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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전면화평으로의 길 - ㉘ 중국국민당 제6기 3중전대 대회선언
이번기회에 왕징웨이가 쓴 전면화평으로의 길(全面和平への路, 1941) 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조금씩 번역한 내용을 정리해 저조구락부에 올리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전면화평으로의 길 (全面和平への路)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1. 왕징웨이와 나 2. 장제스 총재에게 고한다 / 염전 3.충칭최고국방회의에 제안하다 4.동지 쩡중밍 선생의 죽음에 맹세하다 5.충칭 탈출의 진상 6.중국국민당전국대표회의의 역사적의미 7. 일본 국민들에게 바란다 8.화평인가 항전인가 (대 장제스통전) 9.난징환도에 대해 일본에 감사를 표하다 10.자신을 벌하는 정신 11.전면화평에 회의감을 가지지말라 12.중국청년의 새로운 책임 13.화평파와 항전파 14.영광의 앞길 15.전면화평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16. 중국의 항전심리 17.페탱 원수의 교훈 18. 민족주의와 대아시아주의 19. 전면화평과 대외관계 20. 팔굉일우와 사해위가 21. 대아시아주의와 동아연맹운동 22. 동아연맹중국동지회선언 23. 장제스에게 최후의 경고 24. 국민정부 주석에 취임하다 25. 중일국교조정에 대해서 26. 동아연맹실현으로의 추진 27. 국민당과 동아연맹운동 중국국민당 제6기 3중전대 대회선언 (國民黨第六期三中全大會宣言) *중국국민당 제6기 3중전대는 쇼와15 (1940)년 12월 15일부터 3일동안, 국민정부 대례당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의 결과 국민당이 화평운동의 중심세력으로서 중국의 향후 주 동향을 결정한다는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주목을 받았고, 같은 달 17일 선언을 발표함으로서 국민당이 동아연맹운동에 매진할 것을 명확히 결정지었다. 금년 3월 국민당 제2차 중앙전체회의는 중앙당과 국민정부를 난징으로 환도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우리당 동지들은 제6차 전국대표대회의 선언을 준수하며 화평의 실현, 헌정의 실시에 노력을 가해왔다. 최근 중일기본조약이 성립되었고, 헌정실시위원회도 헌법초안을 심의하고 있으며, 국민대회의 개최준비도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본 당 제3차 전체회의에서는 오늘, 수도에서 거행되어 시국의 진전이라는 책임의 중대함의 비추어, 이렇게 전회 일치의 결의의 의거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중일기본조약의 근본정신은 과거의 분규를 철저하게 일소하고, 현재와 미래의 친선관계를 새롭게 건립하는 것에 있다. 조약이 성립된 만큼, 우리는 충심육력을 다해 반드시 이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만약 장제스가 돌연 자각하여 함께 그 실행을 도모한다면 전면화평은 재빨리 실현될것이고, 전쟁후의 건설, 미래의 부흥 모두 기약하며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제스는 안으로는 공비의 속박을 받아, 화평이냐 전쟁이냐를 선택할 수 있는 결정의 자유를 이미 잃었고, 밖으로는 국제정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로 하여, 최근에는 제3국의 우롱을 감소하고 버마루트의 재개 및 거액의 차관을 미끼로, 중국의 국가민족을 무한한 희생에 빠뜨리려 하고 있다. 충칭과 이를 지원하는 국가들은 그저 일독이 삼국동맹의 견제라는 음모를 원하고 있는것에 지나지 않는다. 장제스는 동아민족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하려는 큰죄를 지었고, 그가 가진 오류는 이보다 더 포악할 수 없는 것이다. 본회가 이미 결정한 외교방침을 거듭 천명하면, 중국은 오늘 이후 일본 및 만주와 추축을 결성하여, 동심육력으로써 동아를 보장하고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는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평등 호혜의 원칙에 입각하여 친선관계를 증진해야 한다. 또한 다른 각국에 대해서도 우의를 유지하여 세계 평화에 공헌하는 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재정방침은 치안의 확립과 경제, 생활의 개선을 가장 중요한 방안으로 한다. 장제스는 비록 화평의 장애물이지만, 이미 변경에 물려있다. 전국 최대의 도시들, 즉 난징과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등 도시 및 다수의 성도는 지금 국민정부의 통치하에 있다. 열심히 점령지의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도시로 하여금 그 열매를 맺을 수 있게하고, 농촌으로 하여금 유격전, 초토전의 피해를받지 않게한다면 농촌의 농지는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농업, 상업, 공업 및 교통 또한 이에 따라 부흥하기 위해 동시에 계획경제를 실시하여 사회생활을 개선하고 인민의 고통을 제거해야할 것이다. 중국이 전쟁의 화를 당한 것이 3년, 모든 동포가 물불의 고통아래에 있다. 이것의 완전한 해방은 말할 것도 없이 전국의 화평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정부는 반드시 전력을 다해 앞서서 단단히 마음을 먹고 민력의 충실을 도모할 것이다. 국력이 충실해지면, 전면화평도 또한 이에 따라 촉진될 것을 단언할 수 있다. 헌정 실시의 최대의의는 전국의 재간과 역량을 종합하여 국가의 중심을 조성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최근 공화당, 대민회, 흥아건국본부를 잇달아 해산하고 함께 시국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 위급존망의 가을을 맞아 전민협력으로 목전의 난국을 타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헌정의 앞길에 확고부동한 기틀을 마련하여 장래 헌정의 실시가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손중산선생이 제창하는 민권주의에 따르면, 국가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보다 거대한 것이며, 일반적인 소위 민중의 정치와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우리 당은 계속 노력하여 이러한 취지에 입각하여 중화민족의 건설을 완전하게 추진하고자 한다. 특히 대아시아주의는 손중산 선생의 포부이자 마지막 유훈이다. 사변 이후 중일양국은 함께 반성하고, 일본은 바라는 바가 중국의 멸망이 아니라 부흥에 있으며, 일본과 함께 동아신질서 건설의 책임을 분담해주는 것임을 정중하게 성명하였다. 중국은 만약 중국이 독립과 자유를 얻지못하면 동아를 분담할 힘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며, 중국이 독립과 자유를 완전하게 획득하기 위해서는 동아의 해방이 구해져야 함을 중일 모두가 통감하고 있다. 이번의 중일기본조약의 성립도 이 정신을 뿌리로 하는 것으로, 이것을 발전시켜 동아연맹운동이 되게 하였다. 우리당의 동지들은 멀리는 손중산 선생의 유훈을 생각하고, 가까이는 시대의 요구를 생각하여, 전력을 다해 이 운동의 발전의 촉진시켜 그 철저한 성공을 기해야 한다. 이상 기술한 바는 모두 본 당의 일관당 주장으로서, 본회의에서 전회 일치의 결의에 기초하여 우리 당 동지들은 그 뜻을 같이하여 감히 선도자가 될 것을 기함과 동시에, 우리 전국의 동포들이 일심일덕으로 모두 이 사명을 짊어지기를 바라는 바다.
- [연재] 전면화평으로의 길 - ㉗ 국민당과 동아연맹운동
이번기회에 왕징웨이가 쓴 전면화평으로의 길(全面和平への路, 1941) 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조금씩 번역한 내용을 정리해 저조구락부에 올리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전면화평으로의 길 (全面和平への路)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1. 왕징웨이와 나 2. 장제스 총재에게 고한다 / 염전 3.충칭최고국방회의에 제안하다 4.동지 쩡중밍 선생의 죽음에 맹세하다 5.충칭 탈출의 진상 6.중국국민당전국대표회의의 역사적의미 7. 일본 국민들에게 바란다 8.화평인가 항전인가 (대 장제스통전) 9.난징환도에 대해 일본에 감사를 표하다 10.자신을 벌하는 정신 11.전면화평에 회의감을 가지지말라 12.중국청년의 새로운 책임 13.화평파와 항전파 14.영광의 앞길 15.전면화평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16. 중국의 항전심리 17.페탱 원수의 교훈 18. 민족주의와 대아시아주의 19. 전면화평과 대외관계 20. 팔굉일우와 사해위가 21. 대아시아주의와 동아연맹운동 22. 동아연맹중국동지회선언 23. 장제스에게 최후의 경고 24. 국민정부 주석에 취임하다 25. 중일국교조정에 대해서 26. 동아연맹으로의 추진 국민당과 동아연맹운동 (國民黨と東亞聯盟運動) *중문판 본래제목은 신시대의 사명 (新時代的使命) *일화기본조약 조인 후인 쇼와 15 (1940)년 12월 15일, 오전 9시부터 중국국민당 제3중전회가 열렸다. 같은 왕주석은 국민당 동지들을 향한 훈화를 실시했다. 이 연설에서 왕 주석은 손중산 선생의 대아시아주의를 설명하고, 현재는 새로운 시대의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의 시대임을 강조했다. 왕 주석의 훈화가 동아연맹을 중심으로 행해진 것은 국민당이 정식으로 동아연맹의 주체가 되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는 중요하게 살펴볼만 한 것이다. 동지 여러분, 금년 3월, 우리는 상하이에서 제2차 중앙집행위원회 전체회의를 개최했고, 2중전회 이후에는 그 결의에 따라 당 중앙본부를 난징으로 옮겨 국민정부의 난징환도를 완성시켰다. 그 이후 수개월 동안 우리는 제6차 전국대표대회의 선언에 따라 화평의 실현과 헌정 실시를 위한 공작에 노력해왔다. 본래 장정과 규정에 비추어보면 중앙전회는 반년마다 한번 씩 개최하게 되어있지만, 여러 가지 관계에서 연기되어 오늘 제3중전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환도 이후, 중국국민당 의 중앙동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최초의 회합인 이 자리에서 우리는 비정상적인 흥분을 느끼기까지 한다. 수 개월동안의 공작에 대해서는 별도로 보고가 있었기에 서면 보고는 제외하고, 제 1차 회의에서 동지들의 상세한 보고도 있었기에 나는 이 3중전회를 개최하는데에 있어서 본 회의가 가지는 중대 사명만을 설명하려 생각하고 있다. 3중전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계속하여 화평을 실현시키는 것과 헌정의 실시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 있다. 오늘 총회의 개회에 있어 모두는 일종의 신시대가 도래했다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 신시대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바로 과거의 공작을 검토하고, 향후의 방침을 심의하고, 명확한 확정적 방안을 가지고, 그것을 공동 준수, 공동 실행해야한다. 신시대의 도래에 대해서는, 손중산 선생은 우리에게 이전부터 지시를 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오늘 손중산 선생의 유촉을 다시 읽고 그 유촉이 시간이 초월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손중산 선생이 우리에게 지시하는 바는 분명하고 또한 정확하다. 손중산 선생의 주장은 대아시아주의로써 민족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주장을 따르고 지켰으나 민국 17 (1928)년 이는 멈추었다. 민국 17년 이후에는 손중산 선생의 주의를 향한 절실한 봉행은 없었고, 오로지 국제연합의 한가지 길에 의탁해왔다. 이 때문에 일본과는 원수가 되어 점점 그 골이 깊어졌다. 이런종류의 원수적 감정은 십수년간 분규가 되었고, 결국에는 3년간의 미증유의 싸움이 되었다. 만약 손중산 선생의 유촉을 잘 지키고 따랐다면, 분명히 중일은 원수의 입장에 서지 않았을 것이고, 중국이 지금의 보잘것없는 것과 같은 지위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이 오늘날 손중산 선생의 유촉을 돌이켜보며, 대아시아주의에 기대어 신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우방이 제안한 동아협동체, 동아신질서 및 최근 양국인사가 제창하고 있는 동아연맹은 바로 손중산 선생의 유촉의 정확한 해석이며 기본정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벌써 신시대는 도래했다. 우리는 단지 노력을 필요로 하는것이며, 민족주의에 노력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총리가 설명한 민권주의는 시종일관 국가적 자유와 민족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지, 개인적 자유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 자유의 희생과, 이 희생을 통한 국가민족의 자유보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손중산 선생의 주장은 민국 13년, 이는 벌써부터 이탈리아의 파시스트적인 맹아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독특한 나치즘도 희미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손중산 선생의 주장은 파시즘의 영향을 받지 않았음은 명백하다. 선생의 이러한 주장은 개인적 자유에 그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자유와 민족적 자유에 주장이 더욱 노력이 경도되어 있는 것이다. 당시의 정치학자들은 18세기 민주주의 사상의 교육에 따라 개인적 자유를 중시했다. 이 까닭에 손중산 선생의 주장은 존중되지 않았고 이에 대한 공개적 비평도 드물었다. 민국 23,24 년에 걸쳐 《동방잡지(東方雜誌)》를 시작으로 비평이 있었지만 명백한 공격적인 논지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선생이 주장하는 바의 민권주의와 구미의 민주정의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구미의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 여기나, 손중산 선생의 주장은 그런 것이 아니다. 손중산 선생의 신도인 우리가 이를 간파해보았을 때, 선생이 주장하는 민권주의는 완전한 개인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파시즘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민권주의는 국가와 민족적 자유를 중요히 여기는 것이다. 손중산 선생이 주장했던 민권주의는 진리로 여겨져야할 것이지만, 당시의 모든 이들은 팽배한 구미의 민주주의의 조류의 밀려 선생의 민주주의를 받아드려야 함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유럽의 대전쟁이 발발하면서, 모든이들은 비로소 민주정치의 착오를 알게 되었고, 더구나 민주주의가 현재에 적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리하여 모두 과거에 주장했던 개인자유적 민주주의에서 국가민족적 자유로 옷을 바꿔입게 되었다. 일본이 최근 노력하고 있는 신체제는 개인적 자유를 대신하여 국가민족적 자유를 가지게 하려는 것에 있으며, 개인주의보다 전체주의에 이르려는 것이며, 민주주의보다 집권주의에 이르려는 것이다. 민국 23 (1924) 년, 영국, 미국, 프랑스가 세계대전에서 대승을 획득한 후의 민주주의의 황금시대에, 손중산 선생은 영국, 미국, 프랑스의 민주주의는 수정을 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며, 만약 수정을 가하지 않으면 장래에는 부적절한 것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보아야한다. 우리 국민의 유일한 영도자 손중산 선생의 눈빛이 가지고 있었던 대식견의 원대함을! 현재 헌정실시가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우리가 요구하는 헌정은 민국 원년에 실행되었던 것이 아니라, 민권주의의 신시대의 헌정이어야 한다. 우리는 손중산 선생의 민권주의를 집행하기위해 철저히 선생의 유촉을 다시 되읽고, 그 장황한 유헌을 따라 민권주의를 실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구미의 개인자본주의는 이미 사회주의와의 충돌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손중산 선생께서도 주의하셨던 바로, 개인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추이는 정확히 일어나고 있으며, 선생은 이 때문에 구미의 개인자본주의에 불만을 품고 절제자본(節制資本), 평균지권(平均地權)을 주장했다. 동시에 선생은 공산주의에도 불만이었다. 동지 여러분은 대부분 기억할 수 있을 것이지만, 민국 10 (1921) 년, 손중산 선생이 북상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소련의 한 신사 가 계림에 와서 선생을 만난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은 현재 당장 공산주의를 실행하는건 불가능하다고 말하자, 그것에 대해 신사는 대답하면서, 러시아에서 공산주의의 실행에 필요한 것은 신경제정책이라면서, 신경제정책의 계획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선생은 이것이 내가 주장하는 바의 민생주의라면서, 민생주의는 개인자본주의가 아니다, 개인자본주의는 사회주의에 도달하는 필연의 한 단계라고 말했다. 민생주의는 또한 국가사회주의라고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도 ‘국가사회(國家社會)’라는 4글자를 이용해 ‘민생주의(民生主義)’를 설명한 것이다. 이렇게 총리는 당시 이미 이러한 입장을 취하여 소련의 사상을 물리쳤던 것이다. 이후 국민당은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개인자본주의적 길에 오르지 않고, 마르크스 공산주의의 길에 오르지 않고, 민생주의의 길을 달려왔던 것이다. 당시 전세계에 걸쳐 개인자본주의는 그야말로 발흥기였고, 대부분은 모두 민주주의가 아직 일어나지 발흥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는 잘 보아야 한다, 소련의 신경제정책도, 파시즘도, 나치즘의 국가는 물론, 영미도 이미 이러한 종류의 자유주의적 경향은 종말을 고했다. 일본의 신체제운동은 정치를 가지고 이를 이야기하자면, 개인의 자유를 국가민족의 자유로 대신하고, 경제에 대하 말하자면 개인자본주의보다 국가자본주의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에 의거해 손중산 선생의 주장을 보기 위한 이론으로 삼아야할 뿐만 아니라 실로 진리로서 삼아야한다. 우리들은 경제의 부흥을 필요로 하고, 일정한 방침이 있을 것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손중산 선생의 민주주의를 실행해 세계의 조류에 응하고, 새로운 경제시대의 도래에 노력해야 한다. 민족주의에서 보아도, 민권주의에서 보아도, 또 민생주의에서 보아도, 하나의 신시대는 바로 코앞에 있다. 모두들 길을 잃지말고, 경외하지말라. 손중산 선생이 주장하는 노선에 의하면 이는 광명스러운 대도다. 하나의 신시대는 바로 코앞에서 펼쳐지고 있기에 우리들은 그야말로 새로운 노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민족주의와 대아시아주의에 입각하여 동아의 우방들과 합작하고, 동아의 각민족과 합작하여 중국민족의 해방을 요구하고 동아 각 민족의 해방을 구해야한다. 민권주의에 입각하여 헌정을 실시하고,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여 국가민족의 자유를 완성하고, 민생주의에 입각하여 민생 문제를 해결하며, 국가경제의 부흥을 도모해야한다. 2중전회의 중대사명은 과거의 공작을 검토하는데 있었으나, 회의중 1개의 방안을 의정했고, 그에 따라 우리는 손중산 선생이 지시하는 노선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 전반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3중전회의 중대사명은 신시대의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이 신시대란, 민족주의적, 민권주의적, 민생주의적 신시대이다. 오늘날 이곳에 모인 동지들은 수도에서 근무하는 이들도 있고, 수도밖에서 온 이들도 있다. 나는 최단기간 내의 자신의 공작과 수개월후의 정치상황과, 눈앞의 고난된 환경과 향후 민족의 출로에 대해 깊은 검토를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들은 분발해야하며 동시에 협동심을 발휘하여 신시대의 사명을 짊어져야 한다. (중문판 원판과 달리 일어 번역판은 민생주의를 민주주의로 잘못 번역해두었다. 따라서 이글에서는 이를 고쳐서 번역하였다.)
- [연재] 전면화평으로의 길 - ㉕ 중일국교조정에 대해서
이번기회에 왕징웨이가 쓴 전면화평으로의 길(全面和平への路, 1941) 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조금씩 번역한 내용을 정리해 저조구락부에 올리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전면화평으로의 길 (全面和平への路)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1. 왕징웨이와 나 2. 장제스 총재에게 고한다 / 염전 3.충칭최고국방회의에 제안하다 4.동지 쩡중밍 선생의 죽음에 맹세하다 5.충칭 탈출의 진상 6.중국국민당전국대표회의의 역사적의미 7. 일본 국민들에게 바란다 8.화평인가 항전인가 (대 장제스통전) 9.난징환도에 대해 일본에 감사를 표하다 10.자신을 벌하는 정신 11.전면화평에 회의감을 가지지말라 12.중국청년의 새로운 책임 13.화평파와 항전파 14.영광의 앞길 15.전면화평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16. 중국의 항전심리 17.페탱 원수의 교훈 18. 민족주의와 대아시아주의 19. 전면화평과 대외관계 20. 팔굉일우와 사해위가 21. 대아시아주의와 동아연맹운동 22. 동아연맹중국동지회선언 23. 장제스에게 최후의 경고 24. 국민정부 주석에 취임하다 중일국교조정에 대해서 (日華國交調整について) *쇼와 15 (1940)년 11월 30일, 난징의 국민정부 대례당에서 일화기본조약의 조인식이 거행되었고, 동시에 일만화삼국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동아의 기념일인 이날 오후 왕 주석은 일화기본조약과 일만화삼국공동선언에 관한 담화를 발표하고 그 의의를 설명했는데, 그 결론으로 동아연맹운동의 진전과 동아연맹의 결성이라는 중대 사명에 대해 역설했다. 오늘, 중일국교조정기본조약(일화기본조약을 의미.)이 조인되어 중일 양국관계는 하나의 신기원을 열게 되었고, 중일 양민족은 새롭게 하나의 광휘있는 대도를 함께 열어, 각자가 각자의 나라를 사랑하고 동시에 서로 상대국을 사랑하고, 각자가 각자의 민족을 사랑하고 또 그 상대국의 민족을 사랑하고, 주권과 영토를 존중하며 군사, 경제 및 문화의 각 방면에 있어 협력, 합작하여 공동의 복리를 도모하고 동시에 동아의 영원화 평화를 보장할 것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과 중국 두나라가 친구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원수가 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국부 손중산 선생은 “중국과 일본 두나라는 모든 방면에서 제휴, 협력해 나가야 한다.” 라고 설명하신 것처럼 말이다. 이전에 우리가 제휴, 협력하지 못한 이유는 까닭은 모두에게 죄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3년의 비극이라는 한심해 견딜 수 없는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나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죽어나간 인민, 전장에서 죽어나가는 병사들과 장수들의 기분이 어떠한가를 생각하며, 중국의 멸망을 바라는 것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동시에 중일 양국이 함께 상처를 입고 함께 망해가는 것을 바라는 이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반드시 중국과 일본의 화평을 복원하고 공존공영의 날을 볼 수 있기를 바랬다. 이와 같은 생각은 나뿐만이 아니라 고통을 참고 있는 모든 인민이, 모든 장병이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충칭 방면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인민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마음의 외침도 반드시 이와 같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외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철저 항전을 주장하는 사람 중에서도 중일양국의 화평이 복윈되고 공존공영의 날이 오기를 바라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이러한 날이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다가 올 시기가 시기 상조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제군들이여, 오늘 중일 양국 평화를 다시 회복했고, 공존공영의 날은 이미 도래하였다. 제군들은 이에 응해 마음을 함께하고 덕을 함께하여 시대에 획을 그을 이 일을 함께 부담해야 할 것이다. 조약에 의하면, 중일양국은 상호간의 주권 및 영토를 존중하고, 그리고 양국간의 상호우호를 파괴하는 수단과 그 원인을 배제하기로 하였다. 중일 양국간에는 앞으로 이전과 같은 분규를 초래하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는 공허한 말장난이 아니라, 장래의 양국간 일체의 행동과 일은 모두 이에 기초로 하게 되는 것이다. 군사, 경제, 문화 각 방면의 제휴와 협력의 실행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들이 다수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나는 조금도 아쉬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양국간의 충돌은 모두 국가간의 관계적 문제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전 중국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할 것이라고 의심하고, 일본은 중국이 ‘이이제이(以夷制夷)’를 하려 한다고 의심하는 것처럼, 사변에 있어 쌍방 모두 이러한 관계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군사, 경제, 문화 방면에 걸쳐 제휴와 협력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국교방침이 일치하게 되었고, 공존공영, 공존공욕의 상태가 되었기에, 군사, 경제, 문화 각 방면의 제휴 협력은 실행가능할 뿐만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또한 현재 세계각국은 교통의 발달에 의해 국가간의 거리가 날이 갈수록 단축됨에 따라 국가간의 관계는 날로 긴밀해지게 되어 자연스럽게 국가간의 집단행동을 요구하게 된다. 이전의 ‘광영스러운 고립’을 표방하던 국가도 지금과 같은 시대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이전의 전통적 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 지금의 시대적 환경에는 적합하게 않게 되었다. 이렇듯 중일 양국이 축심을 결성하여 양국의 복리를 증진시키고, 동아의 화평을 보장하려 이르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렇기에 조약에서 일종의 회의감을 느낄 여지는 없는 것이다. 또 만약, 충칭 방면에서 ‘철저한 항전’을 고집하지 않고 화평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이번 조약의 성립은 더욱 신속하게 완성되고 각 방면에 대한 고려도 일정부분 생략할 수 있을 것이다. 충칭방면에서 고집하고 있는 ‘철저한 항전’은 화평의 장애물이 되어서, 일본은 국민정부와 화평조약에 대해 교섭을 하려해도 충칭방면에 대해 전쟁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고, 일본은 전쟁을 필요한 행위로 생각하고 전쟁을 계속하려 할 것이다. 이는 국민정부에게 있어 고통스러운 것이고, 일본에 있어서도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죄악은 충칭 방면의 가장 부정적인 것이라 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민국 27 (1938) 년 12월 28일, 내가 충칭을 탈출해 쿤밍으로 날아왔을 때, 윈난성 주석 룽윈은 나에게 “이번 교섭에서 일본은 정전이후 2년 이내에 철병을 완료하는가 안하는가?”라고 묻기에 나는“한다.”라고 답했지만, 룽윈은“조금이라도 더 빨리 하는 것이 좋다.” 라고 이야기하기에 나는 "나도 동감한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룽윈은 이어 ”하노이에 도착한 후에는 더욱 노력해 이를 더 빨리 이루기를 바란다.“ 라고 말했다. 이러한 말들이 나왔던 것은 민국 27년 12월 28일의 이야기로, 오늘은 민국 29년 11월 30일로, 그 이후로 벌써 2년이 되었다. 만약 당시의 전보(염전(豔電)을 의미하는 것, 2장 ‘장제스 총재에게 고함’참조.) 를 충칭 방면에서 채택했더라면, 지금 쯤에는 철병의 완료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전국의 동포들이여, 제군들은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고 얼마나 초조했을지를 나를 대신해서 생각해주기 바란다. 내가 이처럼 천만의 쓰라린 고생과 수많은 위험을 각오하고도 화평, 반공, 건국의 운동을 제창하고 있는 한 가지 이유는 사실 여기에 있다. 이전에는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었기에 이를 공개하고 이야기할 능력은 없었지만, 이제는 부속의정서도 이미 발표되어 전국 동포들도 똑같이 이를 볼 수 있다. 일본은 정전 후 2년 이내에 철병을 완료한다는 것을. 이전 유럽의 전승국 각국이 전쟁의 패배에 가했던 속박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상을 전제로 철병을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 배상이 지연될시 다시 출병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전국의 동포들이여, 만일 전국의 화평이 빨리 회복되지 않고 전쟁 상태를 빨리 종료하지 않으면 철병의 시기는 연장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때문에 나는 전부터 거듭하여 충칭 방면에 최후의 충고를 보내어 그들이 실제로 전쟁을 오래 끌 이유가 없다는 것을 설득하려 했다. 만약 계속하여 집요하게 전쟁을 연장시키 국가의 원동력과 인민의 생활력을 소모하해 다하게 된다면 중국은 이후에 영원히 부흥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라 설득하려 했다. 나는 전국의 동포들이 필연 이러한 충칭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요컨대, 시국을 수습하려면 대국을 멀리 바라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일화기본조약의 조인은 단순히 잠깐의 편리를 위한 것이 아니며, 잠깐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직 중일 양국의 영원한 우호와 동아의 영원한 화평을 위한 것이다. 동북 4성의 만주는 본래 중국영토의 일부분이었으나, 9,18사변(만주사변 (1931)을 의미. 9.18은 만주사변의 발생일.) 이후 벌써 10년이 지났다. 이 10년간의 추이는 세상의 모두가 함께 지켜봐야 할 일이다. 민국 27 (1938) 년 4월, 중국국민당이 우한에서 임시전국대표대회를 열고 발표한 선언을 하며 이 문제에 관한 더욱 명확한 의견을 표명했다. 민국 28 (1939) 년 9월, 상하이에서 열린 제 6차 전국대표대회의 선언에서는 더욱더 명확한 뜻을 밝혔다. (중국국민당 제 5차, 6차(왕징웨이) 전국대표대회 선언에서는 “동북 4성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을 도모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금년 3월 국민정부의 난징환도 이래 우리들은 이러한 방침에 근거해 진행해왔다. 따라서 이번의 일화기본조약의 조인과 동시에 일만화 공동선언을 발표하여, 일만화 서로가 지금도, 미래에도 동포가 되어 어깨를 맞잡고 손을 잡고 공동으로 각 국가의 인민의 행복과 동아의 영구적 화평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게끔 했다. 대아시아주의는 국부 손중산 선생이 제창한 바로, 우리 동지들은 이러한 이상에 근거해 동아신질서의 건설을 실현시키는 것을 구하려 했고, 이는 최근에는 더욱 발전하여 동아연맹운동이 되어 동아 각 국가와 민족의 정치독립, 군사동맹, 경제합작, 문화구통이라는 4개의 기본원칙하의 연맹을 결성해 동아의 영구적 평화에 공헌함과 동시에 세계의 영구적 평화에 공헌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공동으로 전진한다면, 동아 각 국가와 민족의 관계는 더욱 우호적이게 되어 점점 서로 의지하게 될 것이다. 전국의 동포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노력하여 이시대의 중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이 시대의 중대 사명을 완성해주기를 바란다. (일화기본조약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염전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왕징웨이가 장제스에게 보낸 최후의 충고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동아연맹운동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왕징웨이정권의 노래들 (和平歌集,1943)
1943년 출간된 '화평가집 (和平歌集)' . 광동성 선전처(廣東省宣傳處) 에서 제작되었다. 지금까지 왕징웨이 정권에서 불리었던 노래들에 대해서는 전쟁과정에서의 손실, 전후 국민정부 & 중국대륙의 한간흔적 제거 등 여러 사유등으로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 특히 녹음된 원본 레코드 자료가 존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중들에게 있어 '왕징웨이 정권의 노래' 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동아민족진행곡(東亞民族進行曲, 1941), 최근에 녹음자료가 보존된 흥아의노래 (興亞之歌, 1941 추정.) , 저조구락부에서 이전에 소개했던 왕주석 환영가 (汪主席 歡迎歌, 1942)를 제외하면 대중들에게 알려진 왕징웨이 정권시기의 노래는 사실상 전해내려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당시대 발행된 가집(歌集) 들에서는 왕징웨이 정권과 관련된 많은 노래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당시대의 노래책들에서 발견된 왕징웨이 정권에서 불리었던 노래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본 글에서는 위의 화평가집(和平歌集) 을 비롯한 여러 가집책들에서 자료를 수집했다. 이러한 가집책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신기한 부분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뒤에서 서술하기로 하고, 우선은 가집책들에 서술되어 있는 곡들을 소개하려 한다. 본 자료들은 일종의 악보자료이기에 실제 음악이 어떠했는지를 추측하고 복원하는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동아민족진행곡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왕주석환영가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건국가 (建國歌) 건국가. 가사를 지은사람은 무려 '왕징웨이' 본인이다. 건국가 庶矣哉! 四百餘兆之人民 참으로도 많구나! 4억여명의 인민은, 廣矣哉! 四百餘萬方里山河 참으로도 넓구나! 4백여만리의 산하는, 悠矣哉! 四千餘年之歷史 참으로도 오래되었구나! 4천여년의 역사는, 可泣而可歌 울면서 노래부를수도 있을것 같구나 率三民之主義兮, 進斯世於大同 삼민주의를 따라서 이세상을 대동으로 이끄세 何寇賦之披猖兮, 致四海於困窮兮 어찌 도적들이 날뛰어 사해를 곤궁하는가 窮此一片乾淨之土兮, 일편 깨끗한 땅을 궁구하세 一片忠純之血之所濯也 일편 충순한 피로 이땅을 씻어내세 慨當以慷兮, 吾與子其偕作也 우리 함께 강개하여 만들어내세 身滅兮種延, 家毀兮國全, 몸을 다해 후대를 이으세, 집을 고치고 나라를 보전하세 同此心兮, 所向無前! 한마음이 된다면 우리를 막을 것은 없네! 同此心兮,所向無前! 한마음이 된다면 우리를 막을 것은 없네! (* 현대 중문과는 거리가 먼 이전의 한시 형태로 노래가 만들어져 제대로된 뜻풀이를 하는데에 어려움이 있어 완벽한 뜻풀이라고 보긴 아쉬운 부분이 많다. 차후 완전한 해석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다.) 국경기념가 (國慶記念歌) 왕징웨이 정권의 쌍십절에 불렸던 국경기념가 (國慶記念歌). 국경기념가 (國慶記念歌) 國旗飄揚兮, 秋高氣靑, 同祝國慶兮, 薄海歡罄 국기는 높게 휘날리고, 푸른가을의 기운은 함께 국경을 축하하네, 세계가 함께 환호하네 此光榮之記念兮, 先烈熱血所造成 이 광영한 기념속에, 선열의 뜨거운피는 생겨나네 欣中樞之重奠兮, 기쁨의 가운데서도, 뿌리의 중요함을 잊지말고 擁護領袖效忠誠 최고영도자를 옹호하고 충성으로 이를 본받자 實施憲政, 實現和平, 헌정을 실시하고, 화평을 실현하고 反共建國,民族復興, 復興, 반공으로 나라를 세우고, 민족을 부흥시키자, 부흥시키자 祝東亞前途光明! 동아의 광명스러운 앞길을 축하하자! 祝東亞前途光明! 동아의 광명스러운 앞길을 축하하자! 국민정부개조환도가 (國民政府改組還都歌) 국민정부의 난징환도를 기념하는 노래인 국민정부개조환도가(國民政府改組還都歌) . 국민정부개조환도가(國民政府改組還都歌) 同志們 齊集一堂, 동지들 자리에 모두 모이세, 慶祝我首都的重光聽吧! 우리 수도의 광복을 축하하는걸 들어보세! 滿耳大衆的歡唱吧! 귀에 가득한 대중들의 환영노래를 들어보세! 靑天白日旗在飄揚, 청천백일기는 높게휘날리고, 我們痛恨共匪猖戰禍長 우리의 통한스러운 공비는 전화가 길어지는걸 보고 미쳐 날뛰는구나! 忍耐着休, 養生息發以圖强 화평을 위해 인내하고, 분노을 키우는것은 멈추세 錦繡的河山已經是一片荒凉, 怎樣再容得干戈援攓 금수강산은 이미 황량해졌네, 어떻게 전쟁에서 구원을 얻을것인가 責任在我門的身上 책임은 바로 우리에게 있네 實現大亞洲主義的理想 대아시아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고, 還舊都國府改組東方見曙光, 曙光, 曙光, 東方見曙光, 옛 수도로 돌아와 국민정부를 개조해 동방의 새벽빛을 보세, 보세, 보세, 동방의 새벽빛을 보세 同志們, 同志們 集中起力量把建國重任來擔當 동지들, 동지들 역량을 집중시켜 일어나 건국의 막대한 책임을 담당하세! 옹호영수가 (擁護領袖歌) 옹호영수가 (擁護領袖歌) . 옹호영수가 (擁護領袖歌) 偉大的領袖! 偉大的領袖! 위대한 영도자! 위대한 영도자! 救國救民, 重任担負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하는 막대한 임무를 등에 지고 어깨에 매네 卓見遠識囘天手 뛰어난 식견은 신의 손길로 돌아왔네 領導着我們和平奮鬪 우리를 화평으로 분투하게 영도하시고 排除萬難謨復興 만난을 이겨내고 부흥을 꾀하시어 求中華民族獨立平等與自由 중화민족의 독립과 평등자유를 구하시네 同志們!, 同志們! 統一意志, 整齊步伐 동지들! 동지들! 뜻을 하나로모아, 발걸음을 맞추자! 同向光明大道走 모두 다같이 광명의 대도로 나아가자! 擁護偉大的領袖 위대한 영도자를 옹호하자! 화평구국가 (和平救國歌) 화평구국가 (和平救國歌) . 화평구국가 (和平救國歌) 我們要和平救國 우리는 화평구국이 필요하다 我們要肅淸共匪 우리는 공비 숙청이 필요하다 決不怕困苦艱難 결코 곤고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決不怕陰謀毒計 결코 음모와 간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堅定信念,振作志氣 신념을 굳게가지고 분발하여 기개를 펴고 服從領袖指揮奮鬥到底 영도자의 지휘에 복종하려 분투한다 我們要復興中華 우리는 중화를 부흥시켜야한다 我們要發揚道義 우리는 도의를 발양시켜야한다 更聯合東亞民族 그리고 동아민족을 연합시켜 來創造新的天地 신천지를 창조해야 한다 欲求解放, 全伐自己 해방을 바라고 자신을 믿고 快快努力奮起努力奮起 어서,어서, 노력해서 일어나세, 일어나세 우리의 영도자 (我們的領袖) 우리의 영도자 (我們的領袖). 우리의 영도자 (我們的領袖) [1절] 我們的領袖, 率領着同胞 우리의 영도자, 동포들을 이끄시고 爲國家元氣, 求東亞的和平 국가의 생명을 위해 동아의 화평을 구하시네 我們的領袖, 率領着同胞 우리의 영도자, 동포들을 이끄시고 爲反共建國, 求取得我們華夏光明 반공건국을 위해 우리중국의 광명을 구하시네 兄弟們, 大家起來! 兄弟們, 大家起來! 형제들이여 일어나라! 형제들이여 일어나라! 都做個保護正義勇敢的干城 모두 정의를 보호하는 용맹한 군인이 되자 我們的領袖, 率領着同胞 우리의 영도자, 동포들을 이끄시고 立了大決心, 求取得我們快樂前程 대결심을 세우시고, 행복의 전도를 구하시네 [2절] 賢明的領袖, 具偉大精神 현명한 영도자, 위대한 정신을 갖추시고 不躲避艱險,拖救國的誠 고난을 피하지않고, 진실로써 구국을 꾀하시네 賢明的領袖, 具偉大精神 현명한 영도자, 위대한 정신을 갖추시고 秉着悲憫心, 求達到中華民族重生 비통한 마음속에서도, 중화민족의 재생에 도달을 구하시네 兄弟們, 大家起來! 兄弟們, 大家起來! 형제들이여 일어나라! 형제들이여 일어나라! 同結成偉大東亞堅固陣營 함께 위대한 동아의 견고한 진을 결성하자 賢明的領袖, 具偉大精神 현명한 영도자, 위대한 정신을 갖추시고 率領着我們,向着了我們目標進行 우리들을 이끄시고, 우리들의 목표를 위해 나아가시네 동아청년 (東亞靑年) 동아청년 (東亞靑年). 동아청년 (東亞靑年) 東亞靑年,共携手從事建設 동아의 청년들이여, 함께 손을잡고 건설에 종사하자 不畏困難, 求完成大理想 고난을 두려워 말고, 대이상의 완성을 구하자 東亞靑年, 協力於東亞解放 동아의 청년들이여, 동아의 해방을 위해 협력하자 要把英美逐出了我們東方 반드시 영미를 우리 동방에서 축출해내자 向着前途, 努力前進 앞길을 향하여, 노력해 전진하자 消滅障碍, 建立豊功 장애물을 없애고, 공훈을 세우자 向着前途, 努力衝鋒 앞길을 향하여, 노력해 돌격하자 消滅敵人, 大顯雄風 적을 없애고, 당당하게 실력을 떨쳐보이자 동아화평진행곡 (東亞和平進行曲) 동아화평진행곡 (東亞和平進行曲). 동아화평진행곡 (東亞和平進行曲) 和平火炬 巴高舉, 화평의 횃불을 높게 들고 東亞民族 快醒悟! 동아민족이여, 어서 각성하자! 共存共榮 共安危, 공존공영, 안위를 함께하며 努力建設新秩序 신질서 건설을 위해 노력하자 相愛復相親 合作並互 서로 사랑하고 서로 친하게 지내며 서로 함께 합작하여 共同來防, 不怕受險阻 서로를 지켜줘야지, 서로를 무서워하고 음해해서는 안된다 我們負起了復興東亞的責任, 우리는 동아부흥의 책임을 가지고 일어섰다, 我們踏上了自力更生的大路, 우리는 자력갱생의 대도를 걸어가고 있다, 萬衆一心, 同甘同苦 모두가 한마음이되어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하며 邁步向前趨 前趨 前趨! 발걸음을 선도를 향해 옮기자! 선도로! 선도로! 신국민운동가 (新國民運動歌) 신국민운동가 (新國民運動歌). 왕징웨이정권시기 진행되었던 범국민운동인 신국민운동의 노래이다. (신국민운동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신국민운동가 (新國民運動歌) 勵行新國民運動, 實現大東亞復興 신국민운동에 노력하자, 대동아의 복흥을 실현하자 振起新精神, 負起新責任 신정신을 위해 분발하자, 신책임을 위해 감당하자 來完城新時代的使命 신시대의 사명을 완수하자 我們要承認缺點, 有了劣點廓淸 우리는 단점은 인정하고 단점을 없애야한다 充分硏究, 勇猛實行 충분히 연구하고, 용맹하게 실행하여 同心戮力求更生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갱생을 구하자 增進生産, 節制浪費 생산을 증진시키고, 낭비를 절제하자 公而忘私臨難犧牲 모두를 위해 사적인 고난은 잊고 희생하자 勵行新國民運動, 實現大東亞復興 신국민운동에 노력하자, 대동아의 복흥을 실현하자 振起新精神, 負起新責任 신정신을 위해 분발하자, 신책임을 지자 來完城新時代的使命 신시대의 사명을 완수하자 신국민의책임 (新國民的責任) 신국민의책임 (新國民的責任). 위의 노래와 함께 신국민운동을 위해 제작된 노래이다. 신국민의책임 (新國民的責任) 我有純正的思想, 나는 순수한 사상을 가지고있다, 我有健全的身心 나는 건전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 我有堅定的意志, 나는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있다, 我有剛毅的精神 나는 강성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 不畏艱難, 不辭苦幸 간난을 두려워말고, 괴로움을 이야기말고 一心復一德, 立己而立人 한마음으로 덕을 되돌리고 , 몸과 사람을 이르게하자 和平反共建國, 화평반공건국, 負起新國民的責任 신국민의 책임을 지자 청년가 (靑年歌) 청년가 (靑年歌). 청년가 (靑年歌) 誰復興中國者? 唯我靑年 누가 중국을 부흥시킬수 있는가? 오직 우리 청년이라네 誰爲保衛東亞者? 唯我靑年 누가 동아를 보위할수 있는가? 오직 우리 청년이라네 刻苦耐勞體力健, 괴로움을 건디고 신체를 건강히하고 百折不撓意志堅, 수많은 곡절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勇猛精進齊向前 唯我靑年 용맹하게 앞으로 정진하는 이, 오직 우리 청년이라네 동아민족진행곡 (東亞民族進行曲) 동아민족진행곡 (東亞民族進行曲) 위 노래는 이전에 자세하게 다룬바가 있으니, 자세한 것은 이전의 글을 참조해주기 바란다. (동아민족진행곡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동아민족진행곡 (東亞民族進行曲) [1절] 大地湧起和平的呼聲 대지에서 화평의 소리가 들려오니 激動了萬里的大進行 만리에 걸친 대진보를 일으키네 東亞民族 聯合起來 동아민족이여, 함께 일어나 互尊獨立 共同防共 상호독립을 보장하고, 함께 공산주의를 막으세 我們是開闢荒野的先鋒 우리들은 황야 개척의 선봉이며 我們是創造文明的英雄 우리들은 문명창조의 영웅이로다 大眾齊醒 大眾齊醒 대중들이여 일어나서 擔負復興東亞的使命 동아 부흥의 사명을 메자 [2절] 已經燃起光明的火炬 이미 광명의 횃불이 타올랐으니 領導著和平的新群眾 화평으로 신군중을 이끄시네 東亞民族 聯合起來 동아민족이여, 함께 일어나 經濟合作 文化溝通 경제합작과 문화교류를 하세 我們有保衛東亞的忠貞 우리에겐 동아보위의 충정이 있고 我們有剛毅不拔的決心 우리는 굳센 결의를 가지고 있으니 不怕艱辛 不怕艱辛 고난을 두려워 말고, 고난을 두려워 말고, 發揚東亞民族的精神 동아민족의 정신을 일으키세 [3절] 團結東亞同胞六萬萬 단결하세, 동아의 수많은 동포들이여 開創了歷史的新紀元 역사의 신기원을 열어보세 東亞民族 聯合起來 동아민족이여, 함께 일어나 協手共進 同慶凱旋 손잡고 함께 개선을 기뻐하자 我們要撲滅世界的烽煙 우리는 세계의 불안을 없애야하고 我們要征服正義的反叛 정의로운 우리는 반란을 진압해야 하네 努力前進 努力前進 노력하고 전진해서, 노력하고 전진해서, 完成東亞共存共榮圈 대동아공영권을 완성하세 ! 동아전사의 노래 (東亞戰士之歌) 동아전사의 노래 (東亞戰士之歌) 동아전사의 노래 (東亞戰士之歌) 角聲己吹响, 鼔聲己吹响, 각성의 소리를 내자, 고성의 소리를 내자 東亞的兄弟, 携手上戰場 동아의 형제들이여, 함께 손잡고 전장으로 가자 共存與共榮, 保衛我家邦 공존과 공영으로, 내집과 국가를 보위하세 同甘同苦, 意氣昂昂,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하며, 의기양양하게 拿起我寶劍, 穿起我戎裝 무기를 들고, 군장을 차고 勇猛上戰場, 步伐盡堂堂 용맹하게 전장으로가자, 당당하게 발걸음을 맞추자 東亞古文明, 歷史最悠長, 동아의 옛문명은, 그 역사가 아주길고 發揚光大, 佇看來日寵囉虎驤 발양은 광대하고, 그 모습은 아주 위풍당당하네 角聲再吹動, 鼔聲又再响, 다시 각성의 소리를 내자, 다시 고성의 소리를 내자 戰士們! 一齊上戰場, 전사들이여! 다같이 전장으로 가자 東亞的民族, 燦爛耀光芒, 동아의 민족이여, 찬란하게 광망을 빛내자 同甘共苦, 奮起掃槍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하며, 총을 치켜들자 동아연맹가 (東亞聯盟歌) 동아연맹가 (東亞聯盟歌), 동아연맹운동에서 불리었던 노래다. (동아연맹운동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동아연맹가 (東亞聯盟歌) 君不見, 世界風雲正激蕩 그대는 못보았나, 세계의 정세가 격동하는것을 又不見, 英美侵略勢力太猖抂 그대는 또 못보았나, 영미침략의 위세가 미쳐날뛰는것을 更可驚, 第三國際多陰謀 또 놀라지않았나, 코민테른의 음모를 狠毒如虎狼! 표독하고 잔인하지 않은가! 聯合東亞民族, 共安危與存亡 동아민족이여 연합하여, 안위와 존망을 함께하자 要先求政治獨立, 經濟合作補短長 먼저 정치독립을 구하고, 경제합작으로 장점과 단점을 보완하자 明軍事同盟之眞意, 復進而謀文化溝通 밝은 군사동맹의 진전, 문화구통의 전진을 之方大亞洲主義, 國父先覺示康莊 대아시아주의를 방책으로하고, 선각자 국부의 길을 따라 建設新秩序, 大任共担當, 신질서를 건설하는 대임무를 함께 짊어매자 東亞聯盟, 民族自强, 共存共榮, 萬世無彊! 동아연맹, 민족자강, 공존공영이여, 만세무강하라! 동아를 지키자 (保衛東亞) 동아를 지키자 (保衛東亞). 동아를 지키자 (保衛東亞) 東亞民族聯合起來,結成一條鐵的陣線 동아민족이여, 함께일어나 하나의 강철같은 전선을 결성하세 保衛東亞, 保衛東亞, 粉碎我們的枷鎖鐵涼 (起來吧!) 동아를 지키자, 동아를지키자, 우리의 족쇄를 냉철하게 분쇄하자 (일어나자!) 我愛的東亞, 歷史悠遠文化燦爛 내가 사랑하는동아, 역사는 길고 문화는 찬란하도다 民風檏享淳良崇道義, 講禮讓交相利兼相愛, 풍속과 도의은 휼륭한 숭상이고, 예의를 중시하여 상리와 사랑을 하게 하네 合作互助, 幸福無限 서로 도우면, 행복은 무한하네 努力同建設東亞共榮圈 함께 노력해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세 太平洋的風雲奔腾激盪,瞬息萬變保障東亞和平, 태평양의 정세가 요동치네, 순식만변하여 동아의 화평을 보장하네 手摘手, 齊向前, 同甘苦, 손을마주잡고, 앞으로 나아가세,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하며 共安危, 東亞復興, 秩序再建 함께 안위하고, 동아부흥, 질서재건, 光明新時代, 在前面開展 (起來吧!) 광명의 새시대가 바로앞에 펼쳐져있네 (일어나자!) 東亞民族! 聯合起來,結成一條鐵的陣線 동아민족이여! 함께일어나 하나의 강철같은 전선을 결성하세 保衛東亞, 保衛東亞, 來把我們的理想實現 동아를 지키자, 동아를지키자, 우리의 이상을 실현시키자 화평사자 (和平使者) 화평사자 (和平使者). 화평사자 (和平使者) 和平使者, 翧翧光臨帶來了福國佳音 화평사자, 훨훨 광림하시어 나라에 복과 행복의 노래를 가져다 주셨네 大家歡欣, 其同情心 모두 기쁘게 마음과 정을 담아 환영하세 抹浄了傷心, 疚痕懩着了熱忱消仇解恨 슬픔은 멈추고, 양심의 가책으로 원한을 푸시고 相愛如同一家人 마치 한가족처럼 사랑해주시네 최대한 가지고 있는 자료를 모아보았다. 번역실력이 부족해 번역이 완전하지 않은 만큼, 원문을 함께 표기하여 다른 분들이 이를 개선하여 고칠 수 있게 해두었다. 이번에 작성한 노래들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할것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왕징웨이 정권과 관련된 노래자료들을 더 찾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왕징웨이정권의 노래들은 일본과 나치독일을 비롯 대부분 이시기 국가들이 만들었던 선전가처럼 자신의 국가와 지도자를 찬양하는 요소들이 들어가있다. 대부분의 노래가사에서 화평, 대아시아주의, 동아민족의 단결등 왕징웨이정권에서 추구했던 바들이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 노래책을 찾으면서 의아한점을 이야기하려한다. 대부분이 알고 있을것이지만, 왕징웨이정권도 장제스의 국민정부와 마찬가지로 이름바 '삼민주의가 (三民主義歌)' 를 국가로 사용했다. 본 글의 자료가 되는 화평가집에서도 가장 첫 노래로 국가로서 이 삼민주의가를 표기해두었다. 신민회에서 발간한 노래집 신민창가집 (新民唱歌集, 1941) 하지만 1941년, 왕징웨이정권의 조직중 하나인 신민회에서 발간한 노래집인 신민창가집 (新民唱歌集, 1941) 에서는 왕징웨이의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의 국가를 이전 북양정부시기의 경운가(卿雲歌) 를 '중국 국가' 라고 표기해두었다. 신민창가집의 목록과 첫곡으로 표기된 중국국가. 삼민주의가가 아닌 이전 북양정부의 경운가가 중국국가로 표기되어있다. 대부분의 왕징웨이정권 자료에서 국가를 삼민주의가로 하고 있으나 이 자료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가 단순한 실수일수도 있겠지만, 신민회라는 조직이 왕징웨이와 그의 국민당을 견제하기 위한 성격의 조직임을 생각해보면 신민회가 이러한 이전의 경운가를 '국가'로 표기한 것도 이러한 왕징웨이에 대한 견제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수도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러한 노래부분에 있어서도 신민회는 왕징웨이정권측에 협조하지 않고, 이전의 상징을 꺼내왔던것처럼 이전의 노래를 꺼내와 왕징웨이 정권측을 견제하려 한것이다. ( 신민회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출처] 화평가집 (1943) : http://read.nlc.cn/allSearch/searchDetail?searchType=all&showType=1&indexName=data_416&fid=14jh000529 신민창가집 (1941) : http://read.nlc.cn/allSearch/searchDetail?searchType=all&showType=1&indexName=data_416&fid=14jh002473
- 동아민족진행곡(東亞民族進行曲) / 1941.4.1
동아민족진행곡 (東亞民族進行曲) / 장윈예 (江文也) 작곡 / 일본 컬럼비아레코드 녹음 (1941) / 국립대만역사박물관 (타이페이, 중화민국) 동아민족진행곡 (東亞民族進行曲) 은 장원예(江文也) 가 작곡한 곡으로, 1941년 3월 30일의 왕징웨이의 난징국민정부 난징환도 1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곡입니다. 곡은 1940년 4월 1일에 NHK에서 방영되었던 일본뉴스 (日本ニュース) 43호에서 난징환도 1주년 행사를 다룰때에 처음으로 공개가 되었습니다. (실제 당시 NHK 영상 : https://www2.nhk.or.jp/archives/movies/?id=D0001300428_00000&chapter=005 ) 이노래가 만들어지게 된 경위는, 日의 <오사카마이니치신문> 과 <도쿄니치니치신문> 이 합작해 중국에서 이름바 프로파간다용으로 만든 잡지인 <화문오사카마아니치> 의 1941년 1월 1일자 53호에서 왕징웨이 정권 출범 1주년 기념의 의미로 "보위동아의노래 (保衛東亞之歌)" 를 응모하게 됩니다 화문오사카마이니치 (華文大阪每日) 53호, 1941년 1월호 표지 화문오사카마이니치 53호의 목차. 동그라미친곳에 보위동아의노래 (保衛東亞之歌) 의 응모전 항목이 존재한다. 이 대회의 결과는 3달후인 <화문오사카마이니치> 4월 1일자, 59호에서 발표가 되게되고, 그 대회에서 채택된 곡이 <동아민족진행곡> 이었습니다. 이 작곡대회에는 왕징웨이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잡지는 말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사진의 줄그어진 부분) 화문오사카마이니치 (華文大阪每日) 59호, 1941년 4월 1일호 , 표지에 보위동아의노래 (保衛東亞之歌) 당선작 발표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다. 동아민족진행곡이 왕징웨이정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동아민족진행곡이 마찬가지로 괴뢰정권이었던 비시 프랑스정부의 비공식 국가 '원수여 우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Maréchal, nous voilà !)' 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동아민족진행곡은 왕징웨이정권의 주요행사에서 많이 불리었고, 일본측에서도 왕징웨이정권을 다루는 뉴스에서 이 곡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일본군을 위해 만들어진 중국어 교재 '지나말 빨리이해하기 (支那語早わかり)' 의 표지. 부록에 지나말의 게시문(支那語の揭示文) 과 지나말의 약자 (支那語の略字) 와 함께 동아민족진행곡 (東亞民族進行曲) 이 적혀있다. 이와같이 중국대륙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을 위한 교재에서도 이 동아민족진행곡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등, 동아민족진행곡은 왕징웨이정권을 상징하는 노래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작곡가 장원예 (江文也) 의 사진, 동아민족진행곡을 작곡했던 장원예 (江文也)는 당시 일본령대만 출신으로 (타이페이출신) 화북지역의 친일단체 신민회 (新民會) 의 회원이었던 전적이 있었고, 동아민족진행곡을 비롯한 친일행위로 전후 한간재판에 회부되어 10년형을 받기도 했습니다. (실제로는 몇개월후 풀려났습니다.) 이렇게 장원예의 <보위동아의 노래> 의 수상작 <동아민족진행곡>은 일본의 두 신문사 (오사카마이니치, 도쿄니치니치) 와 중화민국 국민정부 선전부의 도움으로 日 컬럼비아 레코드와 함께 녹음을 끝내고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동아민족진행곡 듣기 : (새창에서 열립니다.) 동아민족진행곡 가사 [1절] 大地湧起和平的呼聲 대지에서 화평의 소리가 들려오니 激動了萬里的大進行 만리에 걸친 대진보를 일으키네 東亞民族 聯合起來 동아민족이여, 함께 일어나 互尊獨立 共同防共 상호독립을 보장하고, 함께 공산주의를 막으세 我們是開闢荒野的先鋒 우리들은 황야 개척의 선봉이며 我們是創造文明的英雄 우리들은 문명창조의 영웅이로다 大眾齊醒 大眾齊醒 대중들이여 일어나서 擔負復興東亞的使命 동아 부흥의 사명을 메자 [2절] 已經燃起光明的火炬 이미 광명의 횃불이 타올랐으니 領導著和平的新群眾 화평으로 신군중을 이끄시네 東亞民族 聯合起來 동아민족이여, 함께 일어나 經濟合作 文化溝通 경제합작과 문화교류를 하세 我們有保衛東亞的忠貞 우리에겐 동아보위의 충정이 있고 我們有剛毅不拔的決心 우리는 굳센 결의를 가지고 있으니 不怕艱辛 不怕艱辛 고난을 두려워 말고, 고난을 두려워 말고, 發揚東亞民族的精神 동아민족의 정신을 일으키세 [3절] 團結東亞同胞六萬萬 단결하세, 동아의수많은 동포들이여 開創了歷史的新紀元 역사의 신기원을 열어보세 東亞民族 聯合起來 동아민족이여, 함께 일어나 協手共進 同慶凱旋 손잡고 함께 개선을 기뻐하자 我們要撲滅世界的烽煙 우리는 세계의 불안을 없애야하고 我們要征服正義的反叛 정의로운 우리는 반란을 진압해야 하네 努力前進 努力前進 노력하고 전진해서, 노력하고 전진해서, 完成東亞共存共榮圈 대동아공영권을 완성하세 !
- [연재] 전면화평으로의 길 - ㉔ 국민정부 주석에 취임하다
이번기회에 왕징웨이가 쓴 전면화평으로의 길(全面和平への路, 1941) 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조금씩 번역한 내용을 정리해 저조구락부에 올리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전면화평으로의 길 (全面和平への路)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1. 왕징웨이와 나 2. 장제스 총재에게 고한다 / 염전 3.충칭최고국방회의에 제안하다 4.동지 쩡중밍 선생의 죽음에 맹세하다 5.충칭 탈출의 진상 6.중국국민당전국대표회의의 역사적의미 7. 일본 국민들에게 바란다 8.화평인가 항전인가 (대 장제스통전) 9.난징환도에 대해 일본에 감사를 표하다 10.자신을 벌하는 정신 11.전면화평에 회의감을 가지지말라 12.중국청년의 새로운 책임 13.화평파와 항전파 14.영광의 앞길 15.전면화평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16. 중국의 항전심리 17.페탱 원수의 교훈 18. 민족주의와 대아시아주의 19. 전면화평과 대외관계 20. 팔굉일우와 사해위가 21. 대아시아주의와 동아연맹운동 22. 동아연맹중국동지회선언 23. 장제스에게 최후의 경고 국민정부 주석에 취임하다 (國民政府主席に就任) *국민정부는 쇼와 15 (1940)년 11월 28일, 중앙정치위원회의 및 행정원회의의 합동회의에서 왕 대리주석의 주석 취임을 만장 일치로 가결하고,“왕 선생을 주석으로 추대하는 이유는 중화민국은 손중산 선생에 의해 건국되었는데, 왕 선생은 그를 보조하며함께 혁명에 참가해왔고, 국민당의 영수로써 당을 지도해왔다. 이러한 그의 노력과 열의에 왕 선생을 국민정부 주석으로 추대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왕 선생은 다음과 같은 선서를 했다. “나는 손중산 선생의 유훈을 준수하여, 삼민주의를 실행하고, 국가를 보위할것이며, 이를 어긴다면 마땅히 처벌을 받을 것을 진실로써 선서합니다.” 국민정부 주석 왕 자 오 밍 중화민국 29년 11월 29일
- [연재] 전면화평으로의 길 - ㉓ 장제스에게 최후의 충고
이번기회에 왕징웨이가 쓴 전면화평으로의 길(全面和平への路, 1941) 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조금씩 번역한 내용을 정리해 저조구락부에 올리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전면화평으로의 길 (全面和平への路)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1. 왕징웨이와 나 2. 장제스 총재에게 고한다 / 염전 3.충칭최고국방회의에 제안하다 4.동지 쩡중밍 선생의 죽음에 맹세하다 5.충칭 탈출의 진상 6.중국국민당전국대표회의의 역사적의미 7. 일본 국민들에게 바란다 8.화평인가 항전인가 (대 장제스통전) 9.난징환도에 대해 일본에 감사를 표하다 10.자신을 벌하는 정신 11.전면화평에 회의감을 가지지말라 12.중국청년의 새로운 책임 13.화평파와 항전파 14.영광의 앞길 15.전면화평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16. 중국의 항전심리 17.페탱 원수의 교훈 18. 민족주의와 대아시아주의 19. 전면화평과 대외관계 20. 팔굉일우와 사해위가 21. 대아시아주의와 동아연맹운동 22. 동아연맹중국동지회선언 장제스에게 최후의 경고 (蔣介石への最後の忠告) *화평구국운동에서 화평건설운동으로, 나아가 동아연맹운동으로의 적극성은 충칭에 대한 화평사상의 공세로 이해되어진다. 왕 선생은 중일국교조정이 진척되고 있던 쇼와 15 (1940)년 11월 27일, 항전 충칭의 장제스에게 화평 권고의 통전을 전송해 장제스로 하여금 반성을 촉구하고 전면화평의 결단을 재촉했다. 충칭의 장제스 선생, 중일국교조정의 진척에 즈음하여 나는 선생에게 마지막으로 충고를 하려 한다. 중일국교조정은 중일 제휴, 협력이며 이는 손중산 선생의 유훈인 중일의 공존, 동아부흥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항전이 계속되는한, 국민들이 겪고있는 고통의 해소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염전 (2. 장제스 총재에게 고함 / 염전 참고) 으로부터 이미 2년이 지났다. 만약 화평이 실현되었다면 질서는 회복되고, 안으로는 정치는 공명해져 국본은 굳건해지고, 우방들과 축심을 결성해 세상의 변화에 부응할 수 있었을 것이며, 국력과 민력은 날로 융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반대로되어, 아직도 국민이 전쟁의 도탄을 겪고 있는 것은 뼈 아픈일이다. 장 선생, 부디 항전을 이어갈 생각을 말고 즉시 결심하여 정전을 선포하고 전국인민으로 하여금 화평의 회복, 치안의 확립을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 나는 염전이래 세월을 거듭하면서 위태에 처해 있는 국운과 백성들의 고통이 점점 깊어지는 것을 볼 수 없어 선생의 반성을 기다리지 않고 반대속에서도 이를 무릅쓰고 의연하게 화평, 반공, 건국의 중책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선생이 생각을 바꾸어 하루 빨리 전면화평에 매진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바야흐로 화평운동 진전의 가을이 다가왔다. 나는 선생의 일대 양단을 촉구하는 바이다.
- [연재] 전면화평으로의 길 - ㉒ 동아연맹중국동지회선언
이번기회에 왕징웨이가 쓴 전면화평으로의 길(全面和平への路, 1941) 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조금씩 번역한 내용을 정리해 저조구락부에 올리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전면화평으로의 길 (全面和平への路)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1. 왕징웨이와 나 2. 장제스 총재에게 고한다 / 염전 3.충칭최고국방회의에 제안하다 4.동지 쩡중밍 선생의 죽음에 맹세하다 5.충칭 탈출의 진상 6.중국국민당전국대표회의의 역사적의미 7. 일본 국민들에게 바란다 8.화평인가 항전인가 (대 장제스통전) 9.난징환도에 대해 일본에 감사를 표하다 10.자신을 벌하는 정신 11.전면화평에 회의감을 가지지말라 12.중국청년의 새로운 책임 13.화평파와 항전파 14.영광의 앞길 15.전면화평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16. 중국의 항전심리 17.페탱 원수의 교훈 18. 민족주의와 대아시아주의 19. 전면화평과 대외관계 20. 팔굉일우와 사해위가 21. 대아시아주의와 동아연맹운동 동아연맹중국동지회선언 (東亞聯盟中國同志會宣言) *동아연맹중국동지회의 결성식은 쇼와 15 (1940)년 11월 24일, 난징시의 중국국민당 중앙당무훈련단에서 거행, 중국의 원로층을 대표하는 동지 500명이 참석, 엄격한 자격심사가 행해진 가운데 중국국민당 중앙당 부비서장 장쉐창 (周學昌) 씨를 중심으로 의사를 진행했다. 손중산 선생의 유촉을 실천하여 시대의 요구에 응하고, 공동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동지를 결합하여 동방민족의 자각운동을 위한 적극적 분투를 전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동아연맹중국동지회를 설립하고자 하는 바이다. 손중산 선생은 대아시아주의를 발표하여 중국과 일본 두 개의 대민족의 상호단결을 앞서서 인도했고, 그 고귀한 견해를 상세하게 누누이 천명하여 깊은 장래에 펼쳐질 동아의 고난을 감지하고 양대민족이 정신적 결합을 얻게하여 부강을 꾀하고 외국에게 모멸을 받게 되지 않을 능력을 가지게하려 했고, 넓은 정신의 이론을 천명하여 동아 영구의 치안을 도모하려 했다. 어찌 우리는 이를 알지 못하고 망망대해와 같은 세상속에서 머뭇거려 좌절시켜 지금의 재앙을 만들어냈는가. 지금의 위급존망한 가을에, 우리의 동지로 하여금 진정으로 마음깊이 반성하고 번연히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여 양대민족이 상호 제휴하고 함께 화평의 행복과 이익을 도모한다면 지금까지 잃은 것을 회수하고 보강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모임의 모든 인원들은 최선의 노력과 힘을 바쳐 이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위대한 일에 종사하라. 세계는 날이 갈수록 변화하면서 그 재앙은 점점 깊어지고 있고, 시대의 동요는 눈보라처럼 거세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의 사상과 하나의 의사를 견지하고 단결을 굳건히 하여 함께 진전을 도모해야한다. 위태로운 가을인 지금, 그 공과는 공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아시아주의를 실현하고 싶다면 반드시 노력하여 몸소 실천하고 전력을 다해 임해야 한다. ‘동아연맹’의 주장은 진취적으로 대아시아주의의 실현을 요구하는 것으로서 그 구체적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대아시아주의는 ‘동아연맹’의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제조약은 대체 공허함을 얻을뿐 으로 실리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지난날의 국제조약은 완만함을 유도했지만 이는 상대를 이용하기 위한것에 불과하며, 시세의 추이전환에 따라 우호는 악화되고 조약은 냉각화되기 일쑤였다. 이러한 전례는 실제로도 셀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주장하는 동아연맹은 단순한 빈말에 의탁하여 한 순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합종연횡의 권모술수로서 잠시의 우호를 도모하려는 것도 아니다. 동아연맹은 백년의 대계를 수립하여 중국과 일본 두 민족을 결합하고 동아의 영구적인 화평을 확립하고,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해 건설을 분담하는 것이다. 그 결합의 기초는 정치를 중시하는 가운데, 각각의 독립과 자주권을 향유하고, 그런 후에 하나가 되어 극심한 세계의 변화 속에 응하여 장래의 광명을 추구하는 것이다. 일단 연맹하게 되면,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긴밀히 연대하고 하나가 되어 동아의 굳건한 보루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동아연맹을 실행하기 위한 주요 주장은 아래 4가지와 같다. 1.정치독립 (政治獨立) 2.경제합작 (經濟合作) 3.군사동맹 (軍事同盟) 4. 문화구통 (文化溝通) 동아연맹의 중심은 위의 기술된 바와 같다. 그 임무는 무겁고 나아갈 길이 먼 것이다. 동아연맹중국동지회의 모든 이들은 협력을 통해 이의 실현을 촉진하려는 것이다. 무릇 우리 동포들은 아직 공산당의 ‘항전’이라는 그릇된 말에 현혹되어 갈림길 속에서 배회하고 있으나, 동아연맹중국동지회는 반드시 협력을 통해 이를 풀어내어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해야한다. 이러한 각성속에서 본 연맹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특히 그 신념을 견고히 하고 의사를 굳건히 하여 위대한 단결을 촉구해야 한다. 우방의 선비로서 본 연맹의 주장에 동의하는 자에 대해서는 동지로서 반드시 밀접한 연관성을 유지하게하고, 제국주의 사상에 물들어 아직 본 연맹의 정신을 이해하지 않은 자에 대해서는 더욱 방법을 강구하여 스스로 각성하게 해야 한다. 이상 위의 목표들을 모두 동아연맹운동의 법도로하여 전국동포와 우리를 지지하는 우방 인사들에 대해 중일 양국 목전의 위기와 시대고난속에서 위대한 중일 양민족의 단결을 촉구하고, 동아연맹을 성취하여 영구화평, 백년대계를 수립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같은 동지로서 마지막으로, 운동을 이끌 선도자가 필요하다. 내외의 현달은 능히 그 진성을 가지고 운동의 지도를 해주기를 바란다. 이는 본 모임을 행복의 길로 이끌 뿐만 아니라 일대 민족의 앞길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아연맹중국동지회에서는, 이날 일본의 동지들에게 보내는 전보를 발송했다.) 일본의 동지들에게 보낸다. 중일 양국은 불행하게도 사변에 빠지어 이미 수년간 함께 상처에 시달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양국이 현명하게 현 시국의 처지를 생각하고 민심의 귀향을 생각하면서 탁견으로 화평을 천명하여 양 민족의 단결을 통해 동아의 영원한 화평을 이룩하게하고, 나아가 대아시아주의의 실현을 도모하여 세계평화의 대임을 분담하려 하고 있다. 양국의 노력의 성과를 되돌아보면 참으로 동양역사상의 영광이라 할 수 있으며, 이에 우리 동아연맹중국동지회 동지들은 시내의 고난을 생각하여 사명의 중대를 생각하고, 더욱더 지혜를 모아 진실로 정성을 다해 동양민족의 자각을 위해 분투하려 한다. 동아연맹중국동지회의 성립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정치독립, 경제합작, 군사동맹, 문화구통의 4대 목표를 관철시켜 동아연맹의 실현을 꾀하려한다. 귀국의 동지들이 이를 위해 노력한 것이 수년, 우리는 기필코 이 위대한 계획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무쪼록 우리를 부디 잘 지도편달 해주시기를. 삼가 전보를 통해 존경의 뜻을 표한다.
- [연재] 전면화평으로의 길 - ㉑ 대아시아주의와 동아연맹운동
이번기회에 왕징웨이가 쓴 전면화평으로의 길(全面和平への路, 1941) 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조금씩 번역한 내용을 정리해 저조구락부에 올리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전면화평으로의 길 (全面和平への路)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1. 왕징웨이와 나 2. 장제스 총재에게 고한다 / 염전 3.충칭최고국방회의에 제안하다 4.동지 쩡중밍 선생의 죽음에 맹세하다 5.충칭 탈출의 진상 6.중국국민당전국대표회의의 역사적의미 7. 일본 국민들에게 바란다 8.화평인가 항전인가 (대 장제스통전) 9.난징환도에 대해 일본에 감사를 표하다 10.자신을 벌하는 정신 11.전면화평에 회의감을 가지지말라 12.중국청년의 새로운 책임 13.화평파와 항전파 14.영광의 앞길 15.전면화평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16. 중국의 항전심리 17.페탱 원수의 교훈 18. 민족주의와 대아시아주의 19. 전면화평과 대외관계 20. 팔굉일우와 사해위가 대아시아주의와 동아연맹운동 (大亞洲主義と東亞聯盟運動) *중국에 있어서 동아연맹운동은 쇼와 15 (1940) 년 5월 베이징에 화문동아연맹지 (華文東亞聯盟誌) 기 발간되면서 시작되었고, 이 잡지에 의해 소개된 동아연맹의 사상은 중국의 지식인층, 청년층사이에 열렬한 지지를 얻어 확대되어 손중산 선생의 대아시아주의 현단계의 구체적 발전으로 이해되면서 중국의 새로운 애국운동으로 전개되어 왕 선생의 주목을 받았다. 그후 9월 9일 광저우에 중화동아연맹협회가 성립되자 왕선생은 정치독립, 경제합작, 군사동맹, 문화구통이라는 4원칙을 교시하여 이 운동을 지도했다. 게다가 난징에서도 국민당의 600명 동지들이 동아연맹중국동지회를 결성하여 같은해 11월 24일 발회식을 거행하였는데, 이날 왕선생은 특히 동아연합중국동지회에서 훈사를 받들어 동아연맹운동을 격려했다. 이 훈사는 왕선생이 공공연히 동아연맹을 제창한 최초의 사례이다. 동아연맹의 조직은 동아 각 국가와 민족으로 하여금 각각의 자유독립 입장에 기초하여 공존공영의 목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으로, 그 조건을 정치독립, 경제합작, 군사동맹, 문화구통에 두고 있다. 중일전쟁이래, 일본은 중국을 멸망시킬 뜻은 없다고 성명해왔다. 일본이 바라는 바는 중국과 협력하여 동아신질서를 함께 건설하는 것이다. 항전론자들은 ‘협력’은 ‘멸망’이라 말하지만, 실은 그와 반대이다. 중일양국은 친구가 되어야하지 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조금이라도 협력이 가능하다면 중일은 동아에서 공존할수 있고, 동아를 부흥시킬 수 있다. 지금 동아연맹이 목표로하는 바는 정치의 독립에 있기에, 항전론자들이 가지고 있는 일체의 의심은 번거로이 말할 필요없이도 풀 수 있는 것이다. 현대국가는 점점더 모여드는 행동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본래 고립을 견지했던 자들도 이제는 외부의 상황에 맞추어 이에 응하고 있다. 동아가 제국주의적 경제침략의 고통을 받기 시작한지 곧 100년에 이르고, 공산주의의 창궐도 20여년에 걸쳐 진행되어왔다. 일본은 단체정신속 통치에 매진하여 독립하고, 중국 민족은 국부 손중산 선생의 유촉을 이어 자유 평등의 중화민국을 건설했다. 이렇게 중국과 일본은 동아가 확립되는 것을 끊임없이 바래왔다. 이 양대민족이 각자의 나라를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의 나라를 사랑함과 동시에, 정치독립의 입장을 기본으로 하여 경제합작, 군사동맹, 문화구통을 장려하고, 일관된 도의를 가지고 이해를 일치시킨다면 반드시 공존공영의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며, 동아로 하여금 부흥에 이르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손중산 선생은 민국 13 (1924)년 1월, 중국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를 소집해 선언을 발표한 후, 인생이 얼마 남지않음을 예고하는것처럼 미완성의 임무를 동지들에게 부과하기 위해 스스로 건국대강을 작성하고, 삼민주의를 말로 가르치거나, 군사를 위해서도 몸소 뛰어다녔다. 그리고 같은해 8월에 모든 것을 완성, 11월 북상할 때 일본에 들렀다가 고베에서 대아시아주의를 강연하였다. 이것은 손중산 선생의 생전 마지막 강연이었다. 중국의 완전한 자유평등은 반드시 동아의 해방이 이루어져야만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때 손중산 선생의 말에 의미 명백해진 것이다. 대아시아주의를 동아연맹의 근본원리로 삼고, 동아연맹을 대아시아주의의 구체적 실현으로 하여, 동아의 각 국가와 민족이 함께 서로를 이롭게 사랑하고 합심하여 이 대업을 완성할 수 있게하는 것이 특히 동아연맹중국동지회의 제군들에게 바라는 바다. 함께보면 좋은글 : 동아연맹운동이란? (이곳을 클릭)
- [연재] 전면화평으로의 길 - ⑳ 팔굉일우와 사해위가
이번기회에 왕징웨이가 쓴 전면화평으로의 길(全面和平への路, 1941) 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조금씩 번역한 내용을 정리해 저조구락부에 올리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전면화평으로의 길 (全面和平への路)(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1. 왕징웨이와 나 2. 장제스 총재에게 고한다 / 염전 3.충칭최고국방회의에 제안하다 4.동지 쩡중밍 선생의 죽음에 맹세하다 5.충칭 탈출의 진상 6.중국국민당전국대표회의의 역사적의미 7. 일본 국민들에게 바란다 8.화평인가 항전인가 (대 장제스통전) 9.난징환도에 대해 일본에 감사를 표하다 10.자신을 벌하는 정신 11.전면화평에 회의감을 가지지말라 12.중국청년의 새로운 책임 13.화평파와 항전파 14.영광의 앞길 15.전면화평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16. 중국의 항전심리 17.페탱 원수의 교훈 18. 민족주의와 대아시아주의 19. 전면화평과 대외관계 팔굉일우와 사해위가 (八紘一宇と四海爲家) *왕 선생은 일본의 기원2600년 기념일을 경축하고, 쇼와 15 (1940) 년 11월 16일, 중국을 대표하여 난징에서 대일 축하방송을 하였다. 전 일본국민제군! 귀국의 기원 2600년기념에 대해 우리 국민정부에서는 앞서서 대표단을 파견, 경축식전에 참가했으나, 오늘은 여기에 더해 국민정부 및 중국 전 국민을 대표하여 수도 난징에서 라디오를 통해 먼 바다를 사이에 두고, 경축을 맞이한 귀국 국민들에 삼가 축하의 말을 하려 한다. 일본이 나라를 연 이래 2600년의 오랜 세월에 걸쳐 번영하여 우리 중국과 더불어 동방문화에 있어 오랜 국가라는 것은 실로 우리 양국이 서로 광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바이다. 귀국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만세일계의 국통으로 여겨지며, 그 유구한 2600년에 걸친 국책은 ‘팔굉일우(八紘一宇)’ 한마디에 근거하는 것으로, 그‘팔굉일우’ 라는 말은 마치 우리 중국의 ‘사해위가(四海爲家)’ ( 천하를 제집으로 만든다는 뜻으로, 제업의 광대함을 의미하는말.) 라는 말에 해당하고, 예운( 禮運, 예기(禮記) 의 편명중 하나.) 에서 이야기하는 이름바 ‘대동’ 이라는 것으로, 중화민국의 국부 손중산 선생의 가르침에 제시된 대동사상과 합치하는 것이다. 귀국은 끊기지 않은 황계와 일관되는 국책으로 상하 일심으로 경륜을 다듬어 국운의 발전을 기해왔고, 따라서 건국이래 정신적, 물질적 문명은 일취월장하여 융성을 보게 되었다. 최근에는 동아의 화평을 유지하고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 동아신질서 건설이라는 새로운 이상을 창도하고, 또 세계평화를 유지하고 그 진보를 추진시키기 위해 일독이 삼국동맹을 체결하여 2600년 이래 팔굉일우의 국책은 더욱더 견고한 것이 되었다. 나와 우리 중국 국민은 귀국의 이러한 국정에 대해 만강의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귀국의 번영과 선진, 발달의 현상은 우리 중국에 있어 귀감으로 삼아야 할 점이 실로 지대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중국은 동아신질서 건설, 나아가 세계신질서 건설의 중대책임을 귀국과 함께 분담하기 위해 이제 마음을 굳게 먹고 국가의 독립, 자유의 완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중국정부 당국과 국민은 중국의 독립자유와 동아신질서의 건설은 표리일체로서 불가분한것이며, 만약 중국의 독립자유가 불가능하다면, 동아신질서 건설의 책임은 분담할수 없고 동시에 동아신질서의 건설을 볼 수 없게 되는 경우 중국의 독립자유가 완수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 바이다. 이제 동아신질서 건설은 시작되었고, 중국과 일본의 신관계도 조정이 되어가고 있다. 중국과 일본 양민족을 불행하게 하는 일체의 분쟁과 장애를 제거하고, 서로가 상대방의 자유와 독립을 존중하며, 지금뿐만 아니라 장래에 걸친 영구적 친선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일심협력, 나아갈 길을 위해 매진하기로 중대결심한 것은 양국에게 있어 행복한 일이라고 믿는 바다. 이번달 10일은 귀국의 건국2600년의 경축일이며, 또 12일은 우리 중화민국의 국부 손중산 선생의 탄생기념일이었다. 이런 때에, 나는 손중산 선생이 민국 13 (1924) 년, 귀국 고베에서 대아시아주의에 대해 강연을 한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아신질서의 건설은 중국의 선각자에 의해 일찍이 그 필요성이 통감되었음을 생각해보면 감회가 새로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귀국 황실의 억만년이 융성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 [연재] 전면화평으로의 길 - ④ 동지 쩡중밍(曾仲鳴) 선생의 죽음에 맹세하다
이번기회에 왕징웨이가 쓴 전면화평으로의 길(全面和平への路, 1941) 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조금씩 번역한 내용을 정리해 저조구락부(구 데헷넷) 에 올리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동지 쩡중밍(曾仲鳴) 선생의 죽음에 맹세하다 (同志會仲鳴先生の死に誓ふ) *항상 왕선생과 행동을 같이했던 쩡중밍씨는 쇼와 14년 (1939) 3월 21일 오전 2시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하노이의 은가를 습격당하여 충칭 항전파가 파견한 남의사의 테러에 쓰러졌다. 왕선생은 같은달 28일 홍콩에서 슬픔 속에 강하게 쓴 이 글속에서 국방최고회의 제54차 상무위원회의의 내용을 발표함과 동시에 동지 쩡중밍씨의 고귀한 희생을 맹세하였다. 쩡중밍 선생은 임종하기 바로 직전에 정중하고 동시에 간단한 다음의 두 구절을 말했다. “국사는 왕선생이 있고, 집안일은 내 아내가 있으니, 이제 나는 아무런 걱정할 일이 없다.”라고. 쩡선생의 국사에 대한 주장은 우리와 완전히 일치하며, 주장하는 바도 서로 같다. 쩡 선생의 죽음은 국사를 위한 죽음이었고, 국사 주장을 위한 죽음이었다. 또한 죽음에 임할 때도 국사에 대해서 나와 전적으로 똑같은 주장을 펼쳤고, 국사에 대해 우려하면서 결국에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조금이라도 쉴 여유가 생긴다면 나는 죽음을 맞이한 벗을 위로하고, 그가 마음에 두고 염원하던 바를 나의 염원으로 삼고 싶었다. 나는 그래서 이에 대해서 최대의 노력을 다해 그의 주장을 실현시키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실현시키는 것은 국가 민족 생존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지난 12월 29일 (1938년 12월 29일) 화평건의 통전으로 화평을 주장했다. 화평의 주장은 곧 인간의 주장인 것으로, 나 한 사람만의 주장은 아니다. 이는 최고기관에서 토론을 통해 공동으로 결정된 주장이다.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수천 가지가 되지만, 여기서 그 한가지 예를 이야기하고 싶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국방최고회의 제54차 상무위원회의 시간 : 민국26(1937)년 12월 6일 오전 9시 장소 : 한커우중앙은행 출석자 : 위유런(于右任), 쥐정(居正), 쿵샹시(孔祥熙), 허잉친(何應欽) 열석자 : 천궈부(陳果夫), 천부레이(陳布雷), 쉬칸(徐堪), 쉬두(徐讀), 윙윈하오(翁文灝), 샤오리즈(邵力子), 천리푸(陳立夫), 둥셴광(董顯光) 주석 : 왕징웨이(汪精衛) 서기관 : 장췬(張群) 서기주임 : 쩡중밍(曾仲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위 회의에서의 외교부장의 보고는 다음과 같다. 주중 독일대사 트라우트만은 지난달 28일(1937년 11월 28일), 일본정부의 명령에 따라 쿵샹시 행정원 부원장을 만나고, 29일 또한 왕부장 (왕칭후이 당시 외교부장을 의미)을 만나 우리 정부의 훈령에 따라 다음과 같은 요청사항을 전달했다. 주일 독일대사(일본 주재 독일대사 헤르베르트 폰 디르크젠(Herbert von Dirksen)을 의미한다. )으로 하여금 일본 외무대신을 만나게 하여, 일본정부가 과연 현재의 국면을 종결시킬 의지가 있는지, 의지가 있다면 어떤 조건에 따라 종결할지를 질문하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 정부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하고, 동시에 이를 중국 당국에 전하여 일을 맡겼다. 일본측이 제시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내몽골의 자치 2.화북의 비무장지구를 확대하는 일 (하지만 화북의 행정권은 모두 중앙에 속하게 한다. 희망하는 것은 장래 항일 성격을 띄는 인물을 화북 정권의 최고 지도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사변의 종결을 이루는데 있어 위의 조건이 가능할지라도 화북신정권을 성립할 의지는 없다. 현재 담판중인 광산 개발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문제 해결에 임한다.) 3.상하이의 정전지구를 확대하는 일 (확대의 정도와 방법에 대해서는 일본측은 구체적인 표시를 하지 않았지만, 상하이의 행정권은 그대로 존립시켜야 할 것.) 4.배일(排日) 문제에 관한 일 (이는 작년 장췬 당시 외교부장과 카와고에(川越茂) 주중국 일본대사와의 회담에서 표시한 방침에 따라 처리하기를 바란다. 상세한 방법은 기술적 문제가 존재한다.) 5.공동방공의 문제 (일본은 이문제에 대해 다양한 방법을 논의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6.관세개선의 문제 7.중국정부는 외국인의 중국내 권리를 존중할 것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트라우트만 대사는 쿵샹시 원장과 왕 외교부장과의 회견후, 장 위원장을 만나 뜻을 전하고 싶다는 취지와 희망사항을 표시해 이를 전보로 알리니 장 위원장도 즉각 트라우트만 대사와 면담하라는 뜻의 답변이 와 나는 트라우트만 대사를 따라 난징으로 향했다. 난징으로 가는 배안에서 트라우트만 대사와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때 트라우트만 대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지금까지 중국이 일본에 보여준 저항으로 이미 중국의 항전정신은 충분히 표시되었다. 이제 슬슬 결말을 매듭지어야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몇 번이고 강화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짖만, 자국의 역량을 너무 자산한 나머지, 강화를 받아드리지 않은 결과는 결국 베르사유 조약의 조인시기에 이르러서는 협상국 측의 제시하는 조건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드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사는 또한 히틀러 총통의 의견을 인용해 일본의 조건이 반드시 가혹한 것만은 아니라는 뜻을 밝히며 중국측이 이를 잘 고려해보기를 희망했다. 이렇게 12월 2일 난징에 도착하여, 우선 먼저 내가 장 위원장을 만나게 되었다. 장 위원장은 심사숙고한 후 나에게 “난징에서 장군들과 일단 상의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오후 4시에 이르러 다시 가보니 이미 구주퉁(顧祝同), 바이충시(白崇禧), 탕성즈(唐生智), 쉬융창(徐永昌) 등이 모여있었다. 거기서 장 위원장에게 초청을 받은 나는 독일 대사의 난징에서의 임무에 대해 보고 하자, 각 참가자들로부터 “위의 조건에는 부대적인 조건이 있는지 없는가? 또 우리 군비에 대한 제한 조항이 있는가 없는가?” 라는 질문이 있었기에 나는 이는 독일 대사의 말에 의하면 위의 조건은 지금까지 제출된 조건들일 뿐이며, 그 외의 특별한 부대적인 조건은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래서 장 위원장은 정전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에 대해 탕성즈에게 먼저 의견을 구하자 탕성즈는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이어 바이충시에게 의견을 묻자 바이충시는“(만약에) 조건이 이것 뿐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가?”라고 했다. 나는 여기에 대해 “일단 독일대사가 제출하고 있는 바는 이 몇 개의 조건에 지나지 않다” 라고 대답했다. 장제스는 그래서 이번에는 쉬융창에게 물으니, 쉬융창은 “(만약) 그들이 종전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면 여기에 응해야할 터”라고 이야기했다. 또 구주퉁에게 의견을 물으니“이에 응해라”라고 답했고, 탕성즈에게 다시 의견을 물으니 탕성즈도 찬성의견을 보였다. 장 위원장은 마침내 1.독일의 조정을 결코 거부해서는 안된다. 이는 망국적 조건이 아니다. 2. 화북에서의 정권을 보존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 두 가지의 의견을 제시했다. 오후 5시에 트라우트만 대사가 장 위원장을 만나자, 나는 그 자리에서 양자간의 회담을 통역했다. 트라우트만이 장 위원장에게 이야기한 바는 이전의 쿵샹시와 왕칭후이에게 전달한 바와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하지만 만약 이 조정에 응하지 않고 전쟁을 계속해 나간다면 장래의 조건은 필시 받아드리기 힘든 것이 될 것이라는 구절이 덧붙여졌다. 장 위원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일본을 믿기 어렵다. 일본은 조약을 아무렇지도 않게 조약을 위반하고, 말 또한 어렵게 하며 우리를 농락하려 든다. 하지만 우리는 독일과 우호관계기에 따라서 독일이 이와 같이 조정을 위해 노력해주는 것에 대해서 처음부터 그 성의를 믿고 있으며, 독일이 조정을 위해 보이는 호의에 대해 감사하는 바이다. 그러나 각항의 조건을 담판의 기초로 하고, 그 범주를 정하는데 에는 트라우트만 대사 각하가 독일 본국 정부에 보고해 주었으면 하는 점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중국과 일본의 담판에 있어 독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정자의 위치를 요구한다. 즉. 독일은 어디까지나 중재자 역할에 그쳐야한다. 두 번째는 화북에서의 행정 주권은 철두철미하게 유지되어 한다는 것이다. 이 범위속에서는 위의 조건으로 담판의 기초를 두어도 좋다. 즉, 일본이 전승국의 태도로 임하고, 이 조건을 가지고 최후통첩이라 말하게 하는 것을 불가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트라우트만 대사는 장 위원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마디를 보태어 “중국 정부는 현실에 비추어 너무 지나친 요구는 하지 않는 것이, 지금은 이를 고집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 장 위원장은 자신도 마찬가지로 양해를 구하고 말을 보태어“지금처럼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조정이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독일이 먼저 일본에 대해 정전을 종용해주기를 희망한다”라고 했다. 이에 독일대사는 “장 위원장이 언급한 두 가지는 본국에 전달될 것이다. 독일은 중재를 원함과 동시에 일본 또한 히틀러 총통이 중국과 일본에 먼저 정전을 실시하는 것을 도와주기를 희망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장 위원장은 이에 더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일본이 스스로 자신이 승자라고 하고, 또한 앞으로 선전을 위해 중국이 이미 각항의 조건을 승인했다고 이야기하는 일이 있다면 다시 담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트라우트만 대사는 “이번 회담의 결과는 매우 유망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사는 난징에서 장 위원장에게 이는 결코 최후통첩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대사는 배안에서 도쿄와 배를린으로 이를 전보로 타전했으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답변이 없었고 이후의 발전여부도 알 수 없다. 나는 작년 12월 28일 (1938년 12월 28일), 국방최고회의에 보낸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지난해 12월 초 난징이 아직 함락되기 전에 독일대사가 난징에서 장제스를 만났을 때 만난 일본측의 조건은 이와 같이 명확하지 않았고, 또 이에 견주어 보면 가혹하다. 그런데도 장제스는 대국을 고려하여 이를 의연히 화평담판의 기초로 삼을 것을 승낙했다.” 쉬모(徐謨)의 보고로 보았을 때, 내가 말한 내용은 극히 구체적이었음은 분명하다. 이 밖에도 아직 증거를 말하자면 백 가지도 천 가지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아직 과거의 일이라 보기 어렵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비밀을 엄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만 독일대사의 조정은 이미 완전한 과거의 일에 속해 이를 공표해도 무방하기에 이를 하나의 예로 든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보았을 때 3가지 의문점이 생기는데, 첫째로는, 독일대사의 제안과 고노에성명을 비교해볼 때, 독일 대사의 제안은 화평담판의 기초로 할 수 있다면서 이야기하면서 왜 고노에 성명은 그 기초로 할 수 없다고 하는가? 둘째로, 독일대사가 동분서주하고 있던 당시에는 난징은 함락되지도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논의하는 것을 승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노에 성명 당시에는 난징은 함락되었고, 지난, 카이펑, 안칭, 구강, 광저우, 우한 연달아 함락된 이후의 일이며, 창사도 함락은 되지 않았지만 스스로 불을 질러 초토화 되어있었다. 앞의 경우에는 화평을 추진한다고 했음에도 후자에 경우에는 어떠한 이유로 화평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인가? 셋째로, 독일대사과 분주하고 있을 동안, 국방최고회의의 사람들은 난징이나 우한에 있으며 모두 궤를 같이하여 화평에 찬성을 표명했다. 그런데 고노에 성명의 경우는 평화를 논하는 것에 대립하고, 반대적 입장에 있는 이들에게 욕설과 비난을 아무렇치도 않게 하고 있다. 결국 생명을 빼앗는 국가의 위력만 완벽해져버렸다. 나는 이상의 3가지 의문에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화평에 대방침에 대해서는 거듭 국민들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미 주전 방침을 가지고 있는 이상 화평논의에는 응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이러한 이치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의 목적은 생존과 독립에 있는 것이며, 화평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 었을 때, 화평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그 조건에 결정된다. 그 조건이 국가의 생존독립을 방해한다면 화평을 해서는 안되고, 그렇지 않다면 화평을 해야한다. 또, “중국은 항전을 통해서만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지금 화평을 이야기한다면 국가는 또 분열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이러한 생각에는 절대로 반대한다. 국가의 생존과독립을 위해 항전을 한다면 별개이지만, 정부 내의 통일을 위해 항전을 한다는 것은 나는 절대로 반대하는 바이다. 화평을 주장하는 것은 국가 통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화평에 반대하는 것 또한 분열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누군가는 “지금 평화를 논하는 것은 공산당에게 교란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고 논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산당의 교란정책은 본래 통상적인 것으로 전쟁과 화평 모두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만약 평화시대에 공산당의 계략이 표면화 된다고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공산당의 행동을 제압할 구실을 이야기 해야한다. 또 누군가는 “제 3국이 중국의 평화를 희망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외교는 모름지기 자주적인 것이며, 중국은 자신의 국가 민족의 생존을 위해 전쟁과 화평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며, 다른 나라의 입장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 청일전쟁 이후의 굴욕적인 강화는, 그후의 우리에게 고난을 가져왔기에 우리는 이와 같은 일시적인 강화를 원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 보불전쟁에서 프랑스는 굴욕적 강화를 맺었고, 이후 1차 세계대전에 이르러 그 원수를 갚아 크게 득이 되었지만, 이럼에도 우리는 똑같이 이러한 일시적 강화를 바라지 않는다. 이와 같이 멈출줄 모르는 순환적인 보복은 결코 영구평화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성심성의껏 구하는 바는 동아의 백년대계이다. 나는 중국과 일본 양국이 서로 싸우는 일은 중일 모두에 피해를 주는 일이며, 양국의 평화가 이루어지게 된다면 중일 모두 공존할 수 있을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양국이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반드시 동아 100년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양국 모두에게 상처만 입히고 같이 멸망하고 말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양국인 모두 회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모두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있다. 26개월간의 고통스러운 전쟁의 결과 일본은 소모는 적지 않고 중국의 희생도 가볍지 않았다. 양측 모두 상처를 입고 함께 파멸의 길로 나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공존공영, 공동발전의 길이라는 또 다른길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양국의 유지를 한때의 재앙과 복, 칭찬과 비난을 두려워해 이생각 저생각 하느라 집중하거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며 감히 그 태도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나는 제군들이 불요불굴 (不屈不撓) 의 정신으로 그 근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화평건의 제 1번의 희생자 쩡중밍 선생은 이미 자신의 죽음으로서 우리가 매진해야할 공동공존, 공존발달의 큰 길을 비추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의 여러사실들이다. 2월 중순 충칭정부는 중앙위원 모군(장제스의 측근이었던 구정딩(谷正鼎)을 의미하는 것)을 파견하여 나에게 여권을 주어 출국시키려 할 때,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달했다. “내가 충칭을 떠나지 않으면 통전을 전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 고난의 때에 있어 충칭을 떠난 것은 실로 가슴 아픈일이다. 어찌 나라를 떠날 수 있겠는가?내가 출국을 원했던 것은 나의 주장을 받아드릴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그 이유를 요구하고 이에 대해 표명하기 위한 것이다. 결코 개인적인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이 아니다. ” 내가 들은 바로는, 이상의 주장들이 3월 21일의 사건의 주요한 원인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쩡중밍씨는 나보다도 아직까지 나이가 젊음에도 뜻밖에도 서거한 일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가능하다면 내가 먼저 총탄을 맞고 싶었다. 나는 이 문장을 발표한 만큼, 언젠가는 쩡중밍 서선생을 따라 흉수에 찔리게 될지 모르지만, 이는 내가 바라는 바라고 할 것이다. 나의 죽음 이후 국민 제군은 부디 내가 남긴 문자를 숙독완미(熟讀玩味) 하여 나의 뜻을 명확히 터득하길 바란다. 이는 중국의 생존과 독립에 불가결한 길인 동시에 세계와 동아의 영구적인 평화를 얻기위한 불가결 길인 것이다. 나의 주장은 하지만 현재로서는 충칭에서는 채용될 수 없다. 그러나 장차 언젠가 나의 주장이 전국인민 내지는 중국과 일본 양국에 의해 받여드려지는 일이 있기를 나는 바라는 것이다.
- [연재] 전면화평으로의 길 - ⑲ 전면화평과 대외관계
이번기회에 왕징웨이가 쓴 전면화평으로의 길(全面和平への路, 1941) 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조금씩 번역한 내용을 정리해 저조구락부에 올리려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전면화평으로의 길 (全面和平への路)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1. 왕징웨이와 나 2. 장제스 총재에게 고한다 / 염전 3.충칭최고국방회의에 제안하다 4.동지 쩡중밍 선생의 죽음에 맹세하다 5.충칭 탈출의 진상 6.중국국민당전국대표회의의 역사적의미 7. 일본 국민들에게 바란다 8.화평인가 항전인가 (대 장제스통전) 9.난징환도에 대해 일본에 감사를 표하다 10.자신을 벌하는 정신 11.전면화평에 회의감을 가지지말라 12.중국청년의 새로운 책임 13.화평파와 항전파 14.영광의 앞길 15.전면화평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16. 중국의 항전심리 17.페탱 원수의 교훈 18. 민족주의와 대아시아주의 전면화평과 대외관계 (全面和平と對外關係) *이는 쇼와 15 (1940)년 11월 15일, 난징에서 왕 선생과 일본, 중국 신문기자단 간의 회담 내용으로, 전면화평과 삼국동맹의 관계 및 영미의 문제 등 전면화평을 둘러싼 대외관계의 흥미 있는 담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Q : 일독이 삼국동맹 성립후, 국제정세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국민정부의 근본 방침은 무엇인지. A : 국민정부는 근본적으로 본래의 대외경책을 견지하고,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국제 정세에 있어서 중국과 일본의 화평 건설이 하루라도 빨리 확립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화평이 확립된다면 동아는 다른 국가들보다 견제받지 않고 이를 통해 광명있는 진로를 개척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삼국동맹은 세계신질서 건설을 위한 노력의 결합이며, 동아신질서는 그 세계신질서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중화민국은 수 십년에 걸쳐 국가의 독립,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혁명운동을 계속하여 국제정세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고, 그 혁명운동이 구질서를 타파하고, 이에 나아가 신질서를 꾀하려는 것이었단 점을 생각해보면 국민정부와 삼국동맹이 서로 제휴, 협력해야 한다는 데에는 군말이 필요없다. Q : 일독이 삼국동맹 성립후, 충칭정권은 영국과 미국에 접근했고 이 때문에 전면적 화평에 대해 어려움이 가중된 감이 있는데, 이에 대한 국민정부의 결의와 대책은 무엇인가? A : 삼국동맹 체결이후 궁박한 경지에 몰려있는 충칭정권이 이전보다 더더욱 영미측의 환상에 기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전면화평이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사실이 아니다. 무엇보다 영미가 충칭을 원조하고 있는 것은 중일전쟁을 장기화시켜 중국과 일본 양국의 국력을 소모시키고 일본을 견제하려고 하는 것에 있는 것이지, 삼국동맹 체결이 결과로 작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Q : 최근 미국의 극동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A : 미국이 이익을 얻기를 원하는 것이라면, 미국의 이익은 화평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지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극동에 있어서 미국이 정당한 권익을 얻기를 위한다면 중국과 일본 양국의 현실적 화평을 직시하고, 동아에 있어서 중국과 일본 양국의 지위를 존중하고, 화평질서를 회복시켜야 그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삼국 (미,중,일)의 우호 관계유지는 중국과 일본의 우호관계를 근간으로 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Q : 중일조약 (1940년 11월 30일 체결된 중일기본조약 (일화기본조약)을 의미하는 것. ) 성립 후의 민심수렴, 민중지도에 대한 시정방침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A : 향후 시정의 방향은 군대 건설과 생산력 건설을 제일의 중점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전쟁의 결과 모든 것이 황폐해진 만큼, 생산력의 건설을 이야기하는 것도 쉬운 것만은 아니다. 그렇기에 중점주의에 입각한 계획경제를 실행하여 생산계획을 세우고 이를 돌아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Q : 국민정부 환도이후 이제 7개월이 지났는데, 그동안의 정치 일반의 정세는 어떠한가? A : 국민정부는 환도를 하며 10대 정강을 공표하여 내외의 기초방침을 제시하고, 7개월동안 이에 근거해 진행을 해오고 있다. 이미 현저한 성적을 올렸지만 아직 기대하는 바에 도달하지 못한 것도 있다. 중앙제도의 수립, 지방행정의 정리, 전국 재정의 정리, 군대의 배치와 편제등은 이미 순차적으로 이미 궤도에 오르고 있다. Q : 일본 신체제에 대한 의견은 어떠한가? A : 나는 이 운동이 국체를 공고히 하고, 공산주의의 근간을 섬멸하는 유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시국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이 운동을 통해 일본이 자본주의적 제도와 공산주의제도 이외에도 세계를 위해 새로운 하나의 모범적 제도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Q : 일본 국민들에게 바라는 점은. A : 나는 중일양국이 영원한 친선관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서 양국국민간에 하나의 공통적인 근본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중국과 일본은 친구가 되어야하지, 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가지고 있는 원한은 이를 위해 풀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중국의 생존과 독립을 위해 필요한 길이고, 동시에 일본에게 있어서는 발전에 있어 필요한 길이다. 중국국민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일본 국민에게 바라는 바도 이와 같다. [참고] 10대 정강에 대해 알아보려면 여기를 클릭 : 일화기본조약에 대해 알아보려면 여기를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