전시에 있어서 물가의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현재 충칭 물가의 폭등은 단지 전시라는 불가항력적인 자연 조건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인위적 요소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은 정부를 도와주고 격려하므로 억제시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적의 사정은 다르다.


그들의 물가 앙등은 도저히 손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 본토의 2, 3배 이상이나 되는 중국영토를 점령하더라도 제일차대전 중의 독일과 같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네 경제의 파산을 면하기 위해서 점령구내의 모든 물자를 바닥이 날 때까지 수탈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인데,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그러는 것일까? 노동자·농부·상인·학자·정치가 할 것 없이 절대 돌아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재 중국국민의 생활은 비교적 다른 교전국보다는 행복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닥쳐올 많은 역경이 있지만 최후 승리를 위해서, 그리고 광명된 앞길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분투 노력해야 한다. 절대 굽히지 않는 강인한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국가 민족을 통일하기 위한 대계는 반드시 정부에 협조하고 최고 통수자를 옹호하며 다같이 국난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도중에 한 명이라도 이탈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진실로 안주(安住)하고 싶고 영원히 복을 누리고 싶다면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해야만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려면 그것을 타도하기에 앞서 먼저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존재지만 역적 왕징웨이를 타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원한은 왜적보다는 역적 왕징웨이에게 더 사무치지 않은가 !


왕징웨이는 중화민족의 패륜아일 뿐 아니라, 전인류의 독충(毒虫)이다. 일본과 그 도당을 제외한 전세계가 그에게 침을 뱉는 것이다. 우리는 이 독균박멸(毒菌撲滅)을 위해서는 강력한 소독약을 써야만 한다. 혹 이에 소홀하면 그 독성은 넓게 만연될 것이 아닌가 !


우리의 구호-“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자하면 먼저 그들의 앞잡이 왕징웨이를 없애자” “중국이 최후 승리를 얻기 까지 장위원장의 항전을 옹호하자”. “동부아시아의 영원한 평화 수립을 위해선 혁명지도자 장제스 장군을 옹호하자.”


이완용과 왕징웨이
- 한민 (韓民) 제1기 제1호 

지난날 한국을 망하게 한자는 이완용이고, 오늘날 중국을 팔아먹으려는 자는 왕징웨이다. 둘다 적을 아버지로 여기는 (認賊作父) 민족의 변절자이며 일제의 앞잡이 이기도 하다. 한중에게 불행이 있다면, 왕징웨이와 이완용이 비록 생은 다르지만 서로 하는 일마다 의견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3.1 독립운동이 발발하자 왜 총독부 당국은 조선의 앞잡이들에게 진압책을 구했다. 이완용은 가장 먼저 꼬리를 흔들며 3가지의 정책을 바쳤다.


1. 해산을 권고한다. 2. 군대를 보내어 무력시위를 한다. 3. 학살을 감행한다.


이는 지난 여름 중국 각 식문에 폭로된 왕징웨이의 친일적인 책동, 난창, 창사, 난닝 등지에 대해 진격을 권하고, 주요 도시를 폭격하게해 국민정부를 위협한것과 똑같은 모습이다. 왕징웨이는 적이 곧 무너질때, 국가의 항전이 승리할 때,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민족의 생존을 돌보지 않고 있다. 동서남북을 모두 팔아먹고 자연과 자원을 팔아먹어 대대로 돌아오지 못하게 해버린 '일왕밀약' 을 체결한 죄는 이완용보다 더 심하다. 적이 일왕밀약을 가볍게 승낙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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