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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⑮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43.11.7)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이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1.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2.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23.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4.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5.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6.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27.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나치 독일) 의 연설 [부록] 28.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9.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30.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31. 대동아회의 일정표 왕징웨이가 대동아회의 기간 묵었던 숙소인 이와사키 고야타 (岩崎小弥太, 일본 재벌 미쓰비시의 4대 총수로, 1916년부터 태평양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미쓰비시의 총수를 역임했다. ) 의 저택. (고야타의 별저는 고야타의 아버지이자 미쓰비시의 3대 총수였던 이와사키 야노스케(岩崎弥之助) 가 1908년 영국의 건축가 조시아 콘도르의 설계 아래 건설한 저택으로, 야스노케는 이 저택이 완성된지 얼마되지 않아 사망하여 고야타가 물려받게 되었으나 고야타는 해당 저택을 싫어하여 자신의 저택을 아타미(熱海) 에 별도로 건설했다. 현재 해당건물은 개동각(開東閣) 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여전히 미쓰비시가 관리하고 있다.) *일본은 회의 참가국 대표마다 별도의 숙소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회의의 개최가 전반적으로 비공개로 진행되었다는점, 보안과 경호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호텔을 비롯한 일반적인 숙소보다는 일본 정부 및 관련 인사가 소유한 곳을 숙소로 제공하였다. 숙소에는 니혼바시의 미츠코시 백화점 앞에 있었던 오사와 국기점(大澤國旗店)에서 제작한 깃발이 걸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자유인도임시정부 대표였던 찬드라 보스는 도쿄 시바구(芝區) 미타츠나마치 (三田綱町) 의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의 아들 시부사와 케이조 (澁澤敬三) 의 저택을 숙소로 사용했다.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도쿄 시바구(芝區) 타나카와미나미쵸(高輪南町) 이와사키 고야타(岩崎小弥太) 별저 응접실 / 오전 7시 30분) 이제 대동아회의도 순조롭게 종료되었습니다. 이렇게 기자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웃으며, 옆의 저우포하이(周佛海)와 린바이셩(林柏生)도 함께 웃는다, 그리고 안주머니의 별갑(鼈甲) 안경을 꺼내쓰고 원고를 꺼내든다.) 왕징웨이의 담화문 (1943.11.7 오전 7시 30분) 저는 이번 세계사에서 위대한 의의를 가진 대동아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을 내심 이를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의를 통해 일본 도조 수상의 위대한 이론을 경청하고, 각국 대표들의 위대한 이론을 직접 접하게 되어 진심으로 감복하는 바입니다. 지난 백년을 돌이켜보면, 영미 양국 은 제멋대로 침략과 착취정책을 자행하며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세계 지배 야망 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국 세력은 그 야망을 처음에는 남양 , 그 다음에는 중국 으로 확장시켜 아편전쟁 을 일으켰습니다. 미국 도 태평양을 넘어 동아를 침공하여 영국과 연합하여 협공지세를 형성하였습니다. 당시 동아민족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었으나, 다행히 일본이 홀로 일어서는데 성공하여 영미의 야망을 막아내고 영미에게 타격을 입혔습니다. 하지만 영미의 이러한 야심은 변하지 않아 계속하여 동아 민족을 이간질 시키고 서로 싸우게 하여 동아는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동아전쟁 이 시작되어 영미 양국의 세력이 동아에서 무너지고, 영미 침략이 착취해왔던 소득과 시도는 모두 일본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렇기에 대동아의 모든 민족은 일본이 동아를 지켜낸 공적에 대하여 감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은 영미 양국이 동아를 해치고 동아의 침략 정책을 가져왔다고 생각하여 영미세력을 격퇴하고, 나아가 이들이 펼쳤던 정책을 제거하려 하고 있습니다. 즉, 공존의 구호 를 통해 침략의 구호 를 바꾸고, 공존 을 통해 착취 를 끝내고, 동아민족이 각각 자주독립할 수 있게 하고 상호간의 자주독립을 존중하며, 문화방면에서는 그 창의력과 조화력을 발휘하게 하며, 경제방면에서는 호혜를 실행하고, 장단점을 서로 보완하여 유무상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본방침은 영미의 기존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동양의 도의정신에 근거한 것으로, 서양의 이기적인 모습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번 대동아회의 는 일본이 주최하여 동아의 각국가들과 연합하여 단결의 힘으로 도의정신을 발휘하게 하는 위대한 공헌으로, 대동아 각국가들의 영원한 우호의 토대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영원한 화평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화민국의 국부 손중산 선생이 이야기한 "일본의 유신이 동아의 기회가 될 것" 이라 한 것은 증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손중산 선생 이 제창한 대아시아주의 (쑨원이 제창한 개념으로, 쑨원은 이 대아시아주의를 통하여 중국과 일본의 연대를 추구했다. 그리고 일본과 협력하고 있었던 왕징웨이는 이러한 자신의 행동이 쑨원의 대아시아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길이라 주장했다.) 는 일본이 중국의 불평등 철폐에 협조하는 것도 소망해왔는데, 이 또한 이제는 구체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저는 몇일 전 주중 일본대사와 중일동맹조약 을 체결한데 이어 오늘 중화민국을 대표하여 대동아회의에 참석하여 대동아공동선언 에 서명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가한 각국 대표분들도 모두 같은 열정과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대동아전쟁의 목적은 반드시 관철될 것이고 대동아의 건설도 반드시 관철될 것이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위의 목적과 임무를 완수, 달성하는 것은 동아 각 민족의 노력, 그리고 동아 공동의 노력에 달려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진국인 일본은 동아를 보위하기 위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고, 우리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부흥하길 희망하고 대동아전쟁을 관철시켜 대동아 건설완성의 책임을 분담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동아의 광명대업은 대동아 각 국가민족이 스스로 노력하고, 함께 노력해야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미가 예전에 행해오던 침략과 약탈의 정책은 이미 무너졌고, 영미가 행해왔던 이간질도 이제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떠한 정책을 펼치든, 어떠한 감언이설을 펼쳐 우리를 유인하거나 이간질을 하더라도, 우리의 신념은 이제 흔들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억압을 받지 않고 속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대동아 각국이 공동으로 노력하여 반드시 대동아를 해방시키고 대동아의 광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기자단과 왕징웨이의 문답 Q : 대동아공동선언의 중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A : 대동아공동선언 5항목 중에 어느점에 중점을 두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생각되는데, 대동아공동선언은 5가지 항목이 한데 모아 일체를 이루는 것으로, 어떠한 항목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순 없습니다. 대동아공동선언을 분석하여 설명하자면 제1항은 총론이라 할 수 있으며, 제2, 3, 4항은 이를 세세하게 다룬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2항의 독립자주의 존중이라는 것은 각국의 국민으로 하여금 자신과 상대방의 국가를 사랑하고 동시에 동아를 협동체로서 사랑하는 것을 의무로 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제 3항은 문화의 융합, 제4항은 경제제휴를 강화해야 함을 강조하고 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5항은 대동아공동선언은 미국의 먼로주의 와 같이 배타적인 것임이 아님을 세계에 천명한 것으로 중국에게는 어느 항목이든 똑같이 모두 중요하며 중국은 만강의 성의를 가지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Q : 인도를 원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지. 또한 중국은 현재 상태로는 인도의 독립에 대해 적은 원조를 할 수밖에 없지만, 인도의 독립에 관해서 중국은 인도와 성심성의껏 긴밀하게 관계를 맺으며 인도와 동고동락하고 싶습니다. 대아시아주의와 동아의 공존공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도의 독립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영미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인도의 독립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때문에 이러한 인도를 지원하겠다는 일본의 지원성명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와 경복(敬服) 하는 바입니다. 인도의 기근에 대해서는 전시하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생각하지만 영국은 이를 전혀 대처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도인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인도에는 이제 영국의 억압 대신 일본의 독립원조라는 밝은 희망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은 아직 간디 씨를 투옥시키고 있지만 (간디는 1942년 독립운동 중 체포되어 1944년이 되어서야 석방될 수 있었다.) 일본은 인도의 다른 혁명가 찬드라 보스씨를 지원하여 인도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 일화동맹조약이 어떠한 영향을 불러올것이라 보는지. A : 생각건대 전쟁이란 어느쪽도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고통이 있을지라도 앞길에 희망이 있다면 그것을 견뎌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중국 화평지구의 민중은 전쟁 발발 이래 계속하여 고통을 겪어 왔습니다. 하지만 동맹조약이 체결되면서 민중은 밝은 희망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동맹조약의 체결은 충칭측에 상상 이상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충칭의 선전 방침을 보면 ‘항전을 해도 망하고, 안해도 망한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같은 죽음을 당할꺼면 철저히 항전하다 죽는 것이 낫다는 완전한 비관론 으로, 이러한 비관론을 통하여 민중이 화평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동맹조약 의 체결은 일본은 중국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중국의 자주독립을 완성시키려 한다는 것 을 증명하였습니다. 현재 충칭에는 화평에 반대하는 이 도 있고, 화평에 찬성하지만 말하지 못하는 이 도 있고, 어느 쪽도 좋다는 이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동맹조약을 신속하게 충칭의 각 방면에 철저히 선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충칭의 미몽을 분쇄 하고 충칭을 반성 시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Q : 정치력 및 경제력 강화를 위한 방책은 무엇인지. 동맹조약은 국민정부의 정치력을 강화하고 경제력을 강화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여기에는 3가지의 요점이 있습니다. 이는 바로 사상의 숙정, 치안의 확보, 생산의 증강 입니다. 사상의 숙정 을 살펴보면, 과거 중국에는 영미의 사상, 즉 자유주의를 비롯한 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철저히 숙정하려 합니다. 치안의 확보 에 대해 살펴보면, 중국은 대동아전쟁의 후방으로서 최전선에 있는 일본 장병의 부담을 덜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장래적으로는 중국군도 전선의 노고를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산의 증가 에 대해 살펴보면, 중국은 현재 농업과 경공업의 발전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농업의 경우 잡곡류의 생산 증가를 목표로 하여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남중국 민중들에게 잡곡을 보다 많이 사용하게 하려 합니다. 또한 경공업은 먼저 면직업부터 착수하려 하고 있습니다. Q : 물가문제 및 식량문제에 관해 현재 중국의 경제 상황은 어떠한지. 현재 중국 경제의 중대 문제인 물가 문제의 해결은 앞에서 보았던 면직물의 정부 매입이나 일본의 원조에 의해 착착 진척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어디까지나 이러한 전시상황에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면할 수 있는 고통은 최대한 없애고, 면할 수 없는 고통은 어디까지나 인내해 나가는 방침 을 취하고 있습니다. 면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은 물자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러한 결핍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면할 수 있는 고통은 첫째, 중국과 일본의 협력과 조정을 통하여 영향을 최소화하고, 둘째, 통제의 방법을 통하여 고통을 경감시키고, 셋째,국민에게 청렴결백의 정신을 양성하여 민중의 수많은 고통을 최대한 줄여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⑭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1943.11.6)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의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이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1.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2.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23.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4.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5.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6.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7.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8.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9.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30. 대동아회의 일정표 1943년 11월 6일 오후 3시 17분, 이틀간 진행되었던 대동아회의는 종료되었다. 대동아회의가 종료된 후 회의에 참가했던 각국 대표는 회의장을 나오며 기자들에게 가벼운 소감에 가까운 성명을 발표했다.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1943.11.6) 왕징웨이의 성명 대동아전쟁이 개시되고 동아에서 영미 양국의 세력은 처음으로 붕괴를 고하게 되었고, 그들의 침략과 착취 기도는 완전히 일본에 의해 소멸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동아를 보장하는 공적에 대해 대동아 여러 민족은 감사를 표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일방적 침략과 착취의 시대를 공존과 공영의 시대로 바꾸고 동아 각민족이 각자의 자주독립을 이루고 서로가 서로의 자주독립을 존중하고 문화에 있어서는 창조력과 조화력을 발전시키고 경제에 있어서는 호혜를 실행하여 장단상보(長短相補), 유무상통(有無相通) 하게 했습니다. 이는 동양이 본래 가지고 있던 도의적 정신으로, 서양의 공리적인 견해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선진국인 일본은 최대의 역량을 발휘하여 동아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를 비롯한 신흥국가로써 부흥을 도모하는 국가는 각각의 전력을 다하여 대동아전쟁을 완수하고 대동아공영권 건설 완성의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완 와이타이콘의 성명 저는 약 3년전 타이 왕국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간의 국경 확정회의를 위하여 일본을 방문한적이 있습니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의 영토문제는 일본정부의 중계로 정당하게 완만히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일본은 대동아 지역에 있어서 평화와 안정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정의가 행해지기를 요구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은 이번 기회에 현실이 되었습니다. 대동아전쟁의 발발과 함께 타이 왕국은 곧바로 일본의 동맹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이번에 관대하게도 타이 왕국이 영국에 의해 빼앗긴 북부 말라이의 4주와 샨 지방의 2주의 타이 왕국 편입을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타이 왕국에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친선 행위를 다른 대동아 국가들에게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에 도쿄에서 열리게 된 대동아회의는 공영권의 건설과 친선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 회의는 유례없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번 회의의 결과로 발표된 대동아공동선언은 대동아 및 전 세계 역사의 신기원을 긋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일본의 더욱 친밀한 벗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귀국 후에는 반드시 타이 왕국 국민들에게 일본 국민이 이 전쟁을 이겨내겠다는 굳은 결의를 가지고 있음을 전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타이 왕국은 일본 국민에 대한 최고의 경의를 표하며 동시에 최대의 협력을 할것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장징후이의 성명 동아 각국이 역사상의 한 획을 긋게 되는 이번 대동아회의를 개최할 수 있게 된 것은 천황 폐하의 위세 아래 충렬한 일본 육해군 장병들이 용전하고 일본의 소위 살신성인(殺身成仁) 하는 숭고한 정신과 이를 행하기 위한 실천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충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지금 세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치열하고 심각한 결전의 장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대문박(地大物博)의 동아와 서양의 추축국이 융연(融然)하게 화합하여 혼연일체가 된다면 어떠한 틈도 생기지 않고 필승불패의 신념을 더욱 양양하여 당당한 총진군을 이루어 승리의 영광이 우리 앞에 있게 될것임을 저는 확실히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호세 라우렐의 성명 대동아 각국 및 각국 국민은 스스로를 보위하고 또한 세계의 평화 진전을 위해 이제 강고하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열렬한 신념과 감위의 정신에 불타 수많은 문명을 낳아온 우리들의 조상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숨겨진 그 힘의 근원을 찾아 지혜와 경험의 무한한 저력 속에서 우리들의 생활을 개조하고 우리들의 동양에 인종적, 문화적, 경제적 패권을 형성하고 동양의 창조적 정신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후 각국 대표들은 신주쿠의 신주쿠교엔(新宿御苑) 을 방문하였다. (이 방문에는 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 친왕 ( 高松宮宣仁親王), 도조 히데키 총리대신, 기도 고이치 (木戶幸一) 내대신부, 마츠다이라 츠네오 (松平恆雄) 궁내대신, 시마다 시게다로(嶋田繁太郎) 해군대신, 시게미츠 마모루 (重光葵) 외무대신, 아오키 가즈오 (青木一男) 대동아대신 등이 참가 했다) 신주쿠교엔에서 각국 대표와 일본 정부측 인사들은 쇼텐페이(翔天亭) 앞 피어있는 국화를 감상하며 4시 다과회를 가졌다. 이후 오후 6시, 총리 관저에서 개최된 만찬회에 참가하며 6일의 일정은 끝이났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⑬ 왕징웨이 (중화민국) 의 폐회사 (1943.11.6)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회의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의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이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1.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2.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23.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4.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5.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6.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7.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8.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9.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30. 대동아회의 일정표 왕징웨이 (汪精衛) 중화민국 국민정부 (난징) 행정원 원장. 왕징웨이의 폐회사 (1943.11.6) (중국어) 의장 각하 및 각 대표 각하 여러분, 나는 중화민국 대표로서 여러분의 허락을 받아 한마디 하려 합니다. 이번 대동아회의는 이틀에 걸친 도조 총리대신 의장 각하의 지도와 각 대표 여러분의 협력에 따라 아무런 막힘없이 마무리되었고, 이속에서 절대적인 성과를 얻게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너무나도 기뻐 중화민국 대표인 저는 여러분의 앞에서 말을 잇기가 힘듭니다. 대동아공동선언은 이제 세계에 공표되었습니다. 이 선언의 가장 큰 특징은, 동아의 도의 정신을 분명하게 선언에 명시 하고 구미의 이기주의적 견해 를 일소한 것에 있습니다. 이를 자세히 이야기해보자면, 미영의 끊임없는 약탈과 착취를 전통으로 여기는 정책을 뿌리부터 일소하여 새롭게하고, 공존공영에 기초한 동아의 신천지를 개척하여 동아 각국로 하여금 각국의 독립 자주를 확보하고, 서로의 독립자주를 존중하고, 문화적으로는 각국의 고유의 특성을 발휘하고 존중함과 동시에 긴밀한 협력속에 문화의 융합과 창조를 위해 노력하며, 경제적으로는 호혜를 기초로 하여 각자가 가진 장단점을 보완하여 유무상통을 실현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 대동아 각국은 필시 그 단결을 공고히 하고,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은 한층 더 증진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세계 평화 역시 필시 더욱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저는 믿는 바입니다. 동아의 도의 정신은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고 조금도 서로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가지지 않으며, 세계의 평화는 이에 따라 그 기초와 방도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영미과 같이 인종적 편견을 가진 자에게서는 전혀 꿈도 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중화민국 대표로서 이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이 성대한 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감격할 따름입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내용은 다만, 각국이 각국의 국민을 영도하고, 선진국 일본을 본받아, 일본과 함께 우방적 관계에 있는 타이 왕국, 만주국, 신흥 버마국, 필리핀 공화국과 자유인도정부와 동심협력하여 대동아공동선언을 이행하고 대동아공영의 건설을 실현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저 또한 아직 중국의 통일을 보지못한만큼 , 하루 빨리 중국을 통일하여 하루 빨리 전국의 정신력, 물력을 집결하여 대동아의 책임을 분담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오로지 모든 힘을 다해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도조 의장 각하의 지도와 각국 대표 각하분들의 협력에 대해 감사드리며, 아울러 대동아전쟁의 필승과 대동아건설의 성공을 축복하는 바입니다. (박수)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기립후) 이렇게 간독(懇篤) 스러운 발언을 해주신데에 대해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그럼 이것으로 폐회를 선언하겠습니다. (이후 퇴석)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이후 박수) (15시 17분 폐회)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⑫ 도조 히데키(일본)의 폐회사 (1943.11.6)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 이상 별도의 발언이 없는 것으로 보이어, 의장으로서, 일본국 대표로서 폐회의 인사를 진행하려 합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東條英機) 일본 내각총리대신. 도조 히데키의 대동아회의 폐회사 (1943.11.6) (일본어) 본 회의에 참석 하신 각국 대표 각하께서는 이틀의 본회의 기간 동안 시종일관 가장 진지하면서도 우호적인 분위기속에서 의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각국 정부의 고매한 견해를 솔직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천명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동아의 역사에서, 아니 인류의 역사에서 처음 보는 장관으로, 전세계의 눈이 이 회의에 집중되게 된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본 회의의 첫 번째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와 같은 격의없는 의견 교환의 결과, 대동아 각국은 대동아전쟁 완수와 대동아 건설에 대한 결의와 세계 평화의 확립이라는 이상에 대한 열의는 근본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을 이번 회의에서 서로 확인하게 되며 각국은 점점 서로를 믿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의지하며 공동의 이상과 공동의 사명 달성을 향해 함께 매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점이 본 회의의 두 번째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성과 는, 가장 중요한 성과로서 말할 것도 없이 각국 대표 각하분들과의 완전한 의견 일치를 통하여 대동아공동선언 을 채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대동아공동선언이야 말로 대동아 각국의 전쟁관은 무엇인지, 평화 건설의 이념은 무엇인지를 가장 간결하고도 강력하게 보여주는 대헌장 으로, 세계 역사의 새로운 장을 명확하게 써 내려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동아 각국 및 각국 국민에게 본 선언은 이들로 하여금 명확한 공통의 목표를 얻게 하는 기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또한 제휴를 통한 목표 달성 도달을 장려하기 위해 뜻을 함께하는 전세계의 여러 국가 및 여러 민족에게 본 선언은 대동아 각국의 전쟁 및 건설을 위한 노력에 존경과 동정을 표하고 대동아 건설의 이념에 대한 이해를 깊게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적의 전쟁 목적 은 본 선언의 발표에 따라 필연적으로 더욱 어두컴컴해질 것입니다. 대동아회의는 이와 같이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완성하였습니다. 이에 대동아회의의 폐회를 고하는 바입니다. 이 회의의 성공을 저는 동경해 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성공은 오로지 본 회의에 참석하신 각국 대표 각하 분들께서 정성껏 임해주신 덕분이며 참가국 각국 국민들이 본회의에 대해 열의를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 덕분입니다. 추가적으로, 저는 각국 대표 각하 여러분의 추천 에 의해 본 회의에서 의장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심심한 경의와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주최국 일본을 대표하여 한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바쁜 시국에, 국무가 매우 다단한 상황에 계시는 각국의 대표분들을 이렇게 어렵게 모시게 되었음에도 회의장의 설비 준비 가 여러 가지로 완전하지 못했던 점 에 대해서는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부족하셨던 점이 있으셨다면 아무쪼록 넓은 아량으로 양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박수) (이후 착석)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⑪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 - 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943.11.6)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도조 히데키 (東條英機) 일본 내각총리대신. 도조 히데키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 연설) (1943.11.6) (일본어) 방금 인도와 관련된 버마국 및 자유인도임시정부 대표 각하의 발언이 있었습니다.이에 대해 일본 대표로서 발언하고자 합니다. 인도 4억 민중의 숙망인 인도의 자유 독립 및 번영을 위하여 자유인도임시정부의 깃발 아래 인도의 우국지사들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인도를 생각하는 마음, 아시아를 생각하는 마음에는 열정이 가득하다는 것은 방금 자유인도임시정부 대표 각하의 연설에서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있습니다. 인도를 위해, 장래의 대동아를 위해 진실로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이 인도를 영미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그 숙망의 달성을 위하여 모든 지원을 보내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여러번의 성명을 통하여 이미 밝혀진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자유인도임시정부가 기초를 점차 확립시키고, 자유인도임시정부 아래에서 궐기하는 동지들이 열렬한 기세의 초지관철(初志貫徹)의 정신을 보이고 있으며, 그 결속은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는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인도 독립의 첫 번째 계단으로서 일본 정부 는 현재 점령하고 있는 인도령인 안다만(Andaman) 제도 및 니코바르 (Nicoba) 제도를 가까운 시일 내에 자유인도임시정부에 귀속시킬 용의 가 있다는 뜻을 본 회의에서 일본 제국은 천명하는 바입니다. (박수) 모든 국가로 하여금 각각의 자리를 얻게하고 그 백성들 모두로 하여금 국가라는 울타리 속에 안주하게 하다는 일본의 대이상은 착착 구현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들어 일본은 더욱 더 인도의 독립을 위해 전폭적인 협력을 하기로 결의함과 동시에 인도 민중들 역시 한층 더 분발해줄 것을 갈망해 마지 않는 바입니다. 그리고 대동아 각국이 일본과 뜻을 함께 하고 인도 독립을 위하여 최선의 힘을 다해 지원한다는 열렬한 의견을 어제 및 오늘의 회의 석상에서 각국 대표 각하분들께서 표했던 것을 저는 실로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대동아 각국이 앞으로도 더욱 인도의 독립을 위하여 강력한 지원을 해주실 것을 확신하며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박수) (이후 착석)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⑩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943.11.6)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 채) 자유인도임시정부 수반 각하의 발언을 희망하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에 특별히 이 자리에서 이를 수락하여 자유인도임시정부 수반 각하의 발언을 들으려 하는데 이에 대해 이의 있으신 분 있으십니까?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이의가 없다는 뜻으로 박수를 침)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대표) : (기립후 영어로) 저는 발언의 기회가 없었습니다만은, 이렇게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분들께서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이렇게 폐회즈음에 인사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후 폐회의 인사,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중국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수바스 찬드라 보스 (Subhas Chandra Bose) 자유인도임시정부 주석 및 인도국민군 총사령관. 찬드라 보스의 연설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 연설) (1943.11.6) (영어)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 그리고 열석자 여러분, 자유인도임시정부를 대표하여, 이번 역사적인 회의에 배석하는 영광을 얻게 된 것에 대해 저와 저 동료들은 최고의 영광으로 여기며 이러한 은정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충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각국 대표 각하분들의 발언 중에 표해주신 인도독립에 대한 동정 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길인 무장투쟁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을 확인해 주신 것에 대해 저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인도 독립의 문제에 대해서, 이 웅대한 회의에서 방금 채택된 대동아공동선언 은 여러 각국 대표 각하분들께서 평소 우리에게 피력하셨던 의견을 구체화하고, 이를 명확하게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쁜 소식이 엄숙하게 회장의 담을 넘어 신속하게 저의 고향에 전달된다면, 영국의 탄압 아래 신음하고 있는 수억의 인도 동포들은 새로운 희망을 얻고 감격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보도가 해외로 전파된다면, 마음속에 가책을 가지고 있었던 적국 영국을 비롯한 세계 국가 인민들의 가슴에 용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을 것이라 의심치 않습니다. 이제 자유인도임시정부를 위해, 자유인도임시정부의 지도를 받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영국제국주의에 대한 최후의 결전 이 머지 않아 전개될 것입니다. 때문에 방금 채택된 대동아공동선언은 실로 말할 수 없는 끝없는 국제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 입니다. 우리는 이 선언을 통하여 무적불패의 일본이 우리의 뒤에 엄연히 서있다는 것과, 이제 해방된 대동아 10억의 여러 국가 및 여러 민족이 굳건하게 단결하였다는 것을 비추어 보며 우리의 원수에 대한 무력의 싸움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각국 대표 각하 여러분, 저는 어제 오늘 회의의 진행과정을 경청하면서, 근대 역사상의 모든 국제적 회의가 뇌리에 스쳐지나갔습니다. 지난 100년간의 일을 생각해보면,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린 1815년의 빈 회의 , 크림 전쟁 이후에 개최되었던 파리 회의 (1856) , 발칸 반도에서의 러시아와 오스만제국의 전쟁 이후 개최되었던 베를린 회의 (1878) , 또한 가깝게는 1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알렸던 베르사유 회의 (1918) , 대동아에 있어서 영미의 세력을 영구히 확보시키려는 음모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워싱턴 회의 (1921) 등의 회의는 모두 영미의 세력을 세계에 영구히 확립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진 국제회의 였습니다. 이는 대동아회의의 취지와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 본 회의는 서양에서 행해진 것과는 매우 다른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 회의는 적어도 전승자들 사이의 전리품을 분할하기 위한 회의 가 아닙니다. 또한 본회의는 특정 약소국을 희생시키는 음모를 꾸미는 회의 도 아닙니다. 본 회의는 해방된 여러 민족 및 여러 국가들의 호혜주의, 상호원조, 긴밀한 협력, 상호 독립자주의 존중이라는 도의적 정신에 의거한 회의입니다. 이 회의가 해의 나라 일본에서 개최된 것도 반드시 우연한 일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욱일이 동양에서 승천하는 것과 같이, 과거의 모든 잔악한 착취를 해결해야 하는 새로운 세력이 반드시 동양에서 나오리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인도적으로도 필연성이 있음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아시아에서의 중심 세력은 이전부터 일본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믿는 바입니다. 러일전쟁의 대승리 이래 동양의 여러 민족들은 일본의 세력을 존중하고 일본의 지도하에 동양의 여러민족의 해방을 희망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최근 범아시아주의, 범아시아연맹 이라는 구체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인도 역시 이전부터 동양의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세력을 존중하고 언젠가는 일본의 지도 아래 아시아의 여러 민족이 단결할 것이란 열의에 찬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도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려 합니다. 인도는 본래 국제주의 를 사상의 근본으로 하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국제주의는 인도가 과거 불교를 중심으로 동쪽의 다른 나라들과 빠르게 접근 하게 하였고, 중세에는 서쪽에서 이슬람 세력이 인도에 이르게 되자 인도는 인도의 특징인 보편주의, 국제주의에 기반하여 서아시아의 여러민족과 제휴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슬픈 것은, 이러한 국제주의가 이후에는 오류가 있는 국제주의가 되어 유럽 세력의 정복과 침입을 용이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비애, 비통, 비정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국제주의 와 올바른 국제주의 를 충분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시에 이러한 고통 속에서 동양의 단결, 국제적 단결이 성공하는가 성공하지 못하는가 는 그 연맹 혹은 그 집단을 지도하는 지도국가의 방침이 정의와 도의에 근거하는가 아닌가 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대동아공영권이 정의에 입각한 이상 반드시 이 국제적 단결은 성공으로 끝날 것임을 확신하며 의심치 않습니다. 대동아공영권의 확립은 단순히 대동아 각 민족의 번영과 행복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서아시아 전체의 행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나아가 아프가니스탄, 알제리와 아라비아 인에게도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자이신 각국 대표 각하분들의 노력을 치하함과 동시에 전 동양인들이 이 공영권의 확립과 성공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기뻐하고 있음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인도 독립의 문제에 대해 제가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인도 독립의 문제가 대동아의 여러 국가들의 여러 문제와 다른점은 우리 인도는 끝까지 숙적인 영국과 전쟁하고 이를 이겨내야만 하는 운명에 있다는 것입니다. 인도가 나아가야 할 길은 투쟁 단 하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타국이라면 영국과 강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도로서는 절대 영국과 강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도에게는 완전한 승리를 보던지, 이전처럼 영국의 탄압을 받아드리며 살아가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 인도의 문제를 논하고 있을 때도, 고국에서는 수천만 명이 탄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와 저의 동료 및 인도국민군의 병사들은 전장에 나가게 되면 몇 명은 델리에 입성할 수 있을것이라 기대하고 스스로 뺨에 열기가 차오르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멩세코 인도의 자유, 인도의 독립 성립을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국가를 위해 바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각국 대표 각하분들의 노력이 큰 성과를 거두어 오카쿠라 카쿠조 (岡倉覺三) 선생의 꿈이 실현되기를, 손중산 (孫中山) 선생의 꿈이 실현되기를 (오카쿠라 카쿠조와 쑨원 모두 이름바 ‘아시아론자’ 로서 아시아의 단결을 통해 서양의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고자 했다.) 전인도 민중의 이름으로 부탁하는 바입니다, 나아가 일본이 대동아공영권 확립이라는 목표를 완성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본 회의에서 채택된 이 대동아공동선언이 대동아 민족의 해방헌장이 되는 것을 넘어 아시아 전 민족의 해방헌장이 될 수 있기를, 이 1943년의 공동선언이 인류 역사상 기억될 대헌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저는 일본 대표 각하를 비롯한 각국 대표 각하의 인도 독립에 대한 원조에 대해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함과 동시에, 반드시 영국을 인도에서 몰아내고 자유인도를 하루라도 빨리 확립시킬 것임을 천명하며 저의 소견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중국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⑨ 바모의 추가적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 연설) (1943.11.6)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장징후이의 연설이 끝난 후 바모가 손을 든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 채) 버마국 대표 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바모 (Ba Maw) 버마국 내각총리대신. 바모의 추가적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 연설) (1943.11.6) (영어)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 그리고 열석자 여러분, 버마국의 대표로서 발언을 허락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합니다. 대동아회의의 주요 의제도 이제 완료되어 이에 대해 동경을 느끼는 바입니다만, 여기서 대동아회의의 목적과 불가분한 문제가 하나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인도 독립 의 문제입니다. 이번 회의의 배석자로서 자유인도임시정부의 주석이신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께서 참가 하고 계십니다. 찬드라 보스 각하께서 이 대동아회의 석상에 참석하신 것은 인도의 독립문제가 이렇게 대동아건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제의 회의에서 저는 “인도의 자유 없이 아시아의 자유 없다” 라고 언명한 바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이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버마국의 사람들은 인도의 독립문제에 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견해를 충분히 밝힐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며 본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장 큰 공헌을 하고 계시는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께서 본 회의에 참석하신 기회를 얻으신 만큼, 저는 인도독립의 문제를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의 입으로 직접 듣기를 친히 희망하는 바입니다. 이에 저는 어디까지나 인도독립문제의 서론으로서, 저의 인도독립문제에 관한 소견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버마와 인도는 오랜 세월 가시밭길을 함께 괴로워하며, 함께 힘을 합쳐 걸어왔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고난의 괴로움을 함께 끝내기 위하여 공동의 적을 함께 바라보며 불리함 속에서도 계속하여 싸움을 이어왔습니다. 이전까지 버마는 인도에 비해 많은 방면에서 뒤떨어져 있었습니다. 지금의 버마가 가지고 있는 정치철학, 정치정책 및 여러 가지 기술은 모두 인도에서 배운 것이었습니다. 또한 또한 종교 방면에서도 버마국은 인도를 스승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버마국 대표로서 인도에 대한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인도와 버마가 오랜 세월동안 비참하게 고통 받아온 이러한 상황은, 아마도 그것을 실로 목격하고 경험한 우리들 이외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투쟁은 가장 악랄하고 가장 비인도적인 적 영국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투쟁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인민이, 정예무기에 맞서 싸우는 투쟁 이었습니다. 때문에 인도와 버마는 항상 정예무기의 앞에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현재의 세상은, 누가 무엇을 주장하든 결국에는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무기가 없다면 아무런 것도 이룰 수 없는 세상입니다. 우리들은 오랜 투쟁을 거치면서 하나의 신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바로 인민이 준비되지 않으면, 인민에게 무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정예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적에게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교훈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전까지의 인도와 버마의 영국에 대한 투쟁은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 아닌, 무기와 사람의 싸움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긴 투쟁 속에서 수많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이 바로 본 회의에 참가하신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의 이력에 대해서는 이곳에 계시는 각국 대표 각하 및 열석자 여러분께서 모두 충분히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기에 저는 이에 대해 다시 설명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찬드라 보스 각하가 신흥 인도를 대표해야할 위인이자 위대한 지도자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께서 동양에 나타나시어 영국에 대한 인도의 투쟁을 스스로 이끌며 나아가려는 결의를 보이는 것과,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에 감탄하며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각하께서 나타나시어 아시아 10억의 민중은 단결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인도의 투쟁 역시 반드시 성공적으로 끝날것이라는 걸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인도의 자유 없이 아시아의 자유 없다” 라는 저의 주장을 반복하는 바입니다. 저는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수세기 전 영국이 제국주의의 마수를 대동아에 뻗쳐 동양에서 장대하고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것도 실은 인도의 물질을 충분히 착취하고, 인도의 인적 자원을 착취했기에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이를 저희 버마의 경험을 통해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영국이 버마를 제패한것도, 오랜 기간동안 버마를 영국에 발밑에 둘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인도의 물자를 활용하고 인도의 병사를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영국이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정책으로, 영국은 전통적으로 타국을 정복함에 있어서 반드시, 자국의 병사를 사용하지 않고, 인도군 혹은 다른 식민지의 군대를 이용해 왔습니다. 필시 이번 세계대전에서도 영국은 마지막 소련군 1명까지도, 마지막 미군 1명까지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 할 것입니다. 버마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북쪽으로 그 마수를 뻗으려 할 것입니다. 영국은 어떻게든 인도의 자원과 인도의 인민을 이용해 악랄무도한 정책을 이어가려 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영국을 비롯한 대동아의 숙적을 이 성스러운 천지에서 추방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영국을 인도에서 완전히 추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일단 한번 영국을 인도에서 추방하면, 과거 흥했던 ’대영제국‘ 의 힘도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저는 이 이상 인도의 독립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삼가겠습니다. 저는 제가 하지 못했던 인도의 독립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께서 피력해주셨으면 하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 대동아의 여러 국가 및 민족이 멩세코 인도독립운동에 전력을 다하여 수바스 찬드라 보스 각하 및 인도국민군과 협력하여 소망이었던 델리로의 진군 을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내기를 바랍니다. 이를 끝으로 저의 소견을 마치겠습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중국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⑧ 장징후이의 추가의견 (1943.11.6)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 채) 이것으로 예정되었던 의사일정은 종료되었습니다. 이와 별도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 대표분 계십니까?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장징후이가 손을 든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 채) 만주국 대표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장징후이(張景惠) 만주국 국무총리대신. 장징후이의 추가적 의견 (1943.11.6) (중국어) 만주국 대표로서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 그리고 열석자 여러분의 허락을 받아 이에 한 말씀 드리려 합니다. 만주국 대표로서 한마디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방금 이렇게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의 대동아회의가 대동아건설에 대해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매우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은 각국 대표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확신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번기회에 이러한 종류의 회의가 앞으로도 수시로 이번과 같은 방식으로 개최되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이를 끝으로 제 소견을 마치겠습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⑦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과 각국대표들의 의견 (1943.11.6)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대동아회의의 이틑날인 1943년 11월 6일, 이날의 회의는 일본이 '대동아공동선언(大東亞共同宣言) 을 제안하고 이에 대한 각국의 의견을 청취하여 대동아공동선언을 통과시키는 데 주요 목적이 있었다. (실제로는 공동선언의 작성과 같은 것은 이미 사전에 이루어졌으며 이들 국가들과의 의견 조율 역시 사전에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1943년 11월 6일 (토) / 09시 58분 회의 개회.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 지금부터 오늘의 회의를 개시하겠습니다.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오늘은 구체적인 회의를 진행하려 합니다. (이후 착석)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 일본 제국의 대표로써, 저는 여러분께 대동아공동선언안을 의안으로 제출합니다. 먼저 제안 안을 낭독하겠습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대동아공동선언(大東亞共同宣言) 본래 세계 각국에게는 저마다의 자리가 있고 서로 의지하고 돕고 모든 국가가 함께 번성하는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은 세계평화 확립의 근본이다. 그러나 미영은 자국의 번영을 위해 다른 나라나 민족을 억압하고, 특히 대동아에 대해서는 질리지 않는 침략과 착취를 하고, 대동아를 예속화하려는 생각을 버리지않고, 마침내 대동아의 안정을 밑바닥부터 뒤집어 버리려고 했다. 대동아전쟁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대동아각국은 대동아를 미국과 영국의 족쇄에서 해방시키고 대동아전쟁을 완수하며 자존자위를 완성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한다. 세계 평화 구축을 위한 대동아 건설의 기본 지침은 다음과 같다. 1. 대동아 각국은 협동하여 대동아의 안정을 확보하고 도의에 근거한 공존공영의 질서를 건설한다. 1. 대동아 국가들은 서로의 자주와 독립을 존중하고 서로 조화롭게 협력하며 대동아에 친밀감, 화합, 화합을 구축한다. 1. 대동아 각국은 서로의 전통을 존중하고, 각 민족의 창조성을 늘려 대동아 문화의 기치를 높힌다 1. 대동아 국가들은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대동아의 번영을 증진하기 위해 호혜주의를 바탕으로 긴밀히 협력한다. 1. 대동아 각국은 모든 나라와의 교류를 깊게 하고,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널리 문화를 교류하고, 널리 자원을 개방해 세계의 발전에 공헌한다. (이후 착석)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 제안자로서 제안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드리려 합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의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제안 설명 東條英機の「大東亜共同宣言」に関する提案説明 (1943.11.6) (일본어) 본 회의에 참석하신 각국 대표 각하께서는 어제의 본회의에서 본 회의의 의제인 대동아전쟁의 완수와 대동아건설의 방침에 대하여 시종일관 열정을 가지고 실로 유익한 소견을 피력하셨습니다. 본 대표는 이러한 소견들을 적극적으로 경청하여 본 회의에 참석하신 각국 대표 각하분들과 소신을 함께하는 동지로써 공동의 목적 달성을 위해 만진하는 충만한 열정을 함께 가지게 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본 대표는 어제 회의에 참석해주신 각국 대표분들께서 보여주신 고매한 의견과 확고한 투지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고 크게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각국 대표 각하께서 대표하시는 대동아 각국의 국민들은 본 회의에서 보여지는 열렬한 기백을 접하며 더욱더 공동의 목적 달성에 매진할 새로운 결의를 다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이러한 참가국 대표 각하분들의 의견을 충분히 참고하여 방금 낭송한 바와 같은 대동아공동선언의 안을 본 회의에서 심의하는 것이 본회의의 성과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에 본 안을 제안드리는 바입니다. 내용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본안의 제1단 에서는 세계 평화 확립의 근본적 요의를 들어내고 , 제2단 에서는 대동아전쟁 발발의 원인을 지적하며, 제3단 에서는 대동아전쟁의 완수와 대동아건설에 대한 결의를 표시하며 제4단 에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대동아건설의 강령이 필요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강령의 경우 제1항은 공존공영(共存共榮)의 원칙 , 제2항은 독립친선(獨立親和)의 원칙 , 제3항은 문화양양(文化昂揚)문화의 원칙 , 제4항은 경제번영(經濟繁榮)의 원칙 , 제5항은 세계 진보공헌(世界進運貢獻)의 원칙 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1항은 대동아건설의 방법 을 제시하고 있으며, 제2항 내지 제4항은 대동아 각 상호간의 관계 를 주창하고 있으며, 제5항은 대동아와 대동아 밖의 여러 국가들과의 관계 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를 본 회의에 참석하신 대동아 각국 대표 각하분의 이름으로 공동선언 하려 합니다. 이는 세계에 공적으로 대동아 각국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으로, 조약과 같은 취지와는 다른 것입니다. 이상으로 저의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이후 착석)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본 제안에 대해 의견이 있으신 분은 발언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왕징웨이가 손을 든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중화민국 대표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왕징웨이의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의견 汪精衛の「大東亜共同宣言」に関する所見 汪精衛對《大東亞共同宣言》的意見 (1943.11.6) (중국어) 왕징웨이 (汪精衛) 중화민국 (난징) 국민정부 행정원장. 의장 각하, 각국 대표 각하, 그리고 열석자 여러분, 방금 의장 각하로부터 대동아공동선언안이 제출되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만강의 성의를 가지고 찬성과 옹호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어제 의장 각하께서는 대동아전쟁의 목적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현재 국력의 전력을 다하여 영미의 격멸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어째서 영미를 격멸하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이 영미의 지위를 대신 하기 위함은 결코 아닙니다. 이는 영미의 지배 밑에 있는 대동아 민중을 해방 시키기 위함입니다. 이는 대동아 각각의 민족이 독립자주 (獨立自主)를 획득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전 영미의 전통적 지배정책과는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영미의 동아에 있어서의 전통적 지배정책은 강탈과 착취였습니다. 때문에 영미는 동아인에게 독립과 자주를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정부가 영미를 격멸하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일본은 영미의 격멸을 통하여 영미의 착취적 강탈 정책을 소멸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일본은 동아 각국으로 하여금 이들이 독립자주 를 획득하게 하기 위해 원조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동양의 국가들이 공존공영할 수 있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확실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믿는 것은 바로 대동아전쟁의 필승입니다. 왜냐하면 대동아전쟁은 대동아 각국으로 하여금 일치단결하게 하여 각각의 국가와 민족이 독립과 자주를 얻게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대동아의 공존공영을 실현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명정대한 목적에 강탈과 착취는 대항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대동아전쟁은 필승입니다. 타이 왕국은 자주독립을 위하여 분투하였고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만주국 역시 이와 같습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필리핀 공화국, 버마국, 자유인도임시정부 역시 이와 같은 자주독립을 위한 분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중국은 자주독립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선진국의 원조가 필연적임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자신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노력의 결과로써 국력과 민력을 증진시켰을 때만 비로소 중국은 공존공영에 기여하는 일부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동아공동선언은 5개의 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동양의 도의정신(道義精神)에 근간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동양 각국이 서로의 독립을 존중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들이 각각의 노력을 통하여 공존공영을 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동아전쟁과 대동아의 건설은 결코 다른 별도의 일이 아닌 하나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대동아의 공영권 건설은 대동아전쟁의 승리 이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대동아전쟁의 과정속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의장 각하께서는 어제 대동아선언의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동아공동선언안이 제출되었습니다. 이는 어제 이야기하신 원리를 열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선언이 이렇게 충실한 내용을 가진다면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은 이론이 아닌 현실이 되어 반드시 실현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런 뜻에서 저는 만강의 성의를 가지고 찬성과 옹호의 뜻을 거듭 표명하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여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대동아공동선언의 제5항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대동아공동선언의 ‘정신’은 소위 ‘먼로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먼로주의는 ‘아메리카인의 아메리카’라 주장하지만, 이는 인종적 편견에 근거한 것으로, 타인종을 배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대동아공동선언은 동아권으로 하여금 영미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에 목적 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독립자주를 통해 공존공영의 실현 을 이루는 것이 대동아공동선언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대동아공동선언은 대동아를 보장하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의 기초에도 기여하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로써 저의 소견을 마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의장 각하에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타이 왕국 대표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완 와이타이콘의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의견 ワンワイタヤーコーンの「大東亜共同宣言」に関する所見 旺·威泰耶康對《大東亞共同宣言》的意見 (1943.11.6) (영어) 완 와이타이콘 (Wan Waithayakon) 타이 왕국 내각총리대신 대리. 의장 각하, 각국 대표 각하, 그리고 열석자 여러분, 저는 방금 제출된 의안을 꼼꼼히 읽으며 제안자인 일본 측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 내용이 충실함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대동아공동선언안을 통독해보면, 대동아건설의 원리와 대동아의 각 국가 및 각 국민들의 성전(聖戰)을 완수하기 위한 결의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문화 방면에 걸쳐서는 대동아 문화 및 문명을 최고도로 발휘하여 세계의 진보에 공헌해야 함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친화(親和)에 의한 밀접한 관계의 중요성 역시 충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대동아의 경제발전은 호혜의 정신, 긴밀한 협력의 토대에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동아 및 대동아 밖의 국가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본 선언안이 가장 현실의 상황을 잘 반영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는 대동아공동선언의 정신 은 영미 양국이 대동아에서 침략과 착취의 정책을 불평등조약과 같은 무력속의 억압에 근거하여 펼쳤다는 것 을 상기해보면 이와는 완전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대동아 및 대동아 밖의 국가의 관계는 호혜의 원리에 근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이는 실로 명확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타이 왕국의 총리대신의 이름으로 저는 본 회안에 대하여 만강의 찬성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중국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만주국 대표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장징후이의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의견 張景惠の「大東亜共同宣言」に関する所見 張景惠對《大東亞共同宣言》的意見 (1943.11.6) (중국어) 장징후이(張景惠) 만주국 국무총리대신. 만주국 대표로서, 방금 일본 대표 각하께서 제의하신 대동아공동선언안에 찬성과 옹호의 뜻을 피력하고자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의장 각하 및 각 대표 각하께서는 이를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대동아전쟁은 대동아의 해방전쟁인 동시에 악영무도한 영미를 격멸시키기 위한 성전입니다. 영미의 세계 제패라는 야망을 꺽지 않는한, 세계의 평화는 절대로 찾아올 수 없고 인류의 복지 또한 바랄 수 없습니다. 때문에 대동아전쟁을 완수하는 것만이 새로운 동아를 건설하는 동시에 세계의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본 선언의 안팎에서 이야기하는, 무릇 세계의 인종을 인도(人道)로써 사랑하고 정의를 존중해야한다는 뜻에 공감하며 대동아건설의 발전을 축복하며 믿고 있습니다. 대동아의 숙적인 영미는 전쟁을 수많은 물량에 의지하여 세계를 자신의 발밑에 두고 유린하며 착취한다는 목적만으로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벌이며 수많은 인명을 살육하고 도처의 국토를 침해하는 비인도적인 모습의 끝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실로 전 인류의 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때문의 방금 일본 대표 각하께서 제의한 공동선언은 대동아의 번영, 세계의 항구적 평화의 확립, 인류의 복지증진 달성을 기할 수 있는 실로 천경지의(天經地義, 하늘이 바른 길을 얻고, 땅이 적절 함을 얻는 길이라는 뜻으로, 정당하고 변할 수 없는 도리를 이르는 말.) 의 대강령이라 할 수 있으며 대동아의 10억 민중에게 일대의 광명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만주국 대표로써 이에 만강의 열정을 가지고 찬성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필리핀 공화국 대표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호세 라우렐의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의견 ホセ・ラウレルの「大東亜共同宣言」に関する所見 何塞·帕西亞諾·勞雷爾對《大東亞共同宣言》的意見 (1943.11.6) (영어) 호세 라우렐 (Jose P. Laurel) 필리핀 제2 공화국 대통령.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 그리고 열석자 여러분, 저는 필리핀 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함께 이 역사적인 의안에 대해 찬성과 옹호의 뜻을 표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며 만강의 성의를 가지고 대동아공동선언안에 찬성하는 바입니다. 또한 동시에 본 의정서가 신속하게 만장일치를 통하여 본 회의에서 채택되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의장 각하께서는 통상시의 명확한 언어로 대동아공동선언안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선언서는 틀림없이 대동아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의 목소리, 희망, 꿈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의안을 신속하게 통과시키는 것을 제안드립니다. 대동아공동선언은 어떠한 세계 각국을 도발하고, 개성을 가진 각국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동아공동선언은 단지 동아에 있는 여러 국가와 민족의 개성을 인정하고 이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선언서에서는 대동아전쟁의 원인을 명확하게 표기하고 있고, 대동아건설의 근본적 원리를 명확하게 표기하고있으며 나아가 대동아의 각 국가 각 민족이 일어나 한마음이 되어 이 전쟁을 완수하고 대동아건설을 확립하여 동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항구적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선언서를 채택시키는 것이, 미국이 소위 이야기하는 ‘먼로주의’, 유럽이 소위 이야기하는 ’대륙주의‘ 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동아공동선언은 인류 도덕상의 하나의 대헌장과 같은 것입니다. 이 빛나는 선언으로 인해 대동아의 일각에 빛이 다시 찾아왔음이, 나아가 세계 인류에게 빛나는 광명이 다시 한번 도래하고 있음을 확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대동아공동선언에서는 인종적 차별을 철폐하고, 각국이 가진 고유의 전통문화를 존중, 고양시키며, 각국의 독립을 상호 존중, 옹호해야 함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이러한 고매한 정신을 충분히 포함하고 있는 대동아공동선언은 실로 역사적 일대의 선언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회의에 임하여 작지만 필리핀 공화국을 대표하여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이 중대선언인 역사적 공동선언에 진임으로 열의있는 찬성과 옹호를 표하며 본 소견을 통하여 본 의안이 채택되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입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중국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버마국 대표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바모의 《대동아공동선언》에 관한 의견 バー・モウの「大東亜共同宣言」に関する所見 巴莫對《大東亞共同宣言》的意見 (1943.11.6) (영어) 바모 (Ba Maw) 버마국 내각총리대신.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 그리고 열석자 여러분, 어제 회의에서 우리는 대동아의 각 대표를 대표하여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것임을, 아시아는 하나임을, 아시아인은 일치 단결하여 이 아시아라는 성지에서 평화와 경사, 진보, 그리고 운명을 함께 해야 한다 는 원칙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와 같은 원칙은 구체적 정책, 구체적인 계획이 되어 이 대동아공동선언안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공동선언안이 공동선언안이 세계의 어느 헌장보다 더 훌륭하고 빛나는 헌장임을 확신하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대동아공동선언안에는 우리 동양인들이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든 이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언문의 전문을 한번 보면, 공존공영, 상호의 자유독립, 상호간의 문화의 전통을 존중, 각 민족의 창조성을 신장시킨다 와 같은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말할 필요 없이 동양의 사상을 보여주는 것이며, 아시아는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동양민족은 서로를 함께 돕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신을 표명한 것입니다. 대동아공동선언안의 특징은 본 선언이 ’아시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대동아 밖의 여러 국가와의 관계를 명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이 대동아공동선언의 위대한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는 공동선언안의 근본 원리와 정신에 만강의 찬성과 옹호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여기서 찬성의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대동아공동선언에서 가장 감동하는 부분은 제5항으로, 5항에 포함되어 있는 근본정신은 우리 상호간의 관계는 평등, 정의, 호혜의 3원칙에 입각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3원칙에 따르면 인종적 차별은 철폐되어야 합니다. 인종적 차별을 행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제5항의 근본정신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5항의 내용을 특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현실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항상 현실파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먼저 대동아의 안정을 우리의 중대한 책임으로 삼아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각국은 지금은 평화롭게 생존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과거부터 이러한 생존권을 빼앗긴 나라는 항상 다시 생존권을 되찾기 위해 투쟁을 벌여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들 역시 끝까지 투쟁하여 생존권의 최종적, 완전적 확보라는 최후의 승리를 획득해야 합니다. 선언문을 통독, 연구하면서 저는 이상가로서 선언문의 문구가 약간은 좁은 의미에 머무르는 것 같다 는 생각도 가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현실가로서 현재의 정세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먼저 대동아 속에서의 안녕과 질서를 가장 중대시 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동아공동선언에 포함되어 있는 이 정신을 장래에는 이를 더 폭넓게 적용하여 아시아의 모든 문제를 포함할 수 있도록 여유를 충분히 가지고 나아갈 수 있게 해야합니다. 앞에서 반복한 대로 우리는 현재의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선 이상가여서는 안됩니다. 현실가여야 합니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재의 정세가 요구하는 중대사입니다. 세계는 일찍이 암암리에 약소국들이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대국이라할지라도 고립되게 되면 존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전세계의 주된 경향은 국가들의 단체적 행동에 의한 안정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본능인 이 단체생활이 현재의 세계의 정치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아메리카인이 ’아메리카인의 아메리카‘ 를, 유럽인이 ’유럽인을 위한 유럽‘ 을 제창한다면, 이를 매우 불쾌하게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럼에도 구미인들이 이러한 그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저는 감히 ’아시아인의 아시아‘ 라는 좁은 의미의 정신을 주창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대영제국의 정치기구만 보더라도 역시 단체행동에 의한 안정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국가들이 이러한 정책을 추종하고 있는 이상, 우리 대동아의 여러민족 역시 ’아시아인의 아시아‘라는 기치 아래 일치단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뜻에서 저는 대동아공동선언에 만족을 표하는 바이며, 본 선언을 통하여 우리는 힘차게 세계로 나아갈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세계서 강력한 힘을 보유하며, 세계 정세가 요구하는 대로 힘에는 힘으로 대항하고, 단결에는 단결로 대항할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일치단결하여 우리들이 항상 이야기하던,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이상인 ’빛나는 아시아‘ 를 다시 한번 이 지구상에 실현시키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이후 착석) (이를 일본어로, 그다음 중국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이상 또 다른 발언이 없는 것으로 보이기에, 오후의 회의에서 본 의안을 채결에 붙이기로 하고 지금부터 오찬을 위해 휴회를 선언합니다. 오찬 후의 회의는 오후 12시 45분부터 재개하겠습니다. 추가로 한가지를 더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오후의 회의는 추축국 측의 대표 및 대표 지위를 가진 제국관민들을 방청을 위해 초대하여 계속하려 하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후 퇴석)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오후 12시 45분, 회의 재개.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 지금부터 회의를 재개하겠습니다. 오늘 오전의 일정의 의안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것은 이것으로 종료하겠습니다. 이어서 지금부터 의안의 채결을 진행하겠습니다. 이에 다시 한번 의안을 낭송하겠습니다. (이후 제안을 낭독, 이후 착석)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 채결은 기립을 통해 진행하려 합니다. 방금 낭독한 의안을 본 회의에서 채결하는 것에 찬성하는 대표는 기립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전원 기립)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한 채) 만장일치로 의안을 채택하겠습니다. 이로서 대동아공동선언이 성립되었습니다. 본 공동선언은 대동아회의 사무국을 통해 발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착석, 박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⑥ 바모 (버마국) 의 연설 (1943.11.5)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오후 15:27 (입장, 착석)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 지금부터 회의를 재개하겠습니다. 계속하여 각국 대표분들의 의견 발표가 있겠습니다. 버마국 대표 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바모 (Ba Maw) 버마국 내각총리대신. 바모의 연설 (1943.11.5) (영어) 의장 각하, 각국 대표 각하 및 열석자 여러분, 저는 소견을 개진하기에 앞서 조금 망설임을 느낍니다. 생각건대 본회의와 같은 경우, 우리 일동의 가슴속에는 당연하게도 오직 하나의 유일한 생각만이 있습니다. 이를 표현하는 말은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지지만, 우리에게는 하나의 마음, 하나의 의도, 하나의 목적에서 비롯된 단 하나의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저의 소견 중에서 각국 대표 각하 분들에 의해 이미 개진된 사상, 감정, 사실이 여러번 반복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렇게 되풀이하여 말하는 것 조차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버마 역시 일본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기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저는 이전 각국 대표분께서 하신 말씀과 똑같은 말을 하고, 같은 소견을 전달하기 위해 본국 버마에서 왔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결국 우리 모두가 같은 소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서서 주위를 바라보며 제 가슴에 떠오르는 것은 과거의 정치정세 속에서 출석에 대해 여의치 않게 여기는 서양의 여러 회의 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이들 회의에서도 다수의 사람이 모여 서로를 정중히 취급하고, 담소를 나누며, 각종일 및 전망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회의를 보면 주인들끼리만 모여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고 항상 마치 고대 로마의 그리스인 노예가 된 것 같은 느낌 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회의의 공기는 전혀 다릅니다. 이 회의에서 나오는 감정은 어떻게 표현해도 과장할 수 없습니다. 수십년 동안 저는 버마가 ‘아시아의 꿈’ 을 계속하여 이루길 빌어왔습니다. 저의 아시아인으로서의 끓어 오르는 피는 항상 다른 아시아인의 부름을 받아왔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저는 제 꿈속에서 아시아가 호소하는 소리를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꿈에서 들었던 아시아의 함성을 현실로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시아인들은 이 포효, 우리들의 어머니의 부름에 따라 여기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회의장에서 언급된 각국 대표 각하의 소견에 대해 만강의 감동으로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런 소견들은 모두 저의 기억에 남았고 감동으로 가득 찼습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저는 마치 아이를 불러 모으는 어머니 아시아 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대표 각하분께서 어떤 이야기를 하시든, 어떠한 지역적 특색이 더해지든, 이 회장에서 흐르는 것은 단 하나의 ‘목소리’ 였기 때문에, 어떤 소견이든 거기에는 의도와 목적, 그리고 정신의 통일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를 우리들의 아시아를 위한 피와 함성이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시아를 마음으로 생각할 때가 아니라, 장래적으로 피로서 생각해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몇일에 걸쳐 버마에서 일본에 온 것도 이 아시아를 피로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이루어졌던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연설 중에서도, 가장 기억해야할 것은 의장 각하 의 소견입니다. 의장 각하께서는 평소와 같이 투쟁의 연설을 하셨지만, 오늘의 연설은 투쟁의 연설을 넘어 탄생의 연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장 각하께서는 마치 진정한 무사가 자신의 무기를 선택하는 것처럼 한 마디 한 마디를 엄격하게 선정하셨고, 그 말들을 유선화시켜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배치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저는 각국 대표 각하분들과 함께 의장 각하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세계의 흐름은 정말로 급단적이고 너무나 빨라서 대동아전쟁의 이전에는 오늘과 같은 만남이 이루어질 것 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시아인이 오늘날과 같이 여기에 이렇게 모이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저는 의장 각하의 연설중에서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라는 새로운 세계가,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의 세계기구가 현실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겨우 몇 년전만 하더라도 아시아인은 서로 분할되고 소외되어 서로가 서로를 알지못하고 서로를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향토로서의 아시아는 존재하지 않았고, 아시아는 ‘하나’ 가 아니라 분열되어 있었으며, 아시아는 자신을 분할한 적의 수와 똑같이 분할되어 있었고 아시아는 대부분 어떠한 타국을 그림자처럼 추종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길고도 긴 시간이었던 과거에는 오늘날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있는 것처럼 아시아의 각 국민이 만나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 불가능했던 꿈은 이제 실현되었습니다. 그것도 우리중 가장 대담한 몽상가도 꿈꿀 수 없었던 형태로 현실화 되었습니다. 오늘 대동아회의는 동아의 수도 도쿄에서 개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동아회의를 통하여 신세계의 신질서가, 아시아인이라는 새로운 국적이 탄생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국민은, 아시아가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진리속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동포로서 모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동아 국민의 회합은 무(無)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마술사의 비둘기처럼 모자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는 동아에서 구세계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오랜 기간의 여러 사건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를 가능하게 했던 사건들은 아주 거대하게, 오랜 기간에 걸쳐 넓은 범위에 영향을 끼쳐온 사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 의한 아시아 지도권의 장악, 무적인 일본군의 전격전 작전에 의한 동아의 석권 및 반아시아 세력의 격퇴,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전 동아 및 아시아의 진전에 한 획을 긋고 있는 버마 및 필리핀의 독립 및 양 국가 국민의 적 격퇴를 위한 결집등, 그 외에도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위대하고 중요한 사건등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서양에서는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저의 소견을 잠시 이어가기 전에, 이러한 내용은 이전 다른 각국 대표 각하분들께서도 언급하신 내용이지만, 저는 이러한 내용을 버마국의 말로서 다시 한번 말하는 것도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고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는 바 이렇게 같은 내용일지라도 다시한번 말씀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대동아전쟁 전에는 동양을 완전한 변화시킨 사건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대동아전쟁의 발발 전까지 오랫동안의 방황속에서, 황야속에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속에서 우리를 구출해준 것은 바로 동양의 지도국가 일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전 동아는 일본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저는 전 동아가 흔연히 이렇게 일본이 베풀어준 은혜에 대해 크게 보답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저는 오늘의 만남이 정말 뜻 깊은 행사라 감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의장 각하의 말씀대로, 우리는 정의, 평등, 호혜에 근거하여 나를 살리고 모두를 살린다는 대원칙 아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나가고 있습니다. 동아는 모든 방면에서 보아도 하나의 자체적인 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적으로는 자급자족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넘쳐날 정도로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전략적으로는 어떠한 적에게도 지지하고 적의 공격을 격퇴할 수 있으며, 정신적으로는 이미 ‘하나’ 가 되었으며, 자기 자신만의 천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시아인들은 수세기 동안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고 때문에 엄청난 손실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인은 결국에는 아시아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 덕에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다시 깨닫고 이에 따라 행동을 개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아시아인은 반드시 다시 아시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며, 앞으로 이러한 간단한 진리를 어떻게 따르는가에 따라 아시아의 전 운명이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교훈을 아주 비싼 댓가를 치루며 체득한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서 이러한 소견을 말하는 바입니다. 저희 버마 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가 및 국민도 이러한 교훈을 얻기 위해 굳은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버마의 경우, 우리는 자비도, 정의심도 없는 적에게 댓가를 치뤘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모든 형식에 있어서 죽음과 파괴의 댓가를 치루고 있습니다. 이전의 겨우 1,600만명에 불과한 버마인이 버마인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 국가로 태어나기 위해 벌였던 투쟁은 항상 실패를 겪었습니다. 여러 대에 걸쳐 우리의 애국자는 분발하여 민중을 이끌고 타도영국에 매진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도 아시아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1,600만명이 아닌 10억의 아시아인이 단결하면 쉽게 성취할 수 있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여 우리의 저항은 적에게 항상 부족하고 적에게 가로막혀 지금으로부터 15여 년전에 일어난 전국적 반란 (1930년 12월 22일 사야 산 (Saya San) 이 일으킨 반영 반란을 의미하는 것.) 역시 성공하지 못하고 유린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과정에서 버마의 마을들은 불탔고, 부녀자들은 학살당했고, 지사들은 감옥에 같이거나 사살당하거나 추방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반란은 패배로 끝났지만, 계속하여 저항의 불꽃은 계속되며 버마를 비롯한 아시아의 저항은 차례차례 반복되며 버마인 모두에게 이러한 저항의 불꽃이 타오르게 하였고 이러한 불꽃속에서 투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우리의 힘은 이제 1,600만 버마인의 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10억 동아인의 힘이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동아가 이렇게 강력해진 이상, 버마는 이제 강력하며 불패하는 것입니다. 이상 저는 동아를 하나로 보고 소견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만, 사실 동아는 지금 완전히 하나로 뭉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동아가 아직 불완전하고 여기 저기에 간극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는 바로 인도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인도를 제외하고 동양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는 특별히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항상 ”자유로운 인도 없이 자유로운 버마 없다“ 라고 선언해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자유로운 인도 없이 자유로운 아시아 없다“ 라고 명확하게 단언하는 바입니다. 인도는 반 아시아세력에게 아시아 침략의 무기고이자 보고이자 발판 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침략자를 수많은 보물이 있고, 자원이 있고, 인력과 물력이 있는 이 인도에서 추방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도의 자원을 적의 손에서 되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저는, 인도의 독립은 아시아의 독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며, 인도의 투쟁은 아시아의 투쟁이며, 우리의 전쟁이며, 우리의 전쟁이라 단정지어야 한다는 저의 소견을 의장 각하를 비롯한 각국 대표 각하 분께서 동감하시리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저는 수바스 찬드라 보스씨가 이러한 저의 소견이 조금도 과장이 없으며 절대적인 신념 속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바입니다. 다음으로 대동아전쟁 및 동아의 신질서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이에 관해서는 각국 대표 각하분들이 앞에서 서술하신 만큼 제가 크게 추가적으로 서술하는 바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저희는 그럼에도 이를 지금부터 극히 개념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 이번 전쟁은 절체절명(絶體絶命) 의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아에게는 이 전쟁에서 이기고 영원히 살거나 , 혹은 패배하고 영원히 멸망하거나 , 이 둘을 제외하면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대동아전쟁은 실로 동아와 동아민족에 있어서는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싸움이라 할 수 있으며, 장래 천년에 걸친 동아의 독립, 평화, 번영을 위한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을 용감하게 직시한다면 어떤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버마국은 현재 실로 가공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만, 저는 동시에 전 동아 각국을 대신하여 말씀을 드린다고 믿는 바입니다. 만약 동아가 일체화되어 강력해지고 자급자족의 경지에 도달한다면 어떠한 일도 이룰 수 있고, 10억의 동아민족이 결속하여 일어선다면 어떠한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고 어떠한 평화도 이룰 수 있습니다. 동아신질서와 경제에 관해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의장 각하의 명료한 논의와 성명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의장 각하께서는 독자적인 용매와 결단으로서 정의, 호혜 및 독립, 주권에 근본원칙을 두고 상호 존중할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명료하고 확호한 말로, 동아의 헌장으로서, 동아의 신질서를 존속하게하는 헌장으로서 영원히 남을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와 같은 여러 원칙에 기초를 두는 동아의 신질서는 바위처럼 영구히 흔들림없이 존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동아의 신세계는, 그 안정을 위해 필요로 하는 물질적 조건을 이미 구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연은 우리 동아의 신세계에 물질적 자원을 아낌엇이 베풀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적으로는 우리의 동아를 적의 위협으로부터 안정시키고 확고하게 하는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물질적 조건만으로는 충분하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만큼, 우리는 이 물질적 결집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우리는 이해와 관용에 근거하여 개인은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개인을 위한다라는 근본의식을 기초로하는 정신적 결집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개인도 국가주의를 위해, 국가 스스로도 국가주의를 위해 노력해야하며, 각국은 자신의 영역 뿐만 아니라 단일의 동아라는 영역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느낌이나 구호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를 절대로 완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를 완수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 웅대한 계획을 반도 실현하지 못하고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상이 현재 우리가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국 대표 각하분들께서 강조하시는 바와 같이, 우리들 각국 국민은 각자의 길을 걸으며, 각자의 궤도를 운행하며, 각자의 자강의 길을 강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자국에서 선량한 국민의 자격을 갖추고 나아가 선량한 아시아인, 선량한 이웃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여러번 말씀드렸듯이, 버마국이 동아에 공헌하는 최선의 길은 강력한 버마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버마국의 힘은 즉 동아의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중화민국도, 타이 왕국도, 만주국도, 필리핀 공화국도, 인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동아의 힘은 자유롭고 평등한 자국의 영역에서 세계를 향해 약동하고 활동하고 협력하여 각국의 각각의 힘이 결집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상 말씀드린 동아의 원칙을 현실의 상황에 적용해보자 합니다. 저의 조국 버마국을 예를 들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버마는 현재 대동아전쟁의 최전선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어떠한 고난이, 어떠한 공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수많은 인명과 가정을 잃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오늘은 살아있지만 내일은 이세상에 없을수도 있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각국 대표 각하분께서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버마국이 이런 참화를 직면하고 있것은 버마국 스스로만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동아를 위해서이며, 전선의 일부를 공동으로 방위함으로서 동아의 다른 지역의 방위에 부담을 덜기 위함 입니다. 저는 버마국이 끝까지 최전선을 지켜나갈 것임을 확언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저는 다른 대동아 각국이, 현재 버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격전을 버마만의 전쟁이 아닌, 자신의 전쟁으로 생각하고 이 대동아전쟁은 일체일가 (一體一家) 의 원칙 아래 전쟁을 치러야 하며 대동아의 총력을 통하여 전쟁을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우리는 대동아의 방위를 위해선 어떠한 나라에서도, 어떠한 전선에서도 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전력과 모든 자원을 모아야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동아가 일체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 및 기획도 일체화 되어야 하며, 그 외에도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일체화 되어야 합니다. 만약 자신만을 위해서 고립주의를 선택한다면, 이는 최대의 배신행위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를 멸망으로 이끄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선택은 고립주의를 선택한 고립주의자 자신들이 우선 파멸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듭하여 말씀드리고 있지만, 버마는 앞으로도 동아의 제일선이 될 수 있도록 버마는 아시아인으로서, 아시아를 위해서 이 전쟁이라는 위기를 극복할 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동아 각국도 당연히 이를 본받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제가 이렇게 버마의 전황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아 이에 대해 각국 대표분들의 관용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또한 이러한 발언은 제가 자국의 영역 내에서 현실적으로 총력전에 종사하고 있는 국민의 대표로 나온데서 비롯된 것임을 양해해주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버마 국민은 현재 최전선이라는 상태 아래에 생활하고 있고, 그 가정도, 생명도, 재산도,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가치가 있다 생각되는 모든 것이 날마다 적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거리낌 없이 말씀드리면 저는 가슴속에 탄환이 날아다니는 최전선의 심정을 생각하며 이곳에 왔습니다. 버마 국민이 항상 일대의 전사였다는 것은 역사상으로도 명확한 것이며, 현재의 버마 국민 역시 그 조상의 이름을 욕되게 않게 하려 하고 있다는 것은 제가 확언할 수 있는 바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전, 우리 버마의 청년은 무기도 없이 싸워야 했습니다. 무기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적을 처치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감연하게 이를 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오늘날 버마의 사기는 매우 왕성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이를 막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버마인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동아는 한몸이 되어야함을, 이 전쟁은 동아인으로서 함께 치러야 하는 전쟁임을, 동아인은 함께 세계를 건설해야함을 충분히 이야기 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업의 올바른 실마리를 본 회의에서 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이러한 사업을 계속해 나갈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동아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전 작전 지역에 걸쳐 장래의 평화를 위해 전개해나갈 수 있는 사업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동아의 공동 운명을 종합적으로 계획하여 이끌어갈 항구적인 동아의 중앙조직체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이러한 존재가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의 결집은 현실화되고 효과적이고 평시에도, 전시에도 유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이 자유롭고 평등한 대동아 각국을 대표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길은 분명하고 우리는 지금 그 길을 가기 위한 실마리를 풀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목적을 향한 우리의 전진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한번 아시아 민족이 결집하여 통일하고 가르침을 얻게 된다면 세계의 끝까지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준 바가 있습니다. 과거에 동양은 몇 번의 침공을 받았으나 모두 그 적을 무찌르고 멸망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다만 아시아인이 아시아를 망각했을 때는 적에게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위대한 일본의 도움으로 우리는 다시 아시아인이라는 자각을 되찾고 아시아의 피를 재발견 했습니다. 이 아시아의 피야말로 아시아를 우리의 손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우리에게 제시된 길을 끝까지 계속하여 진격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십억의 동아민족이, 새로운 세계를 열고, 우리 동아민족이 비로소 영원한 자유와 번영을 획득하고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신세계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 이것으로 오늘의 일정이 종료되었습니다. 따라서 산회를 선언합니다. 내일은 오전 10시부터 개회하며, 일반적인 의견의 발표는 오늘로 끝내는 것으로 하고 내일은 구체적인 회의에 들어가려 합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이후 퇴석) 16시 47분 제1일차 회의 종료.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⑤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43.11.5)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필리핀 공화국 대표 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호세 라우렐 (Jose P. Laurel) 필리핀 제2 공화국 대통령. 호세 라우렐의 연설 (1943.11.5) (영어) 의장 각하, 각국 대표 각하 및 열석자 여러분, 외람되지만 필리핀 공화국의 대표로서, 저는 이 획기적이고 광휘 있는 회의를 기회삼아 한마디 소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우선 대동아공영권의 각국 국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이루어진 이 대회를 개최하신 위대한 일본 및 일본의 지도자이신 내각총리대신 도조 히데키 각하에 대해 심심한 경의와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또한 본 회의에서 대동아 여러 민족의 공통의 안녕과 복지라는 여러 문제가 토의되고 나아가 동아 각 국가 지도자 각하간의 소통을 통하여 아시아 민족 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영광을 위해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고 이를 항구화시키는 데에 박차를 가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다음으로 저는 중화민국 대표 각하, 타이 왕국 대표 각하, 만주국 대표 각하, 버마국 대표 각하 및 혹시 괜찮다면 세계 역사상의 새로운 신기원을 열고 있는, 인도 민중의 자유을 위한 아시아인의 투쟁을 대표할 수 있는 자유인도임시정부 수반이신 수바스 챤드라 보스 각하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인류의 문명사를 회고해 볼 때, 저는 이러한 대동아 민족들의 회의가 더 일찍 개최되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같은 대동아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존해왔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큰 협력 속에서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생각해보면 진심으로 감명을 느끼는 바입니다. 본 회의 이후 우리는 이제 다시 이전처럼 헤어진 채 살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위협하는 압박, 착취, 압정에 함께 맞서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십억 아시아 민중은 다시는 소수 서양 강국에 의해 지배받거나 착취당하는 희생을 겪지 않을 것임을 세게에 선언하는 바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과거의 동아의 여러 민족이 지금과 같이 한자리에 모여 그 결속을 다지고 여러 문제를 검토할 수 없었던 이유 3가지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첫째는 서 양 열강들, 특히 영미의 정책은 일본을 제외하면, 이들의 정책은 대동아 각국의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지배, 탄압하고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책속에서 아시아 민족은 약체화되고, 그 활력을 흡수당하고, 그에 따라 적극성을 잃어야 했습니다. 영미의 이런 정책 때문에 일찍히 우리들은 함께 만나 대동아의 공통적인 여러 문제에 대해 토의할 수 없었습니다. 둘째는 영미는 위의 정책을 행하는 과정에서, 소위 분할 통치주의에 의거하여 대동아의 여러민족을 분할하여 대동아 민족의 단결력, 활력 및 생활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영미는 대동아 민족들 간의 종교적, 계급적 차이를 만들어내고 이용하여 정치적 충돌을 촉진시켜 분할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우리 필리핀 국민을 갈라놓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또한 중화민국에서도 국민을 분할하고 그 법제 및 주권에 있는 다른 지역의 국민들 역시 갈라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분할 정책이 대동아 여러민족을 쇠퇴시켜 그 힘을 결집시키고 동아의 명예와 존업을 지키려는 힘을 상실하게 했다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세 번째 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소국인 우리 필리핀 공화국의 경험에 바탕을 둔 것으로, 영미는 다음과 같은 구실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반일 감정을 고취시켰습니다. 그 구실은, 일본은 정복욕에 불타고 있있는 탐욕을 가진 제국주의적 국가이며, 권위와 명성의 확대를 바라는 국가이기에, 우리가 일본과 절충하게 되면 착취와 압박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서양의 각국들이 일본이 물심양면으로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고 국민이 단결되어 동양에서 굴복시킬 수 없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음을 알았기에 이렇게 외교적 모략을 통해 반일 감정을 키우고 배일 여론을 육성에 힘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우리로 하여금 일본이 우리의 친구가, 동포가 아닌 원수라고 믿게 했습니다. 이상 설명드린 바가 저는 대동아의 여러 국민이 자신의 안녕과 권위, 명예에 대한 공동의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결집하지 못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는 참가 각국 대표 각하분께서 이렇게 의장 각하의 초대에 임하시게 되었을 때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각국 대표 각하 분들이 모여 있는 의장 각하의 다과회가 열린 방에 들어서자마자 저는 감동하여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고 동시에 고무되어 ”10억의 동양인이여, 10억의 아시아인이여ㅡ, 어째서 그대들은 영미 두나라에게 이렇게 지배당하고 압박당했단 말인가“ 하고 외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이렇게 제가 이 작은 나라 필리핀 공화국을 대표하여 본 회의에 참가하여 일본의 위대한 지도자의 요청에 응하고 참석하신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들께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게 된 것은 저에게 있어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자 만족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본 회의에서 의장 각하가 말씀하시는 것을 주의 깊게 경청했습니다. 저는 이에 의장 각하의 곁에서 각하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이 구절은 일본을 지도자로 하여 동양민족 및 대동아민족의 행위를 지도하고 대동아전쟁을 완수 및 공영권의 원칙 확립하기 위해 우리가 전진해야할 근본적 지도 원리를 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장 각하께서는 ”대동아 각국은 서로의 자주독립을 존중하여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협력하는 관계를 확립해야 합니다. 상대를 수단으로만 생각해서는 조화로운 협력관계를 만들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자주독립을 존중하고 상대가 번영해야 자신 또한 번영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조화로운 협력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저는 믿는 바입니다.“ 라고 말하신 바 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대동아공영권은 이를 형성한 어느 한나라만의 이익을 위하여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하의 말씀을 빌리면, 대동아공영권의 확립은 각 구성국가의 자주독립을 인정하고 이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으로 , 이렇게 정치적 독립 및 영토주권을 인정함으로서 각국은 각국의 독자적 제도에 부응하여 발전을 이룩할 수 있으며, 이러한 발전의 결과로 발생하는 번영은 어떠한 특정국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전체의 번영은 각개의 번영이 될 수 있지만 각개의 번영은 전체의 번영이 될 수 없다는 이치에 근거하여 진보와 번영을 단순히 한 국가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닌 다른 나라로 확산키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즉, 대동아공영권의 공존, 협력, 공영 이라는 요소는, 일본에 의해 제창되어 대동아공영권의 다른 민족, 국민이 의지할 수 있는 신성한 이념의 근본 토대가 되는 3요소인 것입니다. 일본은 대동아의 여러 민족과 국민으로 하여금 자연의 생존권을 누리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은 이를 위해 성전을 벌이고 생명과 재화 뿐만 아니라 그 존립 자체를 걸고 있습니다. 이렇듯 일본은 자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동아의 모든 민족을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이 이렇게 독자적으로 자신만 생존하고 동아의 동포가 멸망하고 고통받았던 기존의 상황을 행복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은 저 역시 충분히 알고 있는 바입니다. 일본은 물론 생존하기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동시에 동포인 동아의 여러 민족도 함께 생존하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일본도, 중화민국도, 만주국도, 버마국도, 필리핀도, 인도도 모두가 생존하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중화민국 혹은 다른 한 국가의 번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번영을 계획하고 전체의 번영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국가의 생존에 필요한 수단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나아가 다시는 서양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세계에서 정당한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 국민을 각자의 법률 및 제도하에 행복하게 생활하게 하고 긴밀하고 견고하게 단결시키기 위해, 아시아와 아시아인을 위해서 분만 아니라 전세계의 행복과 진보에 기여하기 위해 우리는 공영권 확립을 위해 협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총리대신 각하의 뛰어난 연설 중에서, 저 자신 뿐만 아니라 아마 이 자리에 초대받으신 대표 각하 분들을 위해서도 귀국후 국민에게 본 회의의 성과를 보고하고 개발하기 위해 인용하고자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동양적 문화의 필요성에 관한 것으로, 동양 문화는 반드시 필요하고 그 특징을 강화하여 동양민족의 정신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필리핀을 위해서도 이가 필요하다 생각하여 이를 인용하고자 합니다. 의장 각하께서는 ”본래부터 대동아에는 우수한 문화가 존재해 왔습니다. 특히 대동아의 정신 문화는 가장 숭고하고 유현(幽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더욱더 양성시켜 세계에 넓게 영향력을 미치게 할 수 있다면 이는 물질문명의 막다른 길을 타개하고 인류 전반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바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여러 문화를 가진 각국이 서로의 빛나는 전통을 존중함과 동시에 각 민족의 창조성을 신장시켜 대동아의 문화를 점점 앙양(昻揚) 시켜야 함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러한 우수한 동양 문화의 정신, 정수는 우리 스스로가 인식하고 보존하여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것일 뿐만 아니라, 각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를 근본 정신으로 하여 유달리 약소하고 최근 몇 년간 불행하게도 유물적인 관념을 가지게 된 동양인의 가슴속 깊이 새겨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서양 여러나라의 지배와 영향 속에서 고통받으며 스페인 치하에서 3백년, 미국 치하에서 40년 간 신음하고 있는 우리 필리핀 같은 국가의 국민이 더욱 명기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때문에 일본은 우리 국민을 포함한 각국 국민들의 정성스러운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제도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의 개혁을 통해 각국의 국민으로 하여금 자신이 동양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사유하게 행동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일본이 대동아 각 국민의 정신을 도모하는데에 최선의 지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군사적 방면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군말을 꺼낼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일본군이 이번 전쟁에서 궁극의 승리를 얻지 못한다면, 우리 필리핀은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필리핀 공화국도 버마국도 이렇게 주어진 자유를 즐길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여러 가지 곤란을 이겨내면서, 일본이 승리의 목적을 달성하는 날까지 버텨 나갈 결의를 굳이고 있습니다. 중화민국의 전쟁도, 태국의 전쟁도, 자유와 자주를 위한 대동아 모든 민족의 전쟁도 모두 일본의 승리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공영권의 확립도, 대동아 모든 민족의 숭고한 염원의 달성도 이 승리에 달려 있습니다. 일본의 승리 없이는 공영권도 없습니다. 일본의 승리 없이는 우리 필리핀 내지 동아의 어떤나라의 자유도 없습니다. 동양민족의 지위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며 서양 국가들은 다시 우리를 지배하고 피폐하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려 할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이 기회를 빌어 의장 각하에게 일본에 대한 저 및 우리 필리핀 국민의 지원을 서약하는 바입니다. 또한 각국 대표 각하분들께는 동정과 협력을 맹세하는 바입니다. 우리 필리핀 은 아직 탄생한지 얼마되지 않아 약소하지만, 적어도 1,800만 필리핀 국민은 지금의 전쟁에 한마음 한뜻으로 고취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전 우리 필리핀 국민은 물질주의에 지배당했지만, 사태의 추이에 응하며 진정한 동양적 정신에 자각하여 눈을 뜨고 하느님께서 하사 하시는 사명을 완수할 책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장 각하, 저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본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바로 동아의 모든 민중의 각성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는 것 입니다. 동시 저는 본 회의에 참석하여 대동아 여러 국민분들의 대표 각하 분들과 면담하며 최근 필리핀인에게 주어진 독립의 영광에 대해 우리 국민의 희열과 감사의 뜻을 표명하고자 합니다. 의장 각하 및 각국 대표 각하 및 열석자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현재의 대동아전쟁 완수를 위해 물심양면 뿐만 아니라 필요한 모든점에서 단결되어 있습니다. 이번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면 우리는 나아가 아직 괴리되어 착취 상태에 있는 5억의 동양인들이 거주하는 국가들을 해방시키고 단결시켜 모든 대동아 민족의 진정한 대동아공영권의 완성을 도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화민국을 지금과 같이 피를 흘리는 내전이란 불행 없이 행복하고 결합하는 중국으로 만들고 일본과 협력하여 세계의 한 부분인 이 아시아를 동양인의 안거낙업(安居樂業) 의 땅으로 만들기를 저는 간절히 희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꿈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가 천명을 받아 죽게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될지라도 기꺼이 웃으며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의 우리는 우리의 후손이 다시는 서양의 지배속에서 착취를 당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지금 찬드라 보스씨에 의해 열성적인 지도를 받고 있는 인도 역시 영국의 손에 의해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분할 지배되는 일 없이 3억 5천만의 인도 민중이 다시 영국과 그 어떠한 나라의 영향, 압정, 탄압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저는 또한 우리 필리핀 공화국과 버마국, 만주국, 타이 왕국, 중화민국 및 다른 대동아 국가와 달리 아직 자신의 공간이 없는 자바, 보르네오 및 수마트라의 다른 민족 들과 협력하고 나아가 이들로 하여금 일본과 연결되게 하여 대동아 전체가 결집하여 공고한 조직체로 일치단결 하는 것, 10억 동양인의 서양 국가의 억압을 받는 일 없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자유로이 권리와 기회를 획득하려는 것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키는 것 은 어떤나라도 불가능 하다는 신념을 표명하고 싶습니다. 동양은 인류 문명의 요람이며, 서양에 뒤지지 않는 종교와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은 자신들의 문명의 발상지인 동양의 인민을 착취하기 위해 자신의 문명을 이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무한한 예지를 가진 신 은 일본 을 저버리지 않고, 대동아 각국가를 저버리지 않고 우리와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며 우리들로 하여금우리들 자신을 해방시키게 하려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자손을 자유롭게, 행복하게, 번영할 수 있게 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점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며 저의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박수) (이후 착석)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하면서) 그럼 지금부터 40분동안 휴회를 선언합니다. 회의의 재개는 3시 반으로 하겠습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이후 퇴석) 오후 2시 45분 휴회.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④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943.11.5)
*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 (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 (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 (1943.11.7) 14.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15.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16. 완 와이타이콘 (타이왕국) 의 연설 17.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18.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19.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부록] 21.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2.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2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24. 대동아회의 일정표 오후 1시 1분, 회의 재개.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기립하며) 지금부터 회의의 재개를 선언합니다. 오전에 이어 각국 대표분들의 소견 발표를 진행하겠습니다.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이후 착석) 도조 히데키 (일본대표) : (그대로 앉은채로) 만주국 대표 각하? (이를 중국어로, 그다음 영어로 통역하여 전달한다) 장징후이(張景惠) 만주국 국무총리대신. 장징후이의 연설 (1943.11.5) (중국어) 오늘 여기에 저는 만주국의 대표 자격으로서, 대동아 각국의 정부 수뇌 및 열석자 여러분들과 이렇게 치열한 결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큰 희망을 가지고 격의 없는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충심으로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저는 이러한 역사적인 회의를 주최하신 일본 정부에 깊이 감사를 표함과 동시에, 도조 총리대신 각하를 비롯하여 이러한 중대한 시국 속에서 각국 국민의 부흥을 위하여 밤낮으로 국무를 위해 노고하고 계시는 회의에 참가하신 각국 정부 대표분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또한 대동아 수천리 장대한 전선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적 영미와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저는 대동아전쟁의 후방에 있는 우리 만주국을 대표하여 일본제국을 비롯한 대동아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각국 및 그 병사들의 선모용전에 대해 정성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대동아전쟁이 개전한 이래, 일본군은 전쟁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대전과를 만들어내며 수십년간에 걸쳐 동아를 침식하고 동아의 희생으로 스스로의 번영을 유지해온 영미 세력을 순식간에 곳곳에서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발발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버마국, 필리핀 공화국의 독립을 시작으로 동아민족은 순차적으로 그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며 각자가 각자의 자리를 얻고 양양한 장래를 바랄 수 있게 되었으며, 수백년동안 지속되었던 영미 제국주의의 탐욕속에서 잃었던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영미의 지배 권력의 위만과 억압속에서도 불구하고 비참한 과거와 결별하고 모욕당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동아 각국에서 흐르고 있었던 해방의 염원은 일본이 시종일관 도의에 기반한 정책을 펼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왕성한 실행력을 보임에 따라 대동아의 이름으로 일거에 실현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천재일우(千載一遇) 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것에 대해 기쁨을 표함과 동시에 이러한 동아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피를 흘린 순국 열사들을 떠올리며 숙연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나아가 이기회에, 10년 전 우리 만주국이 최초의 동아적인 자각을 가진 신흥국가로 건 설되었다는 것을 회상하며 깊은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처음부터 열정을 가지고 고난속에서 만주국의 건국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만주에서 가장 부족했던 것은 도의에 입각한 정치 였습니다. 때문에 민중은 어떠한 이상을 목적도 없었기에 지도도, 조직도 되지 않으며 국토는 거칠어 피폐하고 군벌의 봉건정치에 의한 무질서한 가렴주구가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실로 아무런 자유도, 창조도 없는 전형적인 억압받는 동아의 양상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만주의 지배자로서 인민에게 끊임없는 착취를 가하고 있던 장쉐량 군벌 은 영미의 동아교란 정책에 편승하여 노골적인 반일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 에 일본은 감연히 일어나 장쉐량 군벌을 타도하였고 이에 진정으로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고 국토를 발전시키는 자주적인, 도의의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천만 민중의 총의가 모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우리는 모든 국제 정세가 간섭하고, 서로 분규하여 항상 동아의 안정에 위협을 가했던 만주를 변화시켜 오래된 동방의 도의에 입각한, 새로운 동아에 여명을 여는, 강력하고 올바른 국가로 만들어 동아 전체에 안정을 가져오려 했습니다. 우리들이 믿는 바에 따르면, 동아가 광휘 있는 전통에 의거한 본연의 모습으로 세계의 진보에 공헌해야 한다는 것은, 마치 유럽 각 민족이 유럽 각민족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아메리카 대륙 각국이 아메리카 대륙의 각국으로 자존(自存) 해야한다는 것 것처럼 대의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동아가 동아적인 자각을 보유하는 것, 그것은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역사적 필연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동아가 동아적 자각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영미 는 자신들의 괴뢰기관인 국제연맹 을 통해, 그리고 당시 난징에 있었던 장제스 정권을 사주 하여 모든 방해를 가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감명받은 부분은, 일본은 막대한 국력을 들여 피로서 장쉐량 군벌을 몰아붙였음에도, 아무런 영토적 야심을 보이지 않고 공명도의적 태도로 우리의 독립의 자주발전을 원조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본은 우리의 독립을 옹호함과 동시에 동아신질서 건설을 제창하며 국제연맹을 탈퇴 하고 단호한 태도를 대내외에 천명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보면, 만주국의 건국은 오늘날 대동아 전역에 실현되고 있는 대동아공영권 건설의 첫걸음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속에서 건국된 만주국이 지난 10년간 어떠한 정책을 펼쳤고 어떠한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이 기회를 받들어 이를 간단하게 3가지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민족의 협화(協和)입니다. 우리 만주국에서는 일만몽(日滿蒙) 및 그 외의 다수 민족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주국에서는 기존의, 일반적으로 이민족에게 보이는 지배-피지배, 착취-피착취의 관계가 아닌, 서로의 특징을 존중, 발휘시켜 국가 목적의 달성에 협력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는 영미를 비롯한 제국주의의 민족 지배방식 과는 근본적으로는 다른 것이며 만방으로 하여금 각자가 각자의 자리를 얻고 나아가 수많은 인민이 자신의 나라에서 안정을 취할 수 있게 하는 일본의 정신과 상응하는 것으로, 크게 보면 대동아 각국의 공존공영에서 취해야 할 방식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만주국은 북방의 방벽 이라는 것입니다.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기 위해서우리 만주국은 자국의 국방을 완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만주국 자체로 하여금 대동아의 북방 방벽 역할을 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만주국은 이를 차질없이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만주국은 일찍이 이를 중대한 국가의 사명으로 여기어 일본과 공동방위의 맹약 (1932년 9월 15일 일본과 만주국이 체결한 일만의정서(日滿議定書)를 의미.) 을 맺고 한치의 흔들림 없이 철벽의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확실히 밝히는 바이며 앞으로도 이러한 여러분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고자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국민생활의 안정과 강하고 바른 국민의 양성입니다. 만주국 정부는 건국 이후 즉시 기존의 분란을 극구 수습하기 위해 문제가 많았던 기존의 화폐제도를 빠르게 통일한 결과 물가는 빠르게 안정되고 나아가 오늘날과 같은 국민생활의 안정을 확보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치안의 확립을 병행하여 건국 당시 30만의 비적이 국내에서 활개치던 것에 비해 현재는 거의 자취를 감추기에 이르렀습니다. 나아가 작년에는 국가 병역제도가 확립되어 근대적 무기를 가진 강력한 국군을 창설하고 이를 완비된 경찰제도와 맞물리게 하여 국내의 구석구석까지 국민들의 안거락업(安居樂業)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만주국 정부는 근로봉공제도, 문교진흥방책 등 모든 수단을 통하여 국민의 양성을 위해 힘을 쏟고 있습니다. 나아가 국가 관념을 배양하고 근로존중 풍조를 촉진시키어 심신 양면에 걸쳐 건강한 신동아의 부끄럽지 않은 청소년의 육성을 도모하여 현재는 그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수한 국민의 출현은 현재의 전쟁 완수를 위한 협력을 위해서도, 장래의 국운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산업의 개발입니다. 만주국 정부는 건국 5년 (1937년을 의미한다. 만주국은 1937년 제1차 산업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하였고, 1942년에는 제2차 5개년 계획에 착수했다.) 이 되었을때부터 산업개발 5개년계획 의 실행에 착수하여 모든 곤란한 조건을 극복하고 재작년에 이를 성공리에 종료하고 작년부터 제2차 5개년 계획 의 실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속에서 전시에 특히 요구되는 철, 석탄, 금속등의 중공업 자원의 신속 개발, 경금속 화학 공업의 촉진등은 전력 생산 설비의 비약적 증가와 더불어 착착 약진하며 여러 부문에서 세계적 강국의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농산물 방면에 있어서도 농본국이라는 본래의 특색을 발휘하여 현재 계획적 증산에 매진하고 있으며, 동아의 유력한 식량기지 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3가지 건설의 성과를 모두 합쳐보면, 건국 당시 세입 세출의 합계가 2억 7천만 위안 이었던 것이 10년뒤인 오늘날에는 16배인 44억 5천만 위안 으로 팽창하였고, 철도의 연장은 6천 킬로미터 에서 1만 2천 킬로미터 로 증가하였으며, 초등학교의 아동수는 50만명 에서 250만명 으로 늘었습니다. 또한 생산량의 경우 석탄이 4배, 철이 5배 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 외에도 국민 보건 위생 시설의 개선등 너무 많아서 일일이 셀수 없지만, 그중에서 뚜렷한 하나의 예를 들자면, 영미가 동아침략의 수단으로 사용하며 지금까지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아편 흡연의 폐단 의 경우, 건국 당시 아편을 복용하던 이가 130만 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아주 극소수가 남았을 뿐 으로, 가까운 장래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평소 정부의 책임자로서 노력이 부족한 것에 대해 항상 반성하고 이를 부끄럽게 여기는 바입니다만, 지금 이러한 눈앞의 국운의 융창을 보고 느끼는 것은 일본은 시종일관 변함없이 의(義) 를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만(日滿) 관계는 건국의 과정에서 보았듯 당연한 일덕일심의 관계에 있으며, 황공하옵게도 일본 황실과 만주국 제실(帝室) 역시 점점 돈목해지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런 역사상 찾아 볼 수 없었던 우리 만주국의 10년의 개발 역시 일본의 큰 의로운 원조에 힘입어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우리 만주국으로는 아무리 보답해도 부족한 기분으로, 이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만주국은 현재 대동아전쟁의 후방에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바입니다. 다음으로 대동아건설의 방도에 대해 잠시 소회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우리 만주국은 동아해방, 동아신질서의 수립을 목표로 하여 건국되었으며 모든 방면에서 대동아공영권의 완성에 기여하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만주국과 공영권 각국에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면 , 일본 과의 관계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찍이 일덕일심의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또한 중국 과는 신생 중국 지도자 왕 주석 각하의 영도 아래 난징국민정부가 수립되어 그 기초를 다지게 되며 일화(日華) 양국과 함께 일만화(日滿華) 간의 영구적인 공동 선린 관게를 규정하는 삼국공동선언 ( 1940년 11월 30일 체결된 일만화공동선언(日滿華共同宣言, 중일만공동선언이라고도 함)을 의미한다.) 을 발표하였고, 태국 과도 친밀한 국교관계를 맺고 더욱이 지나사변이 대동아전쟁으로 확대된 후에는 버마국, 필리핀 공화국 의 독립을 즉시 승인하고 장래에는 친분을 더욱 증진시킬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동 아의 독립국이 6개로 늘고 자유인도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역사상 본적 없던 번영이 펼쳐지고 있는 오늘 이야말로, 전동아 각국은 동아일체 (東亞一體), 공동운명의 신념으로 일관하여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바입니 다. 일만화 (중일만) 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그리고 동아의 흥륭을 기하는 이번 가을을 맞이하여 영미의 악영무도한 탄압에 신음하는 인도 국내 4억 민중에 대해 절대적인 동정의 뜻을 표함 과 동시에 금상미봉의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동아의 고아 인 충칭정권 이 동아의 넓고도 큰 대의 속 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반성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동아각국은, 동아의 천지에서 과거의 오욕의 시대로 영원히 돌아가지 않기 위해 영미등의 제국주의적 죄악의 흔적을 일체히 떨쳐버리고, 어떠한 식민지적 성격도 탈피하여 그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무릇 세계의 인도를 존중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국가와 제휴, 협조하여 전세계의 올바른 발전을 창조하는데 참여하는 웅혼한 태도를 가져야할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와 공통의 목표를 위해 유럽에서 용전 분투하고 있는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이 승리하여 유럽신질서를 하루라도 빨리 성립시키기 를 바라는 것이며, 세계 곳곳에 우리와 동조하는 실질서의 출현을 바라는 바입니다. 더욱이 장래 동아 각국가간의 관계는 이번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노골적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해에 근거하여 이합집산하는 이전의 국제관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동양 도덕의 전통적 특색인 가족과 혈연의 정의에 기초를 두고 동아를 진정으로 한가족으로 보는 관점 아래 상호 영구의 도의적 외교를 서약해야 한다고 믿는 바입니다. 따라서 각국은 각자의 전통을 특성으로 삼고 이에 대해 상호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치, 경제, 문화등 모든 영역에 걸쳐 장단상보(長短相補) 하고 유무상통(有無相通)하여 동아 전체의 발전에 기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경의 관념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국경을 과거의 상호대립하던 비동양적인 국가의 국경이 아닌, 상호 협력하고 보다 큰 창조를 이끌어내는 국가간의 국경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종래의 국경관념에 얽매여선 안되며 각국의 유통과 융합을 막는 이 국경이라는 장벽은 한시라도 빠르게 철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완성하려는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은 광휘있는 예전 동아의 부흥을 의미하는 동시에, 보다 많은 새로운 동아의 창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아 각국은 이러한 신시대에 부합하는 의식과 역량을 구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제가 앞에서 만주국의 과거의 만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완전한 새롭고 거대한 물심 양면에 걸친 건설 과정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이와 같은 뜻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생각하면 저는 올해 1월의 제81회 시정방침 연설에서 도조 내각총리대신 각하가 ”만주국의 충실한 발전은 곧 대동아 전역의 내일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참으로 마음이 든든하다.“ 라고 외친 것을 공감과 감격으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도조 히데키의 1943년 1월 시정연설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전국(戰局) 에 대해 살펴보면, 적 영미는 전쟁 초기 동아에서 전면적인 패퇴를 겪은 후 이제는 전 동아 민족이 각성하고 착착 대동아 건설의 큰 발걸음을 나아가고 있는 것을 초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 영미는 이에 맞서기 위해 모든 힘을 발휘해 우리들에게 도전해오며 전쟁은 마침내 더욱더 처창해지고 가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전쟁은 그들이 과거에 여러번 동아에 반복해 온 침략전쟁의 최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만큼 규모도 가장 대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열렬한 염원인 대동아공영의 달성을 위해 지금이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유일한 기회임을, 동아 민족의 흥망을 영원히 결정할 때임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대동아 각국이 물심양면에 걸쳐 모든 것을 전력화하고 동아의 총력을 강화하고 똘똘 뭉쳐 적 영미를 격파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10억 동아 민족이 전통적으로 우월한 정신력을 가지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자원을 총동원하여 싸우면서 건설하고, 건설하며 싸우는 늠름한 건설전을 끝까지 추진해 나간다면, 광영스러운 최후의 승리가 우리에게 돌아올 것 이라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만주국 관민은 대동아전쟁 발발의 선포와 함께 일본과 사생존망(死生存亡)의, 결코 제휴를 끊지 않겠다는 제국의 뜻을 받들어 국민 모두가 국력을 총동원하여 대동아전쟁에 협력하고 동시에 북방을 수호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에 여기서 만주국이 이러한 결의를 더욱 굳게 함과 동시에 더욱더 대동아 각국과 서로 응하며 필승필성(必勝必成) 의 신념으로 대동아건설의 힘을 쏟을 것을 맹세하는 바입니다. (박수) (이후 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