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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국 방문 담화 (訪滿在新京對記者談話 / 1942.5.8)
본 자료는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자료를 번역한 자료입니다.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표지. 이 책은 왕징웨이의 여러 발언 및 글을 정리한 책이다. 왕징웨이 정권의 중앙보도국 중앙전신사 (中央電訊社) 에서 출판되었다. 만주국 방문 담화 (訪滿在新京對記者談話) 재작년 11월 30일 , 귀국과 우리는 우방 일본과 공동선언 을 발표함으로써 동아의 축심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작년 6월 21일 에는 우방 일본의 수도 동경에서 신문기자들과 만나 국제정세에 대해 이야기 했고 , 여기서 나는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화하든 동아의 축심은 영원히 변치않을 것 이라 대답한 바 있다. ( 일만화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 왕징웨이의 1941년 방일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작년 12월 8일 , 대동아전쟁이 발발하자 우방들은 전력을 다해 동아신질서 건설의 장애를 제거하고 공존공영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협력할 것임을 표명 하였고, 우리 국민정부 또한 동고동락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앞으로 동아의 축심은 더욱 공고해질 뿐만 아니라, 더욱 확장될 것이다. ( 왕징웨이의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담화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이번 대동아전쟁은 한 민족, 한 국가의 존망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동아의 한사람인 우리는 모두 운명을 자각하고 합심하여 대동아전쟁의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 대동아전쟁에서 동고동락하며 가장 깊은 연대감을 공유하고, 안전과 안보를 함께 해왔다. 그리고 그 노력을 더욱 분발시키기 위해 나는 이번에 귀국의 국민을 만나러 온 것이다. 신징 에 도착한 이후 황제폐하 를 뵙고, 예의를 갖추고 황제폐하의 숭고한 말을 들으며 진심으로 감명을 받았고, 귀국의 정부 인사 및 민중들과 만나고, 신흥 신징의 기상을 보고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특히 열정적인 신징의 환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대동아전쟁의 승리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국민정부와 만주국, 그리고 우방 일본 3국의 영원한 우호와 공동의 부흥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중일기본조약 과 중일만공동선언 이 동시에 발표된 후, 상호간의 국교가 조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아의 축심도 함께 확립되어 서로의 관계는 신단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본연의 우호관계를 증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중화민국 과 만주국 의 수만 동포들이 다시 손을 잡고, 동아의 해방전선에 함께 서게 되었다. ( 중일기본조약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대동아전쟁의 발발 후 선진국인 일본은 전국의 힘을 모아 선두를 맡았고, 이를 통해 동아 해방의 전선은 무한한 광명을 가지게 되었다. 만주국 동포들은 동아 전체의 신 단결을 만들어 내었고, 만주국이 자신의 힘을 마음껏 발휘하여 동아신질서 구축에 진전을 이루기를 바라지 않는이는 없을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귀국에 오게 된 것이다. 나는 이번에 만주국을 직접 방문하여 만주국이 지난 10년간 이룬 각종 건설 성과를 보았고, 귀국 국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대동아전쟁을 위해 모두가 동고동락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더욱이 여러국가들이 만주국의 건설에 협력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보며 나는 가슴 가득한 기대와 무한한 위로를 받으며 무한한 감동을 받았다. 나는 이기회를 빌어 두가지 의견을 나의 사랑하는 만주국 국민 제군들에게 전하고 싶다. 첫째, 흔히들 만주를 동양의 발칸으로, 아시아의 화약고라고 하는데, 이 말은 내가 볼 때 만주가 과거에 받아왔던 우여곡절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기 보다. 앞으로의 만주국이 어떤 위치에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온갖 우환 속에 있었던 만주지만, 귀국 국민들의 노력과 우방 일본의 협력으로, 만주는 10년 동안 이전에 남아있던 부서진 잔해와 부스러기를 하나하나 제거, 재건했을 뿐만 아니라, 화약기운이 가득한 이 만주를 동아를 지키는 요새로 개조하여 신동아의 한 기지를 건설하는데 성공했다. 대동아 전쟁이 일어난후, 우리 정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우방인 일본과 동고동락하기로 하였고, 귀국 또한 단호하게 대동아전쟁에 협력할 것을 표명하였다. 비롯 우리 양국은 군사적으로 우방을 위해 힘쓰기는 어렵지만, 손중산 선생이 이야기한 바와 같이, 동아의 대륙국가인 우리와 선진국가인 일본이 존망안위를 함께하는 관계라는 것은 이번 대동아 전쟁을 통해 더욱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그러닌 우리는 이에 더욱 노력하여 양국 본연의 우호관계를 증진시키고, 양국간 협력 정신을 더욱 강화하여 중만 양국은 일본과 동거동락, 공동안위를 위해 협력의 태세를 갖춰야한다. 만주국은 동아 대륙의 북단에 위치하고 있고, 광대한 인력과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대외 국방과 대내의 부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만주국 국민 제군들은 자신의 지위를 소중히 여기고, 자발적인 정신으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만주국의 발전, 더불어 동아 민족 전체의 공존공영을 확고하게 하는데 이바지 해주기 바란다. 둘째, 귀국의 10년 건국의 성과를 통해 우리는 귀국 국민들의 고달픈 노력, 우방 일본의 노력, 동아의 앞날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내가 큰소리로 제군들과 전 동아의 인사들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여기서에서 비롯된 일종의 동아인의 ‘자신감’ 이다. 우리는 동아의 역사가 길고, 동아의 문화는 초월성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수 천년간 그 문화와 역사를 이어왔다. 이것이 바로 자신감이다. 2세기 동안 우리는 침략자의 폭풍우를 막아내었고, 100년 전 아편전쟁과 흑선 사건을 시작으로 영미가 동아를 포위하고 중국을 침략하며 일본을 압박해왔지만,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이 무자비한 굴레를 깨트린 것, 이것은 동아인의 자신감의 첫 표현 이다. 수십년 동안 중국의 국민혁명 이 좌절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전진해온 것, 이 또한 동아인의 자신감의 표현 이다. 지금 만주국이 10년간 키워온 새로운 기상을 보면서 동아인의 자신감은 동아인의 피속에 스며들어 동아의 모든 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이는 동아에서 지울 수 없는 징조이며, 동아 부흥의 필연적 징조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지금의 대동아전쟁이 더욱 생각난다. 대동아 전쟁 이전 영미의 침략자들은 A.B.C.D 포위망 (A (America, 미국) , B (British, 영국), C (China, 장제스의 중화민국 충칭정부), D (Dutch, 네덜란드) 의 약자로, 일본은 이들이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 포위망을 형성했다 보았다.) 을 큰소리로 외치며 동아 여러 민족의 악감정을 도발하는 음모를 멈춘 날이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음모는 아편전쟁과 흑선사건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영미는 동아에 대해 이러한 음모를 다시한번 격렬하게 되풀이 해왔다. 우방인 일본 은 동아인의 자신감을 총동원하여 메이지 유신 이래 축적된 군사, 경제, 문화의 힘을 가지고 용감하게 일어나 영미와 필사적인 전투를 벌여왔다. 일본은 모든 방향에서 싸워 모든 곳에서 승리했다. 영미 침략자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고 이는 동아인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성과다. 중화민국과 만주국 은 모두 동아의 축심의 일환으로서, 중만은 일본과 동시에 동고동락의 입장을 고수하고 동아의 해방을 함께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실질적으로 대동아전쟁에 함께 협력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동아인들이 공유하는 자신감을 어떻게 발휘하여 단결시키고 협력시켜 침략자들이 전쟁의 불길을 진압할 수 있는가 에 달려있다. 우리는 여기서 고작 2~3일을 만나고 또 헤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함께일 것이고, 우리의 노력도 언제나 함께 일 것이다. 우리는 동아를 보위하고 최종의 승리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수백년간 동아침략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그 수치를 함께 씻어낼 것이다. 우리는 합심하여 동아 화평의 축을 공고히 하고 , 합심하여 동아 민족이 대대로 공존공영할 수 있는 신천지 를 창조할 것이다. 나는 귀국의 국운이 융성하기를 기원하며, 여러분들의 전진과 대동아전쟁의 승리, 그리고 중일만 3국의 영원한 협력을 기원하는 바다.
- 미국기자에게 국민정부의 시정요강을 천명하다 (1940. 8.25)
본 자료는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자료를 번역한 자료입니다.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표지. 이 책은 왕징웨이의 여러 발언 및 글을 정리한 책이다. 왕징웨이 정권의 중앙보도국 중앙전신사 (中央電訊社) 에서 출판되었다. 미국기자에게 국민정부의 시정요강을 천명하다 (向美記者闡明國府之施政綱要) *미국 언론인 이바녜스 (Ibanez, 정확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름으로 보아 에스파냐계로 추측된다.) 여사는 민국 29 (1940) 년 8월 25일 오후 4시, 왕 주석을 만나 국민정부의 시정방침과 중미일 3국의 우호관계 확립에 대해 왕주석과 간담회를 가지고 간절한 문답을 나누었다. Q : 선생께서 실현하시고자 하는 이상은 무엇인가? 선생은 독특한 위치에 있는 만큼, 선생은 국가와 국민의 미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이를 기꺼이 밝힐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A : 우리는 손중산 선생의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나는 중국과 일본의 영원한 화평을 정착시켜 동아의 신질서를 건설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삼민주의의 중화민국을 완성하는 것이다. 중일 양국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고, 인종이 같고 문화가 통하는 만큼, 상호간의 화평은 자연스럽게 필요한 것이다. 우리들이 화평에 힘쓰고 있다라는 것은 중일 양국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최후승리는 기약하기 어렵고, 일본의 중국을 병탄하려는 목적 또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전쟁은 쌍방 모두를 해치는 일이며, 화평은 쌍방이 공존공영하는 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따라서 평등호혜와 상호 주권존중의 원칙에 입각하여 화평을 실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삼민주의의 실행은, 민족의 독립, 민권의 발달, 민생의 개선으로 하여금 국가권력이 민주라는 올바른 궤도에 따라 확립될 수 있도록 하여 독재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으로, 이는 특히 중국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을 모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Q : 선생은 어떤 강령으로 이 이상을 실현할 것인가? A : 국민정부의 시정방침은 올해 3월 공포된 정강에서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각 우방의 정당한 권리를 존중하고, 그 관계를 조정하며, 우방과의 결속을 통해 코민테른의 음모를 방지하고, 국방군을 창설하고, 독재제도를 타파하고, 헌정을 실시하고, 산업을 발달시키고, 금융을 안정시키고 농촌을 부흥시키며 화평반공건국을 교육방침으로 삼아 과학교육을 제고하고 과거의 잘못된 학풍을 제거하는 것 등이다. Q : 이러한 강령을 실시에 있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A : 위에서 이야기한 정강을 실현하기 위해선 우리는 우선 평등호폐, 상호존중의 원칙에 근거하여 일본과 국교를 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인사들은 우리들의 태평양의 화평 확립을 위한 노력을 존중하고 양해해주기 바란다. 손중산 선생은 일생을 중일의 우의증진에 힘써왔고, 나아가 이를 통해 미일의 관계 개선을 간절히 바래왔다. 중일 양국의 우호관계는 중일미 3국 우호의 선결조건이 될 것이며, 중일의 우호와 협력이 하나도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미중, 그리고 미일 우호는 제대로 기반을 다질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Q : 민주주의의 관념을 가진 미국인을 대하는데 있어 우리가 선생을 어떻게 도을 수 있겠는가? 중국을 지지하고 식견이 있는 미국 인사들에게 선생은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가? A : 확실히 미국 국민들은 확실한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 만큼, 미국 국민들은 동아의 항구적 평화를 확립하는 원칙과 우리가 열망하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화평운동의 원칙을 인식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도 루즈벨트 대통령의 비서관이 말했다. “유럽, 미주, 아시아는 각자 연합하여 기본적인 영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라고. 이는 손중산 선생의 대아시아주의와 일치하는 것이며 손중산 선생은 이가 태평양의 영원한 화평을 보장하는 유일한 기반이라 보았다. 나는 미국의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과 타인을 존중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미국의 평화가 먼로주의에서 비롯될 수 있었듯이, 동아의 화평 또한 손중산 선생의 대아시아주의에서 비롯될 수 있다. 이는 일본의 여러 지식인들이 인정한 것이고, 고노에 성명은 그 증명이라 할 수 있다.
- 중국 공군의 신사명 (中國空軍的新使命 / 1942.10.12)
본 자료는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자료를 번역한 자료입니다.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표지. 이 책은 왕징웨이의 여러 발언 및 글을 정리한 책이다. 왕징웨이 정권의 중앙보도국 중앙전신사 (中央電訊社) 에서 출판되었다. 중국 공군의 신사명 (中國空軍的新使命) 공군 장병들이여, 오늘 본 위원장은 이 자리에 와서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쁨이 크다. 국부 손중산 선생께서는 공군이 나라를 구한다고 하였는데, 2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공군이 싹을 피우게 되었으니 위로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슬프기도하다. 만약 우리가 이 21년동안 계속 노력했다면 공군은 오늘처럼 겨우 싹만 틔우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공군이 나라를 구한다라는 말을 생각하면 그 슬픔은 정말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과거의 공군은 크게 두가지의 잘못된 오류를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목표의 오류이다. 여러분들은 과거에 공군 교습을 받은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그 공군의 힘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이전까지는 이에 대한 명확한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전에는 안타까운 사건과 모습들이 여러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의 공군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고 이는 육군도, 해군도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이전의 육해공군 군인훈조에서도 분명히 이야기했다. 1조에서는 ‘충성과 믿음을 국가에 바치는 것’으로 군인은 모름지기 충(忠) 과 신(信) 두글자를 중요하게 여겨 스스로의 생명과 모든 것을 국가에 기여하는데 중점을 두어야한다. 4조에서는 지혜(智), 인(仁), 용기(勇), 엄격함(儼)을 자신의 기본으로 삼아야함을 이야기 했다. 이 두가지는 군인의 기본정신이라 할 수 있다. 제5조 (국민을 사랑하고 물자를 소중히 여기며 국가사회의 정기를 기른다.) 또한 이 기본정신에서 파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2와 3조에서는 군인들의 목표에 대해 표기했다. 제 2조에서는 중국을 회복하고 동아부흥을 위해 삼민주의 및 대아시아주의를 실행해야함을 이야기 했고, 제3조에서는 공비의 해로움은 중국의 입국정신과 전혀 양립할 수 없는 것임을 지적했다. 이 두가지는 일반 군인으로써 시대적 사명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 사명과 실제 시대적 흐름는 완전히 같지 않다. 국가의 생명은 수억 수만년까지 이어지는 것이고, 우리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와 우리민족은 이미 4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수억 수만년은 지속될 것이지만, 우리 개인의 생명은 한정되어있다. 학습의 시작부터 은퇴의 시기까지, 개인이 국가에 공헌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사오십 여년에 불과하다. 이 짧은 수십년동안 우리는 정신력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어떻게 우리의 모든 것을 국가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이전의 수많은 동지들이 희생하며 세워온 길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훈조 제2조는 동아에 관한 것이고, 제3조는 반공에 관한 것이다. 이 두가지는 화평반공의 도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화평은 중국을 부흥시키기 위해, 동아를 부흥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이를 위해 삼민주의와 대아시아주의를 실행할 필요가 있다. 반공은 공산주의의 해악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훈조의 1조와 4조를 통해 육해공군의 인격을 수양하는 도덕의 기초를 갖추었고, 제2조를 통해 군인들의 시대적 사명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며 공군의 한 목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대동아전쟁의 발발이후 동아의 상황은 급변하여 예전에는 대아시아주의의 실현은 이상적인 것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구체화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우방 일본의 육해공군 장병들은 전선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으며, 대동아전쟁의 최종적 승리를 위해 전국민이 후방에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동아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동아의 동지이며, 하나는 동아의 반역자다. 무릇 동아의 동지들은 중국이 부흥하지 못하고 중국이 완성되지 못하면 동아를 보위할 책임을 질수 없음을 알고 있다. 동아와 중국이 부흥하지 못하면 대동아전쟁에서 패배하고 중국은 여전히 영미의 차식민지 지위에 머물게 되고 승리하게 되면 동거동락속 미래의 동지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때문에 현재 대동아전쟁에 협력하여 동아 동지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일목요연하게 바라본 바, 우리 공군의 작은 싹을 돋게 해준 비행기들 마저 우방인 일본이 선물한 것인데, 일본은 전력을 다해 대동아전쟁을 대비하고 있는데 어째서 이 비행기를 우리에게 보냈겠는가? 이는 우리가 중화를 부흥시킬 수 있게 하는 기반을 갖추게 하는 동시에 우리가 동아를 보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다. 우방은 우리 중국의 육해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우리가 동아의 동지관계에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동아의 동지는 동아의 장래 부흥을 도모하고, 동아의 반역자는 중국을 비롯 동아를 단숨에 영미에게 넘기려 하기 때문에, 대동아전쟁 이후 훈조 제2조의 의의는 더욱 중요해졌다. 나는 공군 장병들이 합심하여 우리 공군의 진보, 중국 방공의 진보, 대동아 방공의 공고화를 도모해주길 바란다. 목표는 이제 명확해졌지만, 시대의 사명이 이처럼 막중한 만큼 우리는 막중한 사명을 짊어질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예전의 공군은 목표적 오류 뿐만 아니라 수많은 파벌이 존재하여 절강과 광동의 파벌 뿐만 아니라 모든 파벌이 결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지금 육해공군 군인훈조를 통해 우리의 공동 단련과 수양을 함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동아부흥을 우리 모두의 목표로 만들어 부흥시킬 수 있다. 따라서 과거의 이기적인 파벌 관념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두가 ‘각고내로, (고난을 참고 노고를 견디다.) 용맹정진 ’ 의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만 중국을 부흥시키고 동아를 보위할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반드시 정해야 한다. 스스로를 단련하고 파벌과 잘못된 습관을 깨끗이 제거하여 공군의 건전한 사람이 되어 신시대 공군의 새로운 책임을 다해야한다. 나는 아까 앞에서 슬프지만 동시에 위안도 된다고 했다. 이는 무슨 뜻인가? 지금의 공군은 이것밖에 없어 매우 슬프지만, 이제 싹을 틔웠으니 지금은 작으나 장래에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지금은 양을 논할 때가 아닌, 질을 먼저 논해야할 때이다. 비록 지금 우리의 공군은 양은 적지만 공군의 질이 아주 좋다면, 그리고 그 상태에서 확대될 수 있다면, 우리의 공군은 진정한 공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질은 어떻게 높일수 있을 것인가? 첫째는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하고, 동아의 동지관계에 입각하여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둘째는 각고내로 하고 용맹정진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지금 중국은 매우 고달프다. 동아도, 전세계도 지금 모두 고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대국적으로 바라보면, 이는 매우 낙관적인 것이다. 세계전쟁에서 추축국은 반드시 승리한다. 그리도 동아에선 우방 일본은 반드시 승리한다. 중국의 관점에서 볼 때, 국민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화평반공건국 정책은 매우 정확하다. 그리고 이는 미래에 반드시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공군 장병들이 ‘각고내로, 용맹정진’하는 정신으로 공군의 미래를 진보시키고, 좋은 자질을 가지게 된다면 양의 문제 또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공군 장병들이여, 중국의 방공과 동아의 방공을 위해 힘써 주기를 바란다. 이상의 말을 통해 그대들이 언제든지 자신을 단련하고 서로를 단련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그대들의 건강과 공군의 발전을 기원하며, 육해공군 군인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훈조를 실행하고, 중국을 부흥시키고 동아를 보위할 책임을 지기를 바란다.
- 육해공군 군인훈조 (陸海空軍 軍人訓條 / 1941.5.21)
육해공군 군인훈조 (陸海空軍 軍人訓條), 1941년 5월 21일 발표된 군인훈조는 왕징웨이의 군대인 화평건국군의 육해공군 모두에서 통용되었다. 충성과 믿음을 국가에 바쳐 국가에 공헌한다. 矢忠矢信,貢獻一切於國家 2. 삼민주의와 대아시아주의를 실시하여 중국을 부흥시키고 동아를 부흥시킨다 實行三民主義及大亞洲主義,以復興中國,復興東亞 3. 현재의 국가적 위기를 인정하고, 공비의 창궐로 인민이 고통받고 있음을 알고 공산주의를 근절하여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한다. 認定當前國家危機,人民痛苦,在共匪之猖獗,應竭盡心力,根絕赤禍,以救國救民 4. 지혜(智), 인(仁), 용기(勇), 엄격함(儼)을 자신의 근본으로 삼는다. 以智、仁、勇、嚴、爲立身行己之本 5. 국민을 사랑하고 물자를 소중히 여기며 국가사회의 정기를 기른다 愛護人民,珍惜物力,以培養國家社會之元氣 6. 지휘관에게는 복종하고, 동료와 화목하게 지내고 부하를 아끼어 정성으로 단결한다 對長官服從,對同僚和衷,對部屬愛護,以精誠團結之實 7. 결백하게 공무에 임하고 각고의 노력을 다한다 潔己奉公,刻苦耐勞 8. 학문의 연구와 정진을 추구한다. 研究學術,務求精進 9. 규율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훈련을 실시한다 嚴守紀律,點行訓練 10. 직책을 받들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奉行職責,視死如歸 11. 무기를 군인의 제2생명으로 여기고, 평시에도 소중히 여기며 위기에 처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視武器爲軍人第二生命,平時愛惜,雖遇危難,絕不放棄 12. 장비를 잘 정리하고, 예절을 지키며, 위생을 중시하여 완전히 건전한 군인이 된다. 整飭軍容,恪盡禮節,注重衛生,勉成健全之軍人
- 함께 광명의 대도로 전진하자 / 대동아결집국민대회 연설 (1943.11.7)
대동아결집대회는 대동아대회가 끝난 다음날인 1943년 11월 7일,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개최되었다. 이때 왕징웨이도 도조 히데키를 이어 두번째로 연설을 했다. 나는 오늘 맹방인 일본의 성대한 국민대회에 참석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중일양국은 이미 중일동맹조약 체결로 양국의 영속적인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대동아회의는 성황리에 폐막하였고, 대동아공동선언은 이미 세계에 발표되었다. 중국은 대동아 각국과 서로 협력하여 광명의 대도로 함께 나아가기로 결의하였다. 대동아의 사업은 오직 동아인 자신이 해야만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백년간 동아를 침략해온 영미는 그 야망과 폭력으로 전 세계를 삼키려 했고, 이를 일본은 앞장서서 이들의 야망과 폭력을 막아내었고 이는 일본 국민의 독립투쟁 결과로써 참으로 감복할 일이라 할 것이다. 대동아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국력을 강화하여 동아에서의 영미의 폭력을 격파하고, 동아를 다시 동아인에게 돌려주고 동아의 일은 동아 모두가 스스로 함께할 것을 약속하였고, 모두가 함께 투쟁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공존공영하기로 하였다. 무릇 동아인, 특히 중국인은 이러한 일본의 정신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는 마음과 더불어 대동아전쟁을 관철시키고 대동아건설을 실현하여 일본국민 제군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한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에는 여전히 일부 사람들이 영미의 멸시와 속박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는 나는 계속 노력하여 이 동포들이 빨리 깨닫고 영미의 굴레에서 벗어나 우리와 같은 잊방에 설 수 있도록 촉구합니다. 국민대회 제군 여러분, 대동아전쟁이 일어났을 때, 국민정부는 일본과 동거동락하기를 바래왔다. 그리고 지금, 국민정부는 일본과 그 생사를 같이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 결의와 의지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 왕징웨이의 대동아회의 폐막사 / 감상 / 담화 / 기념방송 (1943.11.6~7)
난징국민정부의 신문중 하나였던 중화일보의 출판사 중화일보사출판(中華日報社出版) 에서 출판한 '대동아회의' 표지. 본글에서는 중화일보의 출판사 중화일보사출판(中華日報社出版) 에서 출판한 '대동아회의' 의 자료를 통해 왕징웨이의 대동아회의 폐막사, 중국의 언론사와 나누었던 대동아회의에 대한 감상, 도쿄에서 진행된 대동아회의 기념방송에 대해 다루고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대동아회의 전체를 파악하기에는, 대동아회의에서의 왕징웨이의 행적 전체를 파악하는데는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대동아회의에서의 왕징웨이의 모든 발언 / 연설 내용을 정리했다는데 의의를 두고, 차후 기회가 되면 대동아회의 & 대동아회의에서의 왕징웨이의 행보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려 한다.) 1943년 11월 5일 개최된 대동아회의는 5일 1일차 일정에서 각 국가대표들의 연설이 있었고 , 이전 글에서 이미 다루었지만, 왕징웨이는 여기서 두번째로 연설을 했다. (11월 5일, 대동아회의에서의 왕징웨이의 연설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1943년 11월 6일, 2일차 일정에서 대동아회의의 결과물인 '대동아공동선언(大東亞共同宣言)' 이 발표되었고, 대회는 폐막되었다. (11월 6일,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대회를 마무리 지으며, 대회의 폐막사가 있었다. 대회의 폐막사를 진행한 것은 두 명이었는데, 한명은 대회를 개최한 일본측 대표인 도조 히데키였고, 나머지 한명은 일본을 제외한 참가자들을 대표한 중화민국 대표 왕징웨이였다. 두명밖에 참가하지 않은 폐막사에서 왕징웨이가 폐막사를 담당하게 되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본문에서 등장하겠지만, 왕징웨이는 이러한 자신의 폐막사를 회의 참가국으로 부터 지지를 받아 진행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왕징웨이의 대동아회의 폐막사는 다음과 같다. 왕징웨이의 대동아회의 폐막사 (1943.11.6) 의장 각하 및 각 대표 각하 여러분, 나는 중화민국 대표로서 여러분의 허락을 받아 한마디 하려 합니다. 이번 대동아회의는 이틀에 걸친 도조 총리대신 의장 각하의 지도와 각 대표 여러분의 협력에 따라 아무런 막힘없이 마무리되었고, 이속에서 절대적인 성과를 얻게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너무나도 기뻐 중화민국 대표인 저는 여러분의 앞에서 말을 잇기가 힘듭니다. 대동아공동선언은 이제 세계에 공표되었습니다. 이 선언의 가장 큰 특징은, 동아의 도의 정신을 분명하게 선언에 명시하고 구미의 이기주의적 견해를 일소한 것에 있습니다. 이를 자세히 이야기해보자면, 미영의 끊임없는 약탈과 착취를 전통으로 여기는 정책을 뿌리부터 일소하여 새롭게하고, 공존공영에 기초한 동아의 신천지를 개척하여 동아 각국로 하여금 각국의 독립 자주를 확보하고, 서로의 독립자주를 존중하고, 문화적으로는 각국의 고유의 특성을 발휘하고 존중함과 동시에 긴밀한 협력속에 문화의 융합과 창조를 위해 노력하며, 경제적으로는 호혜를 기초로 하여 각자가 가진 장단점을 보완하여 유무상통을 실현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 대동아 각국은 필시 그 단결을 공고히 하고,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은 한층 더 증진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세계 평화 역시 필시 더욱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동아의 도의 정신은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고 조금도 서로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가지지 않으며, 세계의 평화는 이에 따라 그 기초와 방도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미영과 같이 인종적 편견을 가진 자에게서는 전혀 꿈도 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중화민국 대표로서 이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이 성대한 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감격할 따름입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내용은 다만, 각국 국민을 영도하고, 선진국 일본을 본받아, 일본과 함께 우방적 관계에 있는 타이 왕국, 만주국, 신흥 버마국, 필리핀 공화국과 자유인도정부와 동심협력하여 대동아공동선언을 이행하고 대동아공영의 건설을 실현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저 또한 아직 중국의 통일을 보지못한만큼, 하루 빨리 중국을 통일하여 하루 빨리 전국의 정신력, 물력을 집결하여 대동아의 책임을 분담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오로지 모든 힘을 다해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도조 의장 각하의 지도와 각국 대표 각하분들의 협력에 대해 감사드리며, 아울러 대동아전쟁의 필승과 대동아건설의 성공을 축복하는 바입니다. 대동아회의가 진행되는 모습. 대회를 마치고, 왕징웨이는 대동아회의에 대한 감상을 질문하는 난징국민정부의 국영매체인 중앙전신사 (中央通訊社) 측과의 인터뷰에 응하여 자신의 대동아회의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중앙전신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대동아회의에 대한 감상 - 중앙전신사 인터뷰 (1943.11.6) 대동아전쟁은 공영주의대 식민주의의 전쟁으로, 왕도 대 패도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대동아전쟁의 의의는 파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설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며, 작게는 동아의 영미 침략세력을 소탕하는 것에 있고, 크게는 대동아공영주의를 확립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동아 민족이 성의로 인치단결하여 호혜를 도모하고 동거동락하여 생사를 함께하게 된 것에 있다 할 수 있다. 이번에 개최된 대동아회의는 동아의 도의정신을 충분히 발휘하여 동아 각국을 하나로 묶어 영미 식민주의의 억압과 수탈 정책을 타파하고 동아 각국의 국민들로 하여금 독립과 자주속 애국심을 충실히 가지게 하고 공존공영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기에, 동아 각국이 근본정신을 도의정신에 두어 단결하게 된다면 대동아전쟁은 반드시 승리하고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수년간, 나는 중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동아를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고, 이제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에 대해 무한한 감회를 느낀다. 나는 열성을 다하여 대회의 성공을 축하하며, 최대의 노력으로 중국의 전국민을 이끌고, 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결의를 실천하여 화평운동을 관철하고, 중국의 독립을 구하고, 동아의 해방을 실현하고, 대동아전쟁의 완성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동아회의가 끝난 다음날인 1943년 11월 7일,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는 대동아결집국민대회가 개최되었다. (11월 7일, 대동아결집국민대회에서의 왕징웨이 연설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대동아회의의 다음날인 1943년 11월 7일에는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대동아결집국민대회가 있었고, 각국 대표들은 기자들 앞에서 담화를 발표했다. 왕징웨이도 마찬가지로 담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날 저녁에는 일본 NHK 라디오 방송을 통해 대동아회의의 의의와 대동아회의에 참가하게 된 감상을 연설했다. 왕징웨이의 기자담화 '겸' 라디오방송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는 본질적으로 기자담화문과 라디오방송내용이 거의 100%에 가까운 일치를 보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위에서 보았던 중화일보사 도서에서 잘못 서술한것이라 생각했으나, 대동아회의 시기를 다루는 신문들 (新中國報와 같은 왕징웨이측 신문들) 을 보아도, 이 두 글의 내용은 사실상 일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일치성이 난징국민정부 선전부 측에서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따라서 기자담화문의 내용 = 라디오방송 내용 이라 보아도 무방한 수준이기에, 같은 내용을 중복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생각하여 따로 서술하지 않았다. ) 각자가, 모두가 노력하면 동아는 해방될 수 있다 (1943.11.7 / 대동아회의 이후 기자담화 및 라디오방송내용) 나는 이번 세계사에서 위대한 의의를 가진 대동아회의에 참석하게 되어 내심 이를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회의를 통해 일본 도조 수상의 위대한 이론을 경청하고, 각국 대표들의 위대한 이론을 직접 접하게 되어 진심으로 감복스럽다. 지난 백년을 돌이켜보면, 영미 양국은 제멋대로 침략과 착취정책을 자행해왔고,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세계 지배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 세력은 그 야망을 처음에는 남양, 그 다음에는 중국으로 확장시켜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미국도 태평양을 넘어 동아를 침공하여 영국과 연합하여 협공지세를 형성하였다. 당시 동아민족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었으나, 다행히 일본은 홀로 일어서는데 성공하여 영미의 야망을 막아내고 영미에게 타격을 입혔지만, 그 야심은 변하지 않아 계속하여 동아 민족을 이간질 시키고 서로 싸우게 하여 동아는 평안할 날이 없었다. 그러나 대동아전쟁이 시작되어 영미 양국의 세력이 동아에서 무너지고, 영미 침략이 착취해왔던 소득과 시도는 모두 일본에 의해 무너졌다. 그렇기에 대동아의 모든 민족은 일본이 동아를 지켜낸 공적에 대하여 감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일본은 영미 양국이 동아를 해치고 동아의 침략 정책을 가져왔다고 생각하여 영미세력을 격퇴하고, 나아가 이들이 펼쳤던 정책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 즉, 공존의 구호를 통해 침략의 구호를 바꾸고, 공존을 통해 착취를 끝내고, 동아민족이 각각 자주독립할 수 있게 하고 상호간의 자주독립을 존중하며, 문화방면에서는 그 창의력과 조화력을 발휘하게 하며, 경제방면에서는 호혜를 실행하고, 장단점을 서로보완하여 유무상통하게 했다. 이러한 기본방침은 영미의 기존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동양의 도의정신에 근거한 것으로, 서양의 이기적인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이번 대동아회의는 일본이 주최하여 동아의 각국가들과 연합하여 단결의 힘으로 도의정신을 발휘하게 하는 위대한 공헌으로, 대동아 각국가들의 영원한 우호의 토대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영원한 화평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중화민국의 국부 손중산 선생이 이야기한 "일본의 유신이 동아의 기회가 될 것" 이라한 것은 이미 증명된 것이다. 손중산 선생이 제창한 대아시아주의는 일본이 중국의 불평등 철폐에 협조하는 것도 소망해왔는데, 이 또한 이제는 구체화되었다. 나는 몇일 전 주중 일본대사와 중일동맹조약을 체결한데 이어 오늘 중화민국을 대표하여 대동아회의에 참석하여 대동아공동선언에 서명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가한 각국 대표들도 모두 같은 열정과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대동아전쟁의 목적은 반드시 관철될 것이고 대동아의 건설도 반드시 관철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목적과 임무를 완수, 달성하는 것은 동아 각 민족의 노력, 그리고 동아 공동의 노력에 달려있는 것이다. 선진국인 일본은 동아를 보위하기 위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고, 우리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부흥하길 희망하고 대동아전쟁을 관철시켜 대동아 건설완성의 책임을 분담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동아의 광명대업은 대동아 각 국가민족이 스스로 노력하고, 함께 노력해야 완성할 수 있다. 영미가 예전에 행해오던 침략과 약탈의 정책은 이미 무너졌고, 영미가 행해왔던 이간질도 이제 물거품이 되었다. 앞으로는 어떠한 정책을 펼치든, 어떠한 감언이설을 펼쳐 우리를 유인하거나 이간질을 하더라도, 우리의 신념은 이제 흔들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억압을 받지 않고 속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대동아 각국이 공동으로 노력하여 반드시 대동아를 해방시키고 대동아의 광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중일동맹조약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연간기념일 목록 /中華民國 南京國民政府 (汪) 年間紀念日目錄
본 자료는 1941년의 國立中央大學要覽 (1941) / 中國國民黨紀念日史略 (1942) / 我國重要紀念節日 (1945) 참조 왕징웨이 정권의 기념일들. 충칭국민정부와 공유하는 것도 있고, 왕징웨이만의 독특한 기념일들도 존재한다. 국정기념일의 경우, 1940년에 작성되어 1942년에 수정과정을 거쳤다.
- 공자 기념의 의의 (紀念孔子的意義 / 1940.8.27)
본 자료는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자료를 번역한 자료입니다.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표지. 이 책은 왕징웨이의 여러 발언 및 글을 정리한 책이다. 왕징웨이 정권의 중앙보도국 중앙전신사 (中央電訊社) 에서 출판되었다. 공자 기념의 의의 (紀念孔子的意義) 국민정부가 선사(先師) 공자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는 왜 당연한 것인가? 청나라 말기부터 민국 건설 이래, 지금까지, 중국인들은 공자에 대한 두가지 관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서양의 기독교에서 교주를 숭상하는 것을 보고, 이를 따라 유교를 숭상하고 공자를 교주로 삼고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특징이 현실 세계 외의 천국이라는 이상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유교에서는 그렇지 않다. 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는 ”사람을 섬기지도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 "(未能事人,焉能事鬼,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라고 하였다. 죽음에 대해 묻자 공자는 ”삶을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未知生,焉知死,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라 하였다. 이를 통해 유교는 현실세계를 중시함을 알 수 있다. 유교에는 제사가 있지만, 그 의의는 은혜를 갚는것에 있다. 예를 들어 “비록 거친 밥과 나물국이라도 반드시 제를 올리시되 반드시 공경히 하셨다” (雖疏食菜羹, 瓜祭, 必齊如也, 논어 향당편에 나오는 구절이다.)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풍습으로서 이어지고 있다. 유교에서의 교(敎)라는 것은 종교의 교가 아닌 가르침의 교라 할 수 있다. 중국은 공자를 스승으로 존경하는 것이지, 공자를 교주로써 존경하는 것이 아니다. 공자는 중국민족의 도덕적 지혜를 계도하는 만세의 스승인것이지, 상제의 화신(化身)이 아니다. 이렇듯 공자는 실로 중국의 영광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세계주의, 국제주의 주장을 받아드리며 동서양의 문화를 비교하여 유교를 함부로 헐뜯고, 공자를 헐뜯는 터무니 없는 모습이다. 세상의 어떠한 문화도 시대에 따라 진보하는 모습을 보인다. 후대의 어리석인 이에 대해서는 책망을 하지 않고, 선대에 대해서는 제대로 가르침을 남기지 않았다고 책망하니, 정말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 (過則勿憚改, 논어 자한편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 ’진실로 하루 새로워졌거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며, 또 날로 새로워져야한다’ (苟日新,日日新,又日新, 대학 2장에서 등장하는 구절이다.) 이라 말하며 진덕(進德)을 이야기하며 성찰하지 않으면 발전할수 없음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이들은 "조상의 죄악이 심하고 이것이 무너지지 않아 자손들에게 화를 입혔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의 이런 논조든 개관적인 자긍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미에 아부하고, 자기 나라 민족을 타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논조가 기승을 부려 웬만한 청년들은 배은망덕해졌고, 그 결과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지 않으니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말들에 따르면, 이들은 구미를 모방하여 본래의 것을 잊어버렸을 뿐만이 아니라, 중국 민족은 배은망덕하고 짐승만도 못한 것이된다. 국민정부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선사 공자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을 만드는 법을 발표했다. 성탄절의 화려함은 없지만 중국 민족을 일깨우는 자각을 위해서 이는 절실한 것이다. 선구자 공자는 사람들에게 도덕을 가르쳤다. 그리고 방법은 ‘날마다 새로워 지고 날로 새로워 지는 것 (日日新、又日新) '에 있으며, 이는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仁) 이라는 글자는 인생에서 가장 고상하고 광대한 도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행하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룰수 있고, 이를 소극적으로 하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 이야 말로 불변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지혜로 백성을 인도하는 것 말고도, 우리는 중국의 모든 법률과 문화유산이 우리 조상인 공자에게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자가 없었다면 중국 문화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스승 공자의 탄생을 기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혜로 하여금 용맹정진의 결심을 하게 해야한다. 시국에 대해 말해보자. 자공이 정치를 묻자 공자는 "식량을 충족시키는 것, 병기를 충분하게 하는 것, 백성이 믿게하는 것이다. “ 라고 하였다. 자공이 "반드시 부득이하게 하나를 버려야한다면 이 세가지중 어떤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라고 하자 공자는 “병사를 버려라”라고 하였다. 자공이 다시 한번 “반드시 부득이하게 두가지중 한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라고 묻자 공자는 “식량을 버려라, 예로부터 죽음은 누구나 피할수 없는 것이나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논어 안연편에 등장하는 구절이다.)라고 하였다. 오늘날 화평운동을 하는 이들은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화평운동을 하는 것은 화평을 통해 나라를 구하기 위한 것이지, 구차하게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화평운동을 하는 사람은 모두 화평운동을 위해 희생을 각오해야하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삶도 바라는 것이요, 의(義)도 또한 내가 바라는 것이지만, 두가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가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리라. 삶도 내가 바라는 것이지만, 하고 싶은 것이 삶보다 더 한 것이 있으니, 그렇기에 구차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 것이며, 죽음 또한 죽음보다 더한 것이 있으니, 그러므로 환란도 피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만약 사람이 원하는 것 중에 사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없다면, 삶을 얻을 수 있는 경우에 무슨 방법인들 쓰지 않겠으며, 만약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중에 죽는 것 보다 싫어하는 것이 없다면, 환난을 피할수 있는 경우 무슨 짓인들 하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살수 있어도 그 방법을 쓰지 않는 것이며, 환난을 피할 수 있어도 피하지 않는 것이다. ” (맹자집주 고자장구 상편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라 하였다. 이러한 ’ 죽음은 누구나 피할수 없는 것이나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라는 정신은 유교의 참된 정신이다. 이러한 정신이 있어야 비로서 경제와 군사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화평운동을 하는 이들은 선구자 공자의 탄생을 기념할 때 더욱 용맹정진하여 그 깨우침을 알 필요가 있다.
- 화평선언 (和平宣言 / 1940.3.12)
본 자료는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자료를 번역한 자료입니다.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표지. 이 책은 왕징웨이의 여러 발언 및 글을 정리한 책이다. 왕징웨이 정권의 중앙보도국 중앙전신사 (中央電訊社) 에서 출판되었다. 화평선언 (和平宣言) ”중일 양국은 어떠하더라도 손을 맞잡고 양국의 장래 발전을 도모해야한다.“ . ”중일양국은 아시아 민족 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되어야한다. “ 이말은 중화민국 국부 손중산 선생의 말씀이다. 동포 동지들은 이를 마땅히 함께 깨달아야 한다. 불행하게도 중일 양국의 관계는 수년에 걸쳐 조성되지 못했고, 결국 전쟁이 발발하고 혼란이 시작되었다. 재작년 11월 3일 (제 2차 고노에 성명의 발표일) , 일본 고노에 내각은 성명을 발표하여 ”일본이 중국에 바라는 것은 동아신질서 건설의 임무를 부담하는 것에 있다.“ 라고 하였다. 또한 고노에 내각은 방송을 통해 ”일본이 바라는 것은 중국이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부흥시키는 것이다. 중국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협력하는 것이다.“ ”일본은 중국의 민족적 열정을 인식하고, 중국의 독립국가 건설 완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12월 22일 (제 3차 고노에 성명의 발표일.) 의 성명을 통해 선린우호, 공동방공, 경제제휴라는 원칙을 통해 일본이 중국의 주권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조계를 반환하고, 중국의 독립을 완수하는데 필요한 치외법권을 폐지할 것을 고려하였다. 일본정부의 이 성명들이 있은후, 중국측은 항전을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되며, 화평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특히 중일 양국은 현재의 전쟁이라는 재앙뿐만 아니라, 과거의 분쟁이 되어왔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고, 미래의 친선관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화평운동은 점차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지난해 8월 중국국민당 제6차 전국대표대회 선언에서는 항전의 구호에서 ’화평건국‘의 구호로, 반공을 화평건국에 필요한 필수사업으로 정했다. 개인의 독재가 나라를 망치고 있는 지금, 헌정의 실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최단 기간에 훈정을 끝내고 헌정을 시작하여, 제5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의결된 내용을 확실하게 관철시켜야 한다. 중국국민당 제 6차 전국대표대회 선언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우리는 수개월동안 일본정부와 일본 국민들과 함께 성의를 보여왔고, 선린우호, 공동방공, 경제제휴의 원칙을 통해 이를 구체화해 양국이 이익을 나누기를 기대하고 있다. 국내 정당과 정치단체들, 그리고 현명한 인사들이 이미 시국을 수습하는 방법을 세심하고 있고, 이들은 일치된 결의로 공동의 노력을 하기 위해 중앙정치회의에 조직하려 하고 있으며 중앙정부도 이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 이제부터 전국 인민은 통일되고 강력한 중앙정부의 영도하에 대외적으로는 국교를 조정하고, 대내적으로는 헌정을 실시하여 수년간의 분쟁과 전쟁을 종식시키고 화평과 행복의 신천지를 실현시킬 것이다. 헌정의 실시에 대해, 우리는 이미 시대에 적합한 정치강령과 정책을 수립하여 최단기간에 이 사명을 완수할 필요가 있다. 대외국교조정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정한 각종 구체적인 방안은 모두 공개하고 방법에 있어서는 고유의 방법을 쓰되, 우리는 이러한 방안이 결코 고노에 성명의 범위에 벗어나게, 저촉되게 않게 해야할 필요가 있다. 즉. 중국의 독립생존에 전혀 해가 없고, 제3국이 가지고 있는 중국의 정당한 이익을 손상시키지 않고, 중국의 화평회복을 발전시킬 수 있는 외교를 해야한다. 그리고 중국이 화평을 회복한 후에는 일본과 경제제휴를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건국방략의 실업계획에 근거하여 각국의 기술과 자본을 수용하여 중국의 건설을 완성하고 동아의 번영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아의 번영은 화평운동에 있어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중일의 이익, 나아가 세계의 이익이 될 수 있다. 나라를 위하는 자라면 우리들의 화평운동에 대해 즉각적이고 광범위하게 마땅히 논의해야한다. 전쟁 발발이후 북평, 옛 수도인 난징이 잇달아 함락되었고, 그 뿐만 아니라 톈진, 상하이, 칭다오의 3개의 특별시 그리고 하북성, 산서성, 하남성, 절강성, 강소성, 안휘성, 강서성, 호북성, 광동성, 광서성 13개의 성이 함락되어 장백 수백만이 사망했고, 수천만 인민들은 직간접적으로 난민신세가 되었다. 항일전쟁 이후 2년 반동안 거점을 계속 잃으면 잃었지, 회복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홀로 남은 인민은 나날이 무너져 내리고 있고, 국민정부와 중국국민당은 몸이 부서지고 뼈가 부서지는 상황에서 국가 인민을 제대로 대하지 못했다.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고, 용감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일본과 정전하고, 받아드릴 수 있는 조건을 받아드려 아직 소진되지 않은 국력을 보존하고, 패잔병들을 수습하고 부흥을 도모하는 것은 국민정부와 중국국민당의 동지들에게 당연한 책무다. 권세를 장악하고 민의를 위협하여 매일 끝까지 항전해야만이 승리할 수 있다고만 이야기하며 스스로 남을 속이고 국토를 더욱 축소시키고 국력을 더욱 소모시켜선 구원받을 수 없다. 이는 근시적인 것이다. 우리는 멀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번 화평운동은 단지 현재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의 원인을 깊이 찾고, 과거의 악연을 풀고, 장래의 기둥을 다시 세워 중일양국이 공존공영의 대로를 향하여 함께 전진하도록 해야한다. 중일 양국을 동아의 주춧돌이 되고, 양국간의 상호안전은 동아의 화평을 보장하며, 세계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근시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나라를 구하기는커녕 민족을 멸망시키는 일이 되는 것이기에, 우리들은 충칭에서 가하는 치욕을 참으며 화평운동에 종사해야 하며 대국적으로 중국과 동아에 부흥을 가져다 줘야하며, 우리들은 마땅히 화평운동에 종사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한다. 나 왕자오밍은 국민정부를 섬기고 중국국민당의 한 사람으로 과거에 많은 힘든 일을 겪어 불행하게도 전쟁을 예방하지 못했고, 전쟁이 일어난 초기에 막아내지 못했다. 나는 이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하루하루가 지나도록 충칭의 동지들에게 호소해왔다. 하지만 나 왕자오밍은 오늘 날 전 국민이 모두 화평을 원한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화평에 대해 회의하는 자는 화평 그 자체를 반대하기보다 화평의 실현 가능성에 회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이제 우리는 국민정부와 중국국민당의 동지들을 규합하고, 이미 성립된 정당들과 현지의 현명한 인재들과 연합하여 화평운동의 책임을 지고, 전 국민이 바라는 화평이 하나씩 실현될 수 있도록 힘을 합칠 것이다. 이에 중앙정치회의를 조직하여 화평운동의 참뜻과 화평운동의 방안과 요지를 마련할 것이다.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린다. 이제 국민정부는 반드시 실력으로 화평방안의 실현을 도모하여 화평운동의 성공을 도모할 것이다. 전국동포들은 이를 함께 깨닫고 일심동체가 되어 이 대업을 함께하고, 충칭측은 선입견을 버리고 즉시 정전하여 화평방안을 보다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실행해주기바란다. 국내외 동포들이여, 민족을 구하고 부흥을 위하는 방법은 실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이를 정성을 가지고 충직하게 생각해주기 바란다.
- 국민정부 환도의 중대사명 (國民政府還都的重大使命 / 1940.3.23)
본 자료는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자료를 번역한 자료입니다.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표지. 이 책은 왕징웨이의 여러 발언 및 글을 정리한 책이다. 왕징웨이 정권의 중앙보도국 중앙전신사 (中央電訊社) 에서 출판되었다. 국민정부 환도의 중대사명 (國民政府還都的重大使命) 동포들이여, 오늘은 우리 동지들이 난징으로 돌아온 후,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눈 날이다. 이야기를 할 때 마음속에는 끝없는 슬픔이있었다. 과거를 떠올리고 현재를 생각해보면 마음속으로 끝없는 슬픔을 느끼며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에 대한 무한한 광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용기를 내어 이 광명을 더욱 펼쳐나가야한다. 이렇게 해야만이 이전의 슬픔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동지들에게 이야기할 주제는 ’국민정부 환도의 중대 사명‘ 이다. 이번에 국민정부는 어떠한 필요성에 의해 환도하게 되었는가? 중앙정치회의에서의 의결이 있은후, 예전부터 각지에서 펼쳐지던 화평운동은 이제 하나로 통일되게 되었다. 화평운동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바로 화평의 정착과 헌정의 실시다. 이 두가지 큰 방침은 화평운동의 가장 큰 목표이자 국민정부 환도의 최대 사명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화평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를 이야기 위해 3월 13일에 선언문을 적어 신문에 실었다. (1940년 3월 13일 발표된 화평선언 (和平宣言)을 의미. 다음글에서 이를 다룰 예정 ) 선언문에서는 중일관계를 일본의 고노에 성명의 원칙, 선린우호, 공동방공, 경제제휴의 원칙에 따라 조정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 했다. 또한 나는 우리의 모든 화평안이 고노에 성명의 범위를 넘지 않을 것을 확실히 선언하였다. 같은 날 밤, 일본의 요나이 내각총리대신은 성명을 발표했는데, 그 성명에서 이야기한 것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즉, 고노에 성명을 중일 국교조정의 기초로 삼겠다는 것이다. 동포들이여, 그대들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년 동안 일본측이 중일의 화평운동에 대해 일관되게 논의를 해왔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재작년 12월 29일의 염전, 최근 3월 13일의 선언을 보면 우리 중국 또한 중일의 화평운동에 변함없이 일관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우리의 길이 분명한 만큼, 우리는 이길로 나아가야만 한다. 길이 있다고 한들 우리가 가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이다. 지금 국민정부는 왜 환도하는가? 이는 화평을 이루자는 주장에서 이야기한 길, 우리가 가야할 길을 가기 위함이다. 이는 화평의 주장이 이제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화평‘ 이라는 단어 한 글자 한 글자를 실천하는 단계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헌정실시에 대해 중앙정치회의는 이미 결의를 끝냈다. 국민정부는 환도 이후 최단시간 내에 헌정실시위원회를 설치하여 최대한 빠르게 국민대회를 소집, 헌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국민정부의 환도는 화평을 정착시키는 것이고, 헌정을 실현하는 것이며, 중일관계의 조정을 도모하는 것이며, 동아의 화평과 질서건설을 도모하는 것이며, 중화민국의 건설을 완성하는 것이다. 화평의 정착과 헌정의 실시 아 두가지 일은 이러한 이유로 모두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민정부는 앞으로 대내외 정책을 이 두가지 큰 방침에 의해 해나갈 것이다. 국민정부가 환도하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몇 년간 인민들이 겪어온 고통과 국가의 위험을 신속하게 제거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화평과 헌정을 실시하여야 한다. 화평적 헌정의 실현이 가능할 것인가? 국민정부의 동지들은 전국의 우리 동포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가고 있다. 화평의 실현과 헌정의 실현, 이 두가지 큰 방침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많이 이야기한 만큼, 오늘은 이렇게 간단하게 동포들에게 고하는 바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제 오늘부터 화평운동은 새로운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때문인가? 이전에는 화평운동은 각 지방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로 통일되어 국민정부 아래의 영도를 받게되는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화평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단결하게 되고, 화평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소수만 남게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화평에 반대하는 이들도 하루빨리 화평운동에 합류하기를 바란다. 나와 동지들은 매일 이를 기다려 왔고, 그들을 합류하게 할 방법을 생각하고 해왔다.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오해를 가지고 있고, 어떤 곡해를 하고 있고, 심지어 우리를 경멸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신경쓰지 않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동포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일찍 우리에게 합류한다면, 전면적 화평은 일찍 실현될 것이다. 일본군이 아직 철수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정부를 구성하는 일에 대해 이가 소용없고 힘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이들의 반대논조는 맞는 것 같지만, 실은 틀린 말이다. 우리는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화평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상황에 있다. 화평의 실현 여부는 우리가 화평운동에 힘을 쓸 수 있는지, 중일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지, 모두가 새로운 광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부를 조직하여 화평을 실현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평은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앞날에 반드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찾아올 것임을 알고 있고, 우리의 뜻대로 반드시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어려움, 시련을 안겨다 주는 이는 누구인가? 이는 바로 우리의 화평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화평운동의 의미를 이해하고 국민정부의 명령을 제대로 받든다면 전면적인 화평은 저절로 실현될 수 있다. 현재의 전면적인 화평은 완전히 그들의 방해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면적인 화평이 실현되지 않은 지금, 화평운동을 하지 않겠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는 말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평운동을 해야 전면적인 화평을 이룰 수 있다. 화평운동은 전면적인 화평의 전에 하는 것이지 후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충칭쪽에서 큰소리 치는 사람들은 이를 스스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성심성의껏 전국의 화평운동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화평을 반대하는 이들이 생각을 바꾸어주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이를 기다릴 순 없다. 그들이 화평에 찬성을 가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들은 화평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동포들이 화평을 이해하고 찬성할 수 있게 그 이론을 명료하게 작성할 필요가 있고, 또한 동포들이 실제로 화평이 실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이의 실현에도 힘써야 한다. 그러면 화평운동은 반드시 발전하고 보편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국민정부가 해야 할 일을 방해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국민정부의 고민은 국민의 고민이며, 국민이 바라는 것은 국민정부 또한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들이 바라는 것을 실현하는 것이 국민정부의 사명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화평운동을 이해하는 자는 더 노력해야하고, 이론을 더 확충하고, 더욱 실천해야 한다. 또한 화평운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마음을 바꿔 화평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화평의 회복과 헌정의 실현은 국민정부의 사명인 만큼, 국민정부는 정부조직에 대해 오랫동안 논의를 해왔다. 우리는 린 주석 (충칭국민정부의 국가주석 린썬 (林森)을 의미한다. 명목상으로는 린썬은 국민정부의 최고지도자였지만, 그 실권은 장제스에게 있었다.) 이 하루 빨리 난징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가 난징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우리는 중앙정치회의의 결과에 따라 힘 쓸 수 밖에 없다. 국민정부의 조직에 대해서는 이전과 큰 차이는 없다. 행정원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에게 이미 조직의 구성내용을 발표한 바가 있다. 또한 각 방면의 인재를 수용하기 위해, 이번에는 이전보다 부속기관이 좀더 많아진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게 많아진 것도 아니다. 두가지 예를 들자면 선전부, 사회부가 있는데, 사회부는 이전의 민중훈련부의 역할을 하는 것이며, 노동자, 농민, 상인, 학생, 여성 및 각조 민중의 훈련에 관장하는 곳을 사회부라 하였다. 이러한 부처는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두 기관을 추가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알다 싶이 이러한 부처들은 이미 예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민중훈련부와 선전부 두 부처는 이전에는 중국국민당 중앙당 본부에 있었으나 이번에 행정원으로 옮기게 된 것 뿐인 것이다. 따라서 두 기관은 새로 설치된 것이라 보긴 어렵다. 또한 선전부를 행정원으로 옮기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전국 인민들이 정책을 이해하고,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대중들을 훈련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예전에는 중앙당에 배치하는 것이 일리가 있었으나, 그 당시에도 백성들은 조금 불편함을 느껴왔다. 예를 들어, 인민들은 훈련하는 일은 당사에 있었기 때문에, 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조직들은 당과 정부 모두와 접촉과정을 겪어야 한다. 이는 마치 하나의 벽을 더 만든 것과 같았다. 지금은 정부가 직접 이를 하기에 편리해졌다. 벽이 두 개인것 보다 한 개인 것이 더욱 편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또다른 이유는 중국국민당은 이제 일당독재를 포기하였는다. 하지만 국가 선전을 담당하는 선전부를 아직 당에 둔다면 어떻게 이를 일당독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우리는 선전부와 사회부를 행정원에 두고, 이를 통해 두 정부라는 장벽을 없애게 하고, 한편으로는 일당독재에 대한 의심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예는 과거에는 각종 위원회, 교무위원회, 진무위원회, 변강위원회 등이 존재했는데 이번에는 수리위원회를 새롭게 추가하였다. 수리위원회의 설립은 하지만 기관들을 늘리기 보다는 오히려 많은 기관을 생략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전에는 국가는 직속인 황화위원회가 있었고 국민정부의 영향력이 완전히 닫지 않았던 광동성의 수리위원회는 이전에 재정부에 속하기도 했다. 수자원 관리에 대해 생각해보면, 황허 지역, 장강 지역, 광동의 주강지역, 그리고 회수 지역이 있다. 하지만 이처럼 관리 기관들이 뿔뿔히 흩어져 있게 되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과거이는 이러한 각종 인사, 기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를 조합하여 국가직속의 수리위원회로 합칠 수 있었다. 이렇듯 수리위원회의 설치는 기관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관을 줄이는 것이다. 모두가 알다싶이, 지금은 수해가 매우 심각하다. 따라서 수리기관을 설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또 질문할 수 있다. 왜 수리’부‘라고 하지 않고 수리’위원회‘라고 부르는가? 이는 전국적으로 처리해야할 수해가 너무나 많기에 공동으로 업무를 맡을 위원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위원회의 형태를 꾸렸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앞으로 인원들을 더욱 배정하여 이를 처리하게 하려 한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여러개로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의 조직 속에서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이러한 선전부, 사회부, 수리위원회의 예를 생각해보면, 많은 기관들이 새로이 생겨난 것같지만 실제로는 추가가 아니며, 오히려 간소화되기도 했다. 또 하나, 우리는 기관을 설립한 후 기관의 경비는 절약하게 하고, 사업비는 늘리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재를 모집하고 사업은 추진해야 하지만 모든 일상 경비는 절약할 수 있는 만큼 절약해야 한다. 국가에 군더더기 기관이 생기고 기관내에서 과도한 경비를 지출하게 해서는 안된다. 이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것이다. 지금 나라가 이렇게 위급하고 가난하고, 지방이 분열되고 국민들이 떠돌아다니는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시점에 이러한 행동은 받아드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나와 우리는 모든 국민정부의 사람이 청렴하고 용감한 정신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가장 큰 희망은 첫째, 전국적인 화평을 건설하는 것이고, 둘째, 중화민국 건설을 완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중대한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청렴하고 용감하며 힘든일을 마다하지 않는 정신으로 모든 어려움을 타개해야 한다. 만약 아무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맡아야 하는 것이고, 인원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더 나은 인재가 있다면 우리는 즉시 물러서서 그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지않을 때 우리는 나서서 책임을 지며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나은 인재가 등장한다면, 우리는 즉시 이를 받아드리고 이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해군은 너무나 부실하지만, 중국은 해군을 부흥시키는데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에 이러한 상황에서도 해군부를 만들었다. 또한 해군부장의 인선은, 일시적으로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임무를 진행하기 위해 각 내각의 예를 본따 내각의 총리가 대행하게 했다. 하지만 인선이 확정되면, 후에 헌명하고 유능한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면 유능한 이로 바로 대체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우리 동지들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우리 동지들이 감히 말하컨대, 이번 국민정부에서 복무하는 사람 중 그렇지 않은 이는 없다. 예를 들어 군정부 참모본부, 군사삼원 군사훈련부를 현재 맡고 있는 이들은 그 자격과 능력은 모두 적임자이지만, 차차 또 부차적인 지위로 이를 대리하길 바란다. 이는 한편으로는 책임감을 표시하는 일이며, 한편으로는 직위를 능력자에게 물려주기 위한 것으로 이는 우리 국민정부 요인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또한 사회와 생활이 이렇게 팍팍하여 서민들이 쌀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모든 사업은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또한 국민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솔찍히 말해, 정부에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연회와 같은 공식적인 행사를 진행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공식적인 연회를 제외하면 연회를 최대한 적게 가져야 한다. 모두를 더 많이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위해선 이런 연회를 가지지 못하더라도 좋은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지만 정직해질 수 있고, 정직함을 키워야만 용감해질 수 있다.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은 정직할 수 없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용감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의 동지들은 시시각각 스스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함께 격려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국민정부 환도의 중대한 사명을 이룰 수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4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 째는 국민정부 환도의 사명은 화평의 실현과 헌정실시라는 것이다. 둘 째는 우리는 이 화평이 빨리 전국에 실현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셋 째는 기관을 조직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러한 기관이 있어야만 우리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청렴하고 용감하게 일하고 불평하지 않고 백성과 동고동락, 동생공사 하는 정신을 가져야만 국민정부의 중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염전서후 (艷電書後 / 1939.12.29)
본 자료는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자료를 번역한 자료입니다.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표지. 이 책은 왕징웨이의 여러 발언 및 글을 정리한 책이다. 왕징웨이 정권의 중앙보도국 중앙전신사 (中央電訊社) 에서 출판되었다. 염전서후 (艷電書後) 염전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작년 오늘, 나는 염전을 발표했고 오늘로 꼭 1년이 되었다. 나는 작년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염전을 다시 읽어보았다. 염전의 중점은 마지막 몇마디에 있다. ”중일 양국의 근린관계에 비추어 볼 때, 중국과 일본의 선린과 우호관계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필수적인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난 지금의 상태는 철저히 재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일본과 중국 이 함께 이에 대한 상호 책임을 규명해야한다. “ 중일양국은 수십년간 분쟁을 겪어왔고, 오늘날의 전쟁에 이르게 되었다. 만약 전쟁의 원인이 한편에서는 일본 침략주의에 의한것이고, 한편에서는 중국의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에 의한것이라 한다면, 이는 전쟁의 원인이 불분명 해지는 것이고, 이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하는 것이고, 차후의 방안에 대해서는 더더욱 이야기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중일 양국이 그 이유를 깊히 생각하여, 각자의 책임을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러한 분쟁과 전쟁상태가 ‘동아의 행복’ 과 ‘태평양의 안전과 질서’ 그리고 ‘세계의 평화보장’에 모두 해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과거의 악감정을 해소하고 ‘동아의 행복’ 과 ‘태평양의 안전과 질서’그리고 ‘세계의 평화보장’를 향해 함께 노력하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 말로 중일 양국이 선택해야할 백년의 대계다. 화평운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점에 대해 깊이 인식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평운동을 할 수 없다. 화평운동의 의의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바를 참고하고, 지난 1년간 중일 양측의 여론에 대해 살펴보자.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중일관계를 재검토하여 확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고노에 성명 이후 전국의 여론은 더욱 일치되고 있다. 동아협동체란, 그 정의와 방법이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고노에 성명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일본은 중국이 동아신질서 건설의 임무를 분담하기를 바란다 “ 라고 밝힌 것처럼, 중국은 능력이 있어야만 그 임무를 분담할 수 있기에, 일본은 중국의 주권을 존중하고 독립을 지원하여 그 임무를 분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한다라는 기본적 의미는 일본정부의 성명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잡지나 신문에서 이에 대해 여러 표현을 사용하지만 대체로 일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 여론이 이렇게 된 것은 화평운동의 큰 진전이다. 중국측에서는 일부에서 끝까지 항전하여 최후의 승리를 얻어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거짓으로, 이는 압력에 의해 어쩔수 없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압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진실된 여론이 나왔다. 이들은 손중산 선생의 대아시아주의 정신의 진면목을 근본적으로 보아 중국은 반드시 일본과 손을 잡아야만 내적으론 중화민국의 건설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고, 외적으론 동아의 보장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화평운동의 큰진전이 아닐 수 없다. 이상의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화평운동의 이론이 이미 성숙되었다고 열렬하게 믿는다. 화평운동의 성공은 필연적으로 오게 될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화평원칙을 어떻게 구체화 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화평안은 어떻게 완성될 것인가? 이러한 문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신감과 상호신뢰의 각오로 충분히 용기를 내어 진행한다면 모든 어려움을 뚫고 모든 가시밭길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끝까지 항전하여 승리를 쟁취하자는 제군들에게 할 말이 몇마디 있다. 제군들의 이런 말은 솔찍하지 않고, 최후의 승리는 막막하다는 것은 제군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먼저 국제정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제군들은 예전에 전선론의 말을 믿고, 반침략연합전선은 필연적으로 결전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결전하면 반침략연합전선은 필연적으로 승리하고, 승리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중국을 돕고 일본을 막게되는 것이라 생각하여 중국이 끝까지 항전하기만 하면 최후에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믿고 있다. 이런 막연한 논거는 우리는 일년 전에 이를 몇 번이나 반박했는지 모른다. 유럽전쟁이 발생할 것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사실로 증명되었으니, 더 이상 우리는 이에 반박팔 필요가 없다. 제군들에게 반침략연합전선의 지도자로 여겨졌던 소련은 이미 제군들에게 침략 전선의 지도자로 여겨졌던 독일과 연합하여 폴란드를 협공하였고, 소련은 핀란드를 향해 진격하였다. 제군들이 가정한 침략전선 대 반침략전선이라는 개념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서 공허해진 것이다. 이때 유럽의 교전국들은 모두 자신을 위하고 다른 국가를 돕지 않았다. 유럽의 교전국들과 관련해 중일전쟁은, 일본이 유럽전쟁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달려있다. 만약 일본이 자신들 (유럽의 교전국들) 에게로 기운다면, 이들은 당연히 일찌감치 화해를 하여 일본이 자신들의의 적을 물리칠 수 있게 전력을 다해 도울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아직 결정짓지 못하거나 한다면? 중일의 병사들이 연달아 싸우게 하고 일본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 자신들의 적 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속셈은 분명하다. 본래 각자 나라를 위한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제군들이 이야기하는 ‘원조’라는 것은 또 허무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지금 유럽전쟁에서는 누가 이기게 될 것인가? 장래의 패자는 누구인가? 지금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확실하다 할 수 있는가? 양측의 군사력, 해군력, 잠수함 능력, 공군력, 경제력에 대해 논하는 것, 어떤 방면이 오래갈 수 있을 것이고 어떤 방면이 오래갈 수 없을 것인가에 논하는 건 가능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순 없다. 예를 들어 1차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독일 혁명은 역사적 추세로 미루어 그 가능성을 단정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언제 발생하는지, 그것이 반드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군들이 가정한 승자는 막막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제군들의 가정대로 장래의 승자가 제군들이 바람대로 된다 한들, 과연 그들이 중국을 원조할 것이라 단언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원조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는가? 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이뤄진 파리강화회의에서 우리 중국은 얼마나 실망했던가? 워싱턴회의와 그 속에서 만들어진 체제는 만주사변 문제 해결에 어떠한 해결을 했는가? 중국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제군들이 가정한 원조라는 것 또한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제군들은 항전을 통해 최후승리를 하고, 이후 국제원조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막연한 생각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제군들은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러한 모습이 과연 나라를 충실하게 도모하는 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는가? 국내 정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일년동안 또 얼마나 많은 사단을 잃었고 얼마나 많은 땅을 잃었던가? 물론 이는 슬퍼해야할 일이지만, 가장 슬픈 일은 작은 승리를 과장하여 대패를 감추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작은 승리는 결정적인 승리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를 장황하게 과장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물며 이러한 행동이 인민을 속이기 위한 것에 있다면, 이러한 마음은 더더욱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대규모 반격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고, 초토전, 게릴라전은 효과적이긴 커녕 소란을 피울 뿐이다. 그대들은 이러한 전략이 효과는 적고 소모하는 것이 많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국력은 백성의 힘에서 비롯되고 백성의 힘은 소진되면 국력도 함께 소진된다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백성과 국력을 소진하는 이러한 방법이 어떻게 끝까지 항전하는 전법인가? 이런 전략속에선 최후의 승리는 불가능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제군들 중 일부는 심지어 민족자살정책을 가지고 있으며, 나라가 망할 것이라 확신하면 차라리 동귀어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라의 상태가 만약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도 제군도 죽기보다는 나라를 구하는 것을 우선시 해야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오늘 구국을 위해 죽어야하지, 순국만을 위해 죽어선 안된다! 위의 국내외 정세는 내가 염전에서도 지적한 바로, 이는 오늘에 이르러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중국은 이제 화평 이외의 길은 존재하지 않고, 화평원칙이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화평안이 어떻게 완성될 것인지의 문제만을 가지는 것이다. 나는 많은 이들이 화평은 원하지만 화평원칙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화평안은 완성될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의 사람 중에는, 화평의 원칙이 실현되고 화평안이 완성된다면 그때 와서 화평에 찬성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전국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신해혁명 이전에는, 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때서야 혁명에 찬성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제서야 혁명에 한성한 이들 중 10명 중 9명은 혁명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기에 지금의, 화평이 성공할 때까지 기다린 후에 화평에 찬성해도 늦지않다고 주장하는 이는 화평을 방해하려는 파양자로 예단할 수 있다. 어째서인가? 이는 혁명에 비해 화평이 가지는 중대성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신해혁명은 국내 개혁일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화평운동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국과 일본이 반드시 손을 잡은 상태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일본과 손을 잡아야만 내부적으로는 중화민국의 건설 완성을, 외부적으로는 동아보장의 책임을 질 수 있다. 이는 신해혁명보다 더 큰 대업인 것이다. 우리는 화평만이 필요하고 가능하다 인정한 이상,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앞으로 분투해 나가야한다. 비록 잠시 넘어지거나 실패하더라도, 오늘의 실패와 실수는 미래의 성공을 위한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이는 나에게 ”당신은 구체적인 화평조건을 얻어야만 화평운동을 할 수 있다“ 라고 이야기한다. 이 말은 반만 맞는 말이다. 왜냐면 구체적인 화평조건은 정말로 필요한 것이나, 구체적인 화평조건을 얻는 것은 그 전제로 화평운동을 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평조건을 얻은 후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화평운동은 필요한 것이다. 특정한 화평조건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나는 화평운동이 용감하게 전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만약 이것이 성공한다면 이는 국가의 축복이 될 것이다. 이는 순간순간 실패를 겪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미래의 화평을 위한 씨앗을 남기는 일이 된다. 왜냐면 중일양국은 공존공영하기 위해서는 결국엔 이길을 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야기한다. ”항전을 위해 죽으면 민족적 영웅으로 여겨질 것이고, 화평을 위해 죽으면 악명만 남게 될 것“ 이라고. 이는 참으로 한가로운 소리라 할 것이다. 루거우차오 사건 이후 몇천몇백만 동포들의 시체가 이곳에 쌓여있는 이 현실을 보라,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도 한가하게 자신을 위한 생각만 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나는 옛 일을 기억한다. 내가 경수년 3월 (왕징웨이가 순친왕 재풍(載灃)을 암살하려 했던 1910년 3월을 의미한다.), 베이징에서 체포되었을 때, 경찰은 내몸에서 ‘혁명의 결심’ 이라는 글을 찾았고, 이에 대해 내게 ”이런 글을 가지고 뭘 하려 하느냐? “ 라고 물었다. 이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글은 이전에는 잉크로 썼는데 이제는 피로 쓰고 싶을 뿐입니다. “ 라고 . 나는 오늘 나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충칭을 떠난 쩡중밍 동지와 나에게 먼저 충칭을 떠나라고 이야기한 선쑹(沈崧) 동지가 생각난다. 앞서 떠나간 동지들을 생각하니 아직도 인간세상에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앞으로 나의 남은 열정을 모두 화평운동에 공헌할 것을 맹세한다! 염전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 :
- 중일전쟁 5주년의 감상 (七七五週年感想 / 1942.7.7)
본 자료는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자료를 번역한 자료입니다. 왕주석화평건국언론선집 (汪主席和平建國言論選集, 1944) 의 표지. 이 책은 왕징웨이의 여러 발언 및 글을 정리한 책이다. 왕징웨이 정권의 중앙보도국 중앙전신사 (中央電訊社) 에서 출판되었다. 중일전쟁 5주년의 감상 (七七五週年感想) 대동아전쟁이 일어난지 반년이 넘었다. 하지만 전면적인 화평이 아직 실현되지 못한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일본은 대동아전쟁 이전에 이미 동아신질서 건설의 의미를 설명하여 공산주의의 방지와 영미의 경제침략 배제에 기여하였다. 충칭쪽은 이가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대동아전쟁의 발발이후 이는 이미 사실이 되었다. 충칭은 이를 반성해야하지 않겠는가? 동아 전체에서, 국민정부와 만주국은 이미 일본과 협력하고 있고, 태국과 일본은 작전을 함께 수행하며 싸우고 있고, 이를 통해 동쪽에서는 필리핀이, 남쪽에서는 영국과 호주의 속주들이, 서쪽에서는 버마까지, 각 민족은 영미의 속박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인도 독립의 기세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정부는 나아가 인도의 독립을 지원한다고 선언했다. 이를 보았을 때 동아 전체는 어떤 면에서 보아도 대동아전쟁 협성(協成), 대동아전쟁 완수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충칭은 이러한 흐름속 구석에서 어찌 혼자 있으려고 하는 것인가? 최근의 충칭의 신문들을 보면, 이들도 이미 이러한 객관적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화평구역의 치안과 민생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이를 받아드리지 않고 있을 뿐이다. 물론 화평구역 안에서도 치안확립과 민생의 개선은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나날이 개선되고 있다. 이는 충칭측과는 비교가 안되는 것이다. 치안과 민생이 확립되지 못한 것은 모두 전면화평이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면화평을 방해하는 자들로 인해 국가와 인민의 고통은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통을 해소하려면 전면적인 화평의 방해요소를 제거해야한다. 나는 7.7사변 5주년을 맞아 특별히 다음과 같이 몇가지 사안을 정중하게 제안하는 바다. 첫째 : 우리는 손중산 선생의 대아시아주의 유촉을 근본정신으로 확립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대동아전쟁, 즉 대아시아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협력해야한다. 둘째 : 우리는 대동아전쟁에 협력해야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이는 빈말로 그쳐선 안된다. 우리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정신력과 물자로서 대동아전쟁에 공헌해야 하고, 농공업에 있어서 계획적인 생산정책을 실시하여 우리의 국력과 민력을 나날이 증진시켜야한다. 우리는 협력을 통해 대동아전쟁을 순조롭게 수행할 수 있게 해야하고, 우리 국가민족이 대동아전쟁의 승리로 해방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셋째 : 우리는 전면적인 화평을 실현하는 것이 대동아전쟁의 협력에 있어 중요한 요소임을 알아야한다. 충칭방면에서도 소수의 반동분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화평을 지향하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이들과 이심전심하여 그 억압의 속박과 고통을 해소하고 화평진영에 적극 참가할 수 있도록 하며 전국적으로 물자와 정신력을 집중하여 대아시아주의의 실천에 종사할 수 있게 해야한다. 민국 27 (1938) 년 12월 29일, 내가 보낸 염전이 충칭측에서 받아드려졌더라면, 민국 28 (1939) 년 9월 유럽전쟁이 발발했을 때, 중일 양국은 같은 걸음으로써 세계전쟁에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 속에서 일본은 순조롭게 발전하고, 중국도 원기를 회복하여 더욱 발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충칭은 나라의 원기를 착취하고 또 착취하고, 인민의 생활을 질식시키고, 또 질식시키고 있으니, 이제 거의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만약 또다시 잘못된 선택을 하게된다면, 아마 다시는 회복할 희망을 얻을수 없게 될 것이다. 충칭은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속에서 신속한 반성을 할 것을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