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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헷쟝

왕징웨이의 대동아회의 폐막사 / 감상 / 담화 / 기념방송 (1943.11.6~7)


중화일보사 '대동아회의' 표지
난징국민정부의 신문중 하나였던 중화일보의 출판사 중화일보사출판(中華日報社出版) 에서 출판한 '대동아회의' 표지.
본글에서는 중화일보의 출판사 중화일보사출판(中華日報社出版) 에서 출판한 '대동아회의' 의 자료를 통해 왕징웨이의 대동아회의 폐막사, 중국의 언론사와 나누었던 대동아회의에 대한 감상, 도쿄에서 진행된 대동아회의 기념방송에 대해 다루고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대동아회의 전체를 파악하기에는, 대동아회의에서의 왕징웨이의 행적 전체를 파악하는데는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대동아회의에서의 왕징웨이의 모든 발언 / 연설 내용을 정리했다는데 의의를 두고, 차후 기회가 되면 대동아회의 & 대동아회의에서의 왕징웨이의 행보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려 한다.)

1943년 11월 5일 개최된 대동아회의는 5일 1일차 일정에서 각 국가대표들의 연설이 있었고 , 이전 글에서 이미 다루었지만, 왕징웨이는 여기서 두번째로 연설을 했다.


(11월 5일, 대동아회의에서의 왕징웨이의 연설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1943년 11월 6일, 2일차 일정에서 대동아회의의 결과물인 '대동아공동선언(大東亞共同宣言)' 이 발표되었고, 대회는 폐막되었다.


(11월 6일,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대회를 마무리 지으며, 대회의 폐막사가 있었다. 대회의 폐막사를 진행한 것은 두 명이었는데, 한명은 대회를 개최한 일본측 대표인 도조 히데키였고, 나머지 한명은 일본을 제외한 참가자들을 대표한 중화민국 대표 왕징웨이였다. 두명밖에 참가하지 않은 폐막사에서 왕징웨이가 폐막사를 담당하게 되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본문에서 등장하겠지만, 왕징웨이는 이러한 자신의 폐막사를 회의 참가국으로 부터 지지를 받아 진행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왕징웨이의 대동아회의 폐막사는 다음과 같다.


왕징웨이의 대동아회의 폐막사 (1943.11.6)

의장 각하 및 각 대표 각하 여러분, 나는 중화민국 대표로서 여러분의 허락을 받아 한마디 하려 합니다. 이번 대동아회의는 이틀에 걸친 도조 총리대신 의장 각하의 지도와 각 대표 여러분의 협력에 따라 아무런 막힘없이 마무리되었고, 이속에서 절대적인 성과를 얻게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너무나도 기뻐 중화민국 대표인 저는 여러분의 앞에서 말을 잇기가 힘듭니다.

     

대동아공동선언은 이제 세계에 공표되었습니다. 이 선언의 가장 큰 특징은, 동아의 도의 정신을 분명하게 선언에 명시하고 구미의 이기주의적 견해를 일소한 것에 있습니다. 이를 자세히 이야기해보자면, 미영의 끊임없는 약탈과 착취를 전통으로 여기는 정책을 뿌리부터 일소하여 새롭게하고, 공존공영에 기초한 동아의 신천지를 개척하여 동아 각국로 하여금 각국의 독립 자주를 확보하고, 서로의 독립자주를 존중하고, 문화적으로는 각국의 고유의 특성을 발휘하고 존중함과 동시에 긴밀한 협력속에 문화의 융합과 창조를 위해 노력하며, 경제적으로는 호혜를 기초로 하여 각자가 가진 장단점을 보완하여 유무상통을 실현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 대동아 각국은 필시 그 단결을 공고히 하고,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은 한층 더 증진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세계 평화 역시 필시 더욱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동아의 도의 정신은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고 조금도 서로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가지지 않으며, 세계의 평화는 이에 따라 그 기초와 방도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미영과 같이 인종적 편견을 가진 자에게서는 전혀 꿈도 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중화민국 대표로서 이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이 성대한 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감격할 따름입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내용은 다만, 각국 국민을 영도하고, 선진국 일본을 본받아, 일본과 함께 우방적 관계에 있는 타이 왕국, 만주국, 신흥 버마국, 필리핀 공화국과 자유인도정부와 동심협력하여 대동아공동선언을 이행하고 대동아공영의 건설을 실현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저 또한 아직 중국의 통일을 보지못한만큼, 하루 빨리 중국을 통일하여 하루 빨리 전국의 정신력, 물력을 집결하여 대동아의 책임을 분담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오로지 모든 힘을 다해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도조 의장 각하의 지도와 각국 대표 각하분들의 협력에 대해 감사드리며, 아울러 대동아전쟁의 필승과 대동아건설의 성공을 축복하는 바입니다.



대동아회의의 회의진행모습
대동아회의가 진행되는 모습.

대회를 마치고, 왕징웨이는 대동아회의에 대한 감상을 질문하는 난징국민정부의 국영매체인 중앙전신사 (中央通訊社) 측과의 인터뷰에 응하여 자신의 대동아회의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중앙전신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대동아회의에 대한 감상 - 중앙전신사 인터뷰 (1943.11.6)

대동아전쟁은 공영주의대 식민주의의 전쟁으로, 왕도 대 패도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대동아전쟁의 의의는 파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설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며, 작게는 동아의 영미 침략세력을 소탕하는 것에 있고, 크게는 대동아공영주의를 확립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동아 민족이 성의로 인치단결하여 호혜를 도모하고 동거동락하여 생사를 함께하게 된 것에 있다 할 수 있다.

     

이번에 개최된 대동아회의는 동아의 도의정신을 충분히 발휘하여 동아 각국을 하나로 묶어 영미 식민주의의 억압과 수탈 정책을 타파하고 동아 각국의 국민들로 하여금 독립과 자주속 애국심을 충실히 가지게 하고 공존공영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기에, 동아 각국이 근본정신을 도의정신에 두어 단결하게 된다면 대동아전쟁은 반드시 승리하고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수년간, 나는 중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동아를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고, 이제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에 대해 무한한 감회를 느낀다. 나는 열성을 다하여 대회의 성공을 축하하며, 최대의 노력으로 중국의 전국민을 이끌고, 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결의를 실천하여 화평운동을 관철하고, 중국의 독립을 구하고, 동아의 해방을 실현하고, 대동아전쟁의 완성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동아결집국민대회의 모습
대동아회의가 끝난 다음날인 1943년 11월 7일,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는 대동아결집국민대회가 개최되었다.

(11월 7일, 대동아결집국민대회에서의 왕징웨이 연설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대동아회의의 다음날인 1943년 11월 7일에는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대동아결집국민대회가 있었고, 각국 대표들은 기자들 앞에서 담화를 발표했다. 왕징웨이도 마찬가지로 담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날 저녁에는 일본 NHK 라디오 방송을 통해 대동아회의의 의의와 대동아회의에 참가하게 된 감상을 연설했다.


왕징웨이의 기자담화 '겸' 라디오방송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는 본질적으로 기자담화문과 라디오방송내용이 거의 100%에 가까운 일치를 보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위에서 보았던 중화일보사 도서에서 잘못 서술한것이라 생각했으나, 대동아회의 시기를 다루는 신문들 (新中國報와 같은 왕징웨이측 신문들) 을 보아도, 이 두 글의 내용은 사실상 일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일치성이 난징국민정부 선전부 측에서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따라서 기자담화문의 내용 = 라디오방송 내용 이라 보아도 무방한 수준이기에, 같은 내용을 중복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생각하여 따로 서술하지 않았다. )


각자가, 모두가 노력하면 동아는 해방될 수 있다
(1943.11.7 / 대동아회의 이후 기자담화 및 라디오방송내용)

     

나는 이번 세계사에서 위대한 의의를 가진 대동아회의에 참석하게 되어 내심 이를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회의를 통해 일본 도조 수상의 위대한 이론을 경청하고, 각국 대표들의 위대한 이론을 직접 접하게 되어 진심으로 감복스럽다.

     

지난 백년을 돌이켜보면, 영미 양국은 제멋대로 침략과 착취정책을 자행해왔고,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세계 지배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 세력은 그 야망을 처음에는 남양, 그 다음에는 중국으로 확장시켜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미국도 태평양을 넘어 동아를 침공하여 영국과 연합하여 협공지세를 형성하였다. 당시 동아민족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었으나, 다행히 일본홀로 일어서는데 성공하여 영미의 야망을 막아내고 영미에게 타격을 입혔지만, 그 야심은 변하지 않아 계속하여 동아 민족을 이간질 시키고 서로 싸우게 하여 동아는 평안할 날이 없었다.

     

그러나 대동아전쟁이 시작되어 영미 양국의 세력이 동아에서 무너지고, 영미 침략이 착취해왔던 소득과 시도는 모두 일본에 의해 무너졌다. 그렇기에 대동아의 모든 민족은 일본이 동아를 지켜낸 공적에 대하여 감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일본은 영미 양국이 동아를 해치고 동아의 침략 정책을 가져왔다고 생각하여 영미세력을 격퇴하고, 나아가 이들이 펼쳤던 정책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 즉, 공존의 구호를 통해 침략의 구호를 바꾸고, 공존을 통해 착취를 끝내고, 동아민족이 각각 자주독립할 수 있게 하고 상호간의 자주독립을 존중하며, 문화방면에서는 그 창의력과 조화력을 발휘하게 하며, 경제방면에서는 호혜를 실행하고, 장단점을 서로보완하여 유무상통하게 했다. 이러한 기본방침은 영미의 기존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동양의 도의정신에 근거한 것으로, 서양의 이기적인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이번 대동아회의는 일본이 주최하여 동아의 각국가들과 연합하여 단결의 힘으로 도의정신을 발휘하게 하는 위대한 공헌으로, 대동아 각국가들의 영원한 우호의 토대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영원한 화평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중화민국의 국부 손중산 선생이 이야기한 "일본의 유신이 동아의 기회가 될 것" 이라한 것은 이미 증명된 것이다. 손중산 선생이 제창한 대아시아주의는 일본이 중국의 불평등 철폐에 협조하는 것도 소망해왔는데, 이 또한 이제는 구체화되었다.

     

나는 몇일 전 주중 일본대사와 중일동맹조약을 체결한데 이어 오늘 중화민국을 대표하여 대동아회의에 참석하여 대동아공동선언에 서명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가한 각국 대표들도 모두 같은 열정과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대동아전쟁의 목적은 반드시 관철될 것이고 대동아의 건설도 반드시 관철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목적과 임무를 완수, 달성하는 것은 동아 각 민족의 노력, 그리고 동아 공동의 노력에 달려있는 것이다. 선진국인 일본은 동아를 보위하기 위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고, 우리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부흥하길 희망하고 대동아전쟁을 관철시켜 대동아 건설완성의 책임을 분담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동아의 광명대업은 대동아 각 국가민족이 스스로 노력하고, 함께 노력해야 완성할 수 있다.

     

영미가 예전에 행해오던 침략과 약탈의 정책은 이미 무너졌고, 영미가 행해왔던 이간질도 이제 물거품이 되었다. 앞으로는 어떠한 정책을 펼치든, 어떠한 감언이설을 펼쳐 우리를 유인하거나 이간질을 하더라도, 우리의 신념은 이제 흔들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억압을 받지 않고 속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대동아 각국이 공동으로 노력하여 반드시 대동아를 해방시키고 대동아의 광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중일동맹조약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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