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 - ⑲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의 담화 (1943.11.7)
- 데헷쟝
- 2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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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대동아회의 회의록은 1943년 작성된 대동아회의의사속기록(大東亞會議議事速記錄, 1943) 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는 하나다 (アジアは一つなり, 1943) 을 비롯한 당대 작성된 대동아회의의 회의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을 번역하여 대동아회의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동아회의 회의록 (大東亞會議會議錄) (1943.11.5~11.6)
(각 항목을 클릭하면 해당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회의 개최전 정보]
0. 대동아정략지도요강 (1943.5.29)
0. 대동아회의에 관한 건 (1943.10.2)
0. 준비위원회의 구성 (1943.10.21)
0. 대동아회의 회의장 도면
0. 대동아회의 참가자 명단 및 대동아회의 사무국 구성 (1943.11)
[회의 1일차](1943.11.5)
1. 대동아회의 개최와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3.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4.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5.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6. 바모 (버마국) 의 연설
[회의 2일차](1943.11.6)
7. 대동아공동선언에 대한 제안 및 각국대표들의 의견
8. 장징후이 (만주국) 의 추가 의견
9. 바모 (버마국) 의 추가 의견 (자유인도임시정부에 대한 옹호연설)
10.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11.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양도 연설
12. 도조 히데키 (일본) 의 폐회사
13.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폐회사
14. 회의 종료후 각국 대표들의 성명 발표
[3일차] (1943.11.7)
15. 왕징웨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6. 호세 라우렐과 기자들간의 담화
17. 바모와 기자들간의 담화
18. 장징후이와 기자들간의 담화
19.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대동아결집국민대회 (大東亞結集國民大會)](1943.11.7)
20. 도조 히데키 (일본) 의 연설
21.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연설
22. 완 와이타야콘 (타이왕국) 의 연설
23. 장징후이 (만주국) 의 연설
24. 호세 라우렐 (필리핀) 의 연설
25. 바모 (버마국) 의 연설
26. 찬드라 보스 (자유인도임시정부) 의 연설
27. 하인리히 게오르크 슈타머 (나치 독일) 의 연설
[부록]
28. 대동아공동선언 전문
29.각국 대표의 소견 발표
30. 왕징웨이 (중화민국 난징국민정부) 의 회의후 감상 / 회견 / 기념방송
31. 대동아회의 일정표

완 와이타야콘이 대동아회의 기간 묵었던 숙소인 마에다 토시나리(前田侯爵, 태평양전쟁 당시 보르네오 방어사령관을 담당했다. 하지만 1942년 9월 5일 비행기가 추락하여 사망했다. 토시나리의 사후 마에다의 가족은 전쟁의 격화속 본저를 떠났고, 때문에 대동아회의가 개최되고 있을 시기 저택은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 의 저택. (현재 고마마 공원 일대.)
*일본은 회의 참가국 대표마다 별도의 숙소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회의의 개최가 전반적으로 비공개로 진행되었다는점, 보안과 경호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호텔을 비롯한 일반적인 숙소보다는 일본 정부 및 관련 인사가 소유한 곳을 숙소로 제공하였다. 숙소에는 니혼바시의 미츠코시 백화점 앞에 있었던 오사와 국기점(大澤國旗店)에서 제작한 깃발이 걸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자유인도임시정부 대표였던 찬드라 보스는 도쿄 시바구(芝區) 미타츠나마치 (三田綱町) 의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의 아들 시부사와 케이조 (澁澤敬三) 의 저택을 숙소로 사용했다.
완 와이타야콘과 기자들간의 담화
(도쿄 메구로구(目黑區) 고마바쵸(駒場町) 마에다 토시나리 (前田侯爵)본저 응접실,
오전 9시)

완 와이타야콘의 담화문
(1943.11.7 오전 9시)
(긴 의자에 앉아 원고를 들고, 유창한 영어로) 저는 2년전 타이왕국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국경 문제를 교섭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적이 있습니다. 당시 타이왕국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국경문제는 일본 정부의 공정한 조정으로 완만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진보하는 대동아공영권을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대동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일본이 펼치고 있는 대동아에서의 행동은 대동아에 정의를 가져오고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겠다는 일본의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동아전쟁 발발 이후 타이 왕국은 일본과 동맹관계를 수립하였고 타이 왕국군은 막대한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일본군과 함께 싸웠습니다. 이속에서 타이 왕국 – 일본 관계는 나날히 친밀해졌고 협력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일본은 또한 말라이 북부의 4개주와 샨 지역의 2개 주를 일본에 할양했으며 이에 대해 타이 왕국 정부와 국민은 이러한 일본의 성의에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일본과 대동아 각국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타이 양국이 참가한 이번 대동아회의는 이러한 대동아의 우호관계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대동아 건설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동아회의에서 채택된 대동아공동선언은 세계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동아공동선언의 5원칙은 세계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한 근본 원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러한 일본 국민의 투쟁정신에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귀국과 동시에 저는 이러한 일본 국민의 최후의 승리를 굳게 쟁취하겠다는 결심을 국민에게 전하려 합니다. 타이 왕국은 앞으로도 일본과 전면적으로 협력하여 공동의 목적을 완수할 것입니다.
기자단과 완 와이타야콘의 문답
Q : 대동아공동선언의 5개항 중 타이 왕국이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A :현대에서 정치와 경제는 밀접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2항의 원칙과 4항의 원칙은 밀접하게 맺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상호의 자주독립 존중 (2항의 내용)’,‘호혜의 관계속 경제관계를 맺는 것(4항의 내용)’’ 이 다른 여러 원칙의 근본이 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Q : 타이 왕국-일본 양국은 대동아전쟁 발발 이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대동아회의 이후 타이 왕국 – 일본 관계를 발전시킬 구체적인 방안은.
A : 타이 왕국 – 일본 양국의 협력관계는 이미 충분히 완전한 정도까지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타이 왕국의 농산물, 원료품은 대량으로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으며, 타이 왕국은 앞으로도 일본으로부터 공산품을 수입하거나 가능하다면 필수 물자를 위한 제조공장도 도입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렇게 하면 타이 왕국의 경제력은 증가하고, 일본의 부담은 줄어 한층 더 경제적 협력을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Q : 대동아전쟁 완수를 위한 타이 왕국의 결의와 대일 군사협력에 대한 방침은.
A : 타이 왕국은 일본과 운명을 같이하며 일련탁생(一蓮託生)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타이 왕국은 군사적 협력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끝까지 협력해 나가겠다는 단단한 결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Q : 타이 왕국은 인도의 독립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자유인도임시정부의 탄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나아가 인도의 기근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 인도의 기근은 인도주의적 대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우리 타이 왕국을 비롯한 동아인들은 인도가 영국의 탄압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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