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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⑪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 - 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943.11.6)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도조 히데키 (東條英機) 일본 내각총리대신. 도조 히데키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 연설) (1943.11.6) (일본어) 방금 인도와 관련된 버마국 및 자유인도임시정부 대표 각하의 발언이 있었습니다.이에 대해 일본 대표로서 발언하고자 합니다. 인도 4억 민중의 숙망인 인도의 자유 독립 및 번영을 위하여 자유인도임시정부의 깃발 아래 인도의 우국지사들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인도를 생각하는 마음, 아시아를 생각하는 마음에는 열정이 가득하다는 것은 방금 자유인도임시정부 대표 각하의 연설에서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있습니다. 인도를 위해, 장래의 대동아를 위해 진실로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이 인도를 영미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그 숙망의 달성을 위하여 모든 지원을 보내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여러번의 성명을 통하여 이미 밝혀진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자유인도임시정부가 기초를 점차 확립시키고, 자유인도임시정부 아래에서 궐기하는 동지들이 열렬한 기세의 초지관철(初志貫徹)의 정신을 보이고 있으며, 그 결속은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는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인도 독립의 첫 번째 계단으로서 일본 정부 는 현재 점령하고 있는 인도령인 안다만(Andaman) 제도 및 니코바르 (Nicoba) 제도를 가까운 시일 내에 자유인도임시정부에 귀속시킬 용의 가 있다는 뜻을 본 회의에서 일본 제국은 천명하는 바입니다. (박수) 모든 국가로 하여금 각각의 자리를 얻게하고 그 백성들 모두로 하여금 국가라는 울타리 속에 안주하게 하다는 일본의 대이상은 착착 구현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들어 일본은 더욱 더 인도의 독립을 위해 전폭적인 협력을 하기로 결의함과 동시에 인도 민중들 역시 한층 더 분발해줄 것을 갈망해 마지 않는 바입니다. 그리고 대동아 각국이 일본과 뜻을 함께 하고 인도 독립을 위하여 최선의 힘을 다해 지원한다는 열렬한 의견을 어제 및 오늘의 회의 석상에서 각국 대표 각하분들께서 표했던 것을 저는 실로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대동아 각국이 앞으로도 더욱 인도의 독립을 위하여 강력한 지원을 해주실 것을 확신하며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박수) (이후 착석)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⑩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943.11.6)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 채) 자유인도임시정부 수반 각하의 발언을 희망하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에 특별히 이 자리에서 이를 수락하여 자유인도임시정부 수반 각하의 발언을 들으려 하는데 이에 대해 이의 있으신 분 있으십니까?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이의가 없다는 뜻으로 박수를 침)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대표) : (기립후 영어로) 저는 발언의 기회가 없었습니다만은, 이렇게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분들께서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이렇게 폐회즈음에 인사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후 폐회의 인사,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중국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수바스 찬드라 보스 (Subhas Chandra Bose) 자유인도임시정부 주석 및 인도국민군 총사령관. 찬드라 보스의 연설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 연설) (1943.11.6) (영어)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 그리고 열석자 여러분, 자유인도임시정부를 대표하여, 이번 역사적인 회의에 배석하는 영광을 얻게 된 것에 대해 저와 저 동료들은 최고의 영광으로 여기며 이러한 은정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충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각국 대표 각하분들의 발언 중에 표해주신 인도독립에 대한 동정 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길인 무장투쟁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을 확인해 주신 것에 대해 저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인도 독립의 문제에 대해서, 이 웅대한 회의에서 방금 채택된 대동아공동선언 은 여러 각국 대표 각하분들께서 평소 우리에게 피력하셨던 의견을 구체화하고, 이를 명확하게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쁜 소식이 엄숙하게 회장의 담을 넘어 신속하게 저의 고향에 전달된다면, 영국의 탄압 아래 신음하고 있는 수억의 인도 동포들은 새로운 희망을 얻고 감격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보도가 해외로 전파된다면, 마음속에 가책을 가지고 있었던 적국 영국을 비롯한 세계 국가 인민들의 가슴에 용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을 것이라 의심치 않습니다. 이제 자유인도임시정부를 위해, 자유인도임시정부의 지도를 받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영국제국주의에 대한 최후의 결전 이 머지 않아 전개될 것입니다. 때문에 방금 채택된 대동아공동선언은 실로 말할 수 없는 끝없는 국제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 입니다. 우리는 이 선언을 통하여 무적불패의 일본이 우리의 뒤에 엄연히 서있다는 것과, 이제 해방된 대동아 10억의 여러 국가 및 여러 민족이 굳건하게 단결하였다는 것을 비추어 보며 우리의 원수에 대한 무력의 싸움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각국 대표 각하 여러분, 저는 어제 오늘 회의의 진행과정을 경청하면서, 근대 역사상의 모든 국제적 회의가 뇌리에 스쳐지나갔습니다. 지난 100년간의 일을 생각해보면,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린 1815년의 빈 회의 , 크림 전쟁 이후에 개최되었던 파리 회의 (1856) , 발칸 반도에서의 러시아와 오스만제국의 전쟁 이후 개최되었던 베를린 회의 (1878) , 또한 가깝게는 1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알렸던 베르사유 회의 (1918) , 대동아에 있어서 영미의 세력을 영구히 확보시키려는 음모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워싱턴 회의 (1921) 등의 회의는 모두 영미의 세력을 세계에 영구히 확립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진 국제회의 였습니다. 이는 대동아회의의 취지와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 본 회의는 서양에서 행해진 것과는 매우 다른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 회의는 적어도 전승자들 사이의 전리품을 분할하기 위한 회의 가 아닙니다. 또한 본회의는 특정 약소국을 희생시키는 음모를 꾸미는 회의 도 아닙니다. 본 회의는 해방된 여러 민족 및 여러 국가들의 호혜주의, 상호원조, 긴밀한 협력, 상호 독립자주의 존중이라는 도의적 정신에 의거한 회의입니다. 이 회의가 해의 나라 일본에서 개최된 것도 반드시 우연한 일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욱일이 동양에서 승천하는 것과 같이, 과거의 모든 잔악한 착취를 해결해야 하는 새로운 세력이 반드시 동양에서 나오리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인도적으로도 필연성이 있음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아시아에서의 중심 세력은 이전부터 일본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믿는 바입니다. 러일전쟁의 대승리 이래 동양의 여러 민족들은 일본의 세력을 존중하고 일본의 지도하에 동양의 여러민족의 해방을 희망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최근 범아시아주의, 범아시아연맹 이라는 구체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인도 역시 이전부터 동양의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세력을 존중하고 언젠가는 일본의 지도 아래 아시아의 여러 민족이 단결할 것이란 열의에 찬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도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려 합니다. 인도는 본래 국제주의 를 사상의 근본으로 하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국제주의는 인도가 과거 불교를 중심으로 동쪽의 다른 나라들과 빠르게 접근 하게 하였고, 중세에는 서쪽에서 이슬람 세력이 인도에 이르게 되자 인도는 인도의 특징인 보편주의, 국제주의에 기반하여 서아시아의 여러민족과 제휴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슬픈 것은, 이러한 국제주의가 이후에는 오류가 있는 국제주의가 되어 유럽 세력의 정복과 침입을 용이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비애, 비통, 비정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국제주의 와 올바른 국제주의 를 충분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시에 이러한 고통 속에서 동양의 단결, 국제적 단결이 성공하는가 성공하지 못하는가 는 그 연맹 혹은 그 집단을 지도하는 지도국가의 방침이 정의와 도의에 근거하는가 아닌가 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대동아공영권이 정의에 입각한 이상 반드시 이 국제적 단결은 성공으로 끝날 것임을 확신하며 의심치 않습니다. 대동아공영권의 확립은 단순히 대동아 각 민족의 번영과 행복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서아시아 전체의 행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나아가 아프가니스탄, 알제리와 아라비아 인에게도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자이신 각국 대표 각하분들의 노력을 치하함과 동시에 전 동양인들이 이 공영권의 확립과 성공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기뻐하고 있음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인도 독립의 문제에 대해 제가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인도 독립의 문제가 대동아의 여러 국가들의 여러 문제와 다른점은 우리 인도는 끝까지 숙적인 영국과 전쟁하고 이를 이겨내야만 하는 운명에 있다는 것입니다. 인도가 나아가야 할 길은 투쟁 단 하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타국이라면 영국과 강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도로서는 절대 영국과 강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도에게는 완전한 승리를 보던지, 이전처럼 영국의 탄압을 받아드리며 살아가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 인도의 문제를 논하고 있을 때도, 고국에서는 수천만 명이 탄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와 저의 동료 및 인도국민군의 병사들은 전장에 나가게 되면 몇 명은 델리에 입성할 수 있을것이라 기대하고 스스로 뺨에 열기가 차오르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멩세코 인도의 자유, 인도의 독립 성립을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국가를 위해 바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각국 대표 각하분들의 노력이 큰 성과를 거두어 오카쿠라 카쿠조 (岡倉覺三) 선생의 꿈이 실현되기를, 손중산 (孫中山) 선생의 꿈이 실현되기를 (오카쿠라 카쿠조와 쑨원 모두 이름바 ‘아시아론자’ 로서 아시아의 단결을 통해 서양의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고자 했다.) 전인도 민중의 이름으로 부탁하는 바입니다, 나아가 일본이 대동아공영권 확립이라는 목표를 완성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본 회의에서 채택된 이 대동아공동선언이 대동아 민족의 해방헌장이 되는 것을 넘어 아시아 전 민족의 해방헌장이 될 수 있기를, 이 1943년의 공동선언이 인류 역사상 기억될 대헌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저는 일본 대표 각하를 비롯한 각국 대표 각하의 인도 독립에 대한 원조에 대해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함과 동시에, 반드시 영국을 인도에서 몰아내고 자유인도를 하루라도 빨리 확립시킬 것임을 천명하며 저의 소견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중국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⑨ 바모의 추가적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 연설) (1943.11.6)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장징후이의 연설이 끝난 후 바모가 손을 든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 채) 버마국 대표 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바모 (Ba Maw) 버마국 내각총리대신. 바모의 추가적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 연설) (1943.11.6) (영어)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 그리고 열석자 여러분, 버마국의 대표로서 발언을 허락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합니다. 대동아회의의 주요 의제도 이제 완료되어 이에 대해 동경을 느끼는 바입니다만, 여기서 대동아회의의 목적과 불가분한 문제가 하나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인도 독립 의 문제입니다. 이번 회의의 배석자로서 자유인도임시정부의 주석이신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께서 참가 하고 계십니다. 찬드라 보스 각하께서 이 대동아회의 석상에 참석하신 것은 인도의 독립문제가 이렇게 대동아건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제의 회의에서 저는 “인도의 자유 없이 아시아의 자유 없다” 라고 언명한 바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이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버마국의 사람들은 인도의 독립문제에 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견해를 충분히 밝힐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며 본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장 큰 공헌을 하고 계시는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께서 본 회의에 참석하신 기회를 얻으신 만큼, 저는 인도독립의 문제를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의 입으로 직접 듣기를 친히 희망하는 바입니다. 이에 저는 어디까지나 인도독립문제의 서론으로서, 저의 인도독립문제에 관한 소견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버마와 인도는 오랜 세월 가시밭길을 함께 괴로워하며, 함께 힘을 합쳐 걸어왔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고난의 괴로움을 함께 끝내기 위하여 공동의 적을 함께 바라보며 불리함 속에서도 계속하여 싸움을 이어왔습니다. 이전까지 버마는 인도에 비해 많은 방면에서 뒤떨어져 있었습니다. 지금의 버마가 가지고 있는 정치철학, 정치정책 및 여러 가지 기술은 모두 인도에서 배운 것이었습니다. 또한 또한 종교 방면에서도 버마국은 인도를 스승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버마국 대표로서 인도에 대한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인도와 버마가 오랜 세월동안 비참하게 고통 받아온 이러한 상황은, 아마도 그것을 실로 목격하고 경험한 우리들 이외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투쟁은 가장 악랄하고 가장 비인도적인 적 영국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투쟁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인민이, 정예무기에 맞서 싸우는 투쟁 이었습니다. 때문에 인도와 버마는 항상 정예무기의 앞에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현재의 세상은, 누가 무엇을 주장하든 결국에는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무기가 없다면 아무런 것도 이룰 수 없는 세상입니다. 우리들은 오랜 투쟁을 거치면서 하나의 신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바로 인민이 준비되지 않으면, 인민에게 무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정예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적에게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교훈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전까지의 인도와 버마의 영국에 대한 투쟁은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 아닌, 무기와 사람의 싸움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긴 투쟁 속에서 수많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이 바로 본 회의에 참가하신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의 이력에 대해서는 이곳에 계시는 각국 대표 각하 및 열석자 여러분께서 모두 충분히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기에 저는 이에 대해 다시 설명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찬드라 보스 각하가 신흥 인도를 대표해야할 위인이자 위대한 지도자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께서 동양에 나타나시어 영국에 대한 인도의 투쟁을 스스로 이끌며 나아가려는 결의를 보이는 것과,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에 감탄하며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각하께서 나타나시어 아시아 10억의 민중은 단결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인도의 투쟁 역시 반드시 성공적으로 끝날것이라는 걸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인도의 자유 없이 아시아의 자유 없다” 라는 저의 주장을 반복하는 바입니다. 저는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수세기 전 영국이 제국주의의 마수를 대동아에 뻗쳐 동양에서 장대하고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것도 실은 인도의 물질을 충분히 착취하고, 인도의 인적 자원을 착취했기에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이를 저희 버마의 경험을 통해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영국이 버마를 제패한것도, 오랜 기간동안 버마를 영국에 발밑에 둘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인도의 물자를 활용하고 인도의 병사를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영국이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정책으로, 영국은 전통적으로 타국을 정복함에 있어서 반드시, 자국의 병사를 사용하지 않고, 인도군 혹은 다른 식민지의 군대를 이용해 왔습니다. 필시 이번 세계대전에서도 영국은 마지막 소련군 1명까지도, 마지막 미군 1명까지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 할 것입니다. 버마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북쪽으로 그 마수를 뻗으려 할 것입니다. 영국은 어떻게든 인도의 자원과 인도의 인민을 이용해 악랄무도한 정책을 이어가려 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영국을 비롯한 대동아의 숙적을 이 성스러운 천지에서 추방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영국을 인도에서 완전히 추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일단 한번 영국을 인도에서 추방하면, 과거 흥했던 ’대영제국‘ 의 힘도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저는 이 이상 인도의 독립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삼가겠습니다. 저는 제가 하지 못했던 인도의 독립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께서 피력해주셨으면 하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 대동아의 여러 국가 및 민족이 멩세코 인도독립운동에 전력을 다하여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 및 인도국민군과 협력하여 소망이었던 델리로의 진군 을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내기를 바랍니다. 이를 끝으로 저의 소견을 마치겠습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중국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⑧ 장징후이의 추가의견 (1943.11.6)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 채) 이것으로 예정되었던 의사일정은 종료되었습니다. 이와 별도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 대표분 계십니까?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장징후이가 손을 든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 채) 만주국 대표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장징후이(張景惠) 만주국 국무총리대신. 장징후이의 추가적 의견 (1943.11.6) (중국어) 만주국 대표로서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 그리고 열석자 여러분의 허락을 받아 이에 한 말씀 드리려 합니다. 만주국 대표로서 한마디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방금 이렇게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의 대동아회의가 대동아건설에 대해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매우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은 각국 대표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확신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번기회에 이러한 종류의 회의가 앞으로도 수시로 이번과 같은 방식으로 개최되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이를 끝으로 제 소견을 마치겠습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⑦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과 각국대표들의 의견 (1943.11.6)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대동아회의의 이틑날인 1943년 11월 6일, 이날의 회의는 일본이 '대동아공동선언(大東亞共同宣言) 을 제안하고 이에 대한 각국의 의견을 청취하여 대동아공동선언을 통과시키는 데 주요 목적이 있었다. (실제로는 공동선언의 작성과 같은 것은 이미 사전에 이루어졌으며 이들 국가들과의 의견 조율 역시 사전에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1943년 11월 6일 (토) / 09시 58분 회의 개회.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 지금부터 오늘의 회의를 개시하겠습니다.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오늘은 구체적인 회의를 진행하려 합니다. (이후 착석)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 일본 제국의 대표로써, 저는 여러분께 대동아공동선언안을 의안으로 제출합니다. 먼저 제안 안을 낭독하겠습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대동아공동선언(大東亞共同宣言) 본래 세계 각국에게는 저마다의 자리가 있고 서로 의지하고 돕고 모든 국가가 함께 번성하는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은 세계평화 확립의 근본이다. 그러나 미영은 자국의 번영을 위해 다른 나라나 민족을 억압하고, 특히 대동아에 대해서는 질리지 않는 침략과 착취를 하고, 대동아를 예속화하려는 생각을 버리지않고, 마침내 대동아의 안정을 밑바닥부터 뒤집어 버리려고 했다. 대동아전쟁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대동아각국은 대동아를 미국과 영국의 족쇄에서 해방시키고 대동아전쟁을 완수하며 자존자위를 완성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한다. 세계 평화 구축을 위한 대동아 건설의 기본 지침은 다음과 같다. 1. 대동아 각국은 협동하여 대동아의 안정을 확보하고 도의에 근거한 공존공영의 질서를 건설한다. 1. 대동아 국가들은 서로의 자주와 독립을 존중하고 서로 조화롭게 협력하며 대동아에 친밀감, 화합, 화합을 구축한다. 1. 대동아 각국은 서로의 전통을 존중하고, 각 민족의 창조성을 늘려 대동아 문화의 기치를 높힌다 1. 대동아 국가들은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대동아의 번영을 증진하기 위해 호혜주의를 바탕으로 긴밀히 협력한다. 1. 대동아 각국은 모든 나라와의 교류를 깊게 하고,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널리 문화를 교류하고, 널리 자원을 개방해 세계의 발전에 공헌한다. (이후 착석)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 제안자로서 제안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드리려 합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의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제안 설명 東條英機の「大東亜共同宣言」に関する提案説明 (1943.11.6) (일본어) 본 회의에 참석하신 각국 대표 각하께서는 어제의 본회의에서 본 회의의 의제인 대동아전쟁의 완수와 대동아건설의 방침에 대하여 시종일관 열정을 가지고 실로 유익한 소견을 피력하셨습니다. 본 대표는 이러한 소견들을 적극적으로 경청하여 본 회의에 참석하신 각국 대표 각하분들과 소신을 함께하는 동지로써 공동의 목적 달성을 위해 만진하는 충만한 열정을 함께 가지게 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본 대표는 어제 회의에 참석해주신 각국 대표분들께서 보여주신 고매한 의견과 확고한 투지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고 크게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각국 대표 각하께서 대표하시는 대동아 각국의 국민들은 본 회의에서 보여지는 열렬한 기백을 접하며 더욱더 공동의 목적 달성에 매진할 새로운 결의를 다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이러한 참가국 대표 각하분들의 의견을 충분히 참고하여 방금 낭송한 바와 같은 대동아공동선언의 안을 본 회의에서 심의하는 것이 본회의의 성과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에 본 안을 제안드리는 바입니다. 내용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본안의 제1단 에서는 세계 평화 확립의 근본적 요의를 들어내고 , 제2단 에서는 대동아전쟁 발발의 원인을 지적하며, 제3단 에서는 대동아전쟁의 완수와 대동아건설에 대한 결의를 표시하며 제4단 에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대동아건설의 강령이 필요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강령의 경우 제1항은 공존공영(共存共榮)의 원칙 , 제2항은 독립친선(獨立親和)의 원칙 , 제3항은 문화양양(文化昂揚)문화의 원칙 , 제4항은 경제번영(經濟繁榮)의 원칙 , 제5항은 세계 진보공헌(世界進運貢獻)의 원칙 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1항은 대동아건설의 방법 을 제시하고 있으며, 제2항 내지 제4항은 대동아 각 상호간의 관계 를 주창하고 있으며, 제5항은 대동아와 대동아 밖의 여러 국가들과의 관계 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를 본 회의에 참석하신 대동아 각국 대표 각하분의 이름으로 공동선언 하려 합니다. 이는 세계에 공적으로 대동아 각국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으로, 조약과 같은 취지와는 다른 것입니다. 이상으로 저의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이후 착석)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본 제안에 대해 의견이 있으신 분은 발언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왕징웨이가 손을 든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중화민국 대표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왕징웨이의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의견 汪精衛の「大東亜共同宣言」に関する所見 汪精衛對《大東亞共同宣言》的意見 (1943.11.6) (중국어) 왕징웨이 (汪精衛) 중화민국 (난징) 국민정부 행정원장. 의장 각하, 각국 대표 각하, 그리고 열석자 여러분, 방금 의장 각하로부터 대동아공동선언안이 제출되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만강의 성의를 가지고 찬성과 옹호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어제 의장 각하께서는 대동아전쟁의 목적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현재 국력의 전력을 다하여 영미의 격멸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어째서 영미를 격멸하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이 영미의 지위를 대신 하기 위함은 결코 아닙니다. 이는 영미의 지배 밑에 있는 대동아 민중을 해방 시키기 위함입니다. 이는 대동아 각각의 민족이 독립자주 (獨立自主)를 획득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전 영미의 전통적 지배정책과는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영미의 동아에 있어서의 전통적 지배정책은 강탈과 착취였습니다. 때문에 영미는 동아인에게 독립과 자주를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정부가 영미를 격멸하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일본은 영미의 격멸을 통하여 영미의 착취적 강탈 정책을 소멸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일본은 동아 각국으로 하여금 이들이 독립자주 를 획득하게 하기 위해 원조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동양의 국가들이 공존공영할 수 있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확실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믿는 것은 바로 대동아전쟁의 필승입니다. 왜냐하면 대동아전쟁은 대동아 각국으로 하여금 일치단결하게 하여 각각의 국가와 민족이 독립과 자주를 얻게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대동아의 공존공영을 실현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명정대한 목적에 강탈과 착취는 대항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대동아전쟁은 필승입니다. 타이 왕국은 자주독립을 위하여 분투하였고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만주국 역시 이와 같습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필리핀 공화국, 버마국, 자유인도임시정부 역시 이와 같은 자주독립을 위한 분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중국은 자주독립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선진국의 원조가 필연적임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자신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노력의 결과로써 국력과 민력을 증진시켰을 때만 비로소 중국은 공존공영에 기여하는 일부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동아공동선언은 5개의 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동양의 도의정신(道義精神)에 근간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동양 각국이 서로의 독립을 존중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들이 각각의 노력을 통하여 공존공영을 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동아전쟁과 대동아의 건설은 결코 다른 별도의 일이 아닌 하나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대동아의 공영권 건설은 대동아전쟁의 승리 이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대동아전쟁의 과정속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의장 각하께서는 어제 대동아선언의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동아공동선언안이 제출되었습니다. 이는 어제 이야기하신 원리를 열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선언이 이렇게 충실한 내용을 가진다면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은 이론이 아닌 현실이 되어 반드시 실현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런 뜻에서 저는 만강의 성의를 가지고 찬성과 옹호의 뜻을 거듭 표명하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여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대동아공동선언의 제5항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대동아공동선언의 ‘정신’은 소위 ‘먼로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먼로주의는 ‘아메리카인의 아메리카’라 주장하지만, 이는 인종적 편견에 근거한 것으로, 타인종을 배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대동아공동선언은 동아권으로 하여금 영미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에 목적 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독립자주를 통해 공존공영의 실현 을 이루는 것이 대동아공동선언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대동아공동선언은 대동아를 보장하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의 기초에도 기여하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로써 저의 소견을 마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의장 각하에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타이 왕국 대표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완 와이타이콘의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의견 ワンワイタヤーコーンの「大東亜共同宣言」に関する所見 旺·威泰耶康對《大東亞共同宣言》的意見 (1943.11.6) (영어) 완 와이타이콘 (Wan Waithayakon) 타이 왕국 내각총리대신 대리. 의장 각하, 각국 대표 각하, 그리고 열석자 여러분, 저는 방금 제출된 의안을 꼼꼼히 읽으며 제안자인 일본 측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 내용이 충실함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대동아공동선언안을 통독해보면, 대동아건설의 원리와 대동아의 각 국가 및 각 국민들의 성전(聖戰)을 완수하기 위한 결의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문화 방면에 걸쳐서는 대동아 문화 및 문명을 최고도로 발휘하여 세계의 진보에 공헌해야 함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친화(親和)에 의한 밀접한 관계의 중요성 역시 충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대동아의 경제발전은 호혜의 정신, 긴밀한 협력의 토대에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동아 및 대동아 밖의 국가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본 선언안이 가장 현실의 상황을 잘 반영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는 대동아공동선언의 정신 은 영미 양국이 대동아에서 침략과 착취의 정책을 불평등조약과 같은 무력속의 억압에 근거하여 펼쳤다는 것 을 상기해보면 이와는 완전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대동아 및 대동아 밖의 국가의 관계는 호혜의 원리에 근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이는 실로 명확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타이 왕국의 총리대신의 이름으로 저는 본 회안에 대하여 만강의 찬성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중국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만주국 대표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장징후이의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의견 張景惠の「大東亜共同宣言」に関する所見 張景惠對《大東亞共同宣言》的意見 (1943.11.6) (중국어) 장징후이(張景惠) 만주국 국무총리대신. 만주국 대표로서, 방금 일본 대표 각하께서 제의하신 대동아공동선언안에 찬성과 옹호의 뜻을 피력하고자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의장 각하 및 각 대표 각하께서는 이를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대동아전쟁은 대동아의 해방전쟁인 동시에 악영무도한 영미를 격멸시키기 위한 성전입니다. 영미의 세계 제패라는 야망을 꺽지 않는한, 세계의 평화는 절대로 찾아올 수 없고 인류의 복지 또한 바랄 수 없습니다. 때문에 대동아전쟁을 완수하는 것만이 새로운 동아를 건설하는 동시에 세계의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본 선언의 안팎에서 이야기하는, 무릇 세계의 인종을 인도(人道)로써 사랑하고 정의를 존중해야한다는 뜻에 공감하며 대동아건설의 발전을 축복하며 믿고 있습니다. 대동아의 숙적인 영미는 전쟁을 수많은 물량에 의지하여 세계를 자신의 발밑에 두고 유린하며 착취한다는 목적만으로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벌이며 수많은 인명을 살육하고 도처의 국토를 침해하는 비인도적인 모습의 끝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실로 전 인류의 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때문의 방금 일본 대표 각하께서 제의한 공동선언은 대동아의 번영, 세계의 항구적 평화의 확립, 인류의 복지증진 달성을 기할 수 있는 실로 천경지의(天經地義, 하늘이 바른 길을 얻고, 땅이 적절 함을 얻는 길이라는 뜻으로, 정당하고 변할 수 없는 도리를 이르는 말.) 의 대강령이라 할 수 있으며 대동아의 10억 민중에게 일대의 광명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만주국 대표로써 이에 만강의 열정을 가지고 찬성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필리핀 공화국 대표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호세 라우렐의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의견 ホセ・ラウレルの「大東亜共同宣言」に関する所見 何塞·帕西亞諾·勞雷爾對《大東亞共同宣言》的意見 (1943.11.6) (영어) 호세 라우렐 (Jose P. Laurel) 필리핀 제2 공화국 대통령.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 그리고 열석자 여러분, 저는 필리핀 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함께 이 역사적인 의안에 대해 찬성과 옹호의 뜻을 표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며 만강의 성의를 가지고 대동아공동선언안에 찬성하는 바입니다. 또한 동시에 본 의정서가 신속하게 만장일치를 통하여 본 회의에서 채택되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의장 각하께서는 통상시의 명확한 언어로 대동아공동선언안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선언서는 틀림없이 대동아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의 목소리, 희망, 꿈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의안을 신속하게 통과시키는 것을 제안드립니다. 대동아공동선언은 어떠한 세계 각국을 도발하고, 개성을 가진 각국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동아공동선언은 단지 동아에 있는 여러 국가와 민족의 개성을 인정하고 이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선언서에서는 대동아전쟁의 원인을 명확하게 표기하고 있고, 대동아건설의 근본적 원리를 명확하게 표기하고있으며 나아가 대동아의 각 국가 각 민족이 일어나 한마음이 되어 이 전쟁을 완수하고 대동아건설을 확립하여 동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항구적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선언서를 채택시키는 것이, 미국이 소위 이야기하는 ‘먼로주의’, 유럽이 소위 이야기하는 ’대륙주의‘ 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동아공동선언은 인류 도덕상의 하나의 대헌장과 같은 것입니다. 이 빛나는 선언으로 인해 대동아의 일각에 빛이 다시 찾아왔음이, 나아가 세계 인류에게 빛나는 광명이 다시 한번 도래하고 있음을 확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대동아공동선언에서는 인종적 차별을 철폐하고, 각국이 가진 고유의 전통문화를 존중, 고양시키며, 각국의 독립을 상호 존중, 옹호해야 함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이러한 고매한 정신을 충분히 포함하고 있는 대동아공동선언은 실로 역사적 일대의 선언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회의에 임하여 작지만 필리핀 공화국을 대표하여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이 중대선언인 역사적 공동선언에 진임으로 열의있는 찬성과 옹호를 표하며 본 소견을 통하여 본 의안이 채택되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입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중국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버마국 대표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바모의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의견 バー・モウの「大東亜共同宣言」に関する所見 巴莫對《大東亞共同宣言》的意見 (1943.11.6) (영어) 바모 (Ba Maw) 버마국 내각총리대신.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 그리고 열석자 여러분, 어제 회의에서 우리는 대동아의 각 대표를 대표하여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것임을, 아시아는 하나임을, 아시아인은 일치 단결하여 이 아시아라는 성지에서 평화와 경사, 진보, 그리고 운명을 함께 해야 한다 는 원칙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와 같은 원칙은 구체적 정책, 구체적인 계획이 되어 이 대동아공동선언안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공동선언안이 공동선언안이 세계의 어느 헌장보다 더 훌륭하고 빛나는 헌장임을 확신하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대동아공동선언안에는 우리 동양인들이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든 이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언문의 전문을 한번 보면, 공존공영, 상호의 자유독립, 상호간의 문화의 전통을 존중, 각 민족의 창조성을 신장시킨다 와 같은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말할 필요 없이 동양의 사상을 보여주는 것이며, 아시아는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동양민족은 서로를 함께 돕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신을 표명한 것입니다. 대동아공동선언안의 특징은 본 선언이 ’아시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대동아 밖의 여러 국가와의 관계를 명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이 대동아공동선언의 위대한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는 공동선언안의 근본 원리와 정신에 만강의 찬성과 옹호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여기서 찬성의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대동아공동선언에서 가장 감동하는 부분은 제5항으로, 5항에 포함되어 있는 근본정신은 우리 상호간의 관계는 평등, 정의, 호혜의 3원칙에 입각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3원칙에 따르면 인종적 차별은 철폐되어야 합니다. 인종적 차별을 행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제5항의 근본정신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5항의 내용을 특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현실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항상 현실파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먼저 대동아의 안정을 우리의 중대한 책임으로 삼아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각국은 지금은 평화롭게 생존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과거부터 이러한 생존권을 빼앗긴 나라는 항상 다시 생존권을 되찾기 위해 투쟁을 벌여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들 역시 끝까지 투쟁하여 생존권의 최종적, 완전적 확보라는 최후의 승리를 획득해야 합니다. 선언문을 통독, 연구하면서 저는 이상가로서 선언문의 문구가 약간은 좁은 의미에 머무르는 것 같다 는 생각도 가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현실가로서 현재의 정세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먼저 대동아 속에서의 안녕과 질서를 가장 중대시 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동아공동선언에 포함되어 있는 이 정신을 장래에는 이를 더 폭넓게 적용하여 아시아의 모든 문제를 포함할 수 있도록 여유를 충분히 가지고 나아갈 수 있게 해야합니다. 앞에서 반복한 대로 우리는 현재의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선 이상가여서는 안됩니다. 현실가여야 합니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재의 정세가 요구하는 중대사입니다. 세계는 일찍이 암암리에 약소국들이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대국이라할지라도 고립되게 되면 존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전세계의 주된 경향은 국가들의 단체적 행동에 의한 안정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본능인 이 단체생활이 현재의 세계의 정치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아메리카인이 ’아메리카인의 아메리카‘ 를, 유럽인이 ’유럽인을 위한 유럽‘ 을 제창한다면, 이를 매우 불쾌하게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럼에도 구미인들이 이러한 그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저는 감히 ’아시아인의 아시아‘ 라는 좁은 의미의 정신을 주창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대영제국의 정치기구만 보더라도 역시 단체행동에 의한 안정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국가들이 이러한 정책을 추종하고 있는 이상, 우리 대동아의 여러민족 역시 ’아시아인의 아시아‘라는 기치 아래 일치단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뜻에서 저는 대동아공동선언에 만족을 표하는 바이며, 본 선언을 통하여 우리는 힘차게 세계로 나아갈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세계서 강력한 힘을 보유하며, 세계 정세가 요구하는 대로 힘에는 힘으로 대항하고, 단결에는 단결로 대항할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일치단결하여 우리들이 항상 이야기하던,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이상인 ’빛나는 아시아‘ 를 다시 한번 이 지구상에 실현시키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중국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이상 또 다른 발언이 없는 것으로 보이기에, 오후의 회의에서 본 의안을 채결에 붙이기로 하고 지금부터 오찬을 위해 휴회를 선언합니다. 오찬 후의 회의는 오후 12시 45분부터 재개하겠습니다. 추가로 한가지를 더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오후의 회의는 추축국 측의 대표 및 대표 지위를 가진 제국관민들을 방청을 위해 초대하여 계속하려 하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후 퇴석)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오후 12시 45분, 회의 재개.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 지금부터 회의를 재개하겠습니다. 오늘 오전의 일정의 의안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것은 이것으로 종료하겠습니다. 이어서 지금부터 의안의 채결을 진행하겠습니다. 이에 다시 한번 의안을 낭송하겠습니다. (이후 제안을 낭독, 이후 착석)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 채결은 기립을 통해 진행하려 합니다. 방금 낭독한 의안을 본 회의에서 채결하는 것에 찬성하는 대표는 기립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전원 기립)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한 채) 만장일치로 의안을 채택하겠습니다. 이로서 대동아공동선언이 성립되었습니다. 본 공동선언은 대동아회의 사무국을 통해 발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착석, 박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⑥ 바모 (버마국) 의 연설 (1943.11.5)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오후 15:27 (입장, 착석)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 지금부터 회의를 재개하겠습니다. 계속하여 각국 대표분들의 의견 발표가 있겠습니다. 버마국 대표 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바모 (Ba Maw) 버마국 내각총리대신. 바모의 연설 (1943.11.5) (영어) 의장 각하, 각국 대표 각하 및 열석자 여러분, 저는 소견을 개진하기에 앞서 조금 망설임을 느낍니다. 생각건대 본회의와 같은 경우, 우리 일동의 가슴속에는 당연하게도 오직 하나의 유일한 생각만이 있습니다. 이를 표현하는 말은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지지만, 우리에게는 하나의 마음, 하나의 의도, 하나의 목적에서 비롯된 단 하나의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저의 소견 중에서 각국 대표 각하 분들에 의해 이미 개진된 사상, 감정, 사실이 여러번 반복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렇게 되풀이하여 말하는 것 조차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버마 역시 일본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기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저는 이전 각국 대표분께서 하신 말씀과 똑같은 말을 하고, 같은 소견을 전달하기 위해 본국 버마에서 왔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결국 우리 모두가 같은 소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서서 주위를 바라보며 제 가슴에 떠오르는 것은 과거의 정치정세 속에서 출석에 대해 여의치 않게 여기는 서양의 여러 회의 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이들 회의에서도 다수의 사람이 모여 서로를 정중히 취급하고, 담소를 나누며, 각종일 및 전망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회의를 보면 주인들끼리만 모여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고 항상 마치 고대 로마의 그리스인 노예가 된 것 같은 느낌 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회의의 공기는 전혀 다릅니다. 이 회의에서 나오는 감정은 어떻게 표현해도 과장할 수 없습니다. 수십년 동안 저는 버마가 ‘아시아의 꿈’ 을 계속하여 이루길 빌어왔습니다. 저의 아시아인으로서의 끓어 오르는 피는 항상 다른 아시아인의 부름을 받아왔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저는 제 꿈속에서 아시아가 호소하는 소리를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꿈에서 들었던 아시아의 함성을 현실로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시아인들은 이 포효, 우리들의 어머니의 부름에 따라 여기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회의장에서 언급된 각국 대표 각하의 소견에 대해 만강의 감동으로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런 소견들은 모두 저의 기억에 남았고 감동으로 가득 찼습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저는 마치 아이를 불러 모으는 어머니 아시아 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대표 각하분께서 어떤 이야기를 하시든, 어떠한 지역적 특색이 더해지든, 이 회장에서 흐르는 것은 단 하나의 ‘목소리’ 였기 때문에, 어떤 소견이든 거기에는 의도와 목적, 그리고 정신의 통일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를 우리들의 아시아를 위한 피와 함성이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시아를 마음으로 생각할 때가 아니라, 장래적으로 피로서 생각해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몇일에 걸쳐 버마에서 일본에 온 것도 이 아시아를 피로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이루어졌던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연설 중에서도, 가장 기억해야할 것은 의장 각하 의 소견입니다. 의장 각하께서는 평소와 같이 투쟁의 연설을 하셨지만, 오늘의 연설은 투쟁의 연설을 넘어 탄생의 연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장 각하께서는 마치 진정한 무사가 자신의 무기를 선택하는 것처럼 한 마디 한 마디를 엄격하게 선정하셨고, 그 말들을 유선화시켜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배치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저는 각국 대표 각하분들과 함께 의장 각하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세계의 흐름은 정말로 급단적이고 너무나 빨라서 대동아전쟁의 이전에는 오늘과 같은 만남이 이루어질 것 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시아인이 오늘날과 같이 여기에 이렇게 모이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저는 의장 각하의 연설중에서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라는 새로운 세계가,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의 세계기구가 현실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겨우 몇 년전만 하더라도 아시아인은 서로 분할되고 소외되어 서로가 서로를 알지못하고 서로를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향토로서의 아시아는 존재하지 않았고, 아시아는 ‘하나’ 가 아니라 분열되어 있었으며, 아시아는 자신을 분할한 적의 수와 똑같이 분할되어 있었고 아시아는 대부분 어떠한 타국을 그림자처럼 추종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길고도 긴 시간이었던 과거에는 오늘날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있는 것처럼 아시아의 각 국민이 만나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 불가능했던 꿈은 이제 실현되었습니다. 그것도 우리중 가장 대담한 몽상가도 꿈꿀 수 없었던 형태로 현실화 되었습니다. 오늘 대동아회의는 동아의 수도 도쿄에서 개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동아회의를 통하여 신세계의 신질서가, 아시아인이라는 새로운 국적이 탄생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국민은, 아시아가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진리속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동포로서 모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동아 국민의 회합은 무(無)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마술사의 비둘기처럼 모자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는 동아에서 구세계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오랜 기간의 여러 사건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를 가능하게 했던 사건들은 아주 거대하게, 오랜 기간에 걸쳐 넓은 범위에 영향을 끼쳐온 사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 의한 아시아 지도권의 장악, 무적인 일본군의 전격전 작전에 의한 동아의 석권 및 반아시아 세력의 격퇴,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전 동아 및 아시아의 진전에 한 획을 긋고 있는 버마 및 필리핀의 독립 및 양 국가 국민의 적 격퇴를 위한 결집등, 그 외에도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위대하고 중요한 사건등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서양에서는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저의 소견을 잠시 이어가기 전에, 이러한 내용은 이전 다른 각국 대표 각하분들께서도 언급하신 내용이지만, 저는 이러한 내용을 버마국의 말로서 다시 한번 말하는 것도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고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는 바 이렇게 같은 내용일지라도 다시한번 말씀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대동아전쟁 전에는 동양을 완전한 변화시킨 사건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대동아전쟁의 발발 전까지 오랫동안의 방황속에서, 황야속에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속에서 우리를 구출해준 것은 바로 동양의 지도국가 일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전 동아는 일본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저는 전 동아가 흔연히 이렇게 일본이 베풀어준 은혜에 대해 크게 보답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저는 오늘의 만남이 정말 뜻 깊은 행사라 감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의장 각하의 말씀대로, 우리는 정의, 평등, 호혜에 근거하여 나를 살리고 모두를 살린다는 대원칙 아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나가고 있습니다. 동아는 모든 방면에서 보아도 하나의 자체적인 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적으로는 자급자족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넘쳐날 정도로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전략적으로는 어떠한 적에게도 지지하고 적의 공격을 격퇴할 수 있으며, 정신적으로는 이미 ‘하나’ 가 되었으며, 자기 자신만의 천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시아인들은 수세기 동안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고 때문에 엄청난 손실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인은 결국에는 아시아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 덕에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다시 깨닫고 이에 따라 행동을 개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아시아인은 반드시 다시 아시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며, 앞으로 이러한 간단한 진리를 어떻게 따르는가에 따라 아시아의 전 운명이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교훈을 아주 비싼 댓가를 치루며 체득한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서 이러한 소견을 말하는 바입니다. 저희 버마 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가 및 국민도 이러한 교훈을 얻기 위해 굳은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버마의 경우, 우리는 자비도, 정의심도 없는 적에게 댓가를 치뤘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모든 형식에 있어서 죽음과 파괴의 댓가를 치루고 있습니다. 이전의 겨우 1,600만명에 불과한 버마인이 버마인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 국가로 태어나기 위해 벌였던 투쟁은 항상 실패를 겪었습니다. 여러 대에 걸쳐 우리의 애국자는 분발하여 민중을 이끌고 타도영국에 매진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도 아시아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1,600만명이 아닌 10억의 아시아인이 단결하면 쉽게 성취할 수 있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여 우리의 저항은 적에게 항상 부족하고 적에게 가로막혀 지금으로부터 15여 년전에 일어난 전국적 반란 (1930년 12월 22일 사야 산 (Saya San) 이 일으킨 반영 반란을 의미하는 것.) 역시 성공하지 못하고 유린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과정에서 버마의 마을들은 불탔고, 부녀자들은 학살당했고, 지사들은 감옥에 같이거나 사살당하거나 추방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반란은 패배로 끝났지만, 계속하여 저항의 불꽃은 계속되며 버마를 비롯한 아시아의 저항은 차례차례 반복되며 버마인 모두에게 이러한 저항의 불꽃이 타오르게 하였고 이러한 불꽃속에서 투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우리의 힘은 이제 1,600만 버마인의 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10억 동아인의 힘이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동아가 이렇게 강력해진 이상, 버마는 이제 강력하며 불패하는 것입니다. 이상 저는 동아를 하나로 보고 소견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만, 사실 동아는 지금 완전히 하나로 뭉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동아가 아직 불완전하고 여기 저기에 간극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는 바로 인도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인도를 제외하고 동양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는 특별히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항상 ”자유로운 인도 없이 자유로운 버마 없다“ 라고 선언해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자유로운 인도 없이 자유로운 아시아 없다“ 라고 명확하게 단언하는 바입니다. 인도는 반 아시아세력에게 아시아 침략의 무기고이자 보고이자 발판 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침략자를 수많은 보물이 있고, 자원이 있고, 인력과 물력이 있는 이 인도에서 추방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도의 자원을 적의 손에서 되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저는, 인도의 독립은 아시아의 독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며, 인도의 투쟁은 아시아의 투쟁이며, 우리의 전쟁이며, 우리의 전쟁이라 단정지어야 한다는 저의 소견을 의장 각하를 비롯한 각국 대표 각하 분께서 동감하시리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저는 수바스 찬드라 보스씨가 이러한 저의 소견이 조금도 과장이 없으며 절대적인 신념 속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바입니다. 다음으로 대동아전쟁 및 동아의 신질서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이에 관해서는 각국 대표 각하분들이 앞에서 서술하신 만큼 제가 크게 추가적으로 서술하는 바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저희는 그럼에도 이를 지금부터 극히 개념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 이번 전쟁은 절체절명(絶體絶命) 의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아에게는 이 전쟁에서 이기고 영원히 살거나 , 혹은 패배하고 영원히 멸망하거나 , 이 둘을 제외하면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대동아전쟁은 실로 동아와 동아민족에 있어서는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싸움이라 할 수 있으며, 장래 천년에 걸친 동아의 독립, 평화, 번영을 위한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을 용감하게 직시한다면 어떤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버마국은 현재 실로 가공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만, 저는 동시에 전 동아 각국을 대신하여 말씀을 드린다고 믿는 바입니다. 만약 동아가 일체화되어 강력해지고 자급자족의 경지에 도달한다면 어떠한 일도 이룰 수 있고, 10억의 동아민족이 결속하여 일어선다면 어떠한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고 어떠한 평화도 이룰 수 있습니다. 동아신질서와 경제에 관해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의장 각하의 명료한 논의와 성명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의장 각하께서는 독자적인 용매와 결단으로서 정의, 호혜 및 독립, 주권에 근본원칙을 두고 상호 존중할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명료하고 확호한 말로, 동아의 헌장으로서, 동아의 신질서를 존속하게하는 헌장으로서 영원히 남을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와 같은 여러 원칙에 기초를 두는 동아의 신질서는 바위처럼 영구히 흔들림없이 존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동아의 신세계는, 그 안정을 위해 필요로 하는 물질적 조건을 이미 구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연은 우리 동아의 신세계에 물질적 자원을 아낌엇이 베풀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적으로는 우리의 동아를 적의 위협으로부터 안정시키고 확고하게 하는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물질적 조건만으로는 충분하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만큼, 우리는 이 물질적 결집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우리는 이해와 관용에 근거하여 개인은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개인을 위한다라는 근본의식을 기초로하는 정신적 결집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개인도 국가주의를 위해, 국가 스스로도 국가주의를 위해 노력해야하며, 각국은 자신의 영역 뿐만 아니라 단일의 동아라는 영역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느낌이나 구호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를 절대로 완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를 완수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 웅대한 계획을 반도 실현하지 못하고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상이 현재 우리가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국 대표 각하분들께서 강조하시는 바와 같이, 우리들 각국 국민은 각자의 길을 걸으며, 각자의 궤도를 운행하며, 각자의 자강의 길을 강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자국에서 선량한 국민의 자격을 갖추고 나아가 선량한 아시아인, 선량한 이웃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여러번 말씀드렸듯이, 버마국이 동아에 공헌하는 최선의 길은 강력한 버마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버마국의 힘은 즉 동아의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중화민국도, 타이 왕국도, 만주국도, 필리핀 공화국도, 인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동아의 힘은 자유롭고 평등한 자국의 영역에서 세계를 향해 약동하고 활동하고 협력하여 각국의 각각의 힘이 결집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상 말씀드린 동아의 원칙을 현실의 상황에 적용해보자 합니다. 저의 조국 버마국을 예를 들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버마는 현재 대동아전쟁의 최전선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어떠한 고난이, 어떠한 공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수많은 인명과 가정을 잃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오늘은 살아있지만 내일은 이세상에 없을수도 있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각국 대표 각하분께서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버마국이 이런 참화를 직면하고 있것은 버마국 스스로만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동아를 위해서이며, 전선의 일부를 공동으로 방위함으로서 동아의 다른 지역의 방위에 부담을 덜기 위함 입니다. 저는 버마국이 끝까지 최전선을 지켜나갈 것임을 확언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저는 다른 대동아 각국이, 현재 버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격전을 버마만의 전쟁이 아닌, 자신의 전쟁으로 생각하고 이 대동아전쟁은 일체일가 (一體一家) 의 원칙 아래 전쟁을 치러야 하며 대동아의 총력을 통하여 전쟁을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우리는 대동아의 방위를 위해선 어떠한 나라에서도, 어떠한 전선에서도 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전력과 모든 자원을 모아야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동아가 일체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 및 기획도 일체화 되어야 하며, 그 외에도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일체화 되어야 합니다. 만약 자신만을 위해서 고립주의를 선택한다면, 이는 최대의 배신행위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를 멸망으로 이끄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선택은 고립주의를 선택한 고립주의자 자신들이 우선 파멸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듭하여 말씀드리고 있지만, 버마는 앞으로도 동아의 제일선이 될 수 있도록 버마는 아시아인으로서, 아시아를 위해서 이 전쟁이라는 위기를 극복할 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동아 각국도 당연히 이를 본받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제가 이렇게 버마의 전황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아 이에 대해 각국 대표분들의 관용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또한 이러한 발언은 제가 자국의 영역 내에서 현실적으로 총력전에 종사하고 있는 국민의 대표로 나온데서 비롯된 것임을 양해해주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버마 국민은 현재 최전선이라는 상태 아래에 생활하고 있고, 그 가정도, 생명도, 재산도,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가치가 있다 생각되는 모든 것이 날마다 적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거리낌 없이 말씀드리면 저는 가슴속에 탄환이 날아다니는 최전선의 심정을 생각하며 이곳에 왔습니다. 버마 국민이 항상 일대의 전사였다는 것은 역사상으로도 명확한 것이며, 현재의 버마 국민 역시 그 조상의 이름을 욕되게 않게 하려 하고 있다는 것은 제가 확언할 수 있는 바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전, 우리 버마의 청년은 무기도 없이 싸워야 했습니다. 무기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적을 처치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감연하게 이를 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오늘날 버마의 사기는 매우 왕성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이를 막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버마인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동아는 한몸이 되어야함을, 이 전쟁은 동아인으로서 함께 치러야 하는 전쟁임을, 동아인은 함께 세계를 건설해야함을 충분히 이야기 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업의 올바른 실마리를 본 회의에서 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이러한 사업을 계속해 나갈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동아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전 작전 지역에 걸쳐 장래의 평화를 위해 전개해나갈 수 있는 사업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동아의 공동 운명을 종합적으로 계획하여 이끌어갈 항구적인 동아의 중앙조직체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이러한 존재가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의 결집은 현실화되고 효과적이고 평시에도, 전시에도 유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이 자유롭고 평등한 대동아 각국을 대표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길은 분명하고 우리는 지금 그 길을 가기 위한 실마리를 풀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목적을 향한 우리의 전진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한번 아시아 민족이 결집하여 통일하고 가르침을 얻게 된다면 세계의 끝까지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준 바가 있습니다. 과거에 동양은 몇 번의 침공을 받았으나 모두 그 적을 무찌르고 멸망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다만 아시아인이 아시아를 망각했을 때는 적에게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위대한 일본의 도움으로 우리는 다시 아시아인이라는 자각을 되찾고 아시아의 피를 재발견 했습니다. 이 아시아의 피야말로 아시아를 우리의 손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우리에게 제시된 길을 끝까지 계속하여 진격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십억의 동아민족이, 새로운 세계를 열고, 우리 동아민족이 비로소 영원한 자유와 번영을 획득하고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신세계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 이것으로 오늘의 일정이 종료되었습니다. 따라서 산회를 선언합니다. 내일은 오전 10시부터 개회하며, 일반적인 의견의 발표는 오늘로 끝내는 것으로 하고 내일은 구체적인 회의에 들어가려 합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이후 퇴석) 16시 47분 제1일차 회의 종료.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⑤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43.11.5)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필리핀 공화국 대표 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호세 라우렐 (Jose P. Laurel) 필리핀 제2 공화국 대통령. 호세 라우렐의 연설 (1943.11.5) (영어) 의장 각하, 각국 대표 각하 및 열석자 여러분, 외람되지만 필리핀 공화국의 대표로서, 저는 이 획기적이고 광휘 있는 회의를 기회삼아 한마디 소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우선 대동아공영권의 각국 국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이루어진 이 대회를 개최하신 위대한 일본 및 일본의 지도자이신 내각총리대신 도조 히데키 각하에 대해 심심한 경의와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또한 본 회의에서 대동아 여러 민족의 공통의 안녕과 복지라는 여러 문제가 토의되고 나아가 동아 각 국가 지도자 각하간의 소통을 통하여 아시아 민족 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영광을 위해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고 이를 항구화시키는 데에 박차를 가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다음으로 저는 중화민국 대표 각하, 타이 왕국 대표 각하, 만주국 대표 각하, 버마국 대표 각하 및 혹시 괜찮다면 세계 역사상의 새로운 신기원을 열고 있는, 인도 민중의 자유을 위한 아시아인의 투쟁을 대표할 수 있는 자유인도임시정부 수반이신 수바스 챤드라 보스 각하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인류의 문명사를 회고해 볼 때, 저는 이러한 대동아 민족들의 회의가 더 일찍 개최되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같은 대동아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존해왔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큰 협력 속에서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생각해보면 진심으로 감명을 느끼는 바입니다. 본 회의 이후 우리는 이제 다시 이전처럼 헤어진 채 살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위협하는 압박, 착취, 압정에 함께 맞서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십억 아시아 민중은 다시는 소수 서양 강국에 의해 지배받거나 착취당하는 희생을 겪지 않을 것임을 세게에 선언하는 바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과거의 동아의 여러 민족이 지금과 같이 한자리에 모여 그 결속을 다지고 여러 문제를 검토할 수 없었던 이유 3가지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첫째는 서 양 열강들, 특히 영미의 정책은 일본을 제외하면, 이들의 정책은 대동아 각국의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지배, 탄압하고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책속에서 아시아 민족은 약체화되고, 그 활력을 흡수당하고, 그에 따라 적극성을 잃어야 했습니다. 영미의 이런 정책 때문에 일찍히 우리들은 함께 만나 대동아의 공통적인 여러 문제에 대해 토의할 수 없었습니다. 둘째는 영미는 위의 정책을 행하는 과정에서, 소위 분할 통치주의에 의거하여 대동아의 여러민족을 분할하여 대동아 민족의 단결력, 활력 및 생활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영미는 대동아 민족들 간의 종교적, 계급적 차이를 만들어내고 이용하여 정치적 충돌을 촉진시켜 분할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우리 필리핀 국민을 갈라놓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또한 중화민국에서도 국민을 분할하고 그 법제 및 주권에 있는 다른 지역의 국민들 역시 갈라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분할 정책이 대동아 여러민족을 쇠퇴시켜 그 힘을 결집시키고 동아의 명예와 존업을 지키려는 힘을 상실하게 했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세 번째 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소국인 우리 필리핀 공화국의 경험에 바탕을 둔 것으로, 영미는 다음과 같은 구실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반일 감정을 고취시켰습니다. 그 구실은, 일본은 정복욕에 불타고 있있는 탐욕을 가진 제국주의적 국가이며, 권위와 명성의 확대를 바라는 국가이기에, 우리가 일본과 절충하게 되면 착취와 압박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서양의 각국들이 일본이 물심양면으로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고 국민이 단결되어 동양에서 굴복시킬 수 없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음을 알았기에 이렇게 외교적 모략을 통해 반일 감정을 키우고 배일 여론을 육성에 힘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우리로 하여금 일본이 우리의 친구가, 동포가 아닌 원수라고 믿게 했습니다. 이상 설명드린 바가 저는 대동아의 여러 국민이 자신의 안녕과 권위, 명예에 대한 공동의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결집하지 못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는 참가 각국 대표 각하분께서 이렇게 의장 각하의 초대에 임하시게 되었을 때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각국 대표 각하 분들이 모여 있는 의장 각하의 다과회가 열린 방에 들어서자마자 저는 감동하여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고 동시에 고무되어 ”10억의 동양인이여, 10억의 아시아인이여ㅡ, 어째서 그대들은 영미 두나라에게 이렇게 지배당하고 압박당했단 말인가“ 하고 외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이렇게 제가 이 작은 나라 필리핀 공화국을 대표하여 본 회의에 참가하여 일본의 위대한 지도자의 요청에 응하고 참석하신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들께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게 된 것은 저에게 있어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자 만족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본 회의에서 의장 각하가 말씀하시는 것을 주의 깊게 경청했습니다. 저는 이에 의장 각하의 곁에서 각하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이 구절은 일본을 지도자로 하여 동양민족 및 대동아민족의 행위를 지도하고 대동아전쟁을 완수 및 공영권의 원칙 확립하기 위해 우리가 전진해야할 근본적 지도 원리를 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장 각하께서는 ”대동아 각국은 서로의 자주독립을 존중하여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협력하는 관계를 확립해야 합니다. 상대를 수단으로만 생각해서는 조화로운 협력관계를 만들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자주독립을 존중하고 상대가 번영해야 자신 또한 번영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조화로운 협력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저는 믿는 바입니다.“ 라고 말하신 바 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대동아공영권은 이를 형성한 어느 한나라만의 이익을 위하여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하의 말씀을 빌리면, 대동아공영권의 확립은 각 구성국가의 자주독립을 인정하고 이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으로 , 이렇게 정치적 독립 및 영토주권을 인정함으로서 각국은 각국의 독자적 제도에 부응하여 발전을 이룩할 수 있으며, 이러한 발전의 결과로 발생하는 번영은 어떠한 특정국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전체의 번영은 각개의 번영이 될 수 있지만 각개의 번영은 전체의 번영이 될 수 없다는 이치에 근거하여 진보와 번영을 단순히 한 국가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닌 다른 나라로 확산키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즉, 대동아공영권의 공존, 협력, 공영 이라는 요소는, 일본에 의해 제창되어 대동아공영권의 다른 민족, 국민이 의지할 수 있는 신성한 이념의 근본 토대가 되는 3요소인 것입니다. 일본은 대동아의 여러 민족과 국민으로 하여금 자연의 생존권을 누리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은 이를 위해 성전을 벌이고 생명과 재화 뿐만 아니라 그 존립 자체를 걸고 있습니다. 이렇듯 일본은 자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동아의 모든 민족을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이 이렇게 독자적으로 자신만 생존하고 동아의 동포가 멸망하고 고통받았던 기존의 상황을 행복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은 저 역시 충분히 알고 있는 바입니다. 일본은 물론 생존하기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동시에 동포인 동아의 여러 민족도 함께 생존하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일본도, 중화민국도, 만주국도, 버마국도, 필리핀도, 인도도 모두가 생존하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중화민국 혹은 다른 한 국가의 번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번영을 계획하고 전체의 번영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국가의 생존에 필요한 수단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나아가 다시는 서양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세계에서 정당한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 국민을 각자의 법률 및 제도하에 행복하게 생활하게 하고 긴밀하고 견고하게 단결시키기 위해, 아시아와 아시아인을 위해서 분만 아니라 전세계의 행복과 진보에 기여하기 위해 우리는 공영권 확립을 위해 협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총리대신 각하의 뛰어난 연설 중에서, 저 자신 뿐만 아니라 아마 이 자리에 초대받으신 대표 각하 분들을 위해서도 귀국후 국민에게 본 회의의 성과를 보고하고 개발하기 위해 인용하고자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동양적 문화의 필요성에 관한 것으로, 동양 문화는 반드시 필요하고 그 특징을 강화하여 동양민족의 정신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필리핀을 위해서도 이가 필요하다 생각하여 이를 인용하고자 합니다. 의장 각하께서는 ”본래부터 대동아에는 우수한 문화가 존재해 왔습니다. 특히 대동아의 정신 문화는 가장 숭고하고 유현(幽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더욱더 양성시켜 세계에 넓게 영향력을 미치게 할 수 있다면 이는 물질문명의 막다른 길을 타개하고 인류 전반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바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여러 문화를 가진 각국이 서로의 빛나는 전통을 존중함과 동시에 각 민족의 창조성을 신장시켜 대동아의 문화를 점점 앙양(昻揚) 시켜야 함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러한 우수한 동양 문화의 정신, 정수는 우리 스스로가 인식하고 보존하여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것일 뿐만 아니라, 각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를 근본 정신으로 하여 유달리 약소하고 최근 몇 년간 불행하게도 유물적인 관념을 가지게 된 동양인의 가슴속 깊이 새겨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서양 여러나라의 지배와 영향 속에서 고통받으며 스페인 치하에서 3백년, 미국 치하에서 40년 간 신음하고 있는 우리 필리핀 같은 국가의 국민이 더욱 명기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때문에 일본은 우리 국민을 포함한 각국 국민들의 정성스러운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제도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의 개혁을 통해 각국의 국민으로 하여금 자신이 동양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사유하게 행동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일본이 대동아 각 국민의 정신을 도모하는데에 최선의 지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군사적 방면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군말을 꺼낼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일본군이 이번 전쟁에서 궁극의 승리를 얻지 못한다면, 우리 필리핀은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필리핀 공화국도 버마국도 이렇게 주어진 자유를 즐길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여러 가지 곤란을 이겨내면서, 일본이 승리의 목적을 달성하는 날까지 버텨 나갈 결의를 굳이고 있습니다. 중화민국의 전쟁도, 태국의 전쟁도, 자유와 자주를 위한 대동아 모든 민족의 전쟁도 모두 일본의 승리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공영권의 확립도, 대동아 모든 민족의 숭고한 염원의 달성도 이 승리에 달려 있습니다. 일본의 승리 없이는 공영권도 없습니다. 일본의 승리 없이는 우리 필리핀 내지 동아의 어떤나라의 자유도 없습니다. 동양민족의 지위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며 서양 국가들은 다시 우리를 지배하고 피폐하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려 할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이 기회를 빌어 의장 각하에게 일본에 대한 저 및 우리 필리핀 국민의 지원을 서약하는 바입니다. 또한 각국 대표 각하분들께는 동정과 협력을 맹세하는 바입니다. 우리 필리핀 은 아직 탄생한지 얼마되지 않아 약소하지만, 적어도 1,800만 필리핀 국민은 지금의 전쟁에 한마음 한뜻으로 고취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전 우리 필리핀 국민은 물질주의에 지배당했지만, 사태의 추이에 응하며 진정한 동양적 정신에 자각하여 눈을 뜨고 하느님께서 하사 하시는 사명을 완수할 책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장 각하, 저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본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바로 동아의 모든 민중의 각성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는 것 입니다. 동시 저는 본 회의에 참석하여 대동아 여러 국민분들의 대표 각하 분들과 면담하며 최근 필리핀인에게 주어진 독립의 영광에 대해 우리 국민의 희열과 감사의 뜻을 표명하고자 합니다.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 및 열석자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현재의 대동아전쟁 완수를 위해 물심양면 뿐만 아니라 필요한 모든점에서 단결되어 있습니다. 이번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면 우리는 나아가 아직 괴리되어 착취 상태에 있는 5억의 동양인들이 거주하는 국가들을 해방시키고 단결시켜 모든 대동아 민족의 진정한 대동아공영권의 완성을 도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화민국을 지금과 같이 피를 흘리는 내전이란 불행 없이 행복하고 결합하는 중국으로 만들고 일본과 협력하여 세계의 한 부분인 이 아시아를 동양인의 안거낙업(安居樂業) 의 땅으로 만들기를 저는 간절히 희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꿈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가 천명을 받아 죽게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될지라도 기꺼이 웃으며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의 우리는 우리의 후손이 다시는 서양의 지배속에서 착취를 당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지금 찬드라 보스씨에 의해 열성적인 지도를 받고 있는 인도 역시 영국의 손에 의해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분할 지배되는 일 없이 3억 5천만의 인도 민중이 다시 영국과 그 어떠한 나라의 영향, 압정, 탄압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저는 또한 우리 필리핀 공화국과 버마국, 만주국, 타이 왕국, 중화민국 및 다른 대동아 국가와 달리 아직 자신의 공간이 없는 자바, 보르네오 및 수마트라의 다른 민족 들과 협력하고 나아가 이들로 하여금 일본과 연결되게 하여 대동아 전체가 결집하여 공고한 조직체로 일치단결 하는 것, 10억 동양인의 서양 국가의 억압을 받는 일 없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자유로이 권리와 기회를 획득하려는 것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키는 것 은 어떤나라도 불가능 하다는 신념을 표명하고 싶습니다. 동양은 인류 문명의 요람이며, 서양에 뒤지지 않는 종교와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은 자신들의 문명의 발상지인 동양의 인민을 착취하기 위해 자신의 문명을 이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무한한 예지를 가진 신 은 일본 을 저버리지 않고, 대동아 각국가를 저버리지 않고 우리와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며 우리들로 하여금우리들 자신을 해방시키게 하려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자손을 자유롭게, 행복하게, 번영할 수 있게 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점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며 저의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박수) (이후 착석)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하면서) 그럼 지금부터 40분동안 휴회를 선언합니다. 회의의 재개는 3시 반으로 하겠습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이후 퇴석) 오후 2시 45분 휴회.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④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943.11.5)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오후 1시 1분, 회의 재개.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하며) 지금부터 회의의 재개를 선언합니다. 오전에 이어 각국 대표분들의 소견 발표를 진행하겠습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이후 착석)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만주국 대표 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장징후이(張景惠) 만주국 국무총리대신. 장징후이의 연설 (1943.11.5) (중국어) 오늘 여기에 저는 만주국의 대표 자격으로서, 대동아 각국의 정부 수뇌 및 열석자 여러분들과 이렇게 치열한 결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큰 희망을 가지고 격의 없는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충심으로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저는 이러한 역사적인 회의를 주최하신 일본 정부에 깊이 감사를 표함과 동시에, 도조 총리대신 각하를 비롯하여 이러한 중대한 시국 속에서 각국 국민의 부흥을 위하여 밤낮으로 국무를 위해 노고하고 계시는 회의에 참가하신 각국 정부 대표분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또한 대동아 수천리 장대한 전선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적 영미와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저는 대동아전쟁의 후방에 있는 우리 만주국을 대표하여 일본제국을 비롯한 대동아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각국 및 그 병사들의 선모용전에 대해 정성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대동아전쟁이 개전한 이래, 일본군은 전쟁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대전과를 만들어내며 수십년간에 걸쳐 동아를 침식하고 동아의 희생으로 스스로의 번영을 유지해온 영미 세력을 순식간에 곳곳에서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발발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버마국, 필리핀 공화국의 독립을 시작으로 동아민족은 순차적으로 그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며 각자가 각자의 자리를 얻고 양양한 장래를 바랄 수 있게 되었으며, 수백년동안 지속되었던 영미 제국주의의 탐욕속에서 잃었던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영미의 지배 권력의 위만과 억압속에서도 불구하고 비참한 과거와 결별하고 모욕당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동아 각국에서 흐르고 있었던 해방의 염원은 일본이 시종일관 도의에 기반한 정책을 펼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왕성한 실행력을 보임에 따라 대동아의 이름으로 일거에 실현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천재일우(千載一遇) 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것에 대해 기쁨을 표함과 동시에 이러한 동아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피를 흘린 순국 열사들을 떠올리며 숙연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나아가 이기회에, 10년 전 우리 만주국이 최초의 동아적인 자각을 가진 신흥국가로 건 설되었다는 것을 회상하며 깊은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처음부터 열정을 가지고 고난속에서 만주국의 건국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만주에서 가장 부족했던 것은 도의에 입각한 정치 였습니다. 때문에 민중은 어떠한 이상을 목적도 없었기에 지도도, 조직도 되지 않으며 국토는 거칠어 피폐하고 군벌의 봉건정치에 의한 무질서한 가렴주구가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실로 아무런 자유도, 창조도 없는 전형적인 억압받는 동아의 양상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만주의 지배자로서 인민에게 끊임없는 착취를 가하고 있던 장쉐량 군벌 은 영미의 동아교란 정책에 편승하여 노골적인 반일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 에 일본은 감연히 일어나 장쉐량 군벌을 타도하였고 이에 진정으로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고 국토를 발전시키는 자주적인, 도의의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천만 민중의 총의가 모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우리는 모든 국제 정세가 간섭하고, 서로 분규하여 항상 동아의 안정에 위협을 가했던 만주를 변화시켜 오래된 동방의 도의에 입각한, 새로운 동아에 여명을 여는, 강력하고 올바른 국가로 만들어 동아 전체에 안정을 가져오려 했습니다. 우리들이 믿는 바에 따르면, 동아가 광휘 있는 전통에 의거한 본연의 모습으로 세계의 진보에 공헌해야 한다는 것은, 마치 유럽 각 민족이 유럽 각민족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아메리카 대륙 각국이 아메리카 대륙의 각국으로 자존(自存) 해야한다는 것 것처럼 대의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동아가 동아적인 자각을 보유하는 것, 그것은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역사적 필연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동아가 동아적 자각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영미 는 자신들의 괴뢰기관인 국제연맹 을 통해, 그리고 당시 난징에 있었던 장제스 정권을 사주 하여 모든 방해를 가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감명받은 부분은, 일본은 막대한 국력을 들여 피로서 장쉐량 군벌을 몰아붙였음에도, 아무런 영토적 야심을 보이지 않고 공명도의적 태도로 우리의 독립의 자주발전을 원조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본은 우리의 독립을 옹호함과 동시에 동아신질서 건설을 제창하며 국제연맹을 탈퇴 하고 단호한 태도를 대내외에 천명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보면, 만주국의 건국은 오늘날 대동아 전역에 실현되고 있는 대동아공영권 건설의 첫걸음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속에서 건국된 만주국이 지난 10년간 어떠한 정책을 펼쳤고 어떠한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이 기회를 받들어 이를 간단하게 3가지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민족의 협화(協和)입니다. 우리 만주국에서는 일만몽(日滿蒙) 및 그 외의 다수 민족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주국에서는 기존의, 일반적으로 이민족에게 보이는 지배-피지배, 착취-피착취의 관계가 아닌, 서로의 특징을 존중, 발휘시켜 국가 목적의 달성에 협력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는 영미를 비롯한 제국주의의 민족 지배방식 과는 근본적으로는 다른 것이며 만방으로 하여금 각자가 각자의 자리를 얻고 나아가 수많은 인민이 자신의 나라에서 안정을 취할 수 있게 하는 일본의 정신과 상응하는 것으로, 크게 보면 대동아 각국의 공존공영에서 취해야 할 방식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만주국은 북방의 방벽 이라는 것입니다.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기 위해서우리 만주국은 자국의 국방을 완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만주국 자체로 하여금 대동아의 북방 방벽 역할을 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만주국은 이를 차질없이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만주국은 일찍이 이를 중대한 국가의 사명으로 여기어 일본과 공동방위의 맹약 (1932년 9월 15일 일본과 만주국이 체결한 일만의정서(日滿議定書)를 의미.) 을 맺고 한치의 흔들림 없이 철벽의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확실히 밝히는 바이며 앞으로도 이러한 여러분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고자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국민생활의 안정과 강하고 바른 국민의 양성입니다. 만주국 정부는 건국 이후 즉시 기존의 분란을 극구 수습하기 위해 문제가 많았던 기존의 화폐제도를 빠르게 통일한 결과 물가는 빠르게 안정되고 나아가 오늘날과 같은 국민생활의 안정을 확보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치안의 확립을 병행하여 건국 당시 30만의 비적이 국내에서 활개치던 것에 비해 현재는 거의 자취를 감추기에 이르렀습니다. 나아가 작년에는 국가 병역제도가 확립되어 근대적 무기를 가진 강력한 국군을 창설하고 이를 완비된 경찰제도와 맞물리게 하여 국내의 구석구석까지 국민들의 안거락업(安居樂業)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만주국 정부는 근로봉공제도, 문교진흥방책 등 모든 수단을 통하여 국민의 양성을 위해 힘을 쏟고 있습니다. 나아가 국가 관념을 배양하고 근로존중 풍조를 촉진시키어 심신 양면에 걸쳐 건강한 신동아의 부끄럽지 않은 청소년의 육성을 도모하여 현재는 그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수한 국민의 출현은 현재의 전쟁 완수를 위한 협력을 위해서도, 장래의 국운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산업의 개발입니다. 만주국 정부는 건국 5년 (1937년을 의미한다. 만주국은 1937년 제1차 산업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하였고, 1942년에는 제2차 5개년 계획에 착수했다.) 이 되었을때부터 산업개발 5개년계획 의 실행에 착수하여 모든 곤란한 조건을 극복하고 재작년에 이를 성공리에 종료하고 작년부터 제2차 5개년 계획 의 실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속에서 전시에 특히 요구되는 철, 석탄, 금속등의 중공업 자원의 신속 개발, 경금속 화학 공업의 촉진등은 전력 생산 설비의 비약적 증가와 더불어 착착 약진하며 여러 부문에서 세계적 강국의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농산물 방면에 있어서도 농본국이라는 본래의 특색을 발휘하여 현재 계획적 증산에 매진하고 있으며, 동아의 유력한 식량기지 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3가지 건설의 성과를 모두 합쳐보면, 건국 당시 세입 세출의 합계가 2억 7천만 위안 이었던 것이 10년뒤인 오늘날에는 16배인 44억 5천만 위안 으로 팽창하였고, 철도의 연장은 6천 킬로미터 에서 1만 2천 킬로미터 로 증가하였으며, 초등학교의 아동수는 50만명 에서 250만명 으로 늘었습니다. 또한 생산량의 경우 석탄이 4배, 철이 5배 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 외에도 국민 보건 위생 시설의 개선등 너무 많아서 일일이 셀수 없지만, 그중에서 뚜렷한 하나의 예를 들자면, 영미가 동아침략의 수단으로 사용하며 지금까지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아편 흡연의 폐단 의 경우, 건국 당시 아편을 복용하던 이가 130만 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아주 극소수가 남았을 뿐 으로, 가까운 장래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평소 정부의 책임자로서 노력이 부족한 것에 대해 항상 반성하고 이를 부끄럽게 여기는 바입니다만, 지금 이러한 눈앞의 국운의 융창을 보고 느끼는 것은 일본은 시종일관 변함없이 의(義) 를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만(日滿) 관계는 건국의 과정에서 보았듯 당연한 일덕일심의 관계에 있으며, 황공하옵게도 일본 황실과 만주국 제실(帝室) 역시 점점 돈목해지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런 역사상 찾아 볼 수 없었던 우리 만주국의 10년의 개발 역시 일본의 큰 의로운 원조에 힘입어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우리 만주국으로는 아무리 보답해도 부족한 기분으로, 이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만주국은 현재 대동아전쟁의 후방에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바입니다. 다음으로 대동아건설의 방도에 대해 잠시 소회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우리 만주국은 동아해방, 동아신질서의 수립을 목표로 하여 건국되었으며 모든 방면에서 대동아공영권의 완성에 기여하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만주국과 공영권 각국에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면 , 일본 과의 관계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찍이 일덕일심의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또한 중국 과는 신생 중국 지도자 왕 주석 각하의 영도 아래 난징국민정부가 수립되어 그 기초를 다지게 되며 일화(日華) 양국과 함께 일만화(日滿華) 간의 영구적인 공동 선린 관게를 규정하는 삼국공동선언 ( 1940년 11월 30일 체결된 일만화공동선언(日滿華共同宣言, 중일만공동선언이라고도 함)을 의미한다.) 을 발표하였고, 태국 과도 친밀한 국교관계를 맺고 더욱이 지나사변이 대동아전쟁으로 확대된 후에는 버마국, 필리핀 공화국 의 독립을 즉시 승인하고 장래에는 친분을 더욱 증진시킬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동 아의 독립국이 6개로 늘고 자유인도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역사상 본적 없던 번영이 펼쳐지고 있는 오늘 이야말로, 전동아 각국은 동아일체 (東亞一體), 공동운명의 신념으로 일관하여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바입니 다. 일만화 (중일만) 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그리고 동아의 흥륭을 기하는 이번 가을을 맞이하여 영미의 악영무도한 탄압에 신음하는 인도 국내 4억 민중에 대해 절대적인 동정의 뜻을 표함 과 동시에 금상미봉의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동아의 고아 인 충칭정권 이 동아의 넓고도 큰 대의 속 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반성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동아각국은, 동아의 천지에서 과거의 오욕의 시대로 영원히 돌아가지 않기 위해 영미등의 제국주의적 죄악의 흔적을 일체히 떨쳐버리고, 어떠한 식민지적 성격도 탈피하여 그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무릇 세계의 인도를 존중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국가와 제휴, 협조하여 전세계의 올바른 발전을 창조하는데 참여하는 웅혼한 태도를 가져야할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와 공통의 목표를 위해 유럽에서 용전 분투하고 있는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이 승리하여 유럽신질서를 하루라도 빨리 성립시키기 를 바라는 것이며, 세계 곳곳에 우리와 동조하는 실질서의 출현을 바라는 바입니다. 더욱이 장래 동아 각국가간의 관계는 이번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노골적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해에 근거하여 이합집산하는 이전의 국제관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동양 도덕의 전통적 특색인 가족과 혈연의 정의에 기초를 두고 동아를 진정으로 한가족으로 보는 관점 아래 상호 영구의 도의적 외교를 서약해야 한다고 믿는 바입니다. 따라서 각국은 각자의 전통을 특성으로 삼고 이에 대해 상호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치, 경제, 문화등 모든 영역에 걸쳐 장단상보(長短相補) 하고 유무상통(有無相通)하여 동아 전체의 발전에 기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경의 관념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국경을 과거의 상호대립하던 비동양적인 국가의 국경이 아닌, 상호 협력하고 보다 큰 창조를 이끌어내는 국가간의 국경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종래의 국경관념에 얽매여선 안되며 각국의 유통과 융합을 막는 이 국경이라는 장벽은 한시라도 빠르게 철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완성하려는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은 광휘있는 예전 동아의 부흥을 의미하는 동시에, 보다 많은 새로운 동아의 창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아 각국은 이러한 신시대에 부합하는 의식과 역량을 구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제가 앞에서 만주국의 과거의 만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완전한 새롭고 거대한 물심 양면에 걸친 건설 과정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이와 같은 뜻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생각하면 저는 올해 1월의 제81회 시정방침 연설에서 도조 내각총리대신 각하가 ”만주국의 충실한 발전은 곧 대동아 전역의 내일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참으로 마음이 든든하다.“ 라고 외친 것을 공감과 감격으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도조 히데키의 1943년 1월 시정연설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전국(戰局) 에 대해 살펴보면, 적 영미는 전쟁 초기 동아에서 전면적인 패퇴를 겪은 후 이제는 전 동아 민족이 각성하고 착착 대동아 건설의 큰 발걸음을 나아가고 있는 것을 초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 영미는 이에 맞서기 위해 모든 힘을 발휘해 우리들에게 도전해오며 전쟁은 마침내 더욱더 처창해지고 가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전쟁은 그들이 과거에 여러번 동아에 반복해 온 침략전쟁의 최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만큼 규모도 가장 대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열렬한 염원인 대동아공영의 달성을 위해 지금이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유일한 기회임을, 동아 민족의 흥망을 영원히 결정할 때임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대동아 각국이 물심양면에 걸쳐 모든 것을 전력화하고 동아의 총력을 강화하고 똘똘 뭉쳐 적 영미를 격파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10억 동아 민족이 전통적으로 우월한 정신력을 가지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자원을 총동원하여 싸우면서 건설하고, 건설하며 싸우는 늠름한 건설전을 끝까지 추진해 나간다면, 광영스러운 최후의 승리가 우리에게 돌아올 것 이라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만주국 관민은 대동아전쟁 발발의 선포와 함께 일본과 사생존망(死生存亡)의, 결코 제휴를 끊지 않겠다는 제국의 뜻을 받들어 국민 모두가 국력을 총동원하여 대동아전쟁에 협력하고 동시에 북방을 수호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에 여기서 만주국이 이러한 결의를 더욱 굳게 함과 동시에 더욱더 대동아 각국과 서로 응하며 필승필성(必勝必成) 의 신념으로 대동아건설의 힘을 쏟을 것을 맹세하는 바입니다. (박수) (이후 착석)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② 왕징웨이 (중화민국) 의 연설 (1943.11.5)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앉은 채) 계속하여 국명의 이로하 순으로 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를 진행하겠습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앉은 채) 중화민국 대표 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왕징웨이 (汪精衛) 중화민국 국민정부 (난징) 행정원 원장. 왕징웨이의 연설 (1943.11.5) (중국어) 세계역사상 위대한 의미를 가지는 대동아회의가 오늘 맹방 일본의 수도에서 거행된 것에 대해, 도죠 총리대신 각하의 연설을 듣고 크게 감분하게 되었습니다. 영미의 동아침략은 이미 백 년 전부터 시작된만큼, 지금과 같은 중대한 시기에는 일본의 군사력과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방면의 힘에 의지해야 처음부터 영미의 침략야심을 억제하고, 동아를 보전하며, 영미를 분쇄하는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최근 대동아전쟁의 발발로, 영미의 동아침략세력은 분쇄되어, 동태평양과 남양 일대에서 영미의 육해군 근무지는 일본 육해군에 의해 격파, 점령되었습니다. 일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방도의(東方道義)의 정신에 근거하여 동아국가의 민족들의 공존공영을 추구하고 그들의 독립과 자주를 원조하여 그들의 애국적 희망을 달성시키고, 지지하며, 각지의 부서들로 하여금 최대의 노력을 통해 대동아전쟁의 완수와 대동아건설에 대한 책임을 분담하게 하려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숭고한 일본의 위대한 포부와 그의 빛나는 기적에 삼가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동시에 함께 우호 관계에 있는 만주국, 태국, 신흥 버마국, 필리핀과 자유인도임시정부가 각각의 굳을 결심과 휘어지지 않는 노력에 따라 대동아전쟁과 대동아건설의 책임을 나누고 있는 것에 대해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중화민국은 동아의 한 측의 날개입니다. 이에 지금 이 자리 이 기회를 빌어, 대동아전쟁의 완수와 대동아건설의 방침에 대한 국민정부 의 결심과 노력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중화민국의 국부 손중산 선생 일생의 포부는, 중국과 동아로 하여금 영미침략세력을 분쇄시켜 그들의 독립과 자주를 완성시키기 위해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포부에 근거해 그는 서거에 이르는 날까지 약 40년간, 필생분투를 계속해왔습니다. 그는 서거하기 3개월 전, 일본의 고베에서 두 번에 걸쳐 연설을 한 적이 있있으며, 민국 13년 (1924년) 11월 28일에 열렸던 제1회 연설에서 그가 이야기한 것은 대아시아주의 였습니다. 연설에서는 "우리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의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백 년 이래 영국의 침략을 받고 갈취당하기에 이르러 거의 하나로 완전한 독립 국가의 존재를 볼 수가 없게 되었는데, 그 쇠퇴가 극에 달했을 때, 돌연 전환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그것은 일본의 유신이었고, 일본의 유신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선진국이 될 수 있게 하는 원인이 되었고, 동시에 아시아 부흥의 출발점이 되었다. 아시아 각국은 당연 선진국 일본과 함께 동심협력해, 동방의 왕도적 문화로 하여금 서양의 패권주의적 문화를 물리쳐 미영의 침략 세력을 완전히 구축하고 아시아 각국의 단결에 따라 아시아 각국의 독립 자주를 완성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쇠퇴하는 아시아 전체를 부흥으로 이끄는 것이 가능하다 " 라고 연설했습니다. 두 번째의 연설은 같은 해 같은 날의 연설이었는데, 연설에서는 "일본은 당연히 중국과의 불평등조약을 폐지해야 한다" 라고 말하였고, 또 “중일 양국은 형제와 같다. 일본은 일찍이 불평등한 속박을 타파하고, 동방의 선진국, 세계의 강국이 되었다. 중국은 현재, 마찬가지로 불평등조약의 폐기를 얻으려는 것이며, 일본의 충분한 원조를 갈망하고 있다, 중국의 해방은 곧 동아의 해방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상 두 차례에 걸친 연설은 손중산 선생 일생의 마지막 연설이 되었습니다. 이후 국부 손중산 선생은 병세의 영향으로 다음 해 3월 12일 베이징에서 서거하게 되었으나 서거의 당시 유지를 동지들에게 남겼고, 저와 동지들은 그의 유지에 따라 계속 분투하고 그의 뜻을 관철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장 불행한 것은 손중산 선생의 서거 이후 그 유지가 실현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고, 중일 관계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민국 26년 (1937)년 7월의 전쟁 이 발생하기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국부 손중산 선생이 서거한 지 12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중일의 관계가 결렬됨에 따라 영미는 호기를 맞이했고, 양측의 관계를 이용해 중일전쟁의 연장을 부추겼습니다. 저와 동지들은 국부의 유지가 아직도 실현되지 못했단 것을 보고, 중일 관계가 날로 악화되는 것을 보고, 통심이 극에 이르게 되었고, 절망의 심연에 빠지게 되었으나 다행히도 일본 정부는 전쟁을 최단기간에 중단시키기 위한 방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방침 에서는 일본의 전쟁목적이 중국의 멸망이 아닌 중국의 부흥에 있으며, 일본은 중국이 동아건설의 책임을 나눌 것을 기대하고, 일본이 중국을 원조할 것을 결심하고, 그들의 독립 자주의 소망을 달성하게 하려 하는 것에 있음 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와 동지들은 일본이 이러한 진의를 선포한 것을 듣고, 중일 관계의 호전이 국부의 유지를 완성 시키는 희망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에 충칭 정권에 대항하여 항전의 중지와 화평의 회복을 이야기했지만, 이를 듣지 않으려는 모습에 저와 동지들은 화평운동을 위해 분주하게 뛰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얼마 있지 않아 국민정부는 난징으로 환도하여 정정당당하게 중일의 제휴와 동아의 부흥을 위해 최대의 노력 을 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말한 대로 영미는 중일전쟁에 대해 항상 도발과 이간질에 노력하여, 전쟁의 연장을 부추겨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국민정부 환도 이후 더더욱 강화되었고, 영미는 충칭에게 항전의 강화와 평화의 저지등 전쟁의 연장을 부추기는 수단을 강구해왔습니다. 그 후 대동아전쟁의 발발에 이르러, 영미는 그동안의 자신들이 구축한 동아의 세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충칭의 분자들을 이용해 일본을 견제하는 방도를 강화시켜 왔다는 것 은 이미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제 영미의 이러한 계획이 물을 필요 없이 실패에 이르렀다고 단정 지을 순서에 이르렀습니다. 충칭의 상인들과 민중이 국부 손중산 선생님의 가르침에 아직 귀의해 있고, 일본은 올해 1월 9일 이후 중국에 대해 빠르게 조계를 반환하고, 치외법권을 철회하고 , 특히 최근에는 중일동맹조약 을 통해 중일기본조약과 동시에 각종 부속 문서를 폐기했습니다. 이는 국부 손중산 선생이 제창한 대아시아주의 가 이미 광명을 찾게 된 것입니다. 국부 손중산 선생이 일본에 갈망하셨던, 중국을 구하고, 불평등조약을 폐기하는 일이 이미 현실화된 것입니다. 가령 영미가 어떤 식으로든 유혹해 이를 저지 한다고 하더라도, 충칭 민중의 각성을 막을 수는 없게 되었기에, 충칭은 언젠가 반드시, 영미에 의존하는 것은 동아에 반역하는 것 이 되고, 동시에 국부 손중산 선생에게도 반역하는 행위 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임을, 민중도 장사꾼들도 깨닫게 될 것임을 단언할 수 있습니다. (1943년 1월 9일 체결된 조계환부및 치외법권 철폐등에 관한 일본국-중화민국 간 협정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1943년 1월 9일 체결된 중일공동선언 / 일화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중일동맹조약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국민정부는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있어, 오로지 기본의 방침에 기초해 노력을 거듭하고, 한편으로는 충칭의 상인들과 민중들의 각성을 촉진시키며, 통일을 완성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정치력을 얻는 지방으로 하여금 하나의 모범지방을 수립하는 것으로, 그 공작은 다음의 3가지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첫째 는 사상의 숙정, 둘째 는 치안의 보장, 셋째 는 생산의 증가로, 소위 사상의 숙정은 영미의 개인주의, 공리주의적 사상을 철저히 쓸어버리고, 동방도의적 정신으로 바꾸고, 동아인의 자각심으로 동아인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고, 일심일덕, 동아인의 공존공영에 분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음 치안의 보장은 대동아전쟁의 후방인 중국의 지배지역에서의 치안을 확보해 맹방 전선의 병사들로 하여금 후방의 근심을 없애게 하고,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군대를 전선으로 수송하여 맹방 장병들의 노고를 나누는 데에 있습니다. 셋째, 소위 생산의 증가는 일체의 경제계획과 재정계획에 무게를 두고 총력 결전의 역량을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다만 생산증가라고 하더라도 여기에는 소비 절약, 장물 이용의 의미 또한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의 3가지는 국민정부가 대동아전쟁에 협력하게 하는 공작의 중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국민정부가 체득한 대동아전쟁, 즉 대동아건설의 의미는 전쟁중의 동감동고(同甘共苦), 동생공사(同生共死) 를 결심하고, 밖으로는 공동의 적인 영미를 제패하고, 영미의 침략 세력을 분쇄하고, 그들의 침략 기도를 소멸시키는 것이고, 속으로는 각고공부, 용왕매진의 정신으로 동아 동포들과 함께 동심협력해 동아의 건설을 착실히 하는 것에 있습니다. 대동아전쟁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면, 우리의 날개가 향하는 곳은 승리고, 대동아건설에 대해 말씀드린다면 우리의 날개가 향하는 곳은 공영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동아 각국은 자국을 사랑하고, 서로의 이웃을 사랑하고, 함께 동아를 사랑해야 해야합니다 . 우리 중국이 모토로 삼아야 할 것은 중화의 부흥, 동아의 보위이며, 중국이 독립 자주를 획득했을 때만이 동아보위의 책임을 나누는 능력이 생기며, 동시에 동아의 보위를 얻게 되며, 중국의 자주독립이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력해 자신의 국가를 자주독립의 국가로 만들고, 또한 자국을 동아의 강력한 분자(分子)로 만드는것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동아 각국은 각국의 본연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독립 자주를 확보해야 하고,독립 자주를 위해 부단히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아 각 국가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심협력, 공동의 목적을 향해 공존공영을 구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선진국인 일본은 이미 그 빛나는 독립 자주를 세계에서 확립했지만, 최근에는 동아 각국을 방문해 그들의 독립 자주를 획득하게 하고, 원조를 아끼지 않고, 일치단결시켜 공동목적을 위해 함께 노력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실로 바람직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정치상의 독립 자주를 얻은 후에 만약 외교상의 방침이 일치하고, 군사상의 대적관계가 일치한다면 공동의 목적에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한편, 문화면에서 선진국인 일본이 확실히 자기의 문화를 기초로 하고, 동방의 문화를 고양시키고, 세계문화를 흡수하는 3대 요점을 성취한 것에 대해 우리는 깊이 탄복할 따름입니다. 저는 신흥국가들이 함께 격려, 노력, 전진할 것이라는 점을 깊이 믿고 있습니다. 우리 중국은 특히 전력으로 문화의 부흥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문화의 융합과 창조는 각 민족을 친밀하게 하고 단결시키는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와 중국 양 민족 간에는 일찍이 불교의 도입에 의해 사상교류를 도모하며 동방문화사에 이미 획을 그었습니다. 경제상에 있어서는 동아 각 국가는 호혜의 기조에 근거해, 장단상보, 유무상통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맹방을 편리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목화는 수많은 이웃 국가들의 수요가 있고, 남방 각지의 가솔린, 고무, 주석 등도 마찬가지로 이웃 국가에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서로 돕는다면, 반드시 일절의 자원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미가 과거에 해왔던 착취정책을 철저히 소멸하고 새롭게 하나의 인도(人道)로 합치되는 신천지를 창조해야 합니다. 이상 말한 것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면 동아 각국의 민족의 행복은 무한히 증진되어 동아 공영의 확실한 보장을 획득하게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평화에 있어서의 기초를 만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광명은 실로 우리의 앞길에 놓여있고, 오로지 우리 동아각국의 민족이 함께 손을 잡고 그곳에 도달하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타이, 버마, 필리핀 각국, 그리고 일본점령하에 있는 영국 및 네덜란드의 식민지 지역 내에 있는 중국인은 총 7~800만 명을 넘지 않으며, 이러한 중국 재류민은 그 소재국 정부의 우대를 받아 소재국 인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활동하고, 교통의 개척과 자원의 개발에 대해 심혈과 땀을 쏟고 있고, 그 심혈과 땀은 소재국 인민과의 결합으로 이어져 동아인의 자각이 커지는 추진력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 인민은 결점도 있지만, 동시에 장점도 있어 화평, 신실, 노동으로 소박하게 소재국 인민과 동고동락하며 서로의 장점을 찾아 결점을 보완하며 이제는 분리할 수 없는 우호협력 관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이 관계가 이번 대동아전쟁에서 더욱 단련되고 단결되기에 이르게 됨을 믿음과 동시에, 이 관계가 대동아공영에 공헌하는 바가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중일만공동선언 / 일만화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민국 29년 (1940) 11월 30일을 회고해보면, 이날 체결된 중일만공동선언 은 동아에 축심을 수립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대동아회의 는 타이 왕국, 버마국, 필리핀 공화국 및 자유인도임시정부가 함께하며 동아의 축심인 공영권의 범위는 더욱 더 넓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저의 소견을 마치며 정성을 다하여 본 회의에 참가하신 여러 국가의 국운이 흥륭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박수) (이후 착석)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③ 완 와이타이콘 (태국) 의 연설 (1943.11.5)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앉은 채) 계속하여 타이 왕국 대표 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완 와이타이콘 (Wan Waithayakon) 타이 왕국 내각총리대신 대리. 완 와이타이콘의 연설 (1943.11.5) (태국어) 타이 왕국은 이번 일본이 개최한 대동아회의의 참가 초청장을 흔쾌히 수락하였습니다. 이는 본 회의가 대동아전쟁을 완수함과 동시에 항구적인 번영을 추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을 확립하는데 있어서 유효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타이 왕국 총리대신인 쁠랙 피분송크람 원수 각하께서는 현재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도쿄로의 원거리 여행이 어려워 스스로 본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원수께서는 저에게 명하시어 그 대리로서 본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대동아전쟁의 수행과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에 관한 타이 왕국의 소견은 기존의 방침 (1940년 6월 12일 일본과 타이왕국이 체결한 ‘우호관계의 존속 및 상호 영토존중에 관한 일본국-타이왕국간 조약’ , ‘ 1941년 12월 21일 일본과 타이왕국이 체결한 ’일본-타이왕국 동맹조약‘을 의미한다.) , 특히 일본 – 타이왕국 관계의 기본방침에 준거한 현재의 관점에서 보았을때도 지극히 타당한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일본 – 타이 왕국 관계가 당면한 문제는, 현존하는 우호, 협력의 관계에 충분한 양해를 한층 더 증진시켜 물적, 심적인 힘을 결집시키고 일체화 하여 일체화를 통하여 대동아전쟁의 수행과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을 성공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소견은 대동아 흥륭의 역사에 대해 하나의 주석을 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아시아 대륙은 인류발달의 원천으로서 태고부터 고도의 발전을 이루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발달은 인류의 마음에 빛나며 인류로 하여금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게 하는 맑은 빛으로서 정의의 기초 위에 수립된 우호와 호의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는 국교로서 불교를 신봉하는 타이 왕국 국민의 고유한 발전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의 원리는 타이 왕국 국민의 고유한 발전 윈리인 동시에 일반 아시아 국민에 의해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왔던 문화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즉, 아시아의 원칙에 따르는 발전은 실로 문화적인 것이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빛은 동방에서, 법은 서방에서 (EX ORIENTE LUX, EX OCCIDENTE LEX 라는 고대 라틴어 문구를 의미하는 것)“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명백하게 유럽인들에게도 인정받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유럽의 발달은 이와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발달은 물질적 진보의 촉진, 다르게 말하면 국가의 경제력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형식을 추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근대 세계사 속 유럽 각 국가들은 유럽 밖으로 뻗어 나가며 발전했습니다. 특 히 영미는 1세기 전부터 대동아 지역에 진출하여 대동아 지역을 식민지로서, 또는 원료 획득의 독점적 지역으로서, 또는 자신의 제품을 판매할 시장으로서 대동아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대 해왔습니다. 때문에 대동아의 각 민족은 독립과 주권을 잃거나, 최외법권과 불평등 조약에 의해 그 독립과 주권에 여러 제한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대동아 민족은 국제법상의 어떤 호혜적 취급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시아 는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전통적 문화적 성질을 상실하고, 그저 한 대륙의 지리적 명칭 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로 발생한 고뇌는 대동아 각 국민의 감정과 기억속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선견지명을 가지고, 현대세계의 진전에 있어서는 서양문명에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동시에 기존의 동야적 문화 원칙을 믿고 따라야함을 통찰하며 이를 현대식으로 조정하는데 성공하여 치외법권을 철폐하고 성공적으로 독립과 주권을 다시 획득하는데 성공하고 순식간에 일대 강국의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타이 왕국도 동일한 길을 걸어 수년간의 부단한 노력의 끝에 치외법권을 폐지하고 독립과 주권을 다시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대동아는 풍양(豐穰) 의 옥토로, 자급자족의 원칙에 근거하여 해당 지역을 공영속에서 발전시킬 천연 자연과 산업의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본은 팔굉일우(八紘一宇) 의 이상을 따라 공영권을 수립하여 정의, 공정 및 평화에 기초한 한가족과 같은 결속을 가져오는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정책은 타이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분쟁의 예시에서 보았듯이, 평화적 수단 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타이 왕국은 영토 상실에 따른 분쟁을 제거하여 양국간의 우호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상실 영토의 일부 반환을 프랑스에 요구하였는데, 기쁘게도 일본정부가 이를 위한 조정에 동의하여 마침내 정의에 입각한 협정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1941년 5월 9일 타이 왕국과 일본이 체결한 ‘보장 및 정치적 견해에 관한 일본국 – 타이왕국 간 의정서(保障及政治的了解ニ關スル日本國「タイ」國間議定書) 및 같은날 일본과 비시 프랑스 정부가 체결한 ’‘보장 및 정치적 견해에 관한 일본국 – 프랑스 간 의정서 (保障及政治的了解に関する日本國「フランス」國間議定書)’를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은 1940년 12월 타이 왕국 – 비시 프랑스 간의 전쟁을 중재하여 양국간의 충돌을 종료시켰다. 타이 왕국은 이를 통하여 일정부분의 영토를 획득했다.) 때문에 이러한 일본의 호의는 타이 왕국 국민으로서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이러한 평화적 수단에 의한 국책 수행 은, 영미가 지속적으로 가한 여러 가지 방해 에 의해 성공을 보지 못했고, 결국 대동아전쟁의 발발 이라는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빛나는 대전과는, 대동아공영권을 확고한 토대위에 수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었고, 이는 전 아시아 민중의 가슴에 기쁨을 가득 넘치게 했습니다. 타이 왕국은 과거 수백년간 일본과 밀접한 우호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 관계는 날이 갈수록 더욱히 긴밀해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타이 왕국은 일본의 이러한 숭고한 목적을 충분히 양해하고 내각 총리 대신 각하의 지도하에 대동아전쟁의 발발 이후 즉시 일본의 동맹국으로 협력해 왔습니다. 이는 명백히 대동아공영권의 수립과 이를 방해하는 세력의 일소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타이 왕국과 일본이 체결한 양국간의 동맹 조약에 의한 것입니다. 본 동맹조약의 근본방침은 1. 상호의 독립 및 주권의 상호존중을 기초로 하는 동맹관계의 설정 , 2. 양국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치적, 경제적 및 군사적 수단에 의한 상호 원조입니다. 군사적으로 타이 왕국군은 일본군과 협력하여 용맹하고 완강하게 싸워 소기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더궁이 타이 왕국군은 궁극의 승리를 거둘 때까지 전쟁 수행을 위해 여러 가지 희생을 바칠 용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타이 왕국은 이전부터 일본과 충분히 협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 상태에 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지금의 타이 왕국이 일본에 원조를 요구한다는 것은, 이는 전쟁 완수를 위해 기존의 경제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로 한 것에 한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精神)은 아시아 문명 본래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가장 중대한 요소 중 하나는 이 정신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태국은 자국의 문화를 선영하고 전쟁 수행을 위해 국민으로 하여금 일덕일심(一德一心)의 정신으로 단결시키고 동시에 일본과 문화협정 (1942년 10월 28일 체결된 일본-타이왕국 문화협정 (日泰文化協定)을 의미.) 을 체결하여 양국민의 정신적 유대를 강화시켜 왔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타이 왕국과 일본의 우호관계는 가장 밀접한 상태에 있다 할 수 있으며, 서로의 양해를 구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넓은 아량으로 타이 왕국의 실지 회복과 타이 민족의 역량 결집이라는 국민적 요망에 동감을 표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마라이(Malai) 4주 및 샨(Shan) 2주의 타이 편입을 승인하는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1943년 8월 20일 체결된 ‘마라이 및 샨 지방에 대한 타이국 영토에 관한 일본-타이 왕국 간 조약 (マライ及シャン地方に於けるタイ國の領土に關する日本國タイ國間條約)을 의미한다.) 이는 일본이 실로 타이 왕국의 독립 및 주권을 존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이 왕국의 일치단결과 국력의 증진을 도모하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타이 왕국 관민은 일본국 관민에 대해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일본은 타이 왕국에 보였던것과 같은 호의를 나아가 대동아의 여러 국가에 보이려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은 중화민국이 완전한 주권을 회복하는 것을 돕고 있으며, 만주국, 필리핀 공화국, 버마국의 독립을 지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립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자유인도임시정부의 수립을 원조하고 있습니다. 타이 왕국은 이러한 성과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충심으로 지지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타이 왕국은 오랫동안 이들 국가들과도 우호 선린 관계를 가지고 문화적 유대를 지속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대동아는 그저 지도상의 지리적 이름 이 아니라, 확고한 기초 위에 선 공영권 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대동아 각국민의 대사업은 전쟁수행상 상호 협력하여 절대적인 성공을 거두고, 각 국민이 가진 총력을 가하여 전체의 공통이익인 공영권의 항구적 확립을 위해 기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동아에 항구적 번영을 가져오는 공영권의 근본방침은 상호의 독립과 주권을 존중하고, 호혜의 기초 아래 사서 상호의 경제 관계를 증진시키고, 정의에 입각하여 상호 협력을 원조하고 물질적, 도의적 역량 및 정신력을 포함한 각국의 국력을 최고로 증진시키고 대동아 각국 및 대동아 전역의 평화, 행복, 번영을 확보 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대동아의 여러국가는 각각의 문화에 따라 발전을 이룩함과 동시에, 본 공영권의 진보와 발전의 고양이라는 공동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동아 각국과 세계 각국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일반적인 우호관계도, 통상관계도, 문화 관계도, 위에서 언급했던 원칙, 즉 독립 및 주권의 존중이라는 원칙 과 함께 상호호혜의 원칙에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계 평화는 이러한 원칙 아래에서만 확보불발(確乎不拔) 해지는 것입니다. 일본은 과학 지식과 근대 문명의 방법을 이용하되 아시아 문화를 진보의 한 요소로 삼은 선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속에서 대동아공영권이 대두되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본국 정부의 이름으로 일본 정부에 대해 다시 한번 심심한 만족과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타이 왕국 내각 총리 대신 쁠랙 피분송크람 원 수 각하의 이름으로 이 역사적 회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어 대동아의 안정과 번영을 더욱 증진시키길 기원하며, 저의 소견을 마치겠습니다. (박수) (이후 착석)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하며) 지금부터 오찬을 위하여 휴회를 선언합니다. 오찬 후의 회의는 오후 1시부터 재개하겠습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이후 퇴석) 1943년 11월 5일 (금) / 11시 20분 회의 휴회.
- 일본의 대 중화민국 항복문서 (日本向中國戰區投降降書 , 1945.9.9)
천졘 (陳堅) 의 《일본투항도 (日本投降圖) 》(2003) . 1945년 9월 9일 난징의 중앙육군군관학교 (中央陸軍軍官學校) 대예당에서 거행되었던 일본의 항복 조인식의 모습을 유화로 표현했다. 실제 항복조인식의 체결장면. 항복서류를 건내주는 일본측 (오른쪽) 인물은 오카무라 야스지 (岡村寧次) 지나파견군 총사령관, 항복서류를 건내받는 중화민국측 (왼쪽) 인물은 허잉친 (何應欽) 연합국 중국전구 중국육군 총사령관. 일본의 중국 전구에서의 투항 항서 日本向中國戰區投降降書 (일본의 중국전선에서의 항복 문서) 중화민국 34년 (1945) 9월 9일, 오전 9시 중화민국 난징시 중앙육군군관학교 대예당 일본 제국 및 일본제국 대본영은 연합국 최고 사령관에게 무조건 항복한다. ( 一、日本帝國政府及日本帝國大本營已向聯合國最高統帥無條件投降) 연합국 최고 사령관 명령 제1호 (1945.9.2) 에서는 '중화민국 (동북3성 제외) , 대만, 북위 16도 이북의 베트남 지역내 모든 일본의 육해공군과 보조부대는 장(蔣) 위원장에게 항복해야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 二、聯合國最高統帥第一號命令規定「在中華民國(東三省除外)台灣與越南北緯十六度以北地區內之日本全部陸海空軍與輔助部隊應向蔣委員長投降」 (이에 따라) 우리를 비롯한 상기 구역 내의 모든 일본 육해공군 및 보조부대의 장군은 예하부대를 통솔하여 장 위원장에게 무조건 항복하려 한다. (三、吾等在上述區域內之全部日本陸海空軍及輔助部隊之將領願率領所屬部隊向蔣委員長無條件投降) 본관은 즉시 제 2항에서 언급한 지역의 모든 일본 육해공군 각급 지휘관과 그 소속부대 및 통제부대에게 장 위원장이 특파한 수항( 受降) 대표인 중국전구 중국육군총사령관 허잉친 상장과 허잉친 상장이 지정한 각 지구의 수항 주관에게 항복할 것을 명령한다. (四、本官當立即命令所有上第二款所述區域內之全部日本海陸空軍各級指揮官及其所屬部隊與所控制之部隊向蔣委員長特派受降代表中國戰區中國陸軍總司令何應欽上將及何應欽上將指定之各地區受降主官投降) 항복한 모든 일본 육해공군은 즉시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잠시 기존 위치에서 대기하며 모든 무기, 탄약, 장구, 기자재, 보급품, 정보자료, 지도 및 문헌자료, 기타 일절의 자산 등은 잠시 임시적으로 보관할 것을 명한다. (일본 육해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항공기 및 비행장의 설비, 함정과 선박, 차량, 부두, 공장, 창고를 비롯한 일체의 건축물과 위의 2항에서 명기하고 있는 지역 내에서 일본 육해공군 및 통제부대가 소유하고 있는 군용 및 민간 자산도 모두 온전하게 유지하여 장위원장 및 그의 대표 허잉친 상장이 지정한 부대장 및 정부기관 대표에게 인계한다. (五、投降之全部日本陸海空軍立即停止敵對行動暫留原地待命所有武器,彈藥,裝具器,材補,給品,情報資料,地圖,文獻檔案及其他一切資産等當暫時保管, 所有航空器及飛行場一切設備,艦艇,船舶,車輛,碼頭,工廠,倉庫及一切建築物以及現在上第二款所述地區內日本陸海空軍或其控制之部隊所有或所控制之軍用或民用財産亦均保持完整全部産於蔣委員長及其代表何應欽上將所指定之部隊長及政府機關代表接收) 위의 2항의 구역 내에서 일본 육해공군이 포로로 잡은 연합국 포로 및 구금한 인민은 즉시 석방하고 지정된 장소로 보호 송환한다. (六、上第二款所述區域內日本陸海空軍所俘聯合國戰俘及拘留之人民立予釋放並保護送至指定地點) 이제부터 위의 2항의 구역 내의 모든 일본 육해공군은 즉시 장 위원장의 통제에 복종하고 장 위원장과 그의 대표 허잉친 상장이 하달한 명령을 받아드린다. (七、自此以後所有上第二款所述區域內之日本陸海空軍當即服從蔣委員長之節制並接受蔣委員長及其代表何應欽上將所頒發之命令) 본관은 본 항복문서에 열거된 각 항과 장 위원장과 그의 대표인 허잉친 상장이 이후 투항한 일본군에 대해 내린 명령에 대해 즉시 각급 장교 및 사병에게 위의 2항에 준하는 지역의 모든 일본군 장교 및 사병은 반드시 이 명령을 완전히 이행해야할 책임이 있음을 전달한다. (八、本官對本降書所列各款及蔣委員長與其代表何應欽上將以後對投降日軍所頒發之命令當立即對各級軍官及士兵轉達遵照上第二款所述地區之所有日本軍官佐士兵均須負有完全履行此項命令之責) 항복한 일본 육해공군의 어떠한 인원이라도 본 항복문서에 열거된 각 항과 장 위원장과 그의 대표인 허잉친 상장이 그 이후 하달한 명령에 대하여 이를 수행하지 않거나 이를 지연시켜려는 경우 각급 책임관장 및 명령을 위반한 자는 처벌을 받기를 희망한다. (九、投降之日本陸海空軍中任何人員對於本降書所列各款及蔣委員長與其代表何應欽上將嗣後所授之命令倘有未能履行或遲延情事各級負責官長及違犯命令者願受懲罰) 일본제국 정부 및 일본제국 대본영의 명을 받들어, 서명인 제국파견군 총사령관 奉日本帝國政府及日本帝國大本營命簽字人帝國派遣軍總司令官陸軍大將 오카무라 야스지 岡 村 寧 次 쇼와 20년 (양력 1945년) 9월 9일 오전 9시 昭和二十年(公曆一九四五年)九月九日午前九時 중화민국 난징에서 서명. 分簽字於中華民國南京 중화민국, 미합중국,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및 일본과 전투한 기타 연합국을 이익을 대표하여 중화민국 34년 (양력 1945년) 9월 9일 오전 9시 중화민국 난징에서 본 항복서류를 접수한다. 代表中華民國美利堅合衆國大不列 顚 聯合王國蘇維埃社會主義共和國聯邦並爲對日本作戰之其他聯合國之利益接受本降書於中華民國三十四年(公曆一九四五年)九月九日午前九時分在中華民國南京 연합국 중국전구 최고사령관 특급 상장 및 장제스의 특파 대표 중국 육군 총사령관 육군 1급 상장 中國戰區最高統帥特級上將蔣中正特派代表中國陸軍總司令陸軍一級上將 허 잉 친 何 應 欽 항복 조인식이 개최 당시의 난징의 중앙육군군관학교 대예당. 건물의 중앙에 승리(Victory) 를 의미하는 'V' 가 새겨져 있다. 본 항복조인식 이후 허잉친은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했다. "전국 동포 및 전세계 인사들에게 알린다, 중국 전구의 일본 항복 서명식이 9일 오전 9시에 난징에서 성공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는 중국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날이며, 8년 항전의 결과이다. 중국은 평화 건설의 큰길로 나아가 중화민족 부흥의 위업을 열 것이다." 같은날 장제스는 자신의 이름으로 제1호 명령 (第一號命, 1945.9.9) 를 내려 투항한 일본군으로 하여금 모두 자신의 통제와 명령에 복종하게 했다. 또한 모든 투항 지역 (구 일본 점령지역) 의 자산, 군비 등은 임시로 보관하고 대기하며 차후 국민정부에 인계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국민혁명군이 전면적으로 투항 지역 (구 일본 점령지역) 을 통제하기 위해 일본군으로 하여금 관련 자료를 자신에게 제공할 것을 명령했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①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943.11.5)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1943년 11월 5일,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 3층 회의실에서 대동아회의가 개최되었다. 회의 첫째날은 일본을 비롯한 참가국 정상들의 연설을 통한 각국의 의견을 청취하는데에 목적이 있었다. 1943년 11월 5일 (금) / 10시 6분 회의 개회.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하며) 지금부터 회의를 개최하려 합니다.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본 회의에 관하여 의장(議長)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지금부터 본 회의의 의장 후보를 추천받으려 합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착석) 완 와이타이콘 (타이 왕국 대표) : (기립후 영어로) 저는 타이 왕국 총리 각하를 대신하여 본 회의의 의장으로 일본국 대표 도조 히데키 각하를 본 회의의 의장으로 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도조 각하는 본 회의의 주최국인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일 뿐만 아니라, 최고의 정치가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본 회의에 함께하시는 분들 역시 저와 같은 의견을 가지리라 믿습니다. 저는 이 회의가 완전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중국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착석) 호세 리우렐 (필리핀 공화국 대표) : (기립후 영어로) 저는 필리핀 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본 회의에서 필리핀 공화국을 대표하여 방금 타이 왕국 대표 각하가 제안하신 안에 찬성하는 바입니다. 저는 도조 각하에 대해 깊은 애착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하가 대동아 제국(諸國) 에 보이고 있는 지도력에 대해서도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이곳에 계신 각국 대표분들도 이와 같이 생각하고 이 제안에 찬성할 것으로 믿습니다.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중국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착석) (전원 박수)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하며) 저는 본 회의에 참석하신 각국 대표분들의 추천을 받아 본 회의의 의장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각국 대표분께서 저를 의장으로 추천해주신 것에 대해 실로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 이번 회의는 각국 대표분들의 협력에 달려있습니다. 의장의 책임은 본 회의를 완전하게 진행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위한 각국 대표분들의 원활한 협력을 기대하는 바입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착석)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하며) 먼저 제가, 개최국 일본을 대표하여 인사를 드리며 아울러 일본 정부의 소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東條英機) 일본 내각총리대신. 도조 히데키의 연설 (1943.11.5) (일본어) 대동아전쟁 완수와 대동아 건설의 방침에 대하여 격의 없는 협의를 완수하기 위해 이번 대동아회의의 개최를 제안드리게 되었습니다. 기쁘게도 참가국 각국의 충심속 찬동을 얻게되어 대동아 각국 대표 각하분들이 이렇게 참석하시게 된 것에 되해 주최국으로서 지극히 기쁜 마음으로 가장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또한 일본을 방문하고 계시는 자유인도임시정부 수반 각하가 배석하시게 된 것 역시 정말 기쁜일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생각해보면, 영국 은 지난 수세기에 걸쳐 침략과 정복을 통하여 전 지구상에 광대한 영토를 획득하고, 그 우월적 지위를 끝까지 유지하기 위하여 세계 각지에서 타국들로 하여금 서로 상호 대립하게 했습니다. 또한 미국 은 유럽의 동란이 끊이지 않았던 과거 정세를 활용하여 아메리카 대륙의 패권을 확립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이에 머무르지 않고 미국-스페인 전쟁을 계기로 하여 태평양 및 아시아에 송곳니를 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하여 영국과 함께 세계 제패의 야망을 키워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의 세계전쟁 발발 이후 미국은 더욱 비약하여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 대서양, 호주, 중동, 인도 방면 등에도 차차 마수를 뻗치며 세계를 제패하던 영국의 지위를 자신이 대신하려 하고 있습니다. 영미는 평소 국제정의의 확립과 세계평화의 보장을 앞장서서 주장해왔으나, 이는 결국 유럽에서는 유럽 국가들의 분열과 분쟁을 조장하고 아시아에서는 식민지적 착취를 지속시킴으로서 자신들의 이기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영미의 존재방식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정치적으로 침략해 경제적으로 착취하고, 문화교육이라는 미명속에서 민족성을 상실하게 하고, 서로 충돌시켜 자신들의 야망을 도모해 왔습니다. 이리하여 아시아의 여러 국가 및 민족은 항상 그 존립을 위협받게 되었으며 그 안정을 교린당하게 되었으며 민생은 발전이 억제되어 정체된 상태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부르짖었던 문호개방, 기회균등주의는 동아를 근본적으로 식민지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시작했던 것으로, 사실은 그들의 동아 침략이라는 야망을 편리하게 실현하기 위한 구호,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막상 자국 영토 내에서는 동아의 여러 민족에 대해 항상 문호를 폐쇄하고, 기회균등주의도 실시하지 않고, 교역을 방해하며 오로지 자국의 이기적인 반영을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영미 양국의 세계 제패의 야망이야말로 실로 인류의 재앙, 세계의 화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동아의 여러 국가 및 여러 민족 사이에서 해방을 위한 궐기가 일어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 영미의 끝도 없는 폭력과 영미가 이민족을 늘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던 악랄하기 짝이 없는 이간질에 의해 이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때문에 일본의 흥륭은 영미에게 있어서는 가장 슬픈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영미는 매사 일본을 견제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과 다른 동아국가간의 관계를 이간질하여 자신들의 동아 침략을 가속화 하는 전략을 사용해왔습니다. 이는 생각건대 동아의 예속화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동아의 어떤 나라가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것도, 동아의 여러나라 및 여러 민족들의 단결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불리한 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영미의 동아예속화라는 야망은 특히 최근 몇 년동안 더욱더 악질적으로 노골화 되었습니다. 영미는 장제스 정권 을 사주하여 일화(日華) 양국의 외교를 방해했고, 나아가 불행한 중일전쟁의 발발로 이어지게 했으며, 이 전쟁의 해결을 위한 시도에 대해서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방해를 책략했습니다. 또한 이번의 세계대전의 발발 이후에는 전쟁의 수행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타국에 참견하여 평화적 통상을 방해하고 나아가서는 전쟁의 방식과 다를 바 없는 경제적 단교의 수단으로 위협을 가하고, 동아를 비롯한 주변에서 군비를 증강시켜 동아를 포위하고 우리에게 굴종을 강요하여 동아의 안정은 이전보다 더욱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미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오직 전쟁의 화란이 동아의 천지에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은인자중하며 끝까지 평화적 교섭을 통한 시국의 수습을 도모해왔습니다. 하지만 영미는 어떠한 반성과 양해의 태도도 가지지 않고 오히려 협박과 압박을 강하여 일본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습니다. 이에 일본은 결국 자존자위(自存自衞)를 위하여 결연하게 궐기하여 영미의 동아에 대한 도전에 대해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앞을 막는 일체의 장애물을 파쇄하고 동아의 영원한 평화 확립을 위해 국운을 걸고 전쟁에 매진하게 된 것입니다. 대동아전쟁이 시작되자 일본 육해군은 선모용전(善謀勇戰)하여 개전후 반년도 되지 않아 사실상 동아의 전지역에서 영미의 침략세력을 소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대동아 각국도 선전포고를 통해 함께 싸우거나 긴밀하게 전쟁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동아 여러 국가 여러 민족은 자각하고 대동아의 천지에는 열정이 팽배해지며 안으로는 서로를 믿고 밖으로는 영미의 공격을 격퇴하여 자존자위를 완수하고 대동아의 영원한 안정을 위해 용약매진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지금의 전쟁은 대동아 전 민족의 흥륭이 걸린 일대의 결전입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비로소 대동아의 여러 민족은 영원히 그 존립을 대동아 천지에 확보하고 공영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동아전쟁의 완수와 대동아 신질서의 확립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영미는 항상 그래왔듯이 막대한 물질적 전력에 의지하여 반격해 올 것입니다. 따라서 대동아 각국은 모든 힘을 다하여 이를 철저히 분쇄하고 나아가 이들에게 반격을 가하고 전쟁을 완수하여 대동아의 영원한 안정을 확보해야 합니다. 점점 시국이 중대해지고 있는 지금, 일본은 전쟁 초기 획득한 전략적 우위를 토대로 웅혼한 전투 작전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웅혼한 작전에 호응하여 더욱더 국내의 태세를 정비하고, 최근에는 결전화(決戰化) 를 도모하여 진정으로 일억 인구가 한마음이 되어 필승의 확신속에서 강인한 투지를 가지고 끝까지 이 대전쟁의 완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각국 대표 각하분들께서 대표하시는 대동아 각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대동아전쟁의 완수라는 책임에 응하여 전력을 다하여 숙적 영미를 격퇴하고 반격을 가하여 대동아의 영원한 안정을 도모한다는 확고한 결의를 굳건히 가지고 있다고 저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다음으로 대동아 건설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본적 견해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모든 국가가 각각의 자리를 얻고 서로 협력하여 만방 공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세계 평화 확립의 근본적 요의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특히 관계가 깊은 국가들끼리는 서로 국경을 뛰어넘는 협력을 하여 공존공영의 유대를 만드는 동시에, 다른 지역의 여러 나라와 협화의 연대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세계 평화 확립의 가장 유요하고 실질적인 방도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대동아 각국이 모든점에 있어서 떨어질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대동아 각국이 서로 협력하여 대동아의 안정을 확보하고 공존공영의 질서를 건설하는 것은 대동아 각국에게 주어진 공동의 사명이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대동아에서의 공존공영이라는 이 질서는 대동아 고유의 도의적 정신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대동아의 공존공영은 부정, 기만, 착취를 무릅쓰는 영미의 구질서와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대동아 각국은 서로의 자주독립을 존중하여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협력하는 관계를 확립해야 합니다. 상대를 수단으로만 생각해서는 조화로운 협력관계를 만들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자주독립을 존중하고 상대가 번영해야 자신 또한 번영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조화로운 협력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저는 믿는 바입니다. 본래부터 대동아에는 우수한 문화가 존재해 왔습니다. 특히 대동아의 정신 문화는 가장 숭고하고 유현(幽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더욱더 양성시켜 세계에 넓게 영향력을 미치게 할 수 있다면 이는 물질문명의 막다른 길을 타개하고 인류 전반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바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를 가진 대동아 각국은 상호간의 빛나는 전통을 존중하는 동시에 이를 더욱 발양하여 대동화의 문화를 더욱더 고양시켜야 합니다. 또한 대동아 각국은 민생의 향상을 위해, 국력의 충실을 도모하기 위해 호혜한 관계속에서 긴밀한 경제제휴 를 실시하여 협동을 통한 대동아의 번영을 증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대동아는 수십년 동안 영미의 착취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이제부터는 경제적으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주적인 경제를 건설하고 동시에 서로 협력을 기하여 공동의 번영을 도모해야 한다고 믿는 바입니다. 이렇게 건설되는 대동아의 신질서 는 배타적 인 것이 아닙니다. 대동아의 신질서는 세계 각국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적극적으로 협력 관계를 확립하여 세계의 진보에 공헌하는 것입니다. 이는 입으로는 자유평등을 이야기하면서 속으로는 타국가, 타민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가하고 상대방에게 문호개방을 강요하고 그 속에서 거대한 토지와 자원을 농단하는, 다른 이의 생존을 고려하지 않고, 생존을 위협하는 세계의 진보를 방해하는 영미가 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도의에 기반을 둔 대동아 건설은, 현재 전진의 한 가운데에 있으며 명확하게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영미의 인도에 대한 태도는 어떻습니까? 현재 영국의 탄압은 하루가 가면 갈수록 더욱 강해지고 있고 최근에는 미국의 야망까지 더해지면서 영미와 인도민중간의 괴리는 더욱 더 커지며 4억의 인도 민중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일어난 최악의 기근 (1943년 벵골 일대에서 일어난 벵골 기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은 영미 스스로도 심각성을 인정할 만큼 인도 민중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도에서는 뜻있는 이는 모조리 감옥에 갇히고, 무고한 민중은 모두 굶주림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로 세계의 비극이며 인류 모두에게 뼈아픈 일입니다. 의분에 불타는 우리 대동아민족으로서는 결코 방치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때가 되었다 판단한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가 궐기하자 이에 호응하여 내외의 인도 지사들도 일어났고 이 속에서 자유인도임시정부가 수립되며 인도 독립의 기초는 이제 갖추어 지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이에 인도 독립을 위해 어떠한 협력과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것을 대외에 천명하였습니다. ( 1943년 10월 일본은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저는 대동아의 다른 국가들도 인도의 독립 완성을 위해 진심으로 협력할 것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영미는 이름바 대서양 헌장 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들이 지금 인도에서 실제로 행하고 있는 모습 은 대서양 헌장의 내용과는 어떠한 논리를 펼쳐도 조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러한 그들의 모순 을 한두번 본 것이 아니기에 놀라지 않습니다. 전 세계의 사람들 역시 오늘날 영미가 겉으로는 아름다운 간판으로 속의 모순을 포장하고 있다는 것을, 기만과 위장, 속임수가 그들 영미의 본성이라는 것 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적측이 무엇을 원하든, 어떤 이야기를 하든 간에, 일본은 대동아 각국과 협력하여 떳떳한 천지의 길을 걸으며 대동아를 영미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대동아 각국과 협력하여 대동아의 부흥과 흥륭을 도모할 것입니다. 이제 대동아의 여러 국가와 여러 민족의 결집은 이루어졌고, 만방공영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대동아 신건설의 발걸음은 당당한 위용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유럽의 정세를 살펴보면, 맹방 독일은 더욱더 국민적 결속을 확고히 하고 있으며,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영미를 공격하며 유럽신질서 건설을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실로 힘이 넘치는 모습입니다. 대동아전쟁은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성전으로 대의 명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정의의 편인 우리에게 궁극적인 승리가 돌아올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동아 각국이 충심으로 대동아전쟁에 협력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함과 동시에 앞으로 더욱 가열될 가능성이 높은 전국에 대처하여 일본은 앞으로도 대동아 각국과 유럽의 맹방과 제휴를 다지어 필승의 확신아래 어떠한 어려운 싸움도, 어떠한 고난도 극복하여 우리들의 공동 사명으로 하는 이 대동아전쟁을 완수하고 대동아 건설을 완성하여 진정한 세계평화의 확립에 굳게 기여할 것을 천명하는 바 입니다. 이로써 저의 소견을 마치겠습니다. (박수) (이후 착석)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⑪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 - 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943.11.6)](https://static.wixstatic.com/media/00f48f_01ab40eb536847bba407cbf8a1589044~mv2.jpg/v1/fit/w_176,h_124,q_80,usm_0.66_1.00_0.01,blur_3,enc_auto/00f48f_01ab40eb536847bba407cbf8a1589044~mv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