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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제2공화국의 선전포고문 (1944.9.23)
필리핀 제2공화국의 국기 WHEREAS, the Filipino people, during the whole period of their subjection to alien rule, have unremittingly labored for their freedom and independence and to this end fought two wars and countless resolutions; 필리핀 국민들은 외세의 지배를 받는 내내 그들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이를 위해 2년동안 전쟁을 하고 수많은 결의를 다져왔습니다: WHEREAS, upon the attainment by the Philippines of this cheri shed goal of freedom and independence and on the occasion of the inauguration of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s on October 14, 1943, 필리핀이 소중한 목표인 자유와 독립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1943년 10월 13일 필리핀 제2공화국의 출범을 기념하여 the President appeal to all nations and peoples of the world for amity and goodwill and, to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especially, pleaded that the Philippines be spared the suffering and destruction incident to the resumption of military operations on our soil. 대통령은 세계의 국가들과 국민들에게 우호와 선린을 호소 해왔습니다. 특히 필리핀 국토에서 미합중국이 군사 작전을 재개함에 따라 발생하는 파괴와 고통을 면해줄것을 호소해 왔습니다. WHEREAS, notwithstanding this appeal,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Great Britain have attacked from the air certain parts of the Philippines thereby violating the territorial integrity of the Republic and causing death or injury to its citizens and destruction or damage to their property 이러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미합중국과 영국은 필리핀의 특정 지역을 공습하여 공화국의 영토 보전을 침해하고 있고, 이러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미합중국과 대영제국은 필리핀의 공중에서 필리핀의 지역을 공격함으로서 공화국의 영토를 칩해하고 사망과 부상을 시민들에게 입히고 그들의 재산을 파괴하거나 손상시켰습니다 WHEREAS, the Philippines must safeguard its independence and territorial integrity as every self-respecting sovereign state is in honor bound to do; and 필리핀은 모든 자존심을 존중하는 주권국으로서 독립과 영토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WHEREAS,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s has entered into a Pact of Alliance with Japan, based on mutual respect of sovereignty and territories, to safeguard the territorial integrity and independence of the Philippines. 그리하여 필리핀 제2공화국은 필리핀의 독립과 필리핀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주권과 영토보전에 기초해 일본제국과의 동맹을 체결했습니다. 호세 라우렐 대통령은 직접 군복을 입고 선전포고문을 낭독했다. NOW, THEREFORE, I, Jose P. Laurel,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s, do hereby proclaim that a state of war exists between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Great Britain, effective September 23, 1944, at 10:00 o'clock in the morning 그리하여 지금, 나 필리핀 제2공화국의 대통령 호세 라우렐은 1944년 9월 23일, 오전 10시를 기해 필리핀 제2공화국과 미합중국, 대영제국 사이에 전쟁 상태가 존재함을 선언합니다. Face to face with the grim realities of war, I earnestly, call upon every Filipino at this momentous hour to show his unswerving loyalty and to give his support to the Government, so that, regardless of the trials and tribulations we are undergoing and those we shall have to suffer in the near future, we may closely and firmly unite to safeguard the free and independent existence of the Philippines. 전쟁이라는 암울한 현실에 직면해 있지만, 나는 중대한 시기에 모든 필리핀인이 확고한 충성과 지지를 정부에 보여줌으로서 우리가 겪는 시련과 환난과 우리가 가까운 미래에 겪게될 고통에 우리는 긴밀히 확고히 단결하여 필리핀의 자유와 독립을 지켜낼수 있을 것입니다 IN WITNESS THEREOF, I have hereunto set my hand and caused the seal of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s to be affixed. 그 증거로, 나는 손을 들어 필리핀 제2공화국의 인장을 날인합니다. Done in the City of Manila, this 22nd day of September, in the year of Our Lord, nineteen hundred and forty-four, and of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s, the first. 이는 우리 신의 해 ,그리고 필리핀 제2공화국의 첫해인 1944년 9월 22일 마닐라에서 작성되었습니다. 필리핀 제2공화국 대통령 호세 라우렐, 1944년 9월 22일 실제 선전포고문 낭독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7h6eynWc8hg (1) https://www.youtube.com/watch?v=qpyQk2dTCeg&t=11s (2) * 두영상 모두 일본에 의해 편집되면서 선전포고문의 일부를 읽는 모습만 나와있습니다. [출처] https://www.lawphil.net/executive/proc/procXXX/proc_30_1944.html
- 왕징웨이정권의 10대정강 (1940.3.30)
1940년 3월 31일자 동아일보 (東亞日報) 에 보도된 왕징웨이 정권의 10대 정강에 관한 기사 1. 선린우호의 방침에 의해 화평외교로써 중국국권 행정의 독립완성을 추구하고 동아영원의 평화신질서건설의 책임을 분담한다. 2. 우호각국의 정당한 권익을 존중하고 아울러 그 관계를 조정하여 우의를 증진한다. 3. 우호 각국과 연락해 국제공산주의음모등 기타 평화교란의 행동을 막는다. 4. 화평건국을 옹호하는 군대 및 각지 유격대에 대해서는 이를 각각 수용해 안정시키고 또한 국방군을 건설, 군정 군령이란 양대권을 명료히 구분하여 군사독재체제를 타파한다. 5. 각급 민의기관을 설립하여 각계의 인재를 고려하여 전국의 공의를 집중시켜 민주주의를 조성한다. 6. 국민대회를 소집하여 헌법을 정하고 헌정을 실시한다. 7. 중국국가의 자본 및 기술합작으로 전후 경제의 회복과 산업 발전을 도모한다 . 8. 대외무역을 진흥하고 국제수지의 균형을 도모하며 중앙은행을 재건하여 폐제를 통일해 사회금융의 기초를 확립한다. 9. 구 세제를 정리하여 인민의 부담을 경감하여 농촌을 복흥시켜 난민을 구제해 각각 생업에 안심케한다. 10. 반공화평건국으로서 교육의 방침을 정하고 과학교육의 향상을 도모하여 부화맹동(실속은 없고 겉만 화려한) 학교를 일소한다. [기사출처] 네이버 옛날신문 - 동아일보, 1940년 3월 31일 (https://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Date.naver#%7B%22mode%22%3A3%2C%22trans%22%3A1%2C%22pageSize%22%3A20%2C%22date%22%3A%221940-03-31%22%2C%22page%22%3A1%2C%22officeId%22%3A%2200020%22%2C%22fevt%22%3A206%2C%22publishType%22%3A%2200010%22%7D)
- 왕주석환영가 (汪主席 歡迎歌) / 1942.5.4
1942년 5월 4일, 환영 왕주석 이라고 적힌 풍선을 보고 환호하며 만주국과 일본 깃발을 흔드는 만주국 소녀들. 1942년 5월 4일, 왕징웨이와 측근들은 만주국을 방문합니다 . 왕징웨이의 첫 만주국이기도 했던 이 방문 만주국측에서는 왕징웨이의 첫 방문에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우선은 중화민국이 만주국이라는 존재가 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 1942년의 시점에서 건국 10주년을 앞두고 있는 만주국의 산업 발전성과를 왕징웨이측에 보여주면서 만주국의 발전상을 자랑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만주국측은 왕징웨이측을 환영하면서 왕징웨이를 국민정부의 정통지도자로 치켜세우고, 방송국에서는 '중화민국 국민정부 왕징웨이 주석 환영의 밤' 과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등, 왕징웨이측을 환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주국측에서는 왕징웨이의 방문을 환영하며 노래 또한 준비했는데, 그 노래가 바로 "왕주석환영가 (汪主席歡迎歌)" 입니다. 신문 흥경시보 (盛京時報) 에 서술된 왕주석 환영가의 악보와 가사. 汪主席來雲軺下 滿洲國民喜無 왕주석님이 비행기에서 내리시니 만주국민들은 행복하다네 來吧 來吧 快來吧 大家一齊歡迎他 어서, 어서, 어서, 우리 모두 그를 환영하세 滿華提携如一家, 實現我們大東亞 만주와 중화의 제휴는 한가족과 같다네, 우리들의 대동아를 실현한다네 來吧 來吧 快來吧 大家一齊歡迎他 어서, 어서, 어서와서 우리 모두 그를 환영하세! [출처] 정호윤, 「汪精衛정부와 동아신질서」 , 영남대학교 (석사논문), 2016, 21쪽
- 중화민국 난징정부 (왕징웨이정권) 연표
왕징웨이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1936년부터, 왕징웨이 정권이 끝이 나게되는 1945년까지 서술되어있습니다. 더욱 추가할 내용이 있거나, 수정할 내용이 있으면 연락바랍니다.
- 대동아회의 왕징웨이 연설문 (1943.11.5)
본문은 일본에서 1943년 발행된 대동아회의의 각국대표들의 연설문을 일본어로 번역한 '아시아는 하나가 되리 (アジアは一つなり) 를 번역한 것입니다. 세계역사상 위대한 의미를 가지는 대동아회의가 오늘 맹방 일본의 수도에서 거행된것에 대해, 도죠 총리대신 각하의 연설을 듣고 크게 감분하게 되었습니다. 미영(미국과 영국) 의 동아침략은 이미 백년전부터 시작되었고, 지금의 중대한 시기에 있어 일본의 군사력과 정치, 경제문화등 각방면의 힘의 의지해야 처음부터 미영의 침략야심을 억제하고, 동아를 보전하며, 영미를 분쇄하는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최근 대동아전쟁의 발발로, 미영의 동아침략세력은 분쇄되어, 동태평양과 남양일대에서 미영의 육해군 근무지는 일본 육해군에 의해 격파, 점령되었습니다. 일본은 한걸음 더 나아가 동방도의(東方道義)의 정신의 근거하여 동아국가의 민족들의 공존공영을 추구하고 그들의 독립과 자주를 원조하고, 그들의 애국적 희망을 달성시키고, 지지하며, 각지의 부서들로 하여금 최대의 노력을 통해 대동아전쟁의 완수와 대동아건설에 대한 책임을 분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숭고한 일본의 위대한 포부와 그의 빛나는 기적에 삼가 최대의 경의를 표합니다. 동시에 함께 우호관계이 있는 만주국, 태국, 신흥 버마국, 필리핀과 자유인도정부가 각각의 굳을 결심과 휘어지지 않는 노력에 따라 대동아전쟁과 대동아건설의 책임을 나누고 있는것에 대해 최대의 경의를 표합니다. 중화민국이 동아의 한측의 날개로서, 지금 이자리 이 기회를 빌어, 대동아전쟁의 완수와 대동아건설의 방침에 대한 국민정부의 결심과 노력에 대해 말씀을 말씀드리는 것은 순순히 추쾌의 지경에 달려있습니다. 중화민국의 국부 손중산 선생님 일생의 포부는, 중국과 동아로하여금 미영침략세력을 분쇄시켜 그들의 독립과 자주를 완성시키기 위해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포부에 근거해, 그는서거에 이르는 날까지 약 40년간, 필생분투를 계속해왔습니다. 그가 서거하기 3개월전, 일본의 고베에서 두번에 걸쳐 연설을 한적이 있었고, 민국 13년 (1924년) 11월 28일에 열렸던 제1회 연설에서 그가 이야기 한것은 대아시아주의였습니다. 연설중에서 "우리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의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백년이래 영국의 침략을 받고 갈취당하기에 이르러 거의 하나로 완전한 독립국가의 존재를 볼 수가 없게 되었는데, 그 쇠퇴가극에 달했을때, 돌연 전환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그것은 일본의 유신이었고, 일본의 유신만이 일본이 아시아에서 선진국이 될수 있게 하는 원인이 되었고, 동시에 아시아 부흥의 출발점이된 것이었다 ,아시아 각국은 당연 선진국 일본과 함꼐 동심협력해, 동방의 왕도적 문화로 하여금 서양의 패권주의적 문화를 물리쳐 미영의 침략세력을 완전히 구축하고 아시아 각국의 단결에 따라 아시아 각국의 독립자주를 완성하지 않으면 안되는것 이다. 이렇게 쇠퇴하는 아시아 전체를 부흥으로 이끄는것이 가능하다" 라고 연설했습니다. 두번째의 연설은 같은해 같은날의 연설이었는데, 연설에서 " 일본은 당연히 중국과의 불평등조약을 폐지해야 한다" 라고 말하고, 또 그안에 "일지(支) 양국은 형제와 같다. 일본은 일찍이 불평등한 속박을 타파하고, 동방의 선진국, 세계의 강국이 되었다. 중국은 현재, 마찬가지로 불평등조약의 폐기를 얻으려는 것이며, 일본의 충분한 원조를 갈망하고 있는것이다, 중국의 해방은 곧 동아의 해방이다" 이상 두차례에 걸친 연설은 손중산 선생 일생의 마지막 연설이 되었고, 이후 국부 손중산 선생은 병세의 영향으로 다음해 3월 12일 베이징에서 서거하게 되었지만, 서거의 당시 유지를 동지들에게 남겼고, 동지들은 그의 유지에 따라 계속 분투하고 , 그의 뜻을 관철시키려 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불행한것은 손중산 손생님의 서거 이후 그 유지가 현실화 될 가능성은 아직 보이지 않으며, 일지 (일본과 중국) 의 관계는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민국26년 (1937)년 7월의 사변이 발생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국부 손중산 선생님이 서거한지 12년이 지난 후의 일이였습니다. 당시 일지의 관계가 결렬되는 바, 미영은 호기를 맞이했고, 양측의 관계를 이용해 일지사변의 연장을 부추겼습니다. 나와 동지들은 국부의 유지가 아직도 실현되지 못했단 것을 보고, 일지관계가 날로 악화다는것을 보고, 통심이 극에 이르게 되고, 절망의 심연에 빠지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일본정부는 사변을 최단기간에 중단해야할 방침을 가지고 있었고, 그안에서 일본의 목적으로 중국의 멸망이 아닌 중국의 부흥에 두고, 일본은 중국이 동아건설의 책임을 나눌것을 기대하고, 일본이 중국을 원조할 것을 결심하고, 그들의 독립자주의 소망을 달성하게 하려 하는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나와 동지들은 일본이 그러한 진의를 선포한것을 듣고, 일지관계의 호전에 국부의 유지를 완성시키는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에, 충칭정권에 대항하여 항전의중지(抗戦地棄) 와 화평의회복(和平恢復)을 이야기했지만, 듣지않으려는 모습에 나와 동지들은 화평운동을 위해 분주하게 뛰기로 결정한것 입니다. 얼마안있어 국민정부는 난징으로 환도하여 정정당당하게 일지의 제휴와 동아의 부흥의 최대의 노력을 하게 된것입니다. 지금 말씀드린대로, 미영은 일지사변에 대해 항상 도발과 이간질에 노력하여, 사변의 연장을 부추겼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국민정부 환도 이후 더더욱 강화되었고, 미영은 충칭에게 항전의 강화와 평화의 저지등을 부추기는 수단을 강구해왔습니다. 그후 대동아전쟁의 발발에 이르러, 미영은 그동안의 자신들이 구축한 동아의 세력이 사라질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충칭의 분자들을 이용해 일본을 견제하는 방도를 강화시키는 것은 이미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아는 사실입니다만, 우리는 영미의 이러한 계획이 물을 필요 없이 실패에 이르렀다고 단정지을 순서에 이르렀습니다. 충칭의 장사꾼들과 민중이 국부 손중산 선생님의 가르침에 귀의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올해 1월 9일이후 중국에 대해 빠르게 조계를 반환하고, 치외법권을 철회하고, 특히 최근의 일화동맹조약을 통해 일화기본조약과 동시에 각종 부속 문서를 폐기했습니다. 국부 손중산 선생이 제창한 대아시아주의가 이미 광명을 찾게된것입니다. 국부 손중산 선생이 일본에 갈망하셨던, 중국을 돕고, 풀평등 조약을 폐기하는 일이 이미 현실화 된것입니다. 가령 영미가 어떤식으로든 유혹해 이를 저지 한다고 하더라도, 충칭 민중의 각성을 막을 수는 없게 되었기에, 충칭은 다른날 반드시, 미영에 의존하는것은 동아에 반역하는것이 되고, 동시에 국부 손중산 선생에게도 반역하는 행위가 된다는것을 깨닫게 될것임을, 민중도 장사꾼들도 깨닫게 될 것임을 단언할 수 있습니다. 국민정부는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있어, 오로지 기본의 방침에 기초해 노력을 거듭하고, 한편으로는 충칭의 상인들과 민중들의 각성을 촉진시키며, 통일을 완성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정치력을 얻는 지방으로 하여금 하나의 모범지방을 수립하는것으로, 그 공작은 다음의 3가지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상의 숙정, 둘째는 치안의 보장, 셋째는 생산의 증가로, 소위 사상의 숙정은 미영의 개인주의, 공리주의적 사상을 철저히 쓸어버리고, 동방도의적 정신으로 바꾸고, 동아인의 자각심으로 동아인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고, 일심일덕, 동아인의 공존공영에 분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음의 치안의 보장은, 즉 대동아전쟁의 후방인 중국의 지배지역에서의 치안을 확보해 맹방전선의 병사들로 하여금 후방의 근심을 없애고,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군대를 전선으로 수송하여 맹방장사의 노고를 나누는데에 있습니다. 셋째, 소위 생산의 증가는 일체의 경제계획과 재정계서에 무게를 두고 총력결전의 역량을 증가시키는것입니다. 다만 생산증가라고 하더라도 여기에는 소비절약, 장물이용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것입니다. 이상의 3가지는 국민정부가 대동아전쟁에 협력하게 하는 공작의 중점으로서, 동시에 국민정부가 체득한 대동아전쟁, 즉 대동아건설의 의미는 전쟁중의 동감동고(同甘共苦), 동생공사(同生共死)를 결심하고, 밖으로는 공동의 적인 영미를 제패하고, 그의 침략세력을 분쇄하고, 그들의 침략기도를 소멸시키는것이고, 속으로는 각고공부, 용왕매진의 정신으로 동아동포들과 함께 동심협력해 동아의 건설을 착실히 하는데에 있습니다. 대동아전쟁에 대해 말씀을 드린다면, 우리의 날개가 향하는곳 은 승리고, 대동아건설에 대해 말씀드린다면 우리의 날개가 향하는곳은 공영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동아각국은 자국을 사랑하고, 서로의 이웃을 사랑하고, 함께 동아를 사랑해야합니다. 중국, 우리가 모토로 삼아야할 것은 중화의 부흥, 동아의 보위이며, 중국이 독립자주를 획득했을때에야 동아보위의 책임을 나누는 능력이 생기며, 동시에 동아의 보위를 얻게되며, 중국의 자주독립이 보장받을 수 있는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력해 자신의 국가를 자주독립의 국가로 만들고, 또한 자국을 동아의 강력한 분자(分子)로 만드는것을 필요로 하기에, 동아각국은 각국의 본연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독립자주를 확보해야하고, 독립자주를 위해 분중히 하는것이 필요합니다. 동아 각국가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동심협력, 공동의 목적을 향해 공존공영을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진국인 일본은 이미 그 빛나는 독립자주를 세계에서 확립했지만, 최근에는 동아각국을 방문해 그들의 독립자주를 획득하게 하고, 원조를 아끼지 않고, 일치고결시켜 공동목적을 위해 함께 노력을 하겠다는 그 모습은 말로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저는 정치상의 독립자주를 얻은 후에 만약 외교상의 방침이 일치하고, 군사상의 대적관계가 일치한다면 공동의 목적에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문화면에서 선진국인 일본이 확실히 자기의 문화를 기초로하고, 동방의 문화를 고양시켜고, 세계문화를 흡수하는 3대 요점을 성취한 것에 대해 우리는 깊이 탄복하기 나름입니다. 저는 신흥국가들이 함께 격려, 노력, 전진할것이라는 점을 깊이 믿고 있습니다. 우리 중국은 특히 전력으로문화의 부흥을 추구해야한다고 생각하며 문화의 융합과 창조는 각민족을 친밀하게 하고 단결시키는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인도와 중국의 양만족간에는 일찍이 불교의 도입에 의해 사상교류를 도모하며 동방문화사에 이미 획을 그었습니다. 경제상에 있어서는 동아 각국가는 호예의 기조에 근거해, 장단상보, 유무상통하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맹방을 편리하게 할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합니다. 예를 말씀드리자면, 중국의 목화는 수많은 이웃의 수요가 있고, 남방각지의 가솔린,고무, 주석등도 마찬가지로 이웃국가에 공급할 수 있는것으로서, 우리가 서로 돕는다면, 반드시 일절에 자원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것입니다. 영미가 과거에 해왔던 착취정책을 철저히 소멸하고 새롭게 하나의 인도(人道)로 합치되는 신천지를 창조해야 합니다. 이상 말한것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면 동아 각국의 민족의 행복은 무한히 증진되어 동아공영의 확실한 보장을 획득하게 되는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평화에 있어서의 기초를 만들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은 광명은 실로 우리의 앞길에 놓여있고, 오로지 우리 동아각국의 민족이 함꼐 손을잡고 그곳에 도달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것은, 타이, 버마, 필리핀 각국, 그리고 일본점령하에 있는 영국 및 네덜란드의 식민지역내에 있는 중국인은 총 7-800만명을 넘지않으며, 이러한 중국재류민은 그 소재국정부의 우대를 받아 소재국 인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활동하고, 교통의 개척과 자원의 개발에 대해 심혈과 열땀을 쏟고있고, 그 심혈과 열땀은 소재국 인민과의 결합으로 이어져 동아인의 자각이 커지는 추진력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인민은 결점도 있지만, 동시에 장점도 있어 화평, 신실, 노동으로 소박하게 소재국 인민과 동거동락하며 서로의 장점을 찾아 결점을 보완하며 이미 분리할 수 없는 우호협력관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이 관계가 이번 대동아전쟁에서 더욱 단련되고 단결되기에 이르게 됨을 믿음과 동시에, 이 관계가 대동아공영에 공헌하는 바가 있다고 단언합니다. (박수갈채) [일어 원문] '아시아는 하나가되리 (アジアは一つなり)' 의 디지털 아카이브본 : https://dl.ndl.go.jp/info:ndljp/pid/1263031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콜렉션)
-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왕징웨이정권) 대영미선전포고문 (1943.1.9)
왕징웨이가 직접 작성한 대 영미(英美) 선전포고문 , 1943년 1월 9일 어제 오후 10시, 국민정부는 다음과 같은 선전포고를 발표했다. 昨天上午十時, 國民政府發出宣戰布告如下。 재작년 12월 8일 대동아전쟁이 시작되고 국민정부는 중일기본관계조약의 정신에 근거하여 前年二十月八日大東亞戰爭發動之始, 國民政府根據 中日基本關係條約之精神, 우호국인 일본과 동거동락을 함께하는 성명을 해왔다. 聲明決與友邦日本同甘共苦, 自是以來 。 신국민운동에 착수하고, 치안보장에 종사하며,민생을 개선하며, 기어코 국력을 증진시켜 , 대동아전쟁의 완수에 협력하기로 하였다. 著手新國民運動,從事保障治安, 改善民生 期於增進國力, 協助大東亞戰爭之完遂。 영국과 미국은 백년동안 동아를 분열시키기 위한 정책을 계속해왔고 , 이는 점점 격화되고있다. 충칭(渝) 의 분자들을 계속 유혹해 이름바 영미전선(연합국)에 참가하게했고, 인도로 출병하게 해 동아민족이 동아민족을 끔찍하게 죽이게 하였다. 乃英美等國仍沿用其百年以來分裂東亞之政策,且變本加厲,竟勾引渝方分子 參加所謂英美戰線,出兵緬印 , 以東亞人殘殺東亞人。 그들의 폭력은 최근 처음으로 우호국인 일본 육해공군에 의해 격파되며 멎었고, 동아 침략의 거점도 상실하게 되었다。 最近因其暴力已次第為友邦日本陸海空軍所擊破,侵略東亞之根據地亦已喪失。 또한 국민정부가 통치하는 지역의 평화를 매우 질시하며 충청의 분자들을 선동해 음모를 꾸미며 계속 침요하고. 乃益逞狡謀,且嫉視國民政府統治區域之和平發展,唆使渝方分子, 不斷侵擾 각종 건설의 진행을 방해하고, 자국의 비행기들을 충칭에 기반을 두고 우리의 우한,광주 등 여러지역을 반복적으로 폭격해 평민들을 불구로 만들고 있다. 以阻撓各種建設之進行,並逕以自國飛機,借渝方為根據, 向我武漢廣州等處, 屢施轟炸,殘害平民。 충칭의 분자들은 기꺼이 영미의 부림을 감수하며,몸소 부끄러운 영미역적이 되었다. 在渝方分子,甘受英美驅使, ,躬為英美叛逆,固屬可恥。 또 영미는 동아에 대해 사려를 쌓고 이간질을 하여 동아병탄이라는 최후의 욕망을 이루려 한다. 그렇기에 특히 동아민족은 공동의 적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워야한다. 而英美對於東亞處心積慮,盡其挑撥離間之能事, 以圖遂其最後併吞之欲, 尤為東亞民族所當同仇敵愾。 이를 위해 국민정부는 오늘부터 영국 미국과 전쟁상태에 들어감을 선언한다. 國民政府為此宣告,自今日起,對英美處於戰爭狀態。 우리의 전력을 마땅히 다해,우호국 일본과의 협력으로 영미의 잔혹함을 쓸어내고, 중국의 부흥을 도모하며 當悉其全力, ,與友邦日本協力 , 一掃英美之殘暴,以謀中國之復興 동아의 해방을 도모하고, 만주와 중국 양국의 우호를 돈독히 하며 東亞之解放,滿泰兩國,夙敦友好, 동아의 공영에서 특히 단결하며 이후 더더욱 협력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對於東亞共榮,尤具同心,今後當益謀提攜。 도덕과 정의를 바탕으로 동아신질서를 건설하기 위해 以期共同建設以道義為基礎之東亞新秩序, 독일-이탈리아는 수년째 서방에서 영미와 싸워오며 여러번 승리의 영광을 얻고 있다. 德意諸友邦,數年以來,在西方與英美勢力周旋 , 迭獲勝利之光榮。 우리나라는 오늘 대동아전쟁에 참가했다, 이에 호응하며 세계전체에 대하여 공정한 신체제에 공헌하기를 기대한다 我國今茲參加大東亞戰爭, 當相與呼應, 以期對於世界全體之公正的新秩序有所貢獻。 나의 모든 국민들은 이것만이 마땅히 국부 손중산선생의 범아시아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임을 알것이다. 凡我國民,當知此為實現國父大亞洲主義之唯一時會。 중화민국의 부흥. 대동아공영건설의 실현, 세계전체의 정의와 평화의 획득 모두 여기에 있다. 그러니 中華民國之復興,大東亞共榮建設之實現,世界全體正義和平之獲得, 胥繫於此 일덕일심하고 끝까지 힘을 합쳐 이 위대한 시대의 위대한 사명을 관철시키자. 其一德一心,戮力始終,以貫徹此偉大時代之偉大使命! 중화민국 32년 (1943) 1월 9일 , 중화민국남경정부주석 왕징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